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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화 (2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화

광동성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청해상방(靑海商幇)의 장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청해상방이 무려 광동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상방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대형 상방의 장녀가 사라진 사건이니 광동성 전체가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청해상방의 장녀 문약란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거의 드러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청해상방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가 문약란이 병약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고, 병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해서 상방의 평판을 의식하여 청해상방주가 사람들과 격리를 시켰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약란이 대낮에, 그것도 청해상방 내부에서 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문약란이 가출을 한 것은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평소에 문약란이 몰래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는 내부 소문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이건 절대 가출이 아니었다. 심지어 납치를 당하는 순간을 명백히 목격한 사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결국 며칠이 지나도록 문약란을 찾지 못한 청해상방이 공개적으로 납치 사실을 밝히며 문약란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막대한 보상을, 납치한 범인들에게는 막대한 금액의 현상수배까지 걸었다.

그러나 문약란을 찾았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어디서 문약란을 봤다는 사람까지는 나타나기도 했지만, 확인을 해 보면 다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실종된 문약란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고,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점차 지워져 갔다.

그런데 풍백은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다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무려 광동성 거상(巨商)의 혈육이 납치된 사건이었으니,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은 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암향거는 문약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었다.

그러자 의외로 범인의 얼굴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얼굴은 전 중원에 있는 모든 암향거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풍백 역시 이렇게 전달된 현상수배지를 봤었다. 그 현상수배지에 그려진 사람이 바로 쥐상의 사내였고 말이다.

그런데도 처음 쥐상의 사내를 보고서도 그가 누군지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첫째, 현상수배지에 그려진 용모파기(容貌疤記)는 목격자의 말을 토대로 하여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에 집중했을 뿐이지, 실제 얼굴과 완전히 판박이처럼 그리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용모파기를 보고 범인을 잡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둘째, 당시 풍백은 이 사건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이때의 풍백은 여전히 적가상방에서 망나니짓을 하느라 바쁠 때였다. 이후 적가상방이 망하고 군부에 투신한 이후 청해상방 실종 사건에 대해 흘러가듯이 봤었을 뿐이다.

풍백은 이 사건의 내막을 보고 나서 욕을 했었다.

‘하여간 관부의 개자식들을 참…….’

암향거에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사건의 범인은 강소성(江蘇省)에서 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그 지역의 지현대인은 범인을 몰래 죽이고, 문약란을 어딘가로 팔아 버린다.

이후 이 사건을 밝혀낸 어사는 지현대인을 사사로이 범죄를 은폐하고, 백성을 노예처럼 팔아 버린 죄를 물어 삭탈관직(削奪官職)을 당한다.

그러나 지현대인이 누군가에게 어떤 제안을 받고 문약란을 팔았던 것이란 사실은 알아냈지만, 지현대인은 절대로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어떤 시인도 하지 않았다.

암향거는 어떻게든 문약란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낸 마지막 사실은 문약란이 중원을 벗어나 어딘가로 팔려 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암향거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원을 벗어나면 그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나마 새외(塞外)까지는 국경 지역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정보를 수급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적웅의 집무실에서는 적웅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인지, 쥐상 사내의 목소리는 몰라도 적웅이 하는 말은 꽤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절강성에서 사람 장사를 하려고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

“이런 병신 같은 놈을 봤나. 절강성에서 어떤 미친놈들이 왜구(倭寇)하고 손을 잡고 사람 장사를 하다가 작살났다는 말 못 들었어? 절강성 안찰사가 도지휘사(都指揮使)와 함께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해안 지역부터 내륙까지 모조리 조지고 다녔다고.”

풍백은 적웅의 얘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과거 적웅이 혈불로 불리면서 온갖 소문과 음모론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문약란에 대한 얘기였다.

바로 문약란을 납치한 놈들이 적웅을 만났었다는 얘기였는데, 적웅은 자신이 온갖 나쁜 짓은 다 했었고 앞으로도 나쁜 짓을 할 것이지만, 적어도 사람 장사는 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 덕분에 당시 사람 장사를 하던 인신매매범이나 노예상 놈들은 혈불도 하지 않는 더러운 짓을 돈 때문에 벌이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 대화를 들어 보니, 적웅의 말에는 원래 사람 장사를 했다는 기저가 깔려 있었다.

‘하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던 놈이 유독 사람 장사만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 그건 그렇고, 과거에 저놈이 강소성에서 잡힌 이유가 절강성에 안찰사가 단속을 벌여서 사람 장사하던 놈이 없었기 때문이구만.’

적웅이 사람 장사에서 손을 떼는 것을 보면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사람 장사를 하기 위해 절강성을 떠났을 것이고, 가까운 절강성 북쪽의 강소성으로 갔던 모양이다.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집무실 안에서 얘기는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내가 사람이나 소개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 가뜩이나 짜증 나 죽겠는데, 확 대가리를 깨부숴 줄까? 당장 꺼져!”

쾅!

집무실이 활짝 열리며 쥐상의 사내가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쥐상의 사내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한숨을 내쉬다가 아직 집무실 근처에 서 있는 풍백을 잠시 힐끔거리고는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풍백은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하아…… 이걸 어쩐다? 쫓아가서 조져?’

그가 알기로 쥐상의 사내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나 동료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동료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동료가 있다면 쉽게 결정해서 들이닥칠 일이 아니었다.

