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29화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구주현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진실을 그대로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아니,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매일같이 술에 빠져서 사고만 치던 풍백이, 태어나도 단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구주현에 가서 황궁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암향거에 신분을 숨기고 들어가 정보를 취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며 절정고수인 청송무관주 우검학에게 협의를 이끌어 냈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물론이고 풍백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특히 암향거를 어떻게 알았으며, 그곳을 출입하는 비밀 방법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래에 군부에서 일하면서 제법 많이 이용하던 단골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적당히 이야기를 편집하고 가공해서 알려 줬다.
말했듯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풍백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군부에서 일을 하면서 배운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바로 현실적인 정보 조작 및 가공이다. 즉,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적호경과 진덕양은 풍백이 약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몇 가지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가지고 유추한 내용으로 우검학의 호의를 샀다고 알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우검학이 속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직접 알아냈다는 형식이 되었고 말이다.
조금씩 사실과 다르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아마도 우검학과 모든 것을 논하는 자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진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검학 관주에게 이번 일은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테니 그런 자리는 영원히 마련되지 않겠지. 뭐……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적당히 둘러대면 되는 이야기일 테고.’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풍백은 기다리고 있던 왕삼과 문약란을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끝났지. 그런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적당히 쉬고 있을 줄 알았더니.”
“혹시나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란이 거처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요.”
그 말에 풍백이 문약란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시비로 들어온 것이니 시비들이 사용하는 거처를 사용해야 할 거다.”
“알겠어요.”
“원래는 전속 시비로 채용했으니 이곳에 있는 방을 사용하게 할 수 있지만, 아마 그렇게 되면 뒷말이 너무 많이 나올 거야. 나는 상관없어도 네게 그리 좋지 못한 소문도 돌 것이고.”
말했듯이 문약란은 너무 과하게 아름다웠다. 또한 그런 문약란을 직접 고용한 사람은 풍백이다.
이번 청송무관과 협의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점에서 적가상방의 사람들이 풍백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인식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문약란이 풍백의 거처가 있는 전각에서 지낸다면 바로 다음 날부터 문약란은 풍백과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헛소문이 돌 것이라는 사실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문약란은 풍백에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는지 몰라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단순히 몸을 숨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도 해요. 그러니 전속 시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거예요.”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되지만, 나에게 대한 소문이 그리 좋지는 않아.”
“네? 도련님이요?”
문약란이 깜짝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풍백이 정말 천상에서 내려온 천군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상산현으로 오면서 보여 줬던 세심한 배려를 생각하면 왜 풍백에 대한 소문이 나쁜지 이해할 수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약란에게 왕삼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아마 곧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는 도련님이 그동안 보였던 활약상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런 왕삼을 풍백을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건 자랑이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모두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이제 도련님은 적가상방의 위기를 단숨에 날려 버린 사람이 되었는데요.”
“아주 오래전에 네가 잠을 자다가 일어나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는데, 갑자기 일꾼이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바지에 똥을 지린 적이 있…….”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말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왕삼이 손으로 풍백의 입을 막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문약란 역시 너무 노골적인 얘기 때문에 당황하여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으악!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겁니…… 으갸갹!”
가볍게 왕삼의 두 손을 제압한 풍백이 담담히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네가 바지에 똥을 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네가 바지에 똥을 지리고 창피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일어난 일로 과거를 세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창피한 것처럼 나도 창피하니까 그렇게 즐거워하지 말라는 말이지. 이해했냐?”
“……네,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소란이가 쉴 수 있도록 거처를 안내해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시무룩해진 왕삼이 문약란을 데리고 물러가려고 했다. 그런데 풍백이 그런 왕삼을 불렀다.
“아참! 그리고 한 가지 더 해 줘야겠다.”
“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화로 좀 가져와라.”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풍백의 말에 왕삼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화로요? 아니, 한여름에 무슨 화로를 찾는 겁니까?”
“그냥 가져오라면 가져와.”
“설마 숯까지 준비해서요?”
“그러면 숯도 없는 화로를 어디다가 쓰려고 찾겠냐?”
“한여름에 화로를 찾으시니까 그렇죠. 아마 여름이라 숯까지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빨리 준비해서 해지기 전까지 가져와.”
“알겠습니다.”
왕삼이 숯을 가지고 온 시간은 이미 해가 지고 사람들이 모두 집에 돌아갔을 무렵이었다.
“비키세요! 뜨겁습니다!”
화로를 방에 내려놓은 왕삼이 뜨거운 화로를 들고 오려고 끼었던 장갑을 벗으며 땀을 닦았다.
“후우…… 아니, 여름에 무슨 화로를 준비하라고 하는 겁니까?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점점 이상한 일을 벌이시는 것 같다니까요.”
