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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5화 (5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5화

풍백이 대답을 하는 대신 묘한 미소만 짓고 있자, 곽종도는 여유롭게 한쪽 다리를 꼬며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많이 놀랐나?”

풍백은 곽종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옆에 앉아 있는 윤마철을 바라봤다. 윤마철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야?”

“의미는 무슨 의미? 너하고 저녁 식사나 하려고 했는데, 마침 소방주님께서 너하고 만난다는 걸 알고 자리 좀 부탁하시더라고.”

“아…… 그래? 그런데 너는 나하고 이 새끼하고 어떤 사인지 다 알고 있지 않나?”

곽종도는 풍백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 가리키며 거친 말을 하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점소이를 불렀다.

“이봐, 점소이?”

“네, 공자님!”

“여기 술 좀 가져와.”

“어떤 거로 가져다 드릴까요?”

“오늘은 끝 맛이 좋은 백주(白酒)가 좋을 것 같아.”

“백주하면 양하대곡(洋河大曲)이죠. 이걸로 가져올까요?”

“양하대곡 좋지.”

양하대곡은 강소성의 대표적인 술로 맛이 달고 향기가 진한 것이 특징이었다.

앞에서 이렇게 술을 시키고 있는데도 풍백은 그쪽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윤마철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윤마철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같은 상산현 사람인데 이제 서로 섭섭한 것이 있으면 풀고, 앞으로 더 밝은 내일을 위해 서로 돕고 살면 좋잖아? 안 그래?”

“서로 돕고 산다라…….”

말을 길게 늘인 풍백이 뒤를 돌아봤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곽종도와 함께 들어온 여섯 명의 사내들이 입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풍백은 저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곽종도와 함께 몰려다니는 왈짜들이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적가상방이 멸문당하기 얼마 전에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팼던 놈들이었는데 말이다.

참 신기했다.

사람은 고마운 사람은 잊지만, 밉거나 원한이 있는 사람은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지금 풍백도 같았다.

자신에게 살갑게 나왔던 화양루의 점소이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저놈들의 얼굴은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간혹 꿈에도 나오기도 해서 잊어버리기도 힘들었다.

풍백이 왈짜들을 바라보자 곽종도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쫄지 마.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쟤들에게 너를 두들겨 패라고 시키겠어?”

‘그래, 시키더라.’

그때도 화양루는 아니었지만, 화양루 못지않은 고급 주점이었다. 하지만 곽종도는 너무나 쉽게 풍백을 두들겨 패라고 시켰었다.

당연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곽종도와 왈짜들이 포쾌(捕快)에게 잡혀 포도아문으로 압송(押送)되는 일은 없었다.

풍백은 여전히 곽종도의 말에 대꾸를 하는 대신 윤마철에게 집중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데리고 왔다?”

“이야기가 잘 풀리면 너를 위해 데리고 온 게 맞는 거지.”

“그럼 이야기가 잘 안 풀리면?”

“음…… 그러면 이야기가 잘 풀리도록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이야기는 잘 풀리게 될 테니까.”

이건 위협이었다.

풍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윤마철이 너…… 아주 나쁜 놈이었구나?”

“에헤이! 나쁜 놈이라니? 다 너를 생각하고,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 상산현의 발전을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뿐인데 너무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냐?”

“좋아. 일단 얘기라도 들어 보도록 하지. 그런데 얘기가 다 끝나고 나서 너는 나하고 따로 이야기 좀 해야겠다.”

“굳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

이제야 풍백이 곽종도를 바라봤다.

“내가 오늘 참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

“그것참 다행이네. 그럼 음식 좀 먹으면서 얘기를…….”

“그건 알아서 하시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한 번 씨불여 봐.”

다시 한번 터진 거친 말에 곽종도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이내 다시 풀렸다. 그런 곽종도의 모습에 풍백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더 진해졌다.

망나니의 기본 조건 중 하나가 급하고 더러운 성격이다.

훌륭한 망나니의 요건은 전부 가지고 있는 곽종도이기에 그의 성격 역시 급하고 더럽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풍백의 자극에 성질을 폭발시키질 않고 있었다.

