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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61화 (6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61화

풍백과 곽종도, 윤마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생각보다 여파가 크지 않고 조용했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며칠 후 적호경의 부름에 집무실로 들어간 풍백은 심각한 얼굴의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집중 추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듣자 하니 네가 백건상방의 소방주와 윤마철 공자를 비롯하여 그들의 친우들을 폭행했다고 하더구나. 심지어 호위무사 중 하나는 목숨을 잃었다고 하고……. 사실이더냐?”

풍백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사, 사실이야? 대체 어쩌려고…….”

진덕양은 풍백의 대답에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얼굴이 돼서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적호경은 침중한 얼굴임에도 풍백에게 물었다.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이지? 적어도 이유는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적호경의 이런 물음에 풍백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과거의 망나니 풍백이었다면 이런 물음이 아니라 따귀가 날아왔을지 몰랐다. 일단 덮어 놓고 풍백을 때려도 괜찮을 만큼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던 그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적호경이 풍백에게 이유를 물어보고 있었다. 적어도 풍백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풍백은 지금 이 상황이 꽤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누가 입을 열었을까? 아무래도 매가 부족한 놈이 있었나?’

애초에 완전히 숨기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알려질 줄은 몰랐다.

아마 왈짜들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 정도 폭행을 당하고도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왈짜 짓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윤마철도 아닐 것이다.

‘오줌을 지리는 것까지 봤으니 감히 입을 열지 않았겠지.’

남은 것은 하나였다.

‘역시 곽종도밖에 없나?’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덕양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이유도 없는 것이냐?”

그 말에 풍백은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유는 있습니다.”

“그게 뭐지?”

“윤마철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나갔더니, 곽종도와 함께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를 끌고 백건상방 소유의 빈 장원으로 데리고 갔고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에 적호경과 진덕양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풍백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풍백이 사람을 데리고 그들을 모두 붙잡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오히려 끌려갔던 거라니, 대체 이게 무슨 얘긴가 싶었다.

“그래서? 빈 장원으로 끌고 가서 뭐라고 하더냐?”

“적가상방으로 들여오는 호초 중 적어도 사 할을 원가에 넘기라고 하더군요.”

“호초를?”

“그, 그래서?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된 것이더냐?”

진덕양은 급하게 풍백에게 재촉했다.

현재 호초는 적가상방의 핵심 상품이었다. 이것이 있기에 백건상방과 싸움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호초를 가지고 무려 백건상방의 소방주가 흑도패처럼 장난질을 하려 했다는 말에 진덕양과 적호경은 이야기에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풍백이 왈짜들과 벌인 활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나올 때는 두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고, 곽종도와 윤마철의 호위무사가 나섰다는 말에는 심각하게 긴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고우길이 나섰다는 말에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풍백이 일방적으로 구타를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것이라면, 이제는 구타가 문제의 초점이 아니었다. 이건 상방끼리 싸움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이렇게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풍백의 이야기 중에서 다른 점은 호위무사 중 하나를 고우길이 죽인 것으로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거의 똑같았다.

물론 이야기로 듣는 점과 직접 보거나 당하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풍백은 싸움이 끝나고 수작을 부린 곽종도와 윤마철에게 교훈을 주는 의미로 육체적인 징벌을 내렸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맞았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듣는 두 사람은 아마도 곤장을 때리듯이 몇 대 때리는 것을 상상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를 모두 들은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다행히 네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기면 안 될 일인 것 같구나.”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일단 윤마철 공…… 아니, 윤마철 그놈의 포목점과 당장 계약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부족해. 이번 일로 인해 백건상방과는 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는 사이가 됐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백건상방과 동시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는 곳이 있으면 선택을 하라고 해야겠어.”

“음…… 하긴 아예 그렇게 선을 긋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향후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줄어들겠고요.”

풍백은 적호경과 진덕양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보다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리는 것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 주는 것에 대해 놀란 것이 아니다.

사실 풍백의 계획에도 향후 백건상방과 동시에 물건을 납품하는 곳이 있으면 선을 긋는 것이 있었다.

과거 적가상방이 백건상방에 의해 말라 죽어 가는 과정에서 물건을 납품하는 점포가 장난질을 수없이 치는 것을 봤었다.

그렇기에 기회만 된다면 어떻게든 점포들을 잘라 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당한 일을 계기로 미리 잘라 내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충분히 기꺼웠다.

아마 적가상방과 거래가 끊어질 점포는 향후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풍백은 백건상방을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차후 백건상방을 선택한 점포는 백건상방이 무너지면서 그들 역시 휩쓸려 들어가게 될 터였다.

불쌍하지도 않았고, 안타깝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그들이 직접 선택한 것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니까.

진덕양과 대화를 하던 적호경이 하던 말을 멈추고 풍백을 바라봤다.

“일단 네 얘기는 잘 들었다. 다만 말했다시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구나. 왜 그런지 아느냐?”

“그냥 넘어가게 된다면 아마도 이번 일로 인하여 제 평판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풍백의 말에 적호경과 진덕양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말을 해도 들어 먹지를 않는 망나니였던 풍백이 이제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제 그가 더 이상 과거의 그 망나니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이전까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젠 네 앞날을 위해서라도 나는 너를 징계할 생각이다.”

