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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1화 (5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1화

전체적으로 적가상방은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외부로 나가는 상행은 청송표국이 나서기에 안정적이었고, 구주현으로 진출한 점포 역시 청송무관의 유무형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영향력을 늘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근래 상산현의 점포는 그리 상황이 좋지 못했다.

알다시피 그것은 백건상방의 용정차를 이용한 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압박조차 점포에서 호초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적가상방을 괴롭히던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다.

어지간한 반점와 주점, 기루가 모두 적가상방의 점포로 몰려드니 결국 백건상방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작은 반점과 주점들도 모두 몰려오기 시작했다.

호초가 워낙 고가의 향신료지만, 그렇다고 꼭 고급 반점과 주점, 기루에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반점이나 주점이라고 하더라도 소수의 비싼 음식이 있었고, 이 음식에 호초를 넣으면 단골들에게 당연히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갑고 다행스러운 소식은 외부 상행을 준비하던 백건상방이, 계획하던 것을 모두 백지로 돌려 버렸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래도 외부 상행에 신경을 쓰다가 상산현 내부에 자리 잡은 상권에 문제가 생길 것을 의식했나 보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문제가 해결된 걸 확인한 진덕양 총관은 곧바로 항주행을 준비했다. 워낙 많은 돈을 가지고 가는 길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어려워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지금 풍백이 구입해 온 호초의 양은 그리 적은 양이 아니다. 적어도 상산현에서 두 달은 족히 사용할 양이었다.

그러나 향후를 생각한다면 미리 호초를 준비해 놓는 것이 좋기는 했다. 구주현에 만든 점포에서도 판매를 해야 할 것이고, 몇몇 작은 마을에서도 소량이기는 하지만 호초를 필요로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출할 다른 지역을 생각하면 호초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호초는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 마치 통행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을 쉽게 만들어 줄 테니까.

진덕양은 항주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천축으로 가는 상행을 담당할 행수를 뽑았다.

천축으로 가는 상행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워낙 고가의 물품인 호초를 구입하는 것이기에 경험이 많고 믿을 수 있는 행수를 선택해야 했다.

그 결과, 적가상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 행수로 일했던 고참이 선정되었다.

이렇게 선정된 행수는 진덕양과 함께 항주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풍백은 매일 무공 수련에만 열중했다.

무공을 수련하는 걸 제외하고 풍백이 하는 것이라곤 매일 저녁에 마평이 준비하고 있는 정육 사업의 진척도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듣는 것뿐이다.

풍백은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마평이 준비하는 일에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간혹 궁금한 부분을 묻기는 했어도, 거의 모든 일은 마평의 주도 아래 승인만 해 주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풍백이 자주 묻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당연히 직접 얘기했던 물소의 뿔이었다.

물소의 뿔은 공짜로 얻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돈만 쥐어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제법 큰 창고를 대여했는데도, 불과 며칠 만에 창고가 물소의 뿔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난감한 표정이 된 마평이 풍백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마평의 질문에 풍백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부족합니다. 대형 창고 네다섯 채 정도는 채워야지요.”

“헉! 그렇게 많이요? 그러면 창고 대여 비용도 엄청날 텐데…….”

“그 정도 자금은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업 자금은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만약의 지출이 있을 것을 대비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사업 자금이라는 것이 모두 사용해 버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최소한의 예비비는 있어야 합니다.”

마평의 이야기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풍백은 결국 그날 바로 적호경을 찾아가 창고 대여비를 추가로 받아 왔다.

적호경은 풍백이 그리 적지 않은 돈을 요구했음에도 의외로 흔쾌히 승낙을 해 줬다.

‘하긴, 호초로 버는 돈만 하더라도 창고 대여 비용 정도는 깃털만큼 가벼운 수준이겠지.’

사실이었다.

황금과 같은 취급을 받는 호초를 다른 상인이 구입하는 금액의 칠 할에 구입하고 있었다. 그 말은 상인이 판매를 하면서 얻는 이익에 추가로 삼 할의 이익을 더 본다는 말이다. 그러니 호초를 판매하며 나오는 차익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창고 임대 문제가 해결되자, 물소의 뿔은 구입하는 과정은 더욱 빨라졌다. 아마도 절강성에 있는 거의 모든 물소의 뿔을 적가상방이 긁어모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지금 임대한 창고 역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물소의 뿔로 모두 채울 것 같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창고가 다 찬다고 하더라도 계속 창고를 추가로 임대하여 물소의 뿔을 구입할 예정이었다.

적가상방의 일은 잘 풀리고 있었다.

* * *

“그래서? 백건상방의 얼간이는 어떻게 했지?”

금호상방주 조태명의 물음에 모심천 총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예상대로입니다. 용정차를 가지고 하던 협박은 철회하고, 준비하던 상행은 모두 백지화시켰지요.”

“적가상방은? 이번에도 백건상방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행동하려고 하던가?”

“딱히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 역시…… 그냥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에 조태명은 미소를 지었다.

“적호경 그 사람은 참…… 영리해. 아니지, 영리한 게 아니라 똑똑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하나?”

“방주님은 적가상방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나 봅니다.”

“불만? 금호상방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있지.”

굳이 모심천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적가상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백건상방과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 싸움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당연히 금호상방이었다.

그러니 금호상방주인 조태명의 입장에서 보자면 두 상방이 싸움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입장을 떠나서 본다면 적호경의 대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

“저하고 생각이 조금 다르시군요.”

