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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7화 (1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7화

대부분의 뒷골목이 그렇듯이 용유현의 뒷골목 역시 무언가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음습해 보이는 거리는 당연히 피하게 된다. 저런 곳에 들어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뒷골목에 들어서는 풍백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뒷골목 한쪽에 서 있거나 쭈그려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런 풍백에게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리 호의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이런 뒷골목을 번듯한 옷차림으로 들어서게 되면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풍백은 이런 것도 모르는지 비단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옷을 입고 있었으니, 뒷골목에서 사냥감을 찾던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런 풍백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풍백을 보호하기 위해 호위무사가 허리에 검을 차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뒷골목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고 제법 안목이 좋았다. 그렇기에 호위무사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무공을 지녔다는 걸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아무리 풍백이 먹음직스럽다고 하더라도 무인이 호위를 하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었다.

이렇게 호위무사의 호위를 받는 풍백은 뒷골목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가며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은 마치 관광이라도 다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풍백은 확실히 목표가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걷던 풍백은 한 건물을 보고 마침내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풍백이 바라보고 있는 건물은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게도 허름하기는 하지만 무려 삼 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흑도패 서너 명이 입구에 서 있거나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창문과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뭔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닫힌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기네.’

풍백은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모여 있던 흑도패들은 풍백이 다가오자 힐끔 바라보기만 했지, 딱히 그 앞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흑도패가 여기 서 있는 이유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 위함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풍백은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흑도패 앞에 멈춰 섰다. 그걸 본 흑도패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뉘슈?”

“돼지 안에 있냐?”

풍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도패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흑도패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쪽 식구는 아닌 것 같은데, 두목을 그렇게 부르다가 그 방만한 혓바닥이 잘리는 수가 있어.”

돼지.

아주 평범한 단어였지만, 최소한 이곳에서는 감히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용유현 뒷골목에서 손에 꼽히는 흑도패인 호가화(好家伙)의 두목을 멸시하면서 부르는 말이었으니까.

흑도패는 방금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주먹 관절을 풀었다.

그걸 본 풍백은 피식 웃으며 그런 흑도패의 뺨을 툭툭 쳤다.

“이 새끼 이렇게 생겨 놓고 귀엽네. 그런 건 능력 있으면 하시던지 알아서 하고, 두 번째로 묻는다. 안에 돼지 있냐고. 있어? 없어?”

“이 미친놈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흑도패가 욕을 하며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주먹을 들어 올리는 걸 본 풍백이 발을 들어 흑도패의 발목을 안쪽에서 내리찍었다.

우득!

일격에 발목이 부러진 흑도패가 순식간에 뇌리까지 치솟아 오르는 소름 끼치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벌린 입으로 풍백의 두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만들어 흑도패의 한쪽 입을 걸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흑도패는 입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오자 풍백이 잡아당기는 손길에 따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흑도패의 시야에 풍백의 무릎이 가득 찼다.

쩍!

흑도패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이어진 연환격(連環擊)에 다른 흑도패가 손을 쓰지도 못했다. 그저 뭔가 투덕거리는 순간, 동료인 흑도패가 쓰러졌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대답이나 해 줬으면 서로 좋잖아. 시간 낭비하게 만들고 있어, 짜증 나게.”

방금 건장한 흑도패 하나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풍백이 투덜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호가화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고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흑도패 세 명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방금 전 풍백이 보여 준 한 수가 이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흑도패 중 하나가 허리춤에서 시퍼런 단도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맨손으로 풍백과 싸울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도를 꺼내 든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흑도패가 단도를 풍백에게 겨누는 그 순간,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쉬칵!

흑도패는 뭐가 눈앞에서 번뜩하는 것만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번뜩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머리카락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새파랗게 질린 흑도패가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그러자 잡혀야 할 머리카락 대신 까슬까슬한 느낌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으헉!”

흑도패가 기겁을 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흑도패의 눈에 풍백의 뒤에서 납검(納劍)을 하고 있는 호위무사가 보였다.

흑도패는 무인이 아니다. 그저 건장하고 배짱 좀 있으며 싸움 좀 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무인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간혹 흑도패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낭인무사를 구해서 싸움에 참여시키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낭인무사가 흑도패 틈으로 파고들어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피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처럼 무서운 낭인무사마저도 강호에선 겨우 삼류 무사 수준일 뿐이다. 그러니 흑도패가 무인을 보면 설설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 무인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호위무사는 풍백에게 다가서며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딱히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풍백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는 주뼛거리며 서 있는 흑도패 세 명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돼지는 안에 있냐고 세 번째 묻고 있다.”

“어…… 없습니다!”

“아직 안 나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풍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직도 안 나왔다고? 이 새끼는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뻔뻔하게도 약속을 하고 찾아온 것도 아니면서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하는 풍백이었다.

