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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3화 (2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3화

헛간의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대략 열일곱 정도로 보이는, 아직 소녀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여인이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는지 마르고 초췌했지만, 여인의 미모는 전혀 색이 바라지 않고 아름다웠다.

흔히 사람들은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문약란의 미모는 바로 그 표현이 너무나 어울렸다.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문약란의 외모를 본 풍백의 감상은 간단했다.

‘예쁘네. 나중에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성숙해지면 지금보다 더 예뻐질지도 모르겠어.’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오히려 뒤에서 등불을 들고 있던 호위무사가 문약한의 미모를 보고 순간적으로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과거 풍백은 여러 일들을 했었다. 그러면서 절대로 경계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여인의 미모였다.

아름다운 여인의 미모는 사내의 심장을 떨리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풍백과 같은 대원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꽤 혹독한 훈련을 했다. 그 결과 누군가 얼마나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마치 분석하듯이 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약란이 아름답다는 건 인정한다. 단지 그것과 자신은 별개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풍백도 문약란이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덜컥했다.

‘……초록색 눈동자?’

문약란의 눈동자는 중원 남쪽의 바다처럼 아름다운 초록빛이었다.

그 신비로운 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그녀의 입부터 시작된 미소가 얼굴로 퍼져 나가자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문약란은 정신을 잃었다.

풍백이 덜컥인 심장 때문에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이며 서둘러 문약란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코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미약하게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딱히 아픈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냥 탈진인 것 같네.’

그래도 장기간 제대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서 의원에게 진맥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는 김에 체력을 보할 수 있는 약도 좀 지어야 할 것 같았고 말이다.

풍백은 뒤에서 하오문 일류고수 중 하나가 유심히 문약란을 보고 있는 걸 몰랐다. 특히 문약란의 눈동자를 봤을 때는 눈빛을 빛내기도 했었다.

헛간을 둘러본 풍백은 한쪽에 있는 이불을 가져왔다. 냄새도 나고 더러웠지만 이대로 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혹 유교(儒敎) 집안인 경우에는 단순히 남녀가 손을 잡은 것만으로 청백이 더럽혀졌다고 난리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청해상방이 유교 집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에 수궁사까지 찍고 있는 것을 보면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이불로 문약란을 덮고 얼굴마저 가린 풍백이 그녀를 안아 들었다. 여기서 객잔까지 가려면 꽤 먼 거리지만, 이제는 거의 무인의 신체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풍백이 문약란을 안고 나와 집 밖으로 향하려고 하자, 하오문 일류고수 중 하나가 전육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놈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우리가 처리하면 되는 거요?”

여기서 말하는 처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건 전육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쪽에서 숨죽이고 눈알만 굴리고 있던 전육은 그 말에 부르르 몸을 떨더니 황급히 무릎으로 기어 풍백에게 다가왔다.

“공자님! 사, 살려 주십시오! 절대로 다음부터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리라도 붙잡고 늘어질 것처럼 전육이 다가오자 호위무사가 멋들어지게 용천보검을 꺼내 전육에게 겨눴다. 시퍼런 검날을 본 전육은 그대로 굳었다.

“더 다가오면 베겠다.”

싸늘한 호위무사의 말에 전육이 더 다가오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소리쳤다.

“공자님! 어르신! 대협! 또 궁금하신 건 없으십니까? 제가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맞습니다! 저놈들이 돈을 숨겨 놓은 곳도 알고 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육은 말을 하면서도 이를 딱딱거리며 부딪쳤다. 지금 풍백이 하는 말에 따라 자신의 목숨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 몸서리쳤다.

풍백은 그런 전육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돈? 내가 그런 것이 필요해 보이나?”

“뭐든지 하겠습니다! 짖으라면 짖고! 핥으라면 핥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끄흐흐흑……. 정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으허헝!”

대성통곡을 하는 전육을 바라보는 풍백의 시선은 싸늘했다.

“너 말이야, 사람 장사하는 놈들 중개인 역할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처음입니다!”

“개소리. 이런 큰 건을 처음인 놈에게 맡겼을 리가 없지.”

“그, 그건…….”

“그동안 네가 지금까지 팔아 치운 온갖 사람들이 너에게 살려 달라고, 풀어 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했을까? 네가 나에게 갈구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을까?”

절대 그런 적 없었다. 오히려 먼저 나서서 잡아 온 사람들에게 잔혹한 짓을 꽤 많이 저지르곤 했다.

전육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쿵! 쿵! 쿵!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제발 자비를…… 으흑.”

전육이 지면에 머리를 찍어 가며 울부짖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면 풍백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사람이 참 그래. 남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웃다가도, 정작 자신에게 그 칼끝이 향하면 온갖 반성과 눈물로 사정을 하거든. 정작 자신은 그런 자비를 베푼 적도 없으면서.”

“제발…….”

“지옥에 가거든 염라대왕에게 지금처럼 사정해 봐. 혹시 알아? 나보다 자비심이 넘칠지.”

말을 마친 풍백이 미련 없이 밖으로 나갔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풍백을 쫓아가려던 전육의 앞을 하오문 무인들이 가로막았다.

“어딜 가시나? 우리하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잖아.”

“너희 때문에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야.”

“쉽게 끝내지는 않을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알았지?”

