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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4화 (1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4화

‘현승?’

현승이라는 직책이 풍백의 입에서 나오자 우검학의 차갑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공교롭게도 자신 역시 구주현의 현승과 어떤 밀약(密約)을 했었으니까.

“지주대인은 현승에게 말합니다. 너희 지역에 무인이 운영하는 무관이 있다. 그 무관에 연락하여 무관에서 수련하던 사람들은 모두 관부로 받아들이겠다고 하거라. 포두(捕頭)나 포쾌(捕快)도 좋고, 무관이 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해라.”

“…….”

“그리고 슬금슬금 시간을 끌어라. 지현대인이 거절했다는 둥, 이번에 감사가 나왔다는 둥, 인원이 아직 빠지지 않았다는 둥 말이다. 관리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수십 가지의 변명 거리를 머리에 집어넣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아…….”

우검학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풍백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풍백은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멋들어지게 관리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 모습이 꽤 그럴듯해 우검학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우검학의 상체가 점점 풍백에게 쏠렸다. 완전히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무인은 현승이 이래저래 변명을 하는 것을 믿으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빚을 내서라도 버티려고 하지요. 왜냐하면 그가 무관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강호에 몸을 담그기보다는 무관이 될 수 있는 제자들을 키워 관부와 연을 맺고 싶었거든요.”

“끄응…….”

“하지만 시간은 길어지고 빚도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겠지요. 아…… 나는 이제 망했구나, 라고요.”

우검학은 핏발이 선 눈으로 풍백을 노려보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길 텐데…… 만약 그 약속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무인이 가만있지 않을 것 아니오? 아무리 관과 강호가 불가침이라고 하나, 이렇게 대놓고 문제를 일으키면 무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맞습니다. 특히나 무인은 아주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으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지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그때가 되면 현승은 이곳에 없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현승이 왜 지주대인의 명령을 듣겠습니까? 현승은 이 지역 지현대인을 보필하며 정무(政務)를 처리하는 차관(次官)입니다. 아무리 품급이 높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지주대인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지요.”

“그러면 무언가를 받기로 했다는 말이오?”

“강호의 무인은, 특히 정파의 무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리는 무엇을 먹고 살까요? 돈? 사람들은 관리가 돈을 원한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대부분의 관리는 돈보다 권력을 원합니다. 돈은 어차피 권력을 손에 쥐면 자연히 따라오게 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렇다면…….”

“지주대인은 이 년이란 세월이 지나기 전에 북경(北京)으로 떠날 겁니다. 그리고 그 옆을 아마도…… 그 현승이 보좌하게 되겠지요. 그것이 바로 무인을 속인 대가니까 말입니다.”

“…….”

“무인이 보복을 하겠다고 절강성에서 북경까지 쫓아간다? 그리고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황궁에 소속된 관리를 죽인다? 이후 여파는 무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검학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의 심정과 생각한 것들을 풍백이 늘어놨다.

“무관이 문을 닫는 건 당연하고, 무인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관부에 잡혀갈 겁니다. 또한 정문 정파의 제자이기에 문파마저 황궁에서 내려온 압박을 받게 되겠지요. 이 모든 것은 무인이 감당할 수 있는 불상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손을 쓰지 못할 것이요.”

으드득!

우검학은 어금니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은 완전히 상인이라는 작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꼴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게 정말이라고?’

아직 믿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과 현승이 맺은 밀약마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풍백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뭔지 아십니까?”

“……무엇이오?”

“이 계략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바로 무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오?”

“무인은 말했듯이 호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한 약속은 절대로 져 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욕심에 눈이 덮이지 않은 어떤 상인이 끝내주는 제안을 하더라도, 기존에 약조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거절을 하고 말 거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에 눈이 덮이지 않은 어떤 상인은 당연히 적가상방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실제로 방금 전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잘 풀렸다면 이후 상인의 계획은 일사천리(一瀉千里)입니다. 무인은 약조를 어긴 현승을 보며 분노에 몸서리를 치겠지만, 당장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무관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겠지요.”

“음…….”

“이런 상황에 상인이 멋지게 등장하는 겁니다. 나는 당신의 능력을 알고 있다. 그렇게 끝날 사람이 아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투자를 하겠다. 빚도 갚아 주겠다. 그러니 표국을 만들어서 우리 함께 미래를 보며 나아가자.”

“…….”

“이제 상인은 아주 저렴한 돈으로 능력 좋은 무인과 표국을 얻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진출하여 상방의 물품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을 바탕으로 원래 그가 살던 지역에서 가장 큰 상방이 되는 겁니다.”

풍백은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우검학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 이야기가 어떻습니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

“여기서 더 웃긴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무엇이오?”

“무인은 그 상인을 은인으로 여길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상인의 투자를 받아 표국도 만들고, 상방의 곤란한 일 처리도 해 주게 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무인을 긴 시간 동안 괴롭게 만든 당사자는 바로 그 상인인데 말입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상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자신의 배를 갈라서라도 돕겠다고 할지 모르는 일이지요. 하하하하!”