“큭큭! 이제 고생길이 아주 훤하겠구나.”

진덕양이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풍백을 아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 너는 네가 어떤 징계를 받는 것이 맞다고 보느냐?”

어차피 대외적으로 보여 주려고 하는 징계일 뿐이다. 그러니 너무 과한 징계일 필요는 없었다.

“당분간 제 거처에서 근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근신하는 동안 계속 무공이나 수련하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사실상 아무런 징계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허허! 참으로 적당한 징계인 것 같구나.”

“맞습니다. 이 녀석 네 거처에만 있다 보면 엄청 답답할 것이다. 하하하!”

지금까지 어차피 거처에서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았던 풍백이라는 걸 알기에 적호경과 진덕양 역시 환히 웃고 있었다.

* * *

근신 징계를 받은 풍백의 하루는 이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무공 수련만 했다. 그리고 저녁에 한 번씩 마평이 와서 정육 사업에 대한 보고를 듣는 것으로 끝이었다.

아직도 마평이 언제까지 물소의 뿔을 창고에 쌓기만 할 거냐고 징징거리기는 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로 달래며 돌려보냈다.

마평의 불만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물소의 뿔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버리는 곳이 많아서 그냥 받아 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적가상방이 물소의 뿔을 챙겨 간다는 소문이 흐르기 시작하자, 조금이라도 돈을 받으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덕분에 마평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자금이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물소의 뿔을 구입하고 있으니, 물소의 뿔 가격이 점차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평의 이런 고민과 달리, 풍백은 물소의 뿔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는 지금 가격보다 더 비싸질 테니까 말이다.

다만 아직은 이런 얘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씩 마평을 달래며 일을 진행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평온하게 무공을 익히고 있던 풍백은 오랜만에 적호경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신 처분을 받은 지 열흘 만에 벌써 근신이 끝난 것이다.

사실 이건 풍백의 생각보다 빨랐다. 아무리 허울뿐인 근신이라고는 하나, 며칠은 더 근신을 하고 있어야 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아무런 일이 없다면 벌써 적호경이 자신을 부를 리가 없었다.

궁금증을 가지고 적호경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풍백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 적호경과 진덕양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금호상방주 조태명?’

태연한 얼굴로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조태명을 보고 풍백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조태명은 찻잔을 내려놓고 풍백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일세.”

“오랜…… 만에 뵙습니다.”

풍백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상대가 백건상방의 곽자억이라면 이렇게 인사를 할 필요가 없지만, 조태명에게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과거 금호상방 역시 적가상방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를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조에 가까웠다. 관부가 적가상방을 돕지 못하게 손을 쓴 것은 있었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이 자리에 조태명이 있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일단 자리에 좀 앉지. 계속 그렇게 서 있을 텐가?”

풍백이 적호경을 바라보자 적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서야 풍백이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조태명은 눈빛을 빛냈다.

“적가상방의 망나니가 정신을 차렸다더니, 진짜였던 모양이군.”

“하하! 젊은 날의 방황이었을 뿐이지요. 제 아들이 그렇게 망나니는 아니었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더니, 딱 그 짝이군.”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부르셨으면 제가 알아서 찾아갔을 텐데 말입니다.”

원래 적가상방의 누군가를 만나려고 했다면 금호상방으로 불렀어야 했다.

지금까지 조태명은 항상 그랬었다. 상대가 적가상방이 아니라 백건상방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금호상방은 단순히 가장 큰 규모의 상방이라고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상산현의 유지였고, 관부와 가장 긴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었다.

적어도 풍백이 더 윗선의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금호상방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조태명이 다시 차를 마시며 말했다.

“소문이 자자한 자네 아들도 좀 보고, 오랜만에 진 총관과 인사도 나눌 겸 직접 나와 봤지. 상방이 바쁘다고 하던데, 자네와 총관, 거기에 자네 아들까지 부르면 되겠는가?”

“그렇게 신경을 써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태명이 풍백을 보며 물었다.

“네 소문은 제법 들었다. 이제 술도 마시지 않고 상방 일을 잘 도와주고 있다면서?”

“술은 한시적으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상방 일을 본격적으로 돕는 중은 아닙니다. 몇 가지 일에 관련해서만 조금씩 배우며 관여하는 중이고요.”

“조금씩 배우며 관여하는 정도가 아니던데? 우리가 미래를 위해 준비하던 청송무관을 자네가 중간에 가로챈 것도 알고 있네.”

조태명의 말에 적호경과 진덕양이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혹시 지금 조태명이 백건상방처럼 싸우기 위해 선전포고를 하러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풍백은 그저 슬쩍 미간을 좁히며 조태명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태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너무 경계하지는 않아도 되네. 나는 여기에 싸우자고 온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자네들을 도와주러 온 거야.”

그 말에 적호경과 진덕양이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분명 자신들이 청송무관을 가로챈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도와준다니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대체 상방주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조태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청해상방에 대해 알고 있나?”

풍백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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