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35화
“오늘도 나가시는 겁니까?”
왕삼이 객잔에서 나가려는 풍백에게 물었다.
“당연히 나가야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벌써 찾았다면서요? 그런데 왜 직접 만나지는 않고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 물건을 사기 전에 빨리 먼저 만나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풍백이 심오경의 점포를 찾게 된 것은 이틀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규모가 큰 시장 열 개를 뒤지고 다니는 일이니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풍백은 심오경의 점포를 찾았음에도 바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있는 점포와 심오경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는 매일 그의 상황만 파악하기 위해 간간이 들러 확인을 했을 뿐이다.
풍백은 소처럼 눈만 끔뻑이고 있는 왕삼을 보며 혀를 찼다.
“너는 앞으로 상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상인이 될 생각도 없었기는 하지만, 도련님의 말씀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절대 하지 마. 넌 딱 봐도 호구가 될 관상이니까.”
“헐…… 그렇다고 호구가 뭡니까, 호구가.”
“내가 저번에 왜 안 만나고 있는지 얘기를 해 줬잖아. 기억 안나?”
그 말에 왕삼이 또다시 눈만 끔뻑이고 있다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손뼉을 쳤다.
“어…… 아! 끓이는 중이라고 했었습니다!”
“끓기는 뭘 끓어.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했었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엎치든 메치든 똑같은 것 가지고 새삼스럽게…….”
“그때 했던 말은 모든 일에 때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네 수준에 맞춰서 설명을 해 주자면, 너는 언제 변소를 가냐?”
“당연히 똥 마려우면 가죠.”
“똥 마렵지 않은데 변소를 가면?”
“음…… 뭔가 신호가 오면 해치워 버리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나오는데요.”
“지금 내가 그래서 때를 기다리는 거야.”
풍백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심오경을 보고 아직 그를 만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풍백의 목적은 호초를 구입하는 것이고, 당연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상대가 곤란한 상황에 손을 뻗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풍백은 심오경이 절망에 빠져 곧 영파상방으로 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다가 구원자의 모습으로 등장할 생각이었다.
설명을 들은 왕삼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면 도련님이 똥이라는 겁니까, 변소라는 겁니까?”
“아…… 씨발. 내가 잘못했다. 그냥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기나 해.”
말을 해도 알아먹지를 못하니 그냥 설명하는 걸 포기하기로 한 풍백은 호위무사와 함께 심오경의 점포로 향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좌절한 것처럼 다 죽어 가는 눈을 하고 있는 심오경을 본 순간, 드디어 풍백이 바라던 때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심오경은 멍하니 적풍백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보시다시피 장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혹시 점포를 보러 오신 건 아니시겠죠?”
영파상방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점포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적당한 값을 제시하면 당장이라도 팔 의향이 있었다.
물론 외진 곳에 있는 작은 점포라 비싼 값을 받을 수 없다는 건 확실했지만.
“점포를 내놓은 겁니까?”
“아직 내놓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 곧 내놓을 겁니다.”
“그러면 장사는 이제 안 하시는 거고요?”
“……못한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손에 천금과 같다는 호초를 쥐고 있으면서 장사를 못한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 말은 사실이 분명했다.
하지만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던 심오경은 풍백의 말을 듣는 순간, 벼락에 맞은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 말았다.
“그러면 호초는 이제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눈에 비친 풍백은 여전히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에게 호초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어봤다.
“영파상방에서 나오신 분이시오?”
“아니오. 저는 항주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에 심오경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다가 일단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내밀었다.
“여, 여기에 일단 앉으십시오!”
“그냥 서 있어도 됩니다.”
“아닙니다! 제, 제가 차라도 한 잔 가져오겠습니다!”
심오경은 후다닥 점포 안으로 들어가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지?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사기꾼은 아니겠지? 설마 영파상방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또한 차를 준비하는 심오경의 손은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벌벌 떨리고 있었다.
손을 몇 번 쥐락펴락하던 심오경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벌떡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일단 상황은 조금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에게 호초가 있다는 것은 영파상방과 자신이 연락했던 몇몇 상방에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다른 곳에 자신이 호초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말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진짜 고객이라면…….’
이것이 심오경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 좀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풍백은 심오경이 내민 찻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그리 좋은 품질은 아니지만 확실히 용정차였다.
항주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바로 용정차였다. 백건상방이 독점으로 상산현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 용정차였고 말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풍백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까 했던 얘기를 이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혹시 어디서 오신 분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마 저희를 모르실 겁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일단 얘기를 좀 해 주십시오.”