“왜? 자네라면 다르게 판단했을 것 같나?”

“저라면 백건상방을 두고 보지 않았을 겁니다.”

“의견이 갈리는군. 왜 그렇게 생각하나?”

흥미롭다는 얼굴로 조태명이 물었다. 그러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모심천이 입을 열었다.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호초를 손에 넣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미 백건상방과 충분히 싸울 능력이 됩니다.”

“그렇겠지. 호초의 가치는 그만큼 대단하니까. 이전처럼 무력하게 일방적인 싸움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맞습니다. 또한, 백건상방은 이미 이빨을 두 번이나 드러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면 잡아먹는 법입니다. 그런데 양립할 수 없는 적이 비수를 두 번이나 내보였다? 그러면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지?”

“두 번이나 비수를 내보였다가 실패했으니 세 번째로 비수를 뽑는 일이 없겠습니까? 거기다가 아마 앞으로 준비한 계책은 지금까지 보였던 계책보다 더 난감한 상황을 유발할 것이 분명합니다.”

“음…… 틀린 말은 아니야. 특히 곽자억 그 친구가 제법 집요한 구석이 있지. 상방을 운영하면서 그런 집요한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야. 적으로 두면 두고두고 귀찮게 할 성격이기도 하고.”

조태명은 곽자억의 성격을 논하며 은연중에 모심천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곽자억 상방주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언제 적가상방이 공세를 펼칠지 모른다며 지금 이 시간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계책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허허허! 그럴지 모르는 일이 아니지. 반드시 그러고 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과연 적가상방이 이길까?”

“제 생각에는 이길 가능성이 그래도 육 할은 된다고 봅니다.”

“점수가 후하군.”

“아무래도 호초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협력하고 있는 표국의 질 차이가 심합니다.”

표국의 역사와 경험은 백건상방과 손을 잡고 있는 풍운표국이 더 길었지만, 표국의 무력만 따지자면 청송표국이 훨씬 더 강했다.

조금 부족하다는 경험은 어차피 적가상방 행수들이 상행을 다니며 충분히 보조를 해 줄 수 있었다.

비록 행수들이 표두나 표사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행을 다니며 경험을 많이 쌓았기에 어지간한 중견 표사 수준의 지식은 있었다.

이런 적가상방 행수들이 지원을 해 주면 청송표국은 금세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좀 아픈 얘기군.”

조태명이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금호상방의 미래를 위해 계책을 펼쳤을 정도로 갖고 싶었던 청송무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청송무관을 적가상방에 홀라당 빼앗겼으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워서 좋을 건 없을 텐데. 적가상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를 전혀 계산에 넣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상방주였다면 그냥 백건상방과 결착을 냈을 겁니다.”

“허허허! 금호상방을 무시하고?”

“무시가 아닙니다. 칼은 백건상방이 뽑았으니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거지요.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 곧 백건상방의 또 다른 계책이 발동되면 더 곤란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자네 말도 틀리지는 않지. 하지만 자네에게 부족한 면이 바로 이런 거야.”

부족하다는 말에 모심천의 눈썹이 꿈틀했다.

“제가 어떤 것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시지요?”

“인내심.”

“…….”

“지금 적가상방에 변수가 있는데, 왜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인가?”

“적풍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 역시 알고 있지 않나. 적가상방에 일어난 모든 변수와 해결책은 모두 그 아이와 연결되고 있다는 걸 말일세.”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적가상방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자신이 모두 정리해서 조태명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모심천이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아니, 아직 신뢰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지? 이미 청송무관과 호초를 적가상방에 안겨 준 아이야. 그 정도면 증명이 끝난 것 아닌가?”

“겨우 두 가지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반대로 이제 시작일 수도 있지. 앞으로 더 대단한 수를 쓸지도 모르고.”

“과연 그럴까요? 근래 그 사람은 물소의 뿔을 모으고 있더군요.”

모심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넘어 약간이 비웃음까지 내비쳤다.

“나도 그게 신기한데……. 대체 왜 그런 쓸모없는 것을 모으고 있는 걸까? 상품 가치에 대해서는 알아봤나?”

“알아는 봤는데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장식품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쓸모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왜 그렇게까지 모으고 있는 건지……. 아마 지금 모은 물소의 뿔은 다 팔지도 못할 겁니다. 애초에 비싸게 팔지도 못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아주 흥미롭지. 대체 무슨 생각인지,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한 짓을 벌일지 말이야.”

모심천은 잠시 조태명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분간 적가상방과 척을 질 수 있는 일은 삼가라는 명을 내리신 겁니까?”

“……태풍이 불기 전에는 전조(前兆)가 있기 마련이지. 그래서 내 할아버지는 이런 전조가 있으면 무조건 납작 엎드리라고 하셨어. 할아버지도 당시에 그런 전조를 보고 엎드리셨고, 덕분에 금호상방은 그 혼란의 시기를 넘길 수가 있었지.”

“적풍백을……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조태명의 미소가 진해졌다.

“아마 다음에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정확하게 평가가 되겠지. 그 전까지는 적어도 적가상방과 부딪치는 일을 만들 이유는 없고.”

“음…… 저는 아직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방주님의 뜻이 그렇다니 최대한 행보를 맞춰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모심천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조언을 할 뿐이다. 어차피 결정은 조태명이 내리는 것이다.

또한 조태명이 결정을 내렸으면 자신은 그것에 맞춰 최대한 이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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