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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30화 (3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30화

짹짹!

귀에 울리는 참새가 짖는 소리, 그리고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에 문약란은 잠에서 깼다.

“으음…….”

눈을 비비며 살며시 뜬 문약란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방은 작았다.

조그만 방에는 그녀 혼자 누울 수 있는 침상과 옷가지를 넣을 수 있는 장롱, 그리고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투박하게 생긴 탁자와 의자 두 개가 있을 뿐이었다.

상방에 거주하는 시비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이었다. 딱히 더 허름하지도, 더 고급스러운 것도 없었다.

물론 원래 문약란이 살았던 방과 비교할 수는 없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문약란은 자신이 살았던 청해상방의 으리으리한 방보다 지금 그녀가 누워 있는 시비의 방이 백 배, 아니 만 배는 더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오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것 같아.’

비록 문약란은 풍백의 시비로 살고 있었지만, 청해상방에서 시비를 부릴 때보다 행복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오늘은 어떤 괴롭힘을 당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으며, 밤이 되면 두려움이 빠질 일도 없었다.

진정한 자유였다.

문약란은 바로 이런 것을 원해서 청해상방을 탈출했던 것이다.

“얍! 다시 하루를 시작해 봐야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문약란이 과장되게 말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침상을 정리하고 가볍게 세안을 마친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잊으면 안 되는 풍백이 직접 사 준 면사를 귀에 걸며 얼굴을 가렸다.

이곳에 온 이후로 문약란의 얼굴을 본 사람은 꽤 많았다. 같이 숙소를 사용하는 시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여인들은 문약란의 얼굴을 봤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안도 해야 하고, 밥도 같이 먹어야 하는데 면사를 쓰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대신 남자들은 문약란의 얼굴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풍백을 제외하면 왕삼과 호위무사 정도뿐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굳이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아도, 눈만 봤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얼마나 미인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문약란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덕분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적가상방에서 일하는 다수의 젊은 남자들이 문약란에게 빠져 밤마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뒷소문이 솔솔 풍기고 있었다.

그나마 그녀가 풍백의 전속 시비라는 사실 때문에 직접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풍백의 악명 높은 망나니 소문은 조금 잦아들기는 해도 아직까지 건재했다.

문약란이 여자 시비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식당에는 꽤 많은 시비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예쁘장한 시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여기! 소란아, 이쪽으로 와!”

그 모습에 문약란 역시 환하게 웃으며 얼른 음식을 가지고 이동했다.

“수월아, 오늘은 내가 너보다 늦었어.”

“헤헤! 매일 네가 먼저 왔었는데,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안 그래?”

귀엽게 생긴 시비는 바로 왕삼이 그렇게 애달플 정도로 좋아하는 수월이었다. 그녀는 처음 이곳에 와서 낯설어하던 문약란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주었다.

문약락은 워낙 수월이가 싹싹하고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풍백이 왕삼과 얘기하면서 자주 나왔던 이름이라서 그런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문약란은 생애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에휴…… 오늘은 상방에 약초가 들어오는데, 그거 포장을 도와줘야 해.”

“어제도 일이 힘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말이야. 상방에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우리까지 일을 도와야 하고…….”

“사람 더 구한다고 했었지 않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봐. 그때까지는 죽었다 생각하고 있어야지.”

“힘들어하니까 내가 미안하다……. 나도 도와줘야 하는데.”

“너는 도련님 전속 시비잖아. 처음에는 네가 전속 시비를 한다는 말 듣고 며칠이면 울면서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주 그냥 부러워죽겠어!”

과장되게 째려보는 수월이의 모습에 문약란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풍백이 얘기했던 것처럼 문약란은 그에 대해 온갖 얘기를 들었다. 술 먹고 난장을 친 것은 기본이고, 마치 전설처럼 내려오는 온갖 패악질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이런 얘기를 모두 듣고 난 이후 뭔가 괴리감이 생겼다.

그녀가 본 풍백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그런 망나니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패악질 부리는 망나니는커녕, 오히려 평소에 술 먹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왕삼과 농담을 하는 걸 보면 제법 욕을 하는 것 같아도, 자신과 얘기를 하면 언제나 선을 넘는 법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헛소문에 속은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충 풍백이 과거에 망나니였다는 걸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풍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풍백은 그녀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도련님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난 도련님의 예전 모습을 몰라서.”

“잠깐!”

수월이가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삭였다.

“혹시…… 너 때문에 변한 건가?”

“……뭐?”

“너를 뜨겁게 사랑해서 이제 변하겠다! 뭐 이런 거?”

수월이의 말을 상상해 본 문약란의 얼굴에 붉게 달아오르려고 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죽을 만큼 좋을 테니까.

하지만 반달을 그리고 있는 수월이의 눈을 보니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한 건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말 하지 마.”

“그래도 싫다고는 안 하네? 진짜 좋아하는 것 아니야?”

“그런 거 아니거든!”

두 사람은 식사하면서 티격태격했다. 물론 진짜로 싸우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니까.

문약란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진시(辰時, 오전 7~9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들은 문약란은 곧장 그녀가 들 수 있는 크기의 대야에 물을 받고 수건을 챙겨 풍백의 거처로 향했다.

풍백의 거처로 들어가자 한쪽에 있는 풍백이 보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웃옷은 벗고 가볍게 숨을 고르고 있는 풍백의 모습.

