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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9화 (5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9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호위무사의 협공에 고우길은 당황했다.

불과 얼마 전 청해상방 무사들의 협공에 큰 낭패를 봤었던 고우길이었기에 또다시 당하게 된 협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밀리는 것 같았던 고우길은 몇 초식을 나눈 이후로 빠르게 안정을 취해 갔다.

일단 나중에 치고 들어온 호위무사의 무공은 이전 청해상방의 무사들과 비교하면 꽤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우길이 빨리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풍백에게 난파칠식과 함께 배운 약간의 보법 덕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법은 아니었다.

보법은 검법처럼 일부 쪼개서 배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기존에 사용하던 보법을 더 수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풍백은 고우길에게 합공을 당했을 경우, 상대를 어떻게 상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 사람을 상대하는 가운데 뒤에서 암중에 공격이 들어오면 아무리 단순한 초식이라고 하더라도 대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풍백은 이런 협공을 당할 경우에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협공에 대처하기 위한 포석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쳐 줬다.

고우길은 풍백의 이런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그는 호위무사가 자신의 시야 밖으로 움직이는 걸 곁눈질로 확인하자마자 양 무사의 왼쪽으로 난파칠식을 펼쳐 호위무사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유도했고, 동시에 보법으로 두 사람이 한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움직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함께 펼쳐지는 공세가 부담스럽기는 하더라도 암중에 날아오는 공세는 없어지게 된다.

또한 양 무사와 호위무사는 청해상방의 무사들처럼 서로 손발을 맞춰 본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동시에 서로 초식을 펼치다가 서로가 방해물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채챙!

양 무사와 호위무사가 동시에 초식을 펼치다가 서로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큭! 비켜!”

“이, 일부러 그런 게…….”

“비키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양 무사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이런 식으로 협공을 하려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상황이었다.

고우길은 두 사람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점점 더 편해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결판을 봐야겠어.’

밤이 길면 꿈도 길다고 했다.

현재 승기는 두 사람의 협공을 받고 있는 고우길에게 넘어와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싸움을 종결시키는 것이 유리했다.

만약 싸움이 길어지면서 양 무사와 호위무사가 서로 손발이 맞기 시작하면 점점 더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테니까.

기회를 엿보던 고우길이 다시 한번 양 무사와 호위무사가 서로 방해를 받는 일이 생기자, 지금까지 아껴 왔던 난파칠식의 두 번째 초식을 펼쳤다.

용천보검의 검첨이 뱀의 혀처럼 흔들리며 양 무사를 찔러 갔다.

양 무사는 단순하지만 빠른 검격이 자신의 상체에 있는 요혈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보곤 이를 악물고 내공을 잔뜩 담아 받아쳤다.

‘내공으로 쳐 내고 이득을 얻겠다!’

고우길이 현묘한 검초를 가지고 이득을 보고 있을 뿐이지, 내공 자체는 일류고수를 바라보고 있는 양 무사가 더 대단했다.

그러니 힘으로 고우길의 검을 쳐 내면, 적어도 힘으로 인해 검이 밀린 고우길의 허점을 호위무사가 노려 줄 거라는 계산이었다.

양 무사의 검이 막강한 내공을 담고 고우길의 검을 쳐 내려고 하는 그때, 불길하게 흔들리던 고우길의 검첨이 점점 더 크게 흔들리더니 순간적으로 두 개로 분열하는 것이 보였다.

“억!”

대경실색한 양 무사가 황급히 물러서려고 했지만, 이미 검에 너무 많은 내공을 불어넣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내공의 수발이 그 정도로 자유로웠다면 이미 양 무사는 일류고수가 아니라 절정고수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양 무사의 검은 고우길이 펼친 잔영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렇게 텅 빈 양 무사의 가슴에 고우길의 검이 박혔다.

푹!

“끄으윽…….”

그나마 절명(絶命)할 수 있는 요혈에 박히지 않았지만, 그것은 고우길이 마지막에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장 절명하지 않았을 뿐,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양 무사가 그대로 검을 놓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있으시오. 도련님이 당신의 목숨까지 빼앗으라고 하지는 않으셨소.”

말을 마친 고우길이 호위무사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당신의 목숨은 반드시 빼앗으라고 했으니, 어디 한번 계속해 봅시다.”

“이, 이런 빌어먹을…….”

절망에 빠진 호위무사가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죽어 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끝났네.”

양 무사가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을 본 풍백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난파칠식 중 두 초식을 직접 가르쳐 줬던 풍백이다. 그렇기에 현재 고우길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하여 양 무사와 호위무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걸음걸이, 행동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그들의 무위에 대해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풍백의 결론은 고우길의 무난한 승리였다.

고우길이 배운 난파칠식은 이류무인이 쉽게 받아 낼 수 있는 그런 흔한 무공이 아니었다. 아마 언젠가 후삼식(後三式)을 배우게 된다면 일류고수라고 하더라도 감히 경시(輕視)를 못할 정도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고우길은 풍백의 예상대로 호위무사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무난히 양 무사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런 풍백과 달리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곽종도와 윤마철은 가뜩이나 고통 때문에 창백해진 얼굴이 더욱 핼쑥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풍백은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깥에 널브러져 있는 의자 하나를 가지고 오더니 다리 한쪽 잡아서 땅에 내려쳐 부쉈다.

쾅!

