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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0화 (5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0화

“흐흐흠…….”

곽자억은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감추려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요즘 곽자억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적가상방 놈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곽자억의 물음에 총관 역시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똑같습니다.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 같습니다.”

“후후! 아주 훌륭하군.”

산적을 이용했던 계략이 수포로 돌아간 이후, 백건상방은 꽤 많은 시간을 들이며 돌아가는 추이를 살폈다.

곽자억이 살핀 것은 적가상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금호상방의 움직임에 대한 주목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적가상방은 그들만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물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부와 선을 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유력한 강호문파와 손을 잡는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상산현에 대량의 점포라도 가지고 있으면 모르지만, 겨우 대여섯 개의 점포만 가지고 있는 적가상방이었다.

이런 적가상방이 실질적으로 백건상방에게 어떠한 압박도 행사할 수 없다는 건 굳이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곽자억이 주목했던 것은 금호상방이었다.

금호상방이 오랜 시간 상산현에서 가장 큰 상방이라 불려 왔다. 그렇기에 그들이 지금까지 축척한 부(富)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상산현의 관부는 금호상방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백건상방은 적가상방에 대한 계략이 실패로 돌아가며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으나, 만약 금호상방이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적가상방과 손을 잡고 나오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호상방은 무슨 생각인건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금호상방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백건상방은 슬슬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상산현 내부에 용정차를 이용하여 압박을 넣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상산현에서 적가상방과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런 식의 작업을 몇 달만 이어 간다면 상산현에 있는 적가상방의 점포는 모두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백건상방의 목표는 적가상방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가상방의 수익 구조를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적가상방의 돈줄이 되는 화전민 마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상행이었다.

“상행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일단 일차적으로 개화현까지 이동하며 중간에 있는 마을과 화전민 마을을 대상으로 준비 중입니다.”

“강산현이 더 돈이 될 텐데?”

“맞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적가상방과 오랜 시간 거래를 해 온 내역이 있어서 저희 상방이 진입하면 경계가 심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월한 쪽으로…….”

사실 작은 마을과 화전민 마을에 상행을 나가는 것은 그리 수익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많은 마을을 대상으로 박리다매(薄利多賣)와 같은 상행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백건상방은 이렇게까지 상행을 나가며 수익을 얻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장악한 상산현의 상권만 있어도 충분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상행의 목표는 오로지 적가상방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수익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곽자억은 심사가 튀틀렸다는 것은 눈썹으로 알려 줬다. 아니나 다를까 곽자억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우리가 돈 벌자고 상행을 나가는 거였어?”

“하, 하지만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길게 갈 생각도 없어! 지금 적가상방이 하는 것 보면 몰라? 청송표국을 지원해 주고, 새로운 지역에 진출하며 돈을 쏟아붓는 중이잖아! 이런 상황에 수입 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어?”

“어…… 순이익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연쇄적인 반응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한 방에 몰아쳐서 저놈들이 자멸하게 만드는 거야.”

“그렇지만 저희 쪽 손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적가상방이 무너지면 그놈들이 준비했던 것을 우리가 먹어 치울 테니까. 예를 들자면…… 구주현에 점포를 차렸었지?”

듣자 하니 적가상방이 구주현에 차린 점포는 꽤 쉽게 자리 잡았다는 것 같았다.

그 소문을 듣고 배가 아팠었는데, 적가상방이 무너지면서 구주현의 점포가 허공에 붕 떠 버리게 된다면, 곽자억은 마치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그 점포를 아주 싼값에 인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큰 상방이 없는 구주현에서 금호상방처럼 터줏대감이 되어야지. 작은 현이기는 해도 독점적인 시장만 확보한다면, 우리 백건상방이 상산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정도는 충분히 벌어들이고 남을 거야.’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해당 지역 상권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절대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적가상방은 무슨 수를 썼는지 너무 쉽게 구주현에 만든 점포를 안정화시켰다. 곽자억은 이 점포를 거점 삼아 구주현의 상권을 모두 집어삼킬 계획을 짜는 것이고.

