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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8화 (5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8화

‘이런 제기랄!’

양 무사는 자신의 하체를 쓸어 오는 고우길의 검에 황급히 땅을 박차고 뒤로 크게 재주를 넘으며 피했다.

고우길은 손에 넣은 승기(勝機)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양 무사가 뒤로 도망가는 만큼 쫓아가며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정신없이 고우길의 검을 받아 내는 양 무사의 얼굴은 식은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분명 싸움의 시작은 양 무사가 기세를 타고 있었다. 승기를 잡은 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면 몇 수 안에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우길의 검법이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숭양검법은 도가(道家)에서 유래된 무공으로 대단한 상승 묘리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장대하게 펼쳐지는 검로(劍路)는 같은 수준의 무공들 중에서 특히 빼어났다.

그러나 이런 장점과 달리, 변초가 빈약하고 의외성이 떨어져 한계가 명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숭양검법을 펼치는 중간중간에 무언가, 분명히 숭양검법이 아닌 다른 검법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우길이 가하던 압박의 강도 자체가 달라지게 됐다.

고우길이 펼친 초식은 대단히 실전적이고, 그 목적이 상대를 상하게 하거나 숨통을 끊는 것에 있다는 듯이 아주 공격적이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사실 고우길이 중간중간 섞어서 사용하는 검법의 초식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초식 하나에 담긴 무리(武理)는 대단히 깊었고, 변초는 수없이 많아서 하나의 초식처럼 느껴지지 않을 판국이었다.

이때부터 밀리기 시작한 양 무사는 이제는 언제 고우길이 그 초식을 사용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비하여 고우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팽만해 있었다.

‘이길 수 있다! 먹히고 있어!’

풍백의 전담 호위무사가 된 이후, 고우길은 풍백에게 초식 두 개를 배울 수 있었다. 초식을 배우자마자 고우길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일류고수가 사용할 법한 상승의 무공이다!’

초식 하나에 담긴 상승의 무리와 수없이 파생되는 변초는 지금까지 숭양검법만 알고 있던 고우길의 편협했던 의식 자체를 박살 내 줬다.

처음에는 단지 초식 두 개만 알려 준다고 해서 대단히 아쉬웠었는데, 정작 초식 하나를 가르침 받은 다음에는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식 하나에 담긴 무리와 변초를 모두 숙달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끝내주게 멋지다니까! 난파칠식이라니…… 이런 초식이 아직 다섯 개나 더 있다는 말이잖아!’

막연히 초식의 오묘함을 느끼고 있던 고우길은 오늘 직접 자신보다 확실히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양 무사와 검을 부딪치며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난파칠식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말이다.

따당!

숭양검법으로 양 무사의 검을 튕겨 낸 고우길이 곧장 난파칠검의 일식을 펼쳤다. 그러자 검이 마치 뱀처럼 허공에서 움직이며 양 무사의 심장을 향해 나아갔다.

양 무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겁을 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에 고우길은 이제 끝장을 보려는 것처럼 숭양검법의 절초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펼치며 쫓아갔다.

“어때? 보고만 있을 거야?”

풍백의 물음에 윤마철의 호위무사가 이를 갈며 외쳤다.

“너를 제압하면 모두 끝날 일이다!”

“끝나? 어떻게? 나를 제압하고 고 무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야? 음……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긴 내가 너희를 끌고 온 게 아니거든? 설명 좀 해 줄래?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너희 목적이 나와 고 무사에게서 도망가는 거였어?”

“이익…….”

“아니면 나를 제압하면 고 무사가 대신 죽어 주겠대? 너라면 네 도련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그 정도로 엄청난 월봉을 받았다는 말이야?”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아마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선택해. 나를 제압하고 그냥 너희 도련님이나 챙겨서 도망갈래? 아니면 저 싸움에 끼어들어서 고 무사를 어떻게 해 볼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도망갈래?”