“상산현에 있는 적가상방입니다.”
심오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가 적가상방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역시 인근의 상방이 아니었어!’
영파상방이 어디까지 손을 썼는지 몰라도, 인근에 호초를 구입할 수 있는 상방에는 모두 압력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호초 구입을 타진해 온다는 말은 적어도 항주 인근 상방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진짜 적가상방이라는 곳이 있는지, 자신 앞에 있는 풍백이 그곳 사람이 맞는지는 이 사람이 떠난 다음에 확인을 하면 되는 일이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몇 군데에 연락을 하면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상산현이라면 절강성 남서쪽에 있는 엄청 먼 곳이야.’
영파상방은 항주 제일의 상방이었고, 그 영향력은 항주 인근에 있는 현까지 미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절강성 전체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파상방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아무리 넓게 잡아도 절강성 북부가 전부였다.
‘어쩌면 호초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심오경을 보고 풍백은 입을 열었다.
“사실 점주(店主)님의 상황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지금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파상방에게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협상을 할 때는 당연히 상대방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지금 풍백의 손에는 아주 잘 드는 명검을 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약 심오경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면 어디까지 가격을 후려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굳어 가는 심오경을 본 풍백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과하게 점주님을 압박할 의향이 없습니다. 차라리 상생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군요.”
“상생이요?”
“네. 당장 점주님이 곤란한 상황인 것을 이용하여 무리한 거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정가를 받고 물건을 구입할 생각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심오경은 풍백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상생이 목적이라면서 정가의 물건을 구입할 생각이 없어? 너무 전형적인 상인의 말장난이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그의 속내를 밖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심오경에게 풍백은 마지막 퇴로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얼마나…….”
“일반적으로 중간 상인이 매입하는 정가의 구 할은 어떻습니까?”
풍백의 말에 심오경은 저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러곤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아니……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저, 정말 정가의 구 할 가격으로 호초를 사겠다고요?”
“왜 그러십니까? 제가 너무 과한 요구를 한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 미치겠네요.”
오히려 너무 후한 조건이라 얼이 빠질 지경인 것이다.
만약 다른 상인이 현재 심오경의 상황을 알고 이 상황을 이용하여 계약을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후하게 쳐서 육 할의 값을 치르려고 할 것이다. 그건 심오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라면 오 할까지 떨어뜨릴지도…….’
괜히 저잣거리에 망하면 반값이라는 말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구 할이나 값을 치르겠다니, 대체 풍백이 무슨 의도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스킨 심오경이 물었다.
“제 상황을 전부 알고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영파상방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고 얘기했는데요.”
“……그것만 알고 계신 겁니까?”
“음…… 영파상방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압박을 넣으며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초에 관심을 보였던 상방들 중 대부분은 영파상방의 압력으로 떨어져 나갔고, 몇몇 규모가 되는 상방은 암중에 맺은 거래를 통해 점주님과 계약을 기피하고 있지요. 추가로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 두려고 한다는 정도? 이것 이외에 제가 모르는 것이 또 있습니까?”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구 할입니까? 저라면…….”
심오경은 저도 모르게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이 말까지 해 버리면 자신이 너무 초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말에 풍백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점주님이 배려를 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심오경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뭡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호초만이 아니라 차후에 또 호초가 생기면 저희 적가상방이 전량 구매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간은 대략…… 오 년 정도? 그동안 가격은 똑같이 구 할로 정하고요. 어떻습니까?”
오 년이라는 장기 계약을 하게 된다면 공급자는 안정적인 구입처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구 할이 아니라 그보다 싸게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만약 계약을 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적가상방은 심오경의 현재 상황을 하나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박한 계약을 하는 셈이다.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한 심오경이 물었다.
“대체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분명 공자님이 더 유리하게 계약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저는 점주님이 지금보다 더욱 대단한 상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적가상방은 점주님과 서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겠죠?”
“아니, 저의 어느 면을 보고 말씀하시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천축에서 고정적으로 호초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경로를 만든 것 하나만 보더라도 충분한 것 아닙니까? 또한 이번 계약을 위해 점주님에 대해 알아보고, 그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심오경은 풍백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를 보며 풍백과 같이 말해 준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영파상방처럼 그를 이용해서 뭐라도 뜯어먹으려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풍백은 그런 심오경을 인정해 주고, 미래를 그리며 충분한 대우를 해 주려고 하고 있었다.
사람에게 감복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 같았다.
심오경은 목이 메는 걸 느끼며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계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