‘진짜 궁금하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 머저리가 더러운 성질도 참아 내며 이러고 있는 걸까?’

곽종도는 자신의 잔에 양하대곡을 따라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치솟는 분노를 술로 꺼뜨리려는 것 같았다.

술잔을 내려놓은 곽종도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지금 사업을 하자고 온 거다.”

“사업? 네가? 풋!”

비웃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처음 꺼낸 말부터 웃겼기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만 것이다.

곽종도는 백건상방에서 어떤 일도 맡고 있지 않았다. 풍백이 그랬던 것처럼, 누가 망나니에게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대뜸 꺼낸 말이 사업을 하자는 말이라니, 이게 무슨 지나가는 강아지가 방귀를 뀌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풍백의 비웃음에 곽종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여전히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았다.

그런 곽종도를 보며 풍백이 계속 말해 보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후우…… 진지하게 들어. 사업을 하자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까.”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희가 취급하는 호초를 우리가 구입했으면 한다.”

풍백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물었다.

“그래? 가격만 맞으면 팔 수도 있지. 얼마에 구입하고 싶은 건데? 양은 얼마나 필요하고?”

“일단 양은 너희가 상산현에 가지고 들어오는 양의 절반 정도? 조금 부담스럽다면 삼 할…… 아니, 사 할 정도는 꼭 필요해.”

“가격은?”

“당연히 도매가로 받아야지.”

“……도매가라면 우리가 물건을 사 온 가격을 말하는 건가?”

“그렇지. 너희도 지금 가져온 물량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니 우리가 절반을 구입해 주면 나중에 판매처가 생길 때까지는 받아 오는 물량을 줄일 필요가 없어지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것 같은데.”

적가상방이 항주에서 사 온 호초를 창고에 쌓아 놓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항주에서 가져온 물량은 적어도 절강성 남서부 지역 전체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으니까.

그리고 천축으로 떠난 심오경 점주가 수레 하나의 양을 호초로 채워 오고, 그 정도 양을 주기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아마 절강성 남부 전체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적가상방이 상행을 가거나 점포가 진출한 곳은 상산현 인근 지역에 있는 몇 개의 현뿐이었다.

호초는 아주 비싼 향신료였다. 그렇기에 빨리 판매를 해야 했다. 지금처럼 창고에 호초를 쌓아 놓으면 자금이 경색될 위험이 있었다.

물론 이건 최악의 경우일 뿐이다.

현재 적가상방은 이런 위험과 거리가 있었다. 일단 호초를 사 오는 가격이 쌌고, 천축에서 새로운 물량이 들어올 때쯤에는 지금 창고에 있는 호초는 모두 팔아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격적으로 확장을 하고 있는 적가상방이기에 새로운 물량이 들어왔을 때쯤에는 충분히 소화가 가능할 가능성이 컸다.

여기에 지금 풍백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심오경 점주에게 받아 온 호초를 모두 소화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곽종도는 이런 걸 몰랐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적가상방 일꾼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가지고 헐값에 호초를 구입할 수 있다는 계획을 세운 것처럼 보였다.

이런 사정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곽종도가 제안한 것은 매우매우 무례한 짓이었다. 세상에 있는 상인 중에 누가 자신이 구입한 물건을 원가 그대로 넘기고 싶어 하겠는가?

만약 곽종도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상대가 절대적으로 망할 것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결국 풍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풍백의 모습에 곽종도와 윤마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너희한테 애물단지가 되고 있는 호초를 구매해 주겠다고 하잖아.”

“그만…… 그만해……. 날 웃겨 죽일 셈이냐! 으하하하하!”

쾅!

“그만 웃어!”

곽종도가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풍백의 웃음은 쉽게 그치질 않았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간신히 멈춘 풍백이 눈물을 닦았다.

“이제 다 웃었나?”

“아…… 이렇게 웃어 본 일은 근래에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한 대답은 뭐지?”

“뭘 묻고 그래? 한바탕 웃겨 줬으면 됐지, 날 더 웃겨 주고 싶은 거야?”

“거절이라는 말인가?”

풍백은 점점 인상을 쓰는 곽종도에게 말했다.

“야, 이 등신아, 잘 들어. 적가상방하고 백건상방이 싸우고 있는 건 알고 있냐?”

