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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9화 (1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9화

“……여기서 장물이란 말이 왜 나오는 거지? 물건의 가치를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모르고 싶은 거겠지.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장물을 본래 가격으로 사나? 장물이 무슨 말인지 몰라? 범죄 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물건이 바로 장물이잖아.”

“그…… 렇기는 하지.”

“그 말은 이 물건은 남들 앞에 당당히 꺼내 놓지도 못한다는 말이고.”

“어…….”

“우리 내기할까? 네가 암상에게 가서 팔아도 칠백 냥을 받는다면, 내가 미안하다는 의미로 천 냥에 이걸 사고, 그 이하라면 그냥 내가 공짜로 가져갈게. 어때?”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적웅이 입술을 깨물더니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백 냥.”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히는 연기하는 거냐? 이 새끼가 끝까지 사기 치려고 하네. 너 솔직히 이것들 다 사는데 얼마 들었어?”

“내가 얼마에 샀는지 여기서 무슨 상관이야!”

“빤히 얼마에 샀는지 보이니까 하는 말이지. 보아하니 장물을 팔았던 사람이 적어도 가치는 알고 있었다는 가정을 하고…… 다 합쳐서 대충 팔십 냥 정도 들었겠네.”

적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화가 나서가 아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표정 관리 안 되는 꼴 하고는. 맞지? 그리고 원래 장물은 시세의 사 할을 넘게 받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씨벌…… 그럼 이백팔십…….”

“조까. 이백팔십 냥은 협상 시작가고, 이제 진짜 협상을 해야지. 여기 곽희의 그림을 보자고. 낙관(落款) 어디 갔냐?”

“여기 있잖아!”

“이 무식한 놈아. 이 정도 그림에는 낙관은 두 개가 들어가야지. 저기 있는 그림을 봐. 저것도 낙관이 두 개 찍혀 있잖아. 이름 낙관은 있는데, 아호(雅號) 낙관이 없다고.”

“그, 그건…….”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곽희 그림이라고 인정 안 할걸. 그러니까 이 그림은 스물다섯 냥만 받아.”

“억! 그럴 수는…….”

“그리고 이 도자기!”

풍백은 장물 하나하나 들어가며 온갖 얘기를 늘어놨다. 작은 흠집 하나가 작품의 질을 하락시키는 큼직한 흠이 되었고, 조그만 얼룩이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가치를 잡아먹는 문제점이 되었다.

적웅이 풍백의 말에 무력하게 당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반론을 하며 그 정도로 가치가 하락하지는 않는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후 풍백의 입에서 쏟아지는 온갖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논리에 박살이 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온 가격은…….

“그러니까 칠십다섯 냥 정도면 적당한 가격일 것 같은데, 여기에 아까 짜증 나게 만들었으니까 다섯 냥 깎아서 칠십 냥으로 퉁치자.”

“야! 이 도둑놈아! 내가 팔십칠 냥에 샀는데 어떻게 칠십 냥이 나와!”

매입가보다 후려친 가격이 튀어나오자 적웅이 분통을 터뜨리며 욕을 했다.

하지만 풍백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눈탱이 맞은 걸 왜 나한테 지랄이야? 누가 비싸게 사래? 물건에 흠집과 결점이 너무 많잖아! 희귀성은 인정하는데, 그 가치가 이만큼 손상된 게 내 탓이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럼 우리 내기할까? 이거 가지고 암상한테 가 보자. 그래서 내 말이 맞으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장물 다 넘겨줘. 대신 내가 틀리면 내가 깔끔히 은자 일만 냥 줄게.”

적웅은 당당한 풍백의 말에 움찔했다. 분명히 이 물건을 암상에 가져가면 적어도 백 냥 이상은 받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방금 전 풍백이 쏟아 낸 온갖 전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암상이 후려칠 가능성도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적웅은 결국 논리는 개나 줘 버리고 말았다.

