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22화
“그래서 거래를 할 수 없겠다고?”
전육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대답했다.
“거래를 아예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처음 계획했던 적웅과는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건 아까 했던 말이잖아. 근데 안찰사가 한바탕 조지고 다녔다며. 그 말은 절강성에서는 거래를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 아니야?”
“그, 그게…….”
너무 정확하게 핵심을 이해한 것 같아서 전육은 오히려 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있던 일곱 사내 중 하나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절강성으로 가자고 한 게 누구냐?”
“저, 접니다.”
“절강성 중에서 용유현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 사람은 누구고?”
“그것도…… 접니다.”
“거래를 꼭 성사하겠다며 나갔던 놈이 누구지?”
“……접니다.”
사내가 눈에서 불똥이 쏟아질 것처럼 부라리며 전육을 노려봤다.
“뒤질래?”
“아, 아닙니다!”
“네가 네 입으로 청해상방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절강성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거래를 못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가 굳이 널 데리고 다닐 이유가 뭘까?”
“제, 제가 아니면 중개를 할 사람이…….”
“중개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서 무슨 얼어 죽을 중개인이야. 뒷골목에 지나다니는 아무나 데려와서 시켜도 너 정도는 할 것 같은데.”
“내가 저 새끼 못 미덥다고 했었잖아.”
옆에서 실실 웃으며 추임새를 넣는 놈을 보고 전육의 식은땀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정말 이러다가 여기서 목이 잘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분명히 거래를 성사시키겠습니다! 진짭니다!”
“너는 좀 닥쳐라.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라고. 광동성에서 복건성을 거쳐 절강성까지 왔다고. 네 혓바닥만 믿고 말이야.”
“먼 길이었지. 나는 처음에 이 새끼가 미친 줄 알았다니까. 사람 하나 팔자고 절강성까지 가자고 하길래 말이야.”
전육은 다급히 말했다.
“매물이 무려 청해상방의 장녀입니다! 어지간한 매물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받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절강성이 아니라 강소성이라도 가야…….”
“이 새끼 혓바닥 놀리는 꼬락서니 보소.”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차라리 청해상방에 몸값을 요청했으면 우리는 벌써 묵직한 전낭을 가지고 어디 기루에 가서 기녀 엉덩이나 두드리고 있었을 거라고.”
전육은 차마 그랬다가는 목이 잘려 사이좋게 어딘가에 나란히 효수(梟首)되었을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가 자신의 목이 먼저 잘려 효수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술병 하나를 입에 물고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다들 실망한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하도록 해.”
그 말에 전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사내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계속 그렇게 갈구기만 하는 걸 듣는 것도 지겹거든. 차라리 손가락 하나 정도 자르라고.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짜증 난 상태인지 확실히 인지할 것 아니야.”
“허억!”
“그거 좋은 방법이네.”
“내가 자를게, 내가!”
사내들은 맞장구를 치며 진심이라는 것처럼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기까지 했다.
‘내가 돈 좀 만져 보겠다고 이런 미친놈들이랑 괜히 엮여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마저 부들부들 떨던 전육을 살린 건 마침 이 시점에 문을 두드린 누군가였다.
탕! 탕! 탕!
사내들이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물고 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곤 전육에게 물었다.
“누가 찾아올 놈이 있었나?”
“네?”
“적웅이라는 놈에게 거래할 생각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다던가.”
“아닙니다! 뒷골목 흑도패를 어떻게 믿고 저희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겠습니까?”
탕! 탕! 탕!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사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각자 가지고 있던 병기를 뽑았다. 그리곤 전육에게 눈짓으로 가서 누군지 확인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전육은 일초반식도 모르는 몸이다. 싸움이 일어나면 절대로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춤거리고 있으니 날아오는 사내들의 험악한 시선에 어쩔 수 없이 미적거리며 문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누, 누구요?”
겁먹은 전육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래서인지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전육이 뒤를 돌아보니 사내 중 하나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가 문을 가리켰다. 문틈으로 확인을 해 보라는 말 같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전육이 슬그머니 문틈으로 눈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발바닥이었다.