살벌한 무인들의 말에 사시나무처럼 떨던 전육의 사타구니가 젖어 갔다. 두려움에 오줌을 지린 것이다.

“으아아아아!”

“시작하자. 입부터 막아.”

“으으읍! 으으으으읍!”

“에이, 씨발 칼 더럽게 안 드네. 야, 다른 칼 좀 줘 봐.”

* * *

눈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힘겹게 눈을 뜬 문약란은 평소와 다른 것을 느끼고 몸이 굳었다.

가장 먼저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

상자에 들어가 이동하거나 헛간에 갇혀 있는 바람에 한동안 햇빛을 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아침의 따스한 햇살이 눈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

처음 보는 천장이다. 헛간에 눅눅하고 어둡던 천장이 아니라 깔끔하고 꽤 고급스러운 천장.

마지막으로 침상과 이불.

푹신한 침상과 이불은 충분히 비싼 물건이라는 걸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헛간에서 더러워 쓰지 않던 냄새나는 이불과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말이다.

‘이건…… 뭐지?’

혹시 자신이 아직 꿈속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던 문약란의 귀에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셨습니까?”

문약란이 여전히 침상에 누운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리니, 자신이 누워 있는 침상 인근에 풍백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멍하니 풍백을 바라보고 있던 문약란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허약해진 체력에 벌떡 상체를 일으키다가 현기증을 느끼며 다시 침상에 쓰러졌다.

“너무 급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깨어나셨으니 천천히 체력을 회복하셔야 움직일 때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풍백의 자상한 목소리를 들으며 문약란은 생각했다.

‘그게…… 진짜였어?’

모두 자신의 망상, 환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망상이라 생각했던 바로 그 남자가 정말로 자신을 구해 줬던 것이었고, 지금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자상하게 말하고 있었다.

눈이 뜨거워지며 물기가 차올랐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풍백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문약란은 덮고 있던 이불을 슬그머니 들어 올려 얼굴까지 가렸다.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겁니까?”

풍백의 물음에 문약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너무 부끄러워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소저께서 주무시는 동안 의원이 이미 다녀갔었습니다. 다행히 탈진하신 걸 제외하고 몸에 이상은 없다고 하더군요.”

“…….”

“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여의원으로 불렀었으니까요.”

문약란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내려 눈만 빼꼼 내놓고 풍백을 바라봤다.

풍백은 문약란의 아름다운 초록빛 눈동자와 마주치자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문약란이 다시 눈까지 가렸다. 이불 아래 그녀의 얼굴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 어떻게 하지?’

풍백과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너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식은땀이 났다. 도저히 이불을 내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보고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때 풍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앉은뱅이 식탁을 들어 문약란의 허리 정도 되는 위치에 내려놨다. 식탁 위에는 미음(米飮)과 소화하기 쉬운 간단한 소채가 놓여있었다.

“일단 체력을 보할 약을 먹기 전에 식사부터 하셔야 합니다. 장기간 제대로 된 음식을 드시지 못했기 때문에 적어도 오늘 하루 정도는 가벼운 음식을 먹어야 할 겁니다.”

“…….”

“소저?”

문약란은 이불 아래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고 두 손을 작게 파닥거리며 얼굴을 식혔다. 이대로 이불을 치우면 너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된 그녀는 조심스레 이불을 치우고는 풍백을 곁눈질로 살피며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아…….”

그런데 또다시 현기증이 일어난 문약란이 상체를 휘청거렸다. 아무래도 옆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앉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현재 문약란을 시중 들어 줄 시비가 어디서 솟아나듯이 나타날 수는 없었다.

풍백은 조심스레 물었다.

“힘들어 보이시는데, 제가 조금 도와 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 물어보면서도 문약란이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빨리 나가서 시중을 들어 줄 시비 하나를 찾아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풍백의 예상과 달리 문약란은 시선을 피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의외의 결과였지만 풍백은 의자를 가져와 문약란이 누워 있는 침상 옆에 앉아 한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등을 받쳐 줬다.

누군가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아마 다정한 연인이 가볍게 안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간신히 원래대로 돌아왔던 문약란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풍백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규중처녀가 생판 남인 사람의 손이 닿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라는 생각이었다.

문약란은 풍백의 손길에 의지하며 수저로 미음을 떠먹기 시작했다. 부끄럽기는 해도 막상 눈앞에 음식이 있으니 너무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었다.

오물거리며 문약란이 미음을 모두 먹자 풍백은 식탁을 치우고 탕약을 가져왔다.

“사흘 동안 먹을 탕약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문약란을 보며 풍백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문약란이 탕약을 마시자 그녀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그녀의 등 뒤에 베개를 몇 개 받쳐 준 풍백은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

“이제 얘기를 좀 할 수 있겠군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기어 들어가는 문약란의 말에 풍백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고초가 심했을 텐데, 이제는 안심해도 됩니다.”

“네…….”

“제가 직접 광동성까지 모셔다 드리면 좋겠지만, 절강성에서 너무 먼 거리라서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해상방에 연락을 넣어 모시러 오라고 할 생각입니다. 청해상방이 모시러 올 때까지는 건강을 찾을 걱정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광동성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굳어 가던 문약란은 청해상방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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