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가상방 개망나니-33화 (3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33화

“휴우…… 매일이 살얼음판이나 다름없군요.”

총관의 말에 문영후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본 총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해상방에서 문태성 일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총관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태성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두 번째 부인의 자식인 문약란을 탐탁지 않아 했다. 또한 당연히 첫째 부인에게도 온갖 구박을 받았던 것이 바로 문약란이었다.

원래 문영후도 어렸을 때는 문약란은 많이 괴롭혔었다. 하지만 점점 철이 들고 상방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청해상방에서 문약란을 가장 신경 써 주는 사람이 되었다.

‘대체 방주님은 아가씨를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들이 아니라 딸이 태어나서 그런 건가?’

총관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봤지만 이내 그 생각은 지웠다. 어차피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가씨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내가 살려면 차라리 잡혀 왔으면 싶고…….’

확실한 건 만약 문약란이 잡혀 와 강제로 정략결혼을 당한다고 가정하면 청해상방에게 확실한 호재일 것이다.

그리고 집요한 문태성의 성격을 생각하면 문약란이 평생 잡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고 말이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문영후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총관 역시 마주 인사를 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를 향해 걸어가는 문영후를 보며 생각했다.

‘어서 빨리 소방주가 방주의 자리에 앉아야 할 텐데…….’

청해상방의 소방주 자리에 있으면서도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중히 행동했다. 그런 문영후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서 누구 하나 문영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영후가 자신의 거처에 도착하자, 그의 심복이자 호위무사인 유장위가 서둘러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하오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문영후의 눈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그 모습은 그의 아버지인 문태성과 똑같아 보일 정도였다.

원래 하오문에서 정보를 사는 건 모두 총관의 업무였다. 하지만 그런 하오문이 유일하게 문영후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약란에 관한 정보였다.

총관이 하오문에 의뢰했다는 걸 알고 있던 문영후가 유장휘를 시켜 하오문에게 문약란에 관한 정보는 자신이 더 비싼 값에 사겠다고 미리 얘기해 놨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오라고 합니까?”

* * *

“아이쿠!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지부장이 객잔, 아니 하오문 광주 지부로 들어오는 문영후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낮에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리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꽤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오문 광주 지부로 들어오는 문영후의 뒤로는 유장위를 제외하고도 여섯 명의 무사들을 더 거느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문영후가 광동성에서 손에 꼽히는 청해상방의 장자이기 때문인지 위세가 대단해 보였다.

“허허! 험한 곳으로 오시느라 사람을 많이도 데리고 오셨군요.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니 그럴 필요 없었는데 말입니다.”

“모르시는 것 같아 얘기를 해 드리자면, 제가 청해상방을 나오면 항상, 어디든 이 호위무사들이 따라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은밀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원래 청해상방의 총관에게 전달해야 할 정보를 문영후에게 넘기려고 하는 상황이다. 추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듣는 귀가 없어야 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했듯이 이들은 항상 저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저에게 넘기시려는 정보보다 수십 배 이상 가치를 가진 정보를 듣고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좀…….”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오늘 제가 사는 정보료의 백 배를 지불하도록 하지요.”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지부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얘기하도록 하지요.”

지부장은 문영후가 맞은편에 앉는 걸 보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너무 늦은 시간에 오신 것 아닙니까? 저기 유장위 무사가 오시는 시간을 전달해 주지 않았으면 정보에 관심이 없다고 착각할 뻔했습니다.”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청해상방 소방주인 제가 뒷골목을 활보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할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 제가 생각이 좀 짧았군요. 저희는 여기가 가장 보안이 철저한 곳이라 생각하여 이곳으로 모신 거였는데 말입니다.”

“시간이 늦어서 이렇게 한담을 나눌 시간이 부족한 것 같군요. 일단 목적에 충실해 보십시다.”

문영후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가지고 계신 정보가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모두 있는 겁니까?”

“허허허! 너무 늦게 정보를 가지고 와서 죄송합니다만, 덕분에 원하시는 것처럼 문약란 소저의 위치까지 모두 확실하게 파악해서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문영후는 아까 자신의 처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눈에서 예리한 빛을 쏘아 냈다.

“확실한 것이 맞겠지요?”

“만약 저희 정보가 틀리다면 지불하실 정보료의 두 배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돈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만큼 확실하다는 얘깁니다.”

문영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서렸다.

“훌륭합니다. 그러면 정보를 주시겠습니까?”

“그 전에 정보료 협상을 시작해야…….”

“정보료를 협상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좀 급해서요. 금원보 다섯 개를 드리지요.”

지부장은 문영후의 말에 하마터면 헛바람을 들이켤 뻔했다. 그가 이곳에 부임한 이후로 금원보 다섯 개를 정보 하나에 받았던 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돈이라는 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문영후가 손을 내밀었다.

그걸 본 지부장은 순간적으로 고민했지만 이내 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 문영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문영후는 작은 종이를 펼쳤다.

- 절강성 상산현 적가상방에서 소방주 적풍백의 전속 시비로 근무 중.

내용을 읽어 본 문영후는 고개를 저었다.

‘멀리도 갔군.’

자리에서 일어난 문영후가 눈짓을 하자 호위무사 중 하나가 묵직한 전낭에서 금원보 다섯 개를 지부장에서 건네줬다.

금원보를 받은 지부장은 입이 귀에 걸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또 필요하신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하오문 광주 지부를 나온 문영후가 유장위에게 말했다.

“준비하도록 하시오. 절강성 상산현까지 가야 하니까 장거리 여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오.”