처음에는 풍백의 모습을 보고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풍백에게서 고개를 숙이지는 않게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도 볼에 홍조를 지우지는 못했지만.

“세안할 물을 가져왔습니다.”

문약란의 시중을 받으며 세안부터 식사까지 마친 풍백은 언제나 그랬듯이 무공 수련을 이어 갔다.

지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풍백이 한 것은 오직 무공 수련뿐이었다.

현재 적가상방은 굳이 풍백이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것이 폭발한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산적들에게서 벗어난 적가상방은 빠르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이전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적가상방이 이렇게 바뀌게 된 이유는 당연하게도 든든한 우군이 될 청송표국이 상산현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전에 계약이 되었던 풍운표국보다 적은 비용으로 표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상방의 수익 구조를 비약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었다.

사실 청운표국을 개국하기 위해 적가상방에서 지불한 돈은 대단히 많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상방의 기둥뿌리 하나를 뽑아서 지원했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적가상방은 풍운표국에 지불했던 운송비보다 삼 할 정도 싼 가격에 계약할 수 있었다. 아마도 청송표국을 설립했던 비용은 이 년도 지나기 전에 모두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풍운표국에서는 이제야 적가상방으로 달려와 운송비를 대폭 낮춰 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이미 한 번 배신했던 표국에 다시 일거리를 줄 리가 없었다.

앞으로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표국을 어떻게 믿고 운송을 맡길 수 있겠는가?

적호경과 진덕양은 오히려 이런 풍운표국의 제안에 더 분노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얼마나 적가상방을 우습게 봤으면 먼저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해서 궁지에 몰아넣어 놓고 뻔뻔하게 다시 일거리를 달라고 올 수 있냐고 말이다.

아무튼 풍운표국은 냉담한 반응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까지 풍운표국이 적가상방을 통해서 얻었던 이득을 백건상방이 보전해 주든지, 아니면 서로 치고받을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또 다른 소식으로는 적가상방이 새로운 지역으로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에 풍백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직 안정화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풍백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정을 알게 되고서는 적호경과 진덕양의 판단에 감탄을 했다.

적가상방이 새로 진출한 지역은 바로 청송무관이 있는 구주현이었으니까.

과거 금호상방이 구주현으로 진출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상산현의 상방이 안휘, 강서, 복건성으로 성공적인 진출을 했기에 구주현에 대한 소문은 상대적으로 묻혔던 걸지도 몰랐다.

청송무관의 관주인 우검학은 구주현 토박이에다가 무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나름 유지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구주현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우검학이 적극적으로 적가상방을 비호해 주기로 했으니 텃세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적가상방이 준비할 것은 점포와 물건뿐이었다.

구주현이 상산현처럼 크기가 크지는 않아도 앞으로 일이 잘 풀려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만 한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적가상방이 벌던 전체 수입의 이 할 이상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아버지와 숙부님은 맨주먹으로 적가상방을 만든 분들이지. 내가 너무 두 분의 역량을 무시하고 있었던 거야.’

실제로 그랬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주먹으로 적가상방이라는 제법 규모가 큰 상방을 만든 두 사람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상행을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보다 그들이 가진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당장 청송무관과 손을 잡고 구주현에 정식 진출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역량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후우우!”

운기조식을 마친 풍백이 길게 숨을 내쉬며 탁기(濁氣)를 내뱉었다. 그리고 눈을 뜬 풍백의 눈동자에서는 은은한 정광이 내비쳤다.

본격적인 내공 수련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내기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풍백이 뛰어난 무재(武才)가 있다거나, 아니면 보리항마선공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축기(築氣)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보리항마선공이 대단히 뛰어난 심법이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벌써부터 내기를 드러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풍백의 단전 앞에 모은 손에 들린 황금 불상 때문이었다.

과거 적웅은 나이도 많았고, 가진 무재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절강성에서 손꼽히는 강자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의 무서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심후한 내공이었다.

‘적웅 같은 놈도 절정고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물(奇物)이라…….’

풍백은 자신의 손에 들린 황금 불상을 바라봤다.

황금 불상을 두 손으로 잡고 단전 앞에 위치한 상태로 보리항마선공을 운용하면 기이하게도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지게 된다.

과거의 적웅조차 왜 이런 효과가 일어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여 황금 불상의 효과가 없어지자 미련 없이 바다로 나가 황금 불상을 버려 버렸다고 한다. 다른 누군가가 이것을 훔쳐 자신과 같은 강자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풍백은 적웅의 멍청함이 역사에 남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직접 사용해 보니 적웅이 왜 황금 불상의 효용이 없어지자 누구도 갖지 못하게 버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다에 불상을 버린다는 건 좀…….’

자리에서 일어난 풍백은 황금 불상을 숨기고 밖으로 나갔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내려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 무공 수련만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는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기도 했지.’

아무 이유도 없이 무공만 수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풍백은 단지 그가 원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풍백이 움직이기 정말 딱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러려면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부터 풍백이 실행하려는 것은 적가상방을 위한 일이다. 상방의 일을 하려고 하면서 기초 자금조차 없다면 어떤 일을 하겠는가?

‘일단 얘기를 하러 가 볼까?’

풍백은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늘 저녁은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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