“너는 그 주둥이 좀 어떻게 해 봐라. 그렇게 주절거리다가 사람들이 네 말을 들으면 내 소문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건 알고 지껄이는 거지?”
“아…… 그러네요. 곧장 다물겠습니다. 합!”
과장되게 입을 다문 왕삼을 보고 풍백이 어서 가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왕삼이 역시 과장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혼자 남은 풍백은 방으로 들어와 창문과 문을 모두 닫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더웠다.
한여름에 창문과 문을 닫고 방에 화로를 피워 놓는다면 다음 날부터 훌륭히 정신 나간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참아야지.’
벌써부터 땀이 맺히는 이마를 훔치며 풍백이 품속에 고이고이 모시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적웅에게 강탈하듯이 빼앗았던 목재 불상이었다.
어른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인 목재 불상은 오래된 것처럼 검댕이 묻어 있기도 했으나, 정말 너무나 흔하게 생긴 불상이기에 특이한 점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좌상(坐像)인 목재 불상은 흔한 불상이 다 그렇듯이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맺고 있었다.
사실 근래에 만들어지는 석가여래의 좌상은 이제 시무외인, 여원인과 같은 수인(手印)을 맺지 않는다. 요즘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별한 가치도 없어 보이고, 심지어 요즘 만들어지는 불상과 다른 수인을 맺고 있으니 이 불상을 가지려고 했던 사람이 없었던 거겠지.’
적웅은 당연히 불자가 아니다. 아마 그는 석가여래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차이점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집무실에 목재 불상을 놔뒀던 이유는, 단지 뭔가 좀 있어 보이려고 전시해 둔 것뿐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가치가 없는 것은 더욱 마음에 들었을지도 몰랐다. 누가 훔쳐 가도 배 아플 일은 없을 테니까.
풍백은 목재 불상을 화로에 툭 집어넣었다. 그러자 불상이 순식간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풍백은 활활 타오르는 목재 불상을 보며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놈이 정말 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타고 난 놈이기는 하지.’
적웅은 과연 어떻게 목재 불상에서 황룡사의 무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보통 뒷골목이라는 곳은 관부에서도 어지간하면 건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살인이 일어나도 신고가 들어가지 않고, 만약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포두가 나와서 수사를 하는 일은 거의 볼 수 없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런 뒷골목이라고 하더라도 포두는 물론이고 관병까지 모두 출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는 한다. 바로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관리가 단속을 명령했을 경우다.
풍백이 알기로는 대략 몇 개월 안으로 절강성 안찰사는 사람 장사를 하던 놈들을 모조리 조진 것으로 부족했는지, 뒷골목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죄가 중한 범죄자와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절강성 안찰사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강성 안찰사로 만족하지 못했고, 공을 세워 황궁으로 들어가 도찰원(都察院) 좌우도어사(左右都御史) 자리를 꿰차려는 목적이 있었다.
목적이 있는 관리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없고, 부지런한 관리만큼 무서운 것이 없는 법이다.
결국 단속에 걸릴 위험에 처하게 된 적웅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장물을 헐값에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장물을 팔아치우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남은 장물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만약 안찰사에게 잡혀 들어간다면 적웅과 같은 흑도패는 십중팔구 목이 잘려 죽을 것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태워 버린 장물 중에는 당연히 목재 불상도 있었다. 목재 불상이 가치가 없다고 알고 있었어도 혹시 모르니 싹 불태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불태우기 시작한 목재 불상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지금처럼.’
화로에서 활활 타오르던 목재 불상에 붙은 불이 점점 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이 꺼진 것은 아니었다. 진짜 불상을 감싸고 있던 목재만 불에 타서 없어진 거라고 할 수 있었다.
화로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낸 불상은 황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본모습이지.’
풍백은 부지깽이를 가지고 불상을 조심스럽게 화로에서 꺼냈다.
황금 불상은 그 자체로도 엄청 상서롭게 보였는데, 이것의 가치는 단순히 황금이라는 것에 있지가 않았다.
황금 불상의 혈 자리 표시와 함께 깨알처럼 적혀 있는 무공 구결이 바로 적웅이 얻었던, 그리고 이제는 풍백이 강탈하게 된 보리항마선공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보리항마선공이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지.’
조금씩 식어 가는 황금 불상을 집어 든 풍백이 불상의 등을 살피자, 그곳에는 사람 그림과 함께 또 다른 구결이 적혀 있었다.
거기다가 뒤집어 바닥을 보니 발자국 모양과 함께 또 다른 구결이 적혀 있었다.
즉, 황금 불상에는 모두 세 개의 무공이 담겨 있었다. 보리항마선공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황룡사 삼대 절기라는 말이지?’
두 번째 계획이었던 무공을 얻게 된 풍백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