‘어?’
쾅!
“아악!”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그대로 전육의 콧잔등을 가격했다. 전육은 코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그 위로 일단의 병기를 든 사내들이 진입했다.
“웬 놈들이냐!”
“그러는 너희는 웬 놈들이기에 용유현에 뭘 팔아먹으러 오셨을까?”
들어온 사내들 중 하나가 이죽이며 말하는 것을 듣자 명백히 이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담벼락을 꽤나 수려한 경공을 선보이며 넘어온 사내들만 다섯이었다. 경공의 수준이 한눈에도 이류무인 수준은 될 것 같았다.
‘이류무인 다섯에 삼류무사 열?’
‘가망이 없어…….’
‘튀자!’
사내들이 이런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데, 그들이 있던 건물 지붕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객이 빨리 처리하기를 원하신다. 시간 끌지 말고 해치워라.”
“한 놈도 놓치면 안 돼.”
“괜히 놓쳐서 우리가 움직이면…… 알지?”
고개를 돌려 보니 지붕 위에 표표히 서 있는 세 명의 사내가 보였다. 세 명의 사내는 기도를 숨기지도 않고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일류고수였다.
“……좆됐다.”
인신매매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가 말했다.
“죽어라!”
“혼자는 안 죽어!”
“저 새끼 도망간다! 죽여!”
“개새끼들아!”
풍백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손에 들고 있는 꼬치에 꿰인 고기를 날름날름 뽑아 먹었다. 담장 너머에 있음에도 풍겨 오는 혈향(血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 나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호위무사는 담장 너머로 금속성이 들려올 때마다 움찔거렸다.
원래 호위무사가 이렇게 호전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으면 써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호위무사의 손은 움찔거리며 허리춤에 있는 용천보검의 검파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호위무사는 절대 풍백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의 임무는 안에 들어가서 인신매매범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풍백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풍백은 그런 호위무사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보다 뭔가 일이 애매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느라 바빴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건 풍백의 예상과 달랐다.
‘청해상방에서 장녀를 납치했는데, 그 인신매매범 중에 일류고수 하나도 없다고?’
물론 일류고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지 그러려면 정말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납치가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철저한 계획을 세웠던 사람이 인신매매범 중에 있다면…… 지금처럼 허술하게 행동해서 거처가 들통나는 멍청한 짓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 하긴 상관이 없기는 하지. 이곳에 납치되어 있는 여자가 확실히 청해상방의 장녀인 문약란이라는 것만 사실이면 된다. 그러면 문약란을 찾아 준 대가로 충분하고 넘칠 대가를 받아 낼 수 있으니까.’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안에서 벌어지던 싸움은 일단락이 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상대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이류무인 수준이었고, 심지어 그들이 모두 이류무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하여 하오문의 무인들은 일류고수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싸움이 길게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끝났습니다.”
안쪽에서 하오문 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풍백은 호위무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상처도 거의 없이 서 있는 하오문의 무인이 먼저 보였고, 그다음으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일곱 구의 시체가 보였다.
풍백은 바닥에 고여 있는 핏물을 피해 벌벌 떨고 있는 쥐상의 사내, 전육에게 다가갔다. 전육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떠는 것도 모자랐는지 눈물마저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전육의 앞에 쭈그리고 앉은 풍백이 혀를 차며 소매에서 싸구려 손수건 하나를 꺼내 전육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줬다.
“쯧쯧……. 왜 울고 그래? 사람 마음 약해지게.”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그런 얘기는 천천히 하는 걸로 하고, 일단 어디에 있어?”
풍백이 명확하지 않게 물어봤지만 전육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들을 도륙할 사람은 청해상방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 저쪽에 있습니다!”
전육은 밖에서 걸어 잠근 헛간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풍백이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험하게 대했어? 많이 상했으면 곤란한데.”
“너, 너무 기력이 좋으면 도망칠까 봐 좀 굶기기는 했지만, 손가락 하나도 안 댔습니다!”
풍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육을 노려봤다. 사실대로 말하라는 표정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겠어? 여기 고자 새끼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전육은 고개를 강렬하게 흔들었다.