“그래서 언제 나올 것 같은데?”

“금방 올 겁니다! 늦어도 자시가 지나기 전에는 꼭 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기다리면 되는 거구나! 그런 거였네. 난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 거였어.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바보가 아닌 이상 풍백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당장 귀인이 오셨다고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해라. 기다리기 귀찮으니까.”

흑도패 하나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의 흑도패를 풍백이 치켜뜬 눈으로 빤히 바라봤다.

왜 이렇게 자신들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흑도패들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너희는 뭐하고 있냐?”

“……네?”

“빨리 가서 돼지 새끼 데리고 오라고. 너희 셋이 다 달려가면 더 빨리 올 것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갈 때 이놈도 데리고 가고. 빨리 의원으로 데리고 가면 병신 되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다.”

흑도패 두 명은 기절한 다른 흑도패를 둘러메고 달려갔다.

‘이 정도면 알아서 빨리 오겠지.’

이제 안으로 들어가려고 풍백이 발걸음을 내딛는데, 호위무사가 풍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투술(搏鬪術)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그 말에 풍백은 오히려 의외라는 눈으로 호위무사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아본 것이오?”

“적가상방에 몸을 담기 전에 강호를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박투술이 무공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군역(軍役)을 수행하기 위해 군부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무공은커녕 무술(武術)마저 배운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군부에서는 병사들을 병과에 맞춰 빨리 배울 수 있는 무술을 수련시키게 된다.

여기서 재능이 있는 몇몇 사람은 특수한 병과에 차출이 되는데, 그런 특수한 병과에서는 일반 병사들이 배우는 무술보다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무술을 배우게 된다.

박투술은 그런 무술 중 하나다.

근접 격투를 하게 될 경우에 사용하는 수법으로 대단히 실전성이 높아, 어지간한 이류 무공보다 더 쉽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내공을 사용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군부에서도 소수의 사람만 배운다는 박투술을 정말 뜬금없이 상방의 후계자가 사용하는 것을 봤으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풍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냥 어깨너머로 배웠소.”

“……그게 말이 된다고 봅니까?”

“불가능할 건 뭐요?”

“아무리 무공이 아닌 무술이라고 하더라도 박투술을 어깨너머로 본다고 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생각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지.”

뻔뻔하게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는 소리를 내뱉는 풍백의 모습에 호위무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박투술을 풍백이 펼쳤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흔히 볼 수 없는 수법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방금 펼친 것을 보면 너무 능숙하긴 하던데…….’

거기다가 풍백은 자신의 고용인이나 다름없었다. 배우면 안 되는 마공(魔功)을 배운 것도 아니고, 군부에서 배우는 박투술이니 굳이 따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입구를 막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밖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으아아아! 대삼원(大三元)! 대삼원 떴다!”

“이 개자식아! 주사위 똑바로 안 굴려?”

“육, 삼! 육, 삼이지? 아악! 여기서 이, 팔이 뭐야!”

“자! 판돈 걸어!”

대낮처럼 환한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은 핏발이 선 눈으로 고함을 지르며 기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절망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존재하는 곳.

이곳은 도박장이었다.

도박장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도박장은 관부의 허가가 있어야지만 열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뒷골목에 있는 도박장 중 관부의 허가를 받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도박장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옆에서 누가 말을 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도박장 내부에는 흑도패가 어슬렁거리며 경비를 보고 있었지만, 방금 전 밖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알아차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풍백은 이렇게 소란스러운 도박장 내부를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웃거리며 걸었다.

진짜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곧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올 사람을 기다리기 무료하기에 구경이라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직접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별로 즐거울 것도 없었다.

결국 풍백은 도박 구경을 그만하고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과거에 들었던 그의 성격을 떠올리면 오래 기다리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의자에 앉은 풍백은 아무 의미 없는 시선으로 도박장을 둘러보며 향후 행보에 대해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풍백의 시선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초조한 얼굴로 도박장 이 층 난간에 기고 있는 사내였다. 흔히 쥐상이라고 말하는 얼굴을 가진 중년 사내는 누굴 찾고 있는 중인지 눈을 부라리며 이리저리 사람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사실 도박장에서 저 사내처럼 누군가를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보통 두 부류가 가장 많았는데, 도박장에 온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을 잡으러 온 사람이다.

풍백은 지금 보이는 저 사내 역시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사내가 어떤 이유로 도박장에서 누군가를 찾는지는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낯이 익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풍백은 분명 저 사내를 어디선가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이 익은 것처럼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봐도 도저히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풍백은 그냥 사내에 대해서 잊기로 했다. 이렇게 고민을 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중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고민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마침 도박장 문이 열리고 일단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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