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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48화 (4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48화

문영후는 믿을 수 없는 사태에 잠시 넋이 나갔다.

‘유…… 호위가 졌다고?’

유장위가 누구던가?

청해상방 최고의 고수이자 해결사였고, 자신의 심복이자 호위무사였다.

또한 그냥 일류고수도 아니고, 완숙한 경지에 오른 일류고수였다. 아마 앞으로 곧 완숙의 경지를 넘어 절정으로 들어가는 길목까지 오를 것이라 예상되었던 고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고수가 패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었다.

청해상방 입장에서는 고작 군소 상방이라 부를 수 있는 적가상방의 소방주를 상대로 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풍백에 대해서는 당연히 조사를 해 봤었다. 문약란이 시중을 들고 있다고 하니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풍백이 불과 얼마 전부터 정신을 차렸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는 망나니도 그런 개망나니가 없다고 불렸던 놈이었다.

그런데 그런 개망나니가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자신이 지금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문영후의 앞까지 걸어온 풍백은 수도를 세워 아직도 문약란의 팔을 잡고 있는 문영후의 손목을 살짝 내려쳤다.

“욥!”

“윽…….”

장난기가 다분한 작은 기합성과 달리 손목을 맞은 문영후는 꽤 심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문약란의 팔을 놔주고 말았다.

풍백은 문영후가 잡고 있었던 문약란의 팔을 들어 살폈다.

“이런 멍 들었네. 멀리서 봐도 세게 잡고 있는 것 같더라. 아프지?”

그 말에 문약란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초록빛 눈동자로 풍백을 바라보고 있다가 와락 그의 품에 안겼다.

“어이쿠!”

과장된 소리를 낸 풍백이지만 문약란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이제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꽉 끌어안고 있는 문약란을 내려다보던 풍백은 어색하게 들고 있던 손을 내려 한 손은 문약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다른 한 손으론 등을 위로하듯이 가볍게 두드려 줬다.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을 보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많이 무서웠나 보네.”

“…….”

“어디 다친 곳은 없고?”

풍백의 물음에 문약란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만 살래살래 흔들었다.

“팔은 안 아파? 멍 들었던데.”

이번에도 문약란은 대답 없이 고개만 흔들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풍백을 바라봤다. 아직 눈물이 잔뜩 고여 있는 신비로운 초록빛 눈동자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빛났다.

어지간한 사내라면 단숨에 가슴이 진탕될 정도로 파괴력이 대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풍백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과거에 받았던 훈련도 훈련이지만, 이미 서른이 넘도록 살았던 풍백이기에 문약란을 그저 여자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어렸다.

물론 실제 두 사람의 신체 나이는 다섯 살 차이였지만.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이렇게 시선을 교환하는 모습은 문영후에겐 완전히 달리 보였다. 아니,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은 연인 사이에 눈빛을 교환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문영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그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영후는 당연히 풍백이 자신에게 아무 짓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청해상방의 소방주니까.

마침내 이글거리는 눈으로 뚫어질 듯이 노려보고 있는 문영후를 발견한 풍백이 심드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너하고 할 얘기가 있었지? 내가 너무 기다리게 만들었네.”

문약란을 품에서 떼어 놓은 풍백이 천천히 문영후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영후는 그런 풍백을 무시하고 문약란을 보며 소리쳤다.

“네가 이렇게 도망친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가 절대 너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문영후의 고함에 문약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청해상방주 문태성의 집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문약란이다.

그는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와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혼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문태성에게 문약란은 아주 좋은 상품이었다.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청해상방을 광동성 제일의 상방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문태성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문영후의 말이 단순한 협박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런 문영후의 고함에 문약란이 아닌 풍백의 대답했다.

“알았어. 이해했으니까 그만 소리쳤으면 좋겠군. 늦은 밤인데 이웃 주민들에게 민폐잖아.”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장원 근방은 그저 허허벌판이었으니까.

문영후는 핏발 선 눈으로 풍백을 노려봤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이해하고 있나? 너는 지금…….”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일단 네 얘기를 듣기 전에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을 끊은 풍백이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는 호위무사를 불렀다.

“무사님?”

“네, 말씀하십시오!”

“소란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기다려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호위무사는 이전보다 훨씬 각 잡힌 대답을 하고서 문약란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약란은 나가면서 몇 번 뒤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단둘이 남게 된 풍백이 말했다.

“이제 말해도 좋아. 뭐라고 말하려고 했어?”

“너는 지금 청해상방을 적으로 돌린 것이다. 그걸 알고 있나?”

“그건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얘기는 없어?”

“네가 그렇게 말했었지? 감당할 수 있겠냐고. 그러면 네가 대답을 해 보거라. 너는 과연 청해상방을 감당할 수 있겠어?”

“방금 전에 했던 얘기하고 똑같은 얘기네. 다른 할 말은 없냐고. 할 얘기 있으면 빨리 하도록 해. 죽기 전에 못한 말이 있으면 아쉬울 것 아니야.”

풍백의 말에 문영후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네가 감히 청해상방의 소방주인 나를 죽이겠다고? 청해상방과 적이 되고 싶은 것이냐?”

그 말에 풍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방금 전까지 네가 네 입으로 우리가 청해상방을 적으로 돌렸다며? 그런데 무슨 또 적이 되고 말고야? 이미 적이지.”

“나를 죽이면 청해상방과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제법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이런 돌대가리가 다 있지?”

“뭐라고!”