아직까지 곽자억은 적가상방이 청송무관의 도움을 받아 쉽게 진출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획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적가상방이 무너지면 청송무관 역시 자신들과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강산현까지 진출하는 상행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목표는 적가상방을 흔드는 것이니, 준비에 소홀함이 없이 하도록 해. 무엇보다 적가상방 놈들이 취급하지 않는 물품은 더 신경 써서 준비하도록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총관은 다른 안건을 꺼내서 보고를 시작했다. 곽자억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편안한 얼굴로 보고를 들었다.

그런데 한참 보고를 하는 와중에 한 사람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심지어 상방주인 곽자억과 총관이 있는 집무실까지 달려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총관이 밖으로 나가자 혼자 남은 곽자억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별일도 아닌데 난리를 피우는 것 같아.’

그가 생각했을 때, 지금 백건상방에 큰 문제가 일어날 일은 전혀 없었다. 들어오기로 약속된 물건은 물론이고, 나가야 할 문건까지 이상이 없었다. 적가상방은 지금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말이다.

별 대단한 일도 아닌데 침소봉대(針小棒大)한 것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총관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총관의 안색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곽자억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저, 저기…… 상방주님…….”

“그러니까 뭔데 그래? 왜 말을 못하고 그러고 있는 것이야!”

곽자억의 불호령에 총관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적가상방에서 호…… 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호초? 지금 호초라고 했나?”

전혀 예상도 못했던 호초라는 말에 곽자억 역시 눈을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호초라니! 그놈들이 대체 어디서 호초를 가져와서 판다는 말이야!”

“저, 저도 이제 보고 받아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야! 적가상방 놈들이 호초를 손에 넣고 판매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대체 적가상방을 주시하고 있던 것은 맞아?”

“……죄송합니다.”

“내가 지금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아? 그래서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중이야!”

총관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말했다.

“상산현에 있는 고급 반점과 주루, 기루에서는…… 계속 적가상방 물건을 받지 못하도록 용정차를 가지고 압박하면 앞으로 백건상방 물건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당연한 결과였다.

반점과 주루, 기루는 음식과 술이 중요했다.

만약 경쟁 반점 중 하나가 호초를 사서 고급 음식을 판매한다면, 당연히 미식가를 비롯하여 돈이 많은 사람들은 호초가 들어간 음식을 파는 반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 호초는 무조건 구입할 수밖에 없는 필수 요소라는 말이다.

그에 비하여 용정차는 필요하기는 하더라도 굳이 필수는 아닌, 따지자면 기호 식품에 가까운 것이다.

애당초 호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행히 다루는 호초의 영향을 받지 않아…….”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할 건가!”

다루는 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그러니 당연히 백건상방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객잔은 어떻게 나오고 있지?”

“몇몇 고급 객잔은 다른 반점이나 주루, 기루와 같은 입장이라고 합니다.”

“그러겠지…….”

객잔이라고 하더라도 고급 음식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급 객잔은 반점에 필적할 정도로 음식에 큰 신경을 썼고 말이다.

으드득!

이가는 소리를 낸 곽자억이 다시 물었다.

“물량은? 어느 정도 물량이나 팔고 있다고 하나?”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적가상방에서 취급하는 물량이 적으면 상관없었다. 지금 상황을 타파해 보고자 비싼 값을 주고 어디서 호초를 조금 사 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러나 만약……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라도 호초의 수량이 넉넉하고, 주기적으로 공급 받는 경로를 찾은 거라면…….

‘적가상방을 밟아 없애는 건 거의 불가능해질 수도…….’

총관의 대답은 이런 곽자억의 불안함과 정확히 일치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상산현에서 판매하는 호초의 양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충…… 분해?”

“그리고 적가상방 내부에서 주기적인 호초 구입 경로가 생겼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중이라고…….”