“안 팔아! 난 모르겠으니까, 팔십다섯 냥에 사든지 아니면 말아!”

“지금 나한테 열다섯 냥을 손해 보라고? 그게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지금 당장 여기 일 층으로 내려가서 열다섯 냥을 준다고 하면 내 발바닥도 핥을 놈들이 수십 명은 나올 그런 돈이야.”

“몰라! 싫으면 그냥 가! 다른 곳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라고!”

협상은 없다는 듯이 적웅이 기관을 움직여 벽을 닫으려고까지 했다. 그걸 본 풍백은 짜증 난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러면 팔십다섯 냥은 너무 많아. 팔십 냥으로 하지. 너도 팔십 냥에 샀다며. 내가 바빠서 다른 곳까지 둘러볼 시간이 없다고.”

“협상은 없다! 팔십다섯 냥 아니면 안 팔아!”

막무가내로 소리치는 적웅의 말에 풍백이 머리를 벅벅 긁다가 문득 서재에 있는 작은 목재 불상에 시선이 닿았다.

목재 불상은 제법 연식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예술적인 가치라든지 아니면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적웅 역시 그걸 알기에 그저 서재를 꾸미는 용도로 놔뒀을 것이다.

“그러면 팔십다섯 냥 줄 테니까, 저기 있는 목재 불상이라도 껴 줘.”

“내가 왜? 협상은 없다고 내가 분명 말을 했…….”

“적당히 하고 넘겨. 어차피 저 불상은 가치가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음…….”

“적어도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라도 안 받으려고 가치도 없는 불상을 가져가겠다는데, 그냥 좀 받아들이지?”

적웅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솔직히 내가 오늘 크게 당하는 것 같은데, 첫 거래라 넘어가도록 하지.”

“당하기는 개뿔이 당해. 받을 것 다 받아 놓고서.”

“이 정도면 본전치기도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겨우 다섯 냥을 벌자고 팔십 냥으로 장물을 구입했던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만약 거래가 틀어졌다고 화가 나서 풍백이 호위무사에게 칼춤을 추라고 한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거래가 끝났으니 풍백이 신호를 보내자 호위무사가 나서서 장물 네 개를 챙겼다. 풍백은 장물을 드는 대신 목재 불상을 챙겼다.

남들이 봤을 때는 호위무사가 손이 없어 풍백이 목재 불상을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목재 불상을 집어드는 풍백의 손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목재 불상을 챙긴 풍백이 품에서 묵직한 전낭을 꺼내 은자 팔십다섯 냥을 건네줬다. 은자를 받으면서도 적웅의 얼굴이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이었기는 하지만.

“다음에도 괜찮은 물건이 있는지 찾아와 보도록 하지.”

“……내가 어지간하면 손님을 반기는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네가 다시 온다는 말은 그다지 반갑지가 않군.”

“살 만하구만. 손님을 가려 받으려고 하다니.”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치고 풍백은 적웅의 집무실을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쥐상의 사내와 마주쳤다.

쥐상의 사내는 잠시 풍백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곧 적웅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풍백은 쥐상의 사내를 봤음에도 아까처럼 낯이 익다는 생각을 못했다. 지금 풍백은 희열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무실 밖에서 품에 있는 목재 불상을 만져 본 풍백은 누구도 보지 못하게 두 주먹을 부르르 떨릴 정도로 꽉 쥐었다.

‘내 손에 들어왔다! 이 불상에 그 무공이 있다는 말이지?’

풍백은 자신이 익힐 무공을 선별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무공을 고를 때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저 강호에 큰 이야깃거리로 남았던 비급을 아무거나 손에 넣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먼저 마공과 같은 무공은 배제해야 했다.

확실히 마공은 다른 무공과 비교될 정도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공은 익히는 과정이 극악하거나, 익힌 이후에 사람의 감정을 갈아먹든지, 아니면 피를 갈구하게 되는 안 좋은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렇다고 명문정파의 무공을 익힐 수도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문파에 입문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미 스물두 살인 풍백이 명문정파에 입문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강호에 간혹 돌아다니는 비급을 통해 익혀서도 안 된다. 함부로 허락도 없이 명문정파의 무공을 익히면 적어도 그 명문정파의 척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얻은 목재 불상은 아주 최상이었다.