적웅의 경우와는 달랐다.

적웅은 겉으로 겁이 없는 것처럼 호방하게 행동하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안위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호위무사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낭인무사를 구해서 온 것만 보더라도 그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풍백은 이런 적웅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분석도 했기에 큰 위험은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문약란의 일은 얘기가 다르다.

힘으로 해결을 하고자 한다면 저들 역시 죽자고 달려들 것이다. 저들에게는 적웅과 같은 대안이 없으니까.

상대의 힘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작정 쳐들어갈 수는 없었다. 풍백의 호위무사는 절정 고수가 아니었다. 그저 이류 무인일 뿐이다. 일이 잘못되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문약란을 사 온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사람 장사를 하는 놈들은 절대 아무하고나 거래를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거래를 해 왔거나, 믿을 만한 중개인이 중간에 껴 있어야만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누군가가 접근해서 거래를 요청하면, 오히려 접근해 오는 사람을 붙잡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관부에서 나온 포두나 포쾌일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다고 관부에 신고를 하는 방식도 뭔가 꺼림칙하다.

가장 걸리는 부분은 과거에 문약란은 이미 관부에 구함을 받았었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지현대인이 문약란을 팔아 버렸다.

그리고 말했듯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현대인은 누군가와 거래를 했고, 끝끝내 거래 대상에 대해 실토하지 않았다.

과연 배후에 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어 누군지 추론을 해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관부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말 배후가 있는 거라면 이번에도 문약란을 관부에 구함을 받고 다시 팔려 가는 꼴이 될 가능성을 타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관부는 일단 배제해야지.’

이제 결정할 것은 직접 나설 것이냐, 아니면 나서지 않을 것이냐만 남았다.

풍백은 협객이 아니다. 그 말은 부담이 심한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문약란을 구하는 일은 부담이 심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심한 부담에도 끼어드는 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얻을 보상이 너무나 달콤하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청해상방은 거상이자, 광동성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상방이다.

이런 곳의 장녀를 직접 구해 인계한다면 과연 그 보상은 얼마나 될까?

돈으로 받으면 천문학적인 금액일 것이고, 아니면 아주 값비싼 거래 품목을 독점적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적가상방은 아주 많이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청해상방의 도움이 있다면 적가상방은 제법 큰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계획에는 없는 일이지만,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친다는 건 너무 아까워.’

풍백은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무조건 구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만에 하나 적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고수가 있다면 깔끔히 손 털고 물러서는 것을 택해야 할 것이다.

“무사님.”

풍백이 부르자 아직도 입이 귀에 걸려서 용천보검이 녹을 정도로 뜨거운 시선을 보내며 쓰다듬고 있던 호위무사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소.”

“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어떤 일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뭔가 호위무사의 목소리에 진한 충성심이 느껴졌다. 용천보검이 그의 충성심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내려가는 놈 보이시오?”

난간에 선 풍백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호위무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워낙 도박장에 사람이 많아서 누굴 가리키는 것인지 잘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기 쥐새끼 닮은 얼굴을 한 사내를 말하는 것이오.”

“음…… 혹시 지금 막 일 층으로 내려간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회색 경장을 입은 사내를 말하는 겁니다.”

“아! 찾았습니다! 진짜…… 쥐새끼를 닮기는 했군요.”

“무사님이 저자의 뒤를 좀 밟아 봐야겠소.”

“알겠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냥 저놈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뒤를 쫓아 어디로 가는지만 찾으면 되니까 절대로 무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오.”

호위무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봤을 때는 아무리 살펴봐도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대한 조심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호위무사가 서둘러 도박장을 나서는 쥐상의 사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풍백은 천천히 일 층으로 내려가 한쪽 구석에 있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안전을 위해서 부족한 무력을 채워야 하겠지?’

호위무사 정도라면 뒷골목에서는 절정고수와 같은 활약을 할 수 있다. 방금 전 쥐상의 사내와 같은 놈들이라면 수십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광동성 오대 거상 중 하나인 청해상방에서 장녀인 문약란을 납치한 놈들이다. 호위무사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전 암향거의 보고서를 통해서는 오직 쥐상의 사내 수배지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 쥐상의 사내가 혼자 문약란을 납치했을 리는 없다. 진짜 납치한 놈들은 다른 놈들이고, 앞으로 나서서 협상해야 되는 일에만 쥐상의 사내가 나섰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흔한 일이다. 위험도가 높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한다면, 거래를 끝냈다고 하더라도 이후 얼마든지 추적해서 척살당할 수 있으니까.

당장 적가상방은 상산현을 장악하기는커녕 간신히 세 손가락에 손꼽힐까 말까 하는 수준이지만, 호위무사의 무력이 이류무인은 되었다.

그러니 청해상방의 호위무사는 그보다는 훨씬 대단할 것이다.

그런 청해상방에서 장녀를 납치한 놈들이다. 납치범들이 정말 뛰어난 계략을 꾸민 것이 아닌 이상, 납치범들의 무위가 낮을 거라는 생각은 망상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즉, 풍백의 호위무사만 가지고 무슨 일을 벌인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다행이라면 과거와 달리 가지고 있는 무력만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거네.’

무력이 부족하면 부족한 무력을 채우면 된다.

만약 부족한 무력을 채울 수 없다면…… 문약란을 구하는 일에서는 깔끔히 손을 떼야 할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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