풍백의 웃음에 우검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풍백의 웃음이 그에게는 대단한 비웃음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자의 말이 맞다면 비웃음을 당해도 싸다. 이자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우검학이 눈이 벌겋게 되어 물었다.

“……사실이오?”

“뭐가 말입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한 얘기가 전부 사실이냐는 말이오.”

“저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면 거짓이라는 말이오?”

“글쎄요…….”

탕!

모호하게 대답하는 풍백의 태도에 우검학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하지만 탁자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우검학은 정파, 그것도 무당파라는 명문정파의 기명제자다. 그런 그가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하더라도 무공이라고는 일초반식도 모르는 풍백에게 무력으로 압박을 가할 수는 없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얘기를 한 것이오? 정말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증거를 내보여야 하는 것 아니오? 이렇게 사람을 기만하듯이 행동을 하다니…….”

풍백은 우검학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할 얘기를 다한 것 같습니다.”

“이보시오, 적 공자!”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알려 드렸습니다. 일의 전후 관계부터 모든 것을 말입니다. 관주님이 저에게 물어볼 것은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면 가짜냐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물어야지요.”

우검학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왜 중요하지 않다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니…….

그런 우검학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풍백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알기로 구주현은 관주님의 고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소.”

“일의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고, 이곳이 고향이면서 무관까지 운영하기에 아는 사람이 수두룩하며, 심지어 구주현에서 가장 강력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분 아닙니까?”

이곳 구주현에 어떤 은거기인(隱居奇人)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풍백의 말이 맞다.

“그러면 왜 저에게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겁니까? 직접 알아보면 더 정확할 텐데 말입니다. 당장 현승을 상대로 추궁을 하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왜 직접 증거를 보여 주지 않는 건가?”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제가 증거를 보이면 믿을 수는 있는 겁니까?”

“그건…….”

풍백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다. 적가상방 역시 며칠 전에 방문했던 진덕양이라는 총관을 통해 처음 들었다.

그에 비하여 현승 역시 이곳이 고향이었다. 그 말은 우검학과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우와 같은 사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결국 직접 알아볼 것이다. 풍백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말이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우검학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 내가 물어봐야 할 더 중요한 것이 뭐지?’

여전히 우검학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 영 눈치는 없구나.’

그럴 수 있다.

무재(武才)가 뛰어난 사람이 꼭 눈치가 좋아야 할 필요가 없고, 글공부를 많이 했다고 일자무식(一字無識)보다 더 장사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현승을 찾아가 뭐라고 물어볼 겁니까? 제가 말했던 모든 것을 부정할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해결하실 리도 없고.”

“잘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지금까지 관주님을 보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군요. 적어도 계략을 짠 사람이 움찔하게 만들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제 이야기에서 나오는 상인은 과연 누굴까요?”

“아!”

그제야 아직 상인이 누군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우검학이었다.

‘내가 이렇게 반푼이였나?’

아마 평소였다면 당연히 상인이 누군지부터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이야기를 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나?

풍백이 현승과 비밀로 했던 약속까지 모두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상인이 누구요?”

그러자 풍백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상산현에 있는 금호상방입니다.”

풍백이 지금까지 말했던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인은 바로 금호상방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암향거에서 받은 서책에는 이 복잡하고 더러운 거래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암향거는 중원의 모든 것에 대해 조사를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관부가 연관된 정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

그 결과, 암향거는 금오상방과 상산현의 지주대인, 구주현의 현승이 엮여 있는 이면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내막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풍백은 서책을 읽고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풍백이 말한 이야기는 거의 구 할 이상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비록 청송무관은 금호상방을 위해 표국을 만들고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기는 하지만, 결국 그들은 금호상방에게서 벗어나 청송문이라는 문파를 만들게 된다.

물론 그때의 금호상방은 규모가 거대해져 대상방(大商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변했으며, 더 이상은 청송무관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놔준 것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이제 구대문파와 같은 명문정파와 직접 거래를 할 만큼 커졌으니까.

이런 얘기는 굳이 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우검학은 이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러니 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풍백이 집중한 곳은 금호상방이었다.

‘금호상방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이야. 만만적(慢慢的)이라…… 이걸 이렇게 과감하게 써먹는 놈은 보기 힘든데 말이야.’

만만적.

‘천천히’라는 뜻의 이 말은 사실 그 이면에 다른 뜻도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 느리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을 행함 자체를 멈추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속담[不怕慢 只怕停]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만만적을 가장 무섭게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금호상방이 사용한 계략이다.

천천히 무려 몇 년에 걸쳐 청송무관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청송무관이 한계에 한계를 맞이하는 순간, 금호상방이 등장해 그들의 정신마저 손아귀에 넣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며 계략을 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금호상방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풍백은 방에서 나서기 전에 굳어 버린 것처럼 가만히 있는 우검학에게 말했다.

“저희는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느 객잔인지는 일하시는 분께 물어보면 될 겁니다.”

이것을 끝으로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우검학이 너무 바보 같을 정도로 호인이라 암중에 자신을 노리는 계략에 당했지만, 이제 모든 내막을 알고 계략의 주체가 누군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알아서 사실을 밝혀내고 풍백에게 직접 연락을 할 것이다.

‘협의는 그때부터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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