불상에 있는 무공의 이름은 보리항마선공(菩提降魔仙功).

과거 중원에서 이름이 높았던 황룡사(黃龍寺)의 무공으로, 황룡사는 가장 부흥했을 땐 무려 소림사(少林寺)에 비견되었을 만큼 거대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황룡사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불자(佛者)들이 몰살을 당하고 멸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황룡사가 무너진 이후 황룡사의 무공이 다시 세상에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풍백이 이 무공을 익혔다고 쫓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었다.

과거에도 적웅이 이 무공을 익힌 이후로 황룡사의 무공을 익힌 죄를 묻기 위해 그를 찾은 사람은 없었다고 들었다.

대신 중원의 모든 불자들은 적웅을 두고 치를 떨 정도로 분노했다고는 들었다. 아무래도 불교의 보물과 같은 무공을 흑도패가 익힌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심지어 이 무공을 가지고 온갖 패악질을 부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중도 아니면서 혈불이라 별호가 붙었다고 하지.’

적웅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은 목숨이 그리 길지만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놔둬 봤자 사람들 피눈물만 뽑아낼 놈이야.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황천으로 보내 줘야지.’

이번에는 무공을 얻지 못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도움이 될 놈은 아니었다.

특히 그의 패악질에 관한 소문을 들었기에, 이대로 놔두면 여러 사람들이 괴롭기만 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과거의 억울했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적웅은 적당히 처리를 해야만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풍백은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조금 감탄했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호위무사를 볼 수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오?”

“조금…… 놀랐습니다. 도련님께서 이런 안목을 가지고 있고, 상대가 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협상하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사실 협상이라고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부족하기는 했지.”

안목은 원래 적가상방에 살면서 여러 가지를 보며 자연스레 길러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안목이 늘어난 이유는 당연히 군부에서 받은 여러 훈련들 중에 명품이나 예술품을 보는 법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호위무사는 풍백의 이런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풍백의 모습을 보고 나니 과거의 망나니였던 모습이 희미해질 정도였다.

“아무튼 수고했소.”

“제가 딱히 한 일도 없습니다만.”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수고한 것이 맞소. 대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검은 그대가 갖도록 하시오.”

“네? 이, 이 검을 말입니까?”

호위무사의 손에 있는 검은 예술품이나 유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용천보검(龍川寶劍)이라 부르는 비싼 검이다.

광동성(廣東省) 용천현(龍川縣)에서 만들어지는 검은 중원에서 어느 곳에서 만들어진 검보다 그 성능이 우월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용천현에서 만들어진 검을 사람들은 용천보검이라 부르며, 검을 쓰는 무인이라면 누구든지 갖고 싶어 한다.

호위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이 강호에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이류 무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명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검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호위무사는 다급해 보였다.

자신의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유독 용천보검에 눈이 가는 걸 애써 참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니…… 믿기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나중에 다른 것으로…….”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냉큼 대답한 호위무사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용천보검을 훑어보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너무나 살가워 마치 연인을 쓰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풍백이 말했다.

“할 일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그만 갑시다.”

“넵!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때보다 충성심이 넘쳐 보이는 호위무사였다.

풍백이 이내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적웅의 집무실에서 적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나한테 애새끼를 팔려고 왔다는 말이야? 내가 장물을 취급하니까 사람 장사도 하는 줄 알고?”

어차피 자신과 상관없는 얘기였고, 무엇보다 풍백 역시 얼른 목재 불상에서 무공을 얻고 싶어서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디딘 풍백의 머릿속에 사람 장사라는 글자와 쥐상의 사내를 포함하여 몇 가지 정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결과, 풍백은 두 번째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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