“으아아! 이런 개 같은!”

우당탕!

곽자억은 결국 분노를 폭발시키며 서탁에 올라와 있는 모든 물품을 팔로 밀어서 쏟아 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의자를 벽에 집어던졌다.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의자는 부서지지 않고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은 곽자억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쾅! 쾅! 쾅!

“죽어! 죽어! 죽어!”

의자를 사정없이 발로 밟아 대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 것처럼 이렇게 밟아 대니 아무리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의자라고 하더라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와직!

“후우! 후우!”

의자를 부숴 버린 곽자억이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 총관을 바라봤다. 그러자 총관이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누구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대체 어떤 개 같은 종자가 호초를 가지고 들어왔냐고! 어떤 새끼야!”

호초 공급 계약은 대단히 어려운 계약이다. 원하는 곳은 많고, 물량은 적으니 세상 모든 상방과 경쟁하여 물량을 받아 와야 했다.

이런 어려운 계약을 해낸 인재라면 억만금이 들더라도 회유해서 백건상방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 예! 그게 적풍백이라고 했습니다!”

“적…… 풍백? 적가상방 망나니? 그 자식이라고?”

“적가상방주가 직접 일꾼들에게 선포했다고 하니 맞을 겁니다. 실제로 적풍백이 거의 한 달이 넘게 외유를 나갔다가 그저께 돌아왔고, 그 이후 호초를 판매한 것을 보면…….”

“그 망나니가?”

이미 소문을 들었다.

풍백이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부터 청송무관과 협의하여 청송표국을 적가상방의 지원을 받아 세웠다는 얘기까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저 적호경이 자식의 평판을 위해 수작을 부리는 중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까지 풍백이 쳤던 오간 사고를 생각하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믿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호초까지 구해 왔다.

이쯤 되면 인정을 해 줘야 했다. 분명히 풍백이 정신을 차렸고, 정말 우연찮게도 엄청난 상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망나니 새끼가…….’

마치 눈앞에 풍백이 있다는 것처럼 원독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는 곽자억에게 총관이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미련한 놈! 그건 내가 물어야 할 얘기가 아닌가? 네놈이 좋은 계책을 생각해서 내게 얘기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 멍청한 놈아!”

“헙! 죄, 죄송합니다!”

“당장 제대로 된 대안을 찾아와! 그리고…… 끄응…….”

뒷말은 정말 하기 싫은지 심호흡을 한 번 내쉰 곽자억이 말했다.

“……준비하던 상행은 모두 멈춰.”

“네? 준비한 물품들 중에서는 빨리 소비해야 하는 물품도 있는데…….”

“나라고 그걸 몰라! 하지만 이 상황에서 상행을 나가면 적가상방과 전면전을 벌이자는 말인데, 호초를 상대할 계획이 있어? 호초도 밀어붙일 그런 물품을 계약해 올 수 있냐고!”

“어, 없습니다…….”

“쓸 만한 계획을 가지고 오지 못하면, 시킨 일이라도 잘해! 어서 나가지 않고 뭘 해!”

“네, 넵!”

총관이 쫓기는 것처럼 후다닥 집무실에서 튀어 나갔다.

곽자억은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정말 끝낼 수 있었는데…… 그 개 같은 놈이…….’

풍백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자신의 아들인 곽종도가 떠올랐다.

풍백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망나니로 유명한 곽종도였다.

아니, 사실은 곽종도가 더욱 악랄했다. 그나마 곽자억이 최대한 돈으로 무마를 시켜서 그나마 풍백보다 덜 유명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 정신을 차린 풍백을 보니 아직도 반쯤 정신이 나가서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는 곽종도가 더욱 못나 보였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있습니다!”

“가서 빨리 종도를 잡아 와! 이놈의 자식, 오늘은 내가 주리를 틀어서라도 정신 상태를 고쳐 놓고 말겠다!”

아무래도 풍백 때문에 간접적인 피해자가 나올 예정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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