마음 같아서는 모두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어차피 낭인무사보다 쉽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기에 호위무사로 들어온 것뿐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냥 도망친다면 아마 내일 당장 호위무사에서 잘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이 소문이 나면 앞으로 낭인무사로도 일하지 못할 것이다. 신용도 없는 사람에게 일거리를 주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머리가 터질 것처럼 심각하게 고민하는 호위무사를 보고 풍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무 고민이 많네. 그러면 내가 선택하기 쉽게 만들어 줄게.”

“……뭐?”

“어이, 고 무사!”

풍백의 외침에 고우길이 공세는 이어 가며 대답했다.

“네, 도련님!”

“여기 포목점 호위무사는 딱히 필요가 없으니까 죽여.”

“뭐, 뭐하는 거냐!”

호위무사가 대경해서 풍백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풍백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행여나 죽더라도 이놈은 꼭 죽이도록 해. 도망가면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말이야.”

“이놈!”

호위무사가 풍백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목을 졸랐으나 이미 할 말은 모두 끝낸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대답을 끝낸 고우길의 검초가 더욱 매서워졌다.

목을 부러뜨려 죽일 것처럼 풍백의 목을 조르던 호위무사는 이내 손을 힘을 풀었다. 지금 풍백을 죽이면 정말 고우길이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위무사는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힘껏 풍백의 목을 졸랐는데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풍백은 자신의 목을 몇 번 만지며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도망간다는 선택지는 없어졌는데. 싸울 거야? 아니면 나를 잡아서 협박이라도 해 볼 거야?”

“이…… 이 악마 같은 놈!”

“뭐라는 거야? 내 등에 칼을 겨누고 데려온 사람은 너희들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풍백을 보고 이를 간 호위무사가 빠르게 고우길과 양 무사의 싸움 사이로 참전했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호위무사는 양 무사보다 무공이 약했다. 그런데 만약 고우길이 양 무사를 죽이거나 제압한다면, 이제 고우길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풍백은 싸움에 가담한 호위무사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네가 바로 예전에 나를 때렸던 놈이었지.’

적가상방이 멸문하고 윤마철을 찾아갔다가 저 호위무사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왈짜들에게 얻어맞은 건 호위무사에게 맞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위무사는 죽으라고 손에 내공까지 담아 가며 때렸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호위무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야 했다.

호위무사가 풍백을 놔두고 고우길과 양 무사 싸움에 난입하자 곽종도와 윤마철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이, 이봐!”

“아니, 우리를 이렇게 놔두고…… 가 버리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우린 우리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 아냐?”

이죽거리며 풍백이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풍백이 무려 여섯 명의 왈짜를 얼마나 손쉽게 기절시켰는지 모두 지켜봤던 두 사람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보여 준 손속은 아주 매서웠다.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는 윤마철과 달리 곽종도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곽종도의 단검을 본 풍백이 히죽 웃었다.

‘이거 반가운 물건일세.’

과거 왈짜들에게 비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얻어맞았던 풍백을 두고 곽종도가 지금처럼 품에서 단검을 꺼냈었다. 그리고 그 단검으로 풍백의 한쪽 눈 밑에 검첨을 가져다 대며 말했었다.

“눈 한쪽을 내놓을래, 아니면 내 발바닥을 핥을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곽종도는 진짜 풍백의 눈을 도려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애초에 그 정도 강단이 있는 놈이었다면 지금처럼 벌벌 떨고 있지 않을 테니까.

물론 풍백은 겁에 질렸기에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곽종도의 냄새나는 발을 핥았고, 그런 풍백의 모습은 상산현 전역으로 퍼져 나갔었다.

‘아…… 그때는 참 창피해서 죽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나중에 군부에서 똥통에 잠수해서 삼일 밤낮을 작은 대롱으로 숨 쉬며 버티는 훈련을 하고 나서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치욕을 받아도 괜찮았다. 그 치욕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갚아 줄 수 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가, 가까이 오지 마!”