“너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어차피 청해상방과 적가상방의 싸움은 벌어질 일이라는 말이야. 그리고 네가 살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도 아까 네가 나를 죽이라고 하면서 모두 사라진 상태고.”

“…….”

“네가 살아서 청해상방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적가상방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네가 보인 모습만 보더라도 그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지.”

“그, 그게…….”

“하지만 너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린다면? 적어도 청해상방에 있는 네 아비라는 놈이 네 죽음을 알고 난 이후에야 범인을 찾겠지? 그러면 적어도 적가상방이 범인으로 지목될 때까지는 제법 대비할 시간이 생기게 되겠고.”

“…….”

“간단히 정리하자면, 차라리 이렇게 된 김에 너를 깔끔히 죽여 없애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말이란 거지. 이해했어? 이해했으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 그 정도는 들어 줄 테니까.”

풍백의 긴 얘기를 들을수록 문영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가더니, 마지막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이해한 모양이었다.

문영후는 다급히 말했다.

“아, 아무런 짓도 하지 않겠다! 그냥 너무 분해서 해 본 얘기였을 뿐이야! 동생을 데리고 간다고 해…….”

“대충 알고 있어. 동생이 아니라 여자로 보고 있더구만. 더러우니까 그런 거짓말은 집어치우지?”

“그러면 우리 청해상방에서 적가상방에 깜짝 놀랄 계약을 추진해 주겠다!”

“너를 그냥 보내 주면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랄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지. 그리고 지금도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더 일을 늘리기 어려워. 일정이 빡빡하다고. 그리고 이 새끼가 아까부터 계속 반말이네?”

“으헉! 사, 살려 주시오! 절대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겠소!”

쿵! 쿵!

문영후가 기겁을 하며 바닥에 무릎 꿇고 이마로 땅을 찧었다.

“그만해. 머리 아프겠다.”

“그, 그러면 살려 주시는…….”

“그게 아니고, 어차피 죽을 텐데 괜히 죽기 전에 머리까지 아플 필요는 없잖아.”

“헉!”

풍백이 천천히 다가오자 문영후가 벌레처럼 뒤로 기어가며 소리쳤다.

“란아! 란아! 사, 살려다오! 네가 좀…… 나를 살려다오! 다시는 너를 찾지 않겠다! 아버지도 내가 설득해서…….”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얘기를 해 주는데, 지금 소란이가 들어와서 나를 말리려고 하더라도 너는 무조건 죽어. 너를 죽이는 건 소란이 때문이 아니라 적가상방 때문이거든.”

말을 마친 풍백이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영후는 벌벌 떨며 뒤로 기어가다 결국 벽에 막혔다.

하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계속 바동거렸다.

앞에 도착한 풍백이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문영후가 이를 딱딱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그리고 풍백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퍼걱!

* * *

문약란은 귀를 막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문영후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백이 밖으로 나왔다. 그걸 본 문약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 죽었나요?”

“미안하지만 살려 둘 수 없었다. 너를 살리기 위해 청해상방과 적이 되는 것을 선택한 거야. 그리고 청해상방과 싸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문영후를 죽여야 시간을 벌 수 있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 죽여서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었어. 보아하니 네가 직접 죽이도록 놔두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는데, 그냥 시간이 없어서 내가 죽여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문약란은 잠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내가…… 그 사람을 직접 죽일 수 있었을까?’

언제나 문영후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지, 죽일 대상은 아니었다. 감히 그런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문약란의 모습에 풍백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죽일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놈이 이상한 놈이지.”

마치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문약란이 고개를 들어 풍백을 바라보자 풍백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게 위로를 해서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문약란은 그런 풍백의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풍백은 호위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사님?”

“넵! 말씀하십시오!”

“지금까지 묻지 않았더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고우길이라고 합니다!”

“고우길 무사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셔야 합니다.”

“그럼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여기 있는 두 사람뿐입니다. 그 얘기는 제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두 사람 중 하나가 얘기를 했다는 말이 됩니다.”

꿀꺽!

대단한 위협처럼 느껴진 고우길이 마른침을 삼키며 힘껏 대답했다.

“절대! 꼭! 입을 다물겠습니다!”

고우길은 일류고수가 분명해 보이는 풍백의 심기를 거스를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 고우길의 모습에 풍백은 슬쩍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입을 다물어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내일 아버지께 고우길 무사님을 제 전속 호위로 내달라고 할 겁니다.”

“아…… 네…….”

별로 반갑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함부로 입을 놀릴까 봐 옆에 두고 있겠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백이 그를 전속 호위로 두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누군가에게 풍백에 대한 얘기를 할 것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옆에 두고 지켜보면서 천천히 무공을 전수해 볼까?’

풍백이 과거에 배웠던 난파칠식과 난화보를 비롯한 무공들은 고우길이 현재 익히고 있는 무공보다 적어도 한 단계 이상의 상승무공이었다.

풍백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이유로 형(形)만 익히고 있었지만, 고우길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가르쳐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무공이었다.

물론 이런 무공을 그냥 이제 조금 믿을 만하다고 해서 몽땅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옆에 두고 보면서 간간이 초식 하나씩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면 그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무공을 전수할 생각 정도는 있었지만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시간을 벌어 주려고 했던 고우길이다. 그런 그에게 어차피 제대로 익히지도 않을, 한계가 명확한 무공 정도는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뒤처리는 맡겨도 되겠소?”

“제가 깔끔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풍백이 말에 올라타 문약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문약란이 수줍은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고, 풍백은 그녀를 자신의 앞에 태웠다.

이제 적가상방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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