“진짭니다! 손대면 값이 떨어질까 봐 절대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그걸 믿으라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 수궁사(守宮砂)가 있을 겁니다! 그걸 보고 아무도 손대지 않기로 한 겁니다! 확실히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요!”
“수궁사?”
수궁사는 일부 명문가의 여식들이 정조를 지키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의미로 찍는 붉은 점이다.
도마뱀을 잡아 매일 주사를 먹인다. 약 일곱 근의 주사를 먹으면 도마뱀이 붉게 변하게 되는데, 붉게 변한 도마뱀을 갈아 비전의 약품 처리를 하고 여인의 팔에 찍으면 된다. 수궁사를 찍고 며칠간 씻지 않으면 그 자리에 연분홍빛 점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생긴 수궁사는 신기하게도 정조를 잃게 되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주의할 점은 이미 혼인한 여자에게는 붉은 점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풍백도 얘기만 들었지 직접 수궁사를 본 적은 없다. 워낙 설명을 많이 들어서 보기만 하면 알아볼 수 있지만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네.’
청해상방에서도 최대한 문약란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니 전육의 말이 맞다면 일이 제법 수월하게 풀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풍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육이 가리킨 헛간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겨우 이렇게 죽어 가는 건가?’
문약란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미치도록 배가 고팠다. 아니, 이제는 배고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온몸에 기력이 없어 눈조차 뜨기 힘들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문약란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고 죽음을 논하는 게 아니었다.
저들에게 자신은 상품이다. 그러니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겨우 도망칠 수 있었는데…….’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부럽다 말하며 자신이 청해상방주의 장녀이기를 바라겠지만, 문약란에게 청해상방은 감옥이었고 지옥이었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청해상방에서 지금까지 버텨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그날 문약란은 지금까지 조용히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계획은 순조로웠다.
어머니와 함께 준비했던 계획은 몇 년에 걸쳐 준비했던 것이고, 그 긴 시간을 투자했던 만큼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마침내 청해상방에서 벗어났을 때는 정말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았다. 당장 수중에 많은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저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처음 저들에게 잡혔을 때는 절망스러웠다. 이제야 지옥과 같던 청해상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무언가 해 보기도 전에 저 더러운 놈들이 자신을 마음대로 유린하다 죽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손목에 찍힌 수궁사가 그녀의 목숨을 살려 줬다. 아주 값비싸게 팔 수 있다며 손대지 않도록 저희들끼리 약속을 한 것이다.
처음 수궁사를 찍을 때는 몰랐다. 이 수궁사가 자신을 두 번이나 살려 주게 될 줄은.
제법 긴 시간동안 좁은 공간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주지 않았고, 그렇게 주는 식사마저 건량(乾糧)처럼 간신히 허기를 면할 정도의 음식일 뿐이었다.
죽음을 논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문약란의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항상 이랬다.
배가 너무 고프다 보니 멍하니 있다 보면 기절하듯이 잠에 든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무언가 사람들의 호통 소리와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것은 긴 시간동안 허기에 시달리다 보니 간혹 들리던 환청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맞았는지 소란스럽던 소리는 곧 사라졌다.
문약란은 문득 지금까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생각했다.
‘여기서 정말 멋진 공자님이 나를 구해 주면 참 좋겠다…….’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청해상방에서는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녀의 편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은 소녀가 떠올릴 법한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삶이 너무 백척간두(百尺竿頭)와 같았으니까.
하지만 죽음을 논하다 보니 이런 감성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스스로 부정했다.
‘무슨 망측한 망상을…….’
이런 생각을 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에 빨리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문이 열렸다.
밥을 주는 시간도 아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누구도 그녀가 갇힌 곳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 구……?’
간신히 고개를 돌리자 열린 문을 통해 밝은 빛이 쏟아지고, 그 빛 속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영웅건을 단정히 쓰고, 깔끔한 모습으로 헛간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몰랐다.
문약란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바라던 바로 그 남자였다.
사실 남자는 그림같이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약란의 눈에는 충분히 멋지게 보였다.
‘잘생겼다…….’
그리고 그대로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