“그 싸움은 이제 끝난 걸로…….”

“지랄한다. 우리 싸움은 끝날 수가 없어. 싸움을 끝내고 싶었으면 산적 일을 조용히 넘어가 줄 때 그만했어야지. 한 대 때린 것은 욱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두 대를 때렸다는 건 한번 해보자는 말이잖아.”

“그건…….”

“그리고 적어도 싸움을 끝내고 싶었으면 미안했다고 말하고 사죄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안 했다는 말은 우린 아직 싸우는 중이라는 말이지. 지금은 조용한 것 같아도, 사실은 누가 먼저 주먹을 날릴지 서로 수 싸움 중이라고 해야 하나?”

“…….”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호초를 넘겨라? 그것도 우리가 구매한 가격에? 그리고 그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라고?”

“너희도 호초 처분에 문제가…….”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너희에게는 안 팔아. 우리가 가진 호초 때문에 너희가 공격하다가 철수했는데, 그런 호초를 너희에게 넘겨? 우리가 정말 급하면 차라리 금호상방하고 얘기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한테는 못 팔지. 이해가 좀 되나?”

깍지를 끼고 팔꿈치를 식탁에 올린 풍백이 깍지 위에 턱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대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네 아비가 이런 등신 같은 제안을 날리라고 했을 리는 없고…….”

“이 새끼가!”

“등신 두 마리가 하는 짓을 보니 대충 짐작은 가네. 왜? 급하게 네 아비에게 네 능력을 보여 줘야 하는 일이 생겼어?”

곽종도는 풍백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실제로 근래 곽종도는 아버지인 곽자억에게 매일같이 구박을 받으며 풍백과 비교를 당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계속 이렇게 망나니처럼 살면 백건상방을 물려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선포까지 당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곽종도의 옆에서 간사하게 입을 놀린 것이 윤마철이겠고.

“내가 망나니였으니까 이렇게 불러서 조금 험악한 분위기를 보이면 아이쿠 무서워라 하면서 네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던 건 아니지?”

“…….”

“어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헛웃음을 지은 풍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렇게 현실 감각이 없는 놈들이 있나. 지금 너희 입에서 나온 제안이 얼마짜리 제안인지는 알고 지껄였던 거야?”

“…….”

“금원보로 수백 개는 우습게 넘어갈 수 있는 제안이라는 것도 몰랐던 거야?”

금원보 수백 개라는 말에 곽종도와 윤마철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호초가 얼마나 비싼지, 우리가 들여오는 양이 얼마나 되는지, 그걸 소화할 수 있는 계획은 있는지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고 이런 말을 했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

“네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했으면 지불할 능력은 있었던 거야?”

풍백의 물음에 윤마철이 이건 계획이 있다는 듯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일단 약간의 계약금을 먼저 지불하고, 신용 거래를 이용해 추후 지불을 하려고 했다.”

“신용은 니미……. 우리 사이에 무슨 신용이 있는데? 네 아비가 하는 알량한 포목점을 팔아도 금액 지불이 불가능하니 넌 꺼지고, 백건상방하고 얼마 전까지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신용 거래? 세상이 무슨 네 마음대로 굴러가는 줄 알아?”

“그게…….”

“진짜 나 웃겨 보려고 나온 거라면 인정해 주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이거 완전히 미친놈들 아니야!”

곽종도나 윤마철이나 똑같은 망나니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모르는 철부지이기도 했다.

이런 두 등신을 보고 있으니 새삼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등신이었을지 짐작이 가서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아무튼 오늘 아주 웃겨 줘서 고맙긴 하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꼭 만나 줄 테니까.”

풍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에 있던 왈짜들이 다가와 풍백의 어깨를 잡았다.

“아직 곽 공자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딜 가시나?”

“자리에 앉아.”

“아니면 우리하고 좋은 시간을 갖는 걸 선택하든지.”

나지막이 들려오는 왈짜들의 협박에 풍백이 곽종도를 바라봤다. 그러자 곽종도는 방금 전보다 훨씬 편해진 얼굴로 말했다.

“뭘 보고 있어? 앉아. 아직 우리 얘기는 안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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