부서진 의자에서 다리 하나를 집어 든 풍백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종도와 윤마철은 풍백이 손에 몽둥이 하나를 든 걸 벌벌 떨며 바라봤다. 저걸로 자신들을 때리지는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풍백의 시선은 그들이 아니라 이제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는 왈짜들에게 닿아 있었다.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왈짜들에게 걸어간 풍백이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야. 그렇지?”

“아…… 예…….”

“나, 날씨가 참 좋습니다…….”

왈짜들은 어설픈 미소와 함께 잔뜩 긴장한 눈으로 풍백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방금 전 자신들이 어떻게 기절했는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왈짜들이었다. 특히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지고, 턱이 부서진 왈짜들은 풍백의 목소리만 들어도 움찔거리고 있었다.

풍백은 그런 왈짜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잘 참아 봐.”

“……네?”

“지금부터 비명을 지르는 놈이 하나라도 나오면 반각씩 더 맞는 거야. 알았지?”

“그…… 그게…….”

“잠시만…….”

“혹시라도 옆에 있는 놈이 소리를 지를 것 같으면 알아서 막도록 하고.”

말을 마친 풍백이 손에 침 한 번 뱉고는 몽둥이를 단단히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몽둥이가 왈짜들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텅!

가장 처음 머리통을 몽둥이에 직격당한 사내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됐는지, 풍백의 몽둥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쾅! 쩍! 쿵! 퍽!

온갖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왈짜들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으아악!”

“비명 한 번 나왔네? 그럼 반각 추가.”

“끄아아…… 합!”

“입 막아도 늦었어. 미리 막고 있었어야지. 다시 반각 추가.”

“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막지 마!”

“어딜 도망가려고?”

우드득!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사내는 몽둥이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며 바닥을 나동그라졌다. 감히 도망가려고 했기 때문인지 그 사내에게는 유독 많은 몽둥이질이 가해졌다.

몽둥이는 사내들의 전신을 구석구석 가격했다. 어디 한 곳 피하지 않고 쏟아지는 몽둥이찜질에 여섯 사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같은 곳을 두 번 맞지 않도록 굴러다니는 것뿐이었다.

곽종도와 윤마철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구타의 현장을 똑똑히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잔인한…….’

‘도…… 도망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곽종도는 손에 박힌 단검이 얼마나 단단히 지면에 틀어박혔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윤마철은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러져 있기에 버둥거리다가 끔찍한 고통에 신음성만 흘릴 뿐이었다.

왈짜들이 맞는 모습이 얼마나 살벌한지, 두 사람은 마치 자신들이 맞고 있는 것처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왈짜들은 무지막지한 구타의 시간을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다. 고통을 참아서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너무 무지막지하게 맞다 보니 비명을 지를 힘도 없었던 것이다.

거의 반 시진에 걸쳐 얻어맞은 왈짜들은 숨만 쉬는 모양새였다.

풍백은 왈짜들은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내가 맞았던 딱 그 상태인 것 같군.’

왈짜들은 운이 좋았다. 그들은 그나마 골고루 동료들과 나눠서 맞았겠지만, 풍백은 여섯 명에게 밟혔기에 그 고통이 더 심했었다.

풍백이 피로 붉게 물든 몽둥이를 다시 어깨에 걸치고 돌아서자 고우길과 호위무사가 보였다. 호위무사는 고우길의 검첨이 목에 닿아 있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본 풍백이 고우길을 바라봤다.

“죽이라고 했었는데?”

“혹시 직접 처리하실까 싶어서 잡아 뒀습니다.”

“그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처럼 몽둥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오는 풍백을 본 호위무사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 저는 그저 도련님을 따라 여기에 온 죄밖에 없습니다! 정말 적 공자님을 어떻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맹세합니다!”

호위무사의 절규에 풍백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호위무사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마 윤마철이 당장 풍백을 죽이라고 했다면 망설이지 않고 죽였을 것이다.

과거에도 호위무사는 그랬었다.

딱히 어떤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가벼운 눈짓 한 번에 그렇게 죽일 듯이 자신을 때렸었다. 심지어 나중에 골병들어 죽으라는 것처럼 손에는 잔뜩 내공을 담아서 말이다.

그나마 호위무사가 이류무인 초입이라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만약 그가 일류고수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 천천히 피를 토하며 죽도록 만들었을 것 같았으니까.

그만큼 호위무사는 왈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악랄한 놈이었다. 그래서 절대 살려 줄 생각이 없었고 말이다.

몽둥이를 호위무사 어깨에 잠시 올려놨던 풍백은 이내 몽둥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호위무사의 머리통을 향해 마치 도끼질이라도 하듯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쩍!

의외로 소리는 가벼웠다.

하지만 몽둥이를 맞은 호위무사는 백회혈(百會穴)에서 피가 솟구치며 그대로 쓰러졌다.

사람을 죽였지만 딱히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호위무사처럼 사람을 재미로 괴롭게 만드는 놈은 차라리 빨리 죽어 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양 무사는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검이 찔린 상처에서 소량의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보면 아마 혈도를 점해서 지혈을 한 것 같았다. 아마 의원을 빨리 만나고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풍백은 몽둥이를 질질 끌며 곽종도와 윤마철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사신이 다가오는 것처럼 절망적인 눈으로 풍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충분히 시간이 있으니, 지금까지 너희 인생에 대한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

“자, 잠깐!”

“우리 마…… 말로 하자!”

“그럴 기회는 이미 너희가 버렸어.”

풍백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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