곽종도가 찌를 것처럼 단검을 휘두르며 풍백이 다가오는 걸 견제했다. 윤마철은 그런 곽종도의 뒤에서 벌벌 떨고 있기만 했다.

적당한 거리에 서 있던 풍백은 어느 순간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번개같이 발을 날려 단검을 들고 있는 곽종도의 손목을 걷어찼다.

빡!

“악!”

곽종도가 비명과 함께 손에서 단검을 놓쳤고, 단검은 하늘로 빙글빙글 돌며 떠올랐다.

곽종도의 시선이 단검으로 향하는 걸 본 풍백이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곽종도의 양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곽종도의 무릎이 굽혀지며 그대로 지면에 무릎을 찍었다.

무릎이 지면을 찍는 고통은 매우 컸다. 하지만 그가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 풍백이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오른손을 잡고 지면에 손바닥을 대더니 다른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방금 떠올랐던 단검이 내려와 거짓말처럼 풍백의 손에 잡혔고, 그는 그대로 단검으로 곽종도의 손바닥을 찍었다.

“끄아아아아악!”

찢어질 것처럼 커다랗게 변한 곽종도의 눈이 자신의 오른손을 향했다.

단검이 오른손을 관통하여 지면에 박혀 있었다. 미세하게 움직이기만 하더라도 단검이 자신의 손에 있는 뼈를 긁어 대는 것처럼 아팠다.

처음 비명을 지른 이후 곽종도는 입만 벙긋거리며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는 끔찍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서 흘러내렸다.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으…… 으아아악!”

윤마철이 곽종도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두 걸음도 내딛기 전에 무언가에 다리가 걸려 자빠지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자신의 다리를 걸었던 풍백의 발이 보였다.

“으으으…….”

윤마철은 급히 기어서라도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의 등에 올라탄 풍백 때문에 버둥거리기만 했다.

풍백은 그런 윤마철의 한쪽 팔을 뒤로 꺾으며 말했다.

“자! 움직이면 더 아프니까 빨리 한 번에 가자고.”

“으윽…… 뭐, 뭐를 한 번에…….”

“이거.”

우드득!

“아아아악!”

뒤로 꺾인 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부러지며 끔찍한 고통이 윤마철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비명은 곧 다리를 잡는 풍백의 손을 느끼며 멈췄다.

“서, 설마…….”

“한 번 더 가자. 말했지만 움직이면 더 아프다. 한 방에 가는 게 좋아.”

“자, 잠깐만! 내가 하, 할 말이 있거든!”

“이따가 들어 줄게. 지금은 일단 이것부터 꺾어 놓고.”

“사, 살려 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 짧은 걸 보면 말이야.”

“으헉!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걱정하지 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간다?”

“잠까아안! 잠까…… 끄아아아악!”

사정을 하던 윤마철은 무릎이 박살 나는 고통에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풍백은 일어나더니 윤마철의 뺨을 툭툭 때리고는 그의 품을 뒤졌다. 윤마철의 품에서는 아까 뺏어 갔던 풍백의 전낭과 함께 그의 전낭이 나왔다.

“뭐야? 요즘 돈이 없다면서 전낭이 묵직하기만 하네. 이건 내 시간을 낭비한 대가로 챙기도록 할게. 불만 있으면 빨리 얘기해.”

당연히 윤마철은 고통에 눈이 돌아간 상태라 대답도 못하고 있었다.

전낭 두 개를 챙긴 풍백이 곽종도와 윤마철의 머리를 때리며 고우길이 싸우고 있는 걸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거의 끝나 간다. 너희도 봐 봐. 혹시 알아? 너희 호위무사가 두 명이니 고 무사가 질 수도 있잖아.”

풍백의 말에 곽종도와 윤마철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눈은 풍백이 가리킨 것처럼 호위무사들이 싸우는 방향을 향했다.

행여나 자신들의 호위무사들이 이기면 풍백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저 고우길이 이기면 지금 받는 고통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들어찰 뿐이었다.

호위무사의 싸움은 풍백의 말처럼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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