* * *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抗).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洲)와 항주가 있다는 말로, 소주와 항주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절강성의 성도인 항주는 과거 오(吳), 월(越), 전(錢), 무(武), 숙(肅)의 오대국의 수도(首都)였던 곳으로, 남송(南宋) 때에는 임안(臨安)으로 개칭하였다가 후에 항주라 불리게 되었다.

이런 항주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 중원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직에서 은퇴한 후 항주에 저택을 짓고 소주의 미인과 함께 광주의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항주는 예부터 풍부한 산물로 명성이 높았고, 산수가 빼어나며, 중원 전역에 명성이 높은 서호(西湖)는 물이 얼마나 맑은지 십여 장의 깊이까지 들여다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중원에 온갖 환상을 안겨줄 정도인 항주였던 만큼, 이곳으로는 전 중원에서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에 있는 과거 손권(孫權)이 진을 쳤던 오산(吳山)에 있다는 성황각에서 시를 읊기 위해 문인이나 서생이 몰려왔고, 서호에서 풍류를 즐기기 위해 풍류객이 몰려왔으며, 심지어 이름난 고승들까지도 절경에 취해 몰려올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말은 곧 상인 역시 엄청나게 몰려온다는 말과 같았다.

“우와아! 도련님, 이 사람들 좀 보십시오! 엄청납니다!”

마차에서 창밖으로 고개를 홱홱 돌려가며 오만 가지 것들을 시선에 담느라 바쁜 왕삼이 소리쳤다.

‘저번에는 마차를 오래 타고 싶지 않다고, 다음부터는 따라다니지 않겠다던 놈이…….’

구주현에서 용유현을 거쳤다가 다시 상산현으로 돌아오자 왕삼이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 항주행이 잡혔다는 걸 듣자마자 바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하며 눈물을 글썽였었다.

“흑흑! 도련님, 죄송합니다! 저도 항주에 가고 싶어요…….”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말했듯이 항주는 중원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들러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런 곳이었으니까.

물론 풍백은 이런 왕삼을 데리고 문약란을 데리고 가겠다는 듯이 한참을 장난치고 난 이후에야 고개를 끄덕여 줬지만 말이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왕삼은 무려 열흘이 넘는 일정동안 마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한 번도 투덜거리지를 않았다.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몰라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지켜보며 헤실거리기만 했었다.

그렇게 항주에 도착하자 왕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구경 다녀오겠다고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왕삼과 달리 풍백은 평온한 얼굴로 항주 거리를 보고 있었다.

그 역시 항주는 처음이지만 과거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서 왕삼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왕삼은 풍백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저 혼자 말하며 정신이 없었다.

“도련님! 저기 저거 보입니까? 저게 그 유명한 뇌봉탑(雷峰塔)인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저기에 가면 정말 백소정이 봉인되어 있는 걸까요?”

“……너 설마 백사전(白蛇傳) 말하는 건 아니지?”

백사전은 민간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는 천 년 묵은 백사(白蛇) 백소정과 오백 년 묵은 청사(靑蛇) 소청이 강남 여행을 오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 항주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인 허선을 만나거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실제로 있는 뇌봉탑에 봉인이 되는 장면도 나온다.

“맞는데요. 진짜 백소정이 봉인되어 있으면 어쩌지?”

“의원부터 가 볼래? 네가 지금 현실하고 소설하고 착각하고 있는 걸 보니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아! 백소정이 아니라 허선이 봉인되어 있을 수 있구나! 그러면 굳이 봉인을 풀어 줄 이유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왕삼을 보니 더 이상 대꾸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러고 있는 사이 마차는 항주의 대로를 달리다가 으리으리한 객잔에 멈췄다. 그러자 객잔에서 점소이가 후다닥 뛰어나와 마차의 문을 열었다.

“어섭셔! 만복객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차에서 내린 풍백은 여전히 두리번거리기 바쁜 왕삼에게 말했다.

“일단 너는 마부하고 같이 숙소를 잡고 기다리고 있거라.”

“도련님은요? 어디 가시려고요?”

“일하러 항주까지 왔으니, 일부터 하러 가야지.”

항주에는 시장이 무려 열 개나 있었다. 이 시장을 모두 뒤지고 다니며 풍백이 알고 있는 그 상인을 찾아야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암향거나 하오문을 이용해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그런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오문은 뒷골목에서 활동하며 문도 중 많은 수가 도둑이다. 그렇기에 상인이나 상행에 관련된 정보에는 취약했다.

반면 암향거에서는 이미 이 상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호초라는 고가의 향신료가 관련되어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지만, 이번엔 암향거에 가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풍백은 암향거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그래서 구주현에서도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암향거에서도 예의주시를 하고 있는 상인이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들킬 가능성이 높았다.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얼굴도 알고, 시장에 점포를 차린 것도 알고 있으니 발품만 팔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열 개나 되는 시장을 모두 뒤져 보려는 것이니, 재수가 없으면 며칠 동안 고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풍백의 말에 왕삼이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진짜 너무 변하신 모습이 적응이 안 되네요. 원래라면 술부터 찾으셨어야…….”

“……그럴까? 아주 그냥 오랜만에 퍼지게 술 처먹고 네 궁둥이나 발로 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하하…… 우리 도련님이 왜 이러실까? 저는 얼른 숙소를 잡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어설프게 웃던 왕삼은 후다닥 객잔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여기에 계속 있어 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왕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풍백이 작게 한숨을 쉬며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같이 고생 좀 해 줘야 할 것 같소.”

“걱정하지 마시지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호위하는 대상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니 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풍백은 호위무사와 함께 항주의 시장을 찾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