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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3화 (1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3화

청송무관주 우검학의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어제 암향거에서 본 서책 내용에 따르면 이른 아침 우검학이 일부 제자를 데리고 무공 수련 및 전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있는 수련에 대해서는 우검학이 직접 무공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에 소속된 다른 사람이 진행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풍백이 청송무관을 방문한 시각이 점심을 마친 이후였으니, 당연히 무복이 아니라 다른 복장을 입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우검학은 여전히 무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무공 수련을 하고 온 것처럼 이마에 땀까지 맺혀 있기도 했다.

‘생각보다 꽤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모습과 달리 외모는 조금 예상을 벗어나기도 했다.

겉으로는 이제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검학은 벌써 불혹(不惑)이 지난 나이였다. 그리고 무복을 입고 있어도 무인보다는 문인(文人)에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마저 풍겼다.

아마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무복이 아니라 학사들이 입는다는 사령대금관수삼(斜領大襟寬袖衫)을 입으면 여지없이 문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고아한 외모였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우검학이 풍백을 향해 포권(包拳)을 하자, 그에 맞춰 풍백 역시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하도록 합시다.”

“그러시지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자 우검학이 물었다.

“차는 어떻소?”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찻잔에 차를 따라 풍백에게 내민 우검학은 자신의 찻잔도 채웠다. 그러곤 차로 입술을 축인 우검학이 가벼운 담소를 건넸다.

“솔직히 나는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오. 지금 마시는 차도 인근에 사는 분이 선물로 줘서 마시는 중이라오.”

“저도 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사실 차보다는 오히려 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지요.”

“하하하! 그건 나하고 똑같구려.”

가벼운 담소를 마친 우검학이 풍백을 보며 물었다.

“아버님이 적가상방주라고 들었소만.”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 협의를 이끌어 내고자 제가 자청해서 왔습니다.”

“그렇구려. 사실 이렇게 적가상방에서 다시 방문할 줄은 몰랐소. 그래서 어제 방문 약속을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소.”

“그렇습니까?”

“그 제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거절을 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우리에게 할 얘기가 있는 것이오?”

풍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다시 대화를 나누면 합의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요. 이미 이전에 진덕양 총관이 제안했던 것도 우리에게 대단히 유리한 제안이었소. 그럼에도 내부 사정으로 고사하게 되었던 것이오. 그러니 미안하지만 어떤 제안을 해도 적가상방의 손을 잡을 수 없소.”

풍백은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난처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음……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안하게 되었소.”

우검학은 정말 좋은 제안을 해 줬으나 그걸 거절해서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가 보이기도 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풍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면 다음에 더 좋은 자리에서 만나는 걸로…….”

“그 전에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우검학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뜬금없이 이야기가 있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가 싶었다.

하지만 풍백은 별다른 의도는 없다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무슨 이야긴지 모르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얘기입니다. 시간을 많이 뺏지 않을 테니 한번 들어 보시지요. 아마 관주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고 있으니 거절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청송무관에 유리한 협의를 거절까지 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알겠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오?”

“어느 상인의 이야기입니다.”

“상인?”

더욱 관심이 떨어졌다. 자신이 무인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기에, 당연히 무인에 관한 이야기라거나 강호에 관한 얘기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우검학이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풍백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이 상인은 상인답게 아주 욕심이 많았지요. 상인이 욕심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허허…… 글쎄 잘 모르겠소만.”

“조그만 점포 하나를 가진 상인은 욕심이 조금 적어도 됩니다. 과도하게 욕심이 많으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상인이 점포가 아니라 상단, 더 나아가 상방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욕심이 많아야 됩니다. 욕심이 많지 않은 상인은 다른 욕심이 많은 상인에게 망하게 되거든요.”

“그렇소?”

풍백의 말에 우검학은 습관적으로 추임새를 넣어 줬다.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는 얘기라서 집중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 관계라는 것이 이런 것이니까.

“이 상인 역시 다른 상인들처럼 욕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최고가 되기를 바랐지요. 하지만 상인의 상방이 크기는 해도 그가 있는 지역에는 그와 비슷한 규모를 가진 다른 상방이 있었습니다. 상인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상방을 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곤란해졌겠구려.”

“곤란할 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인의 상방이 밀릴 정도로 작은 규모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상인은 어떻게든 더 큰 상인이 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무슨 방법을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소.”

“간단합니다. 시선을 그가 살고 있는 지역 밖으로 돌렸습니다. 이 지역에서 규모를 키우려면 다른 상방과 출혈이 심한 경쟁을 해야 하지만, 지역 밖으로 나가서 상방의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면 경쟁 상방을 눌러 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으니까요.”

“허허…… 재미있구려.”

재미없었다. 이 얘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많이 무료해졌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얘기를 끝마쳐줬으면 하는 생각에 되물었다.

“혹시 그 상인이 적가상방을 말하는 것이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적가상방 역시 상산현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무려 사흘 거리에 있는 이곳에 와서 협의를 하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풍백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제가 알고 있는 상인에 대한 얘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겠소? 내가 진짜 바쁜 일이…….”

“여기서부터 이제 재미있어질 얘기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시지요.”

완곡히 이야기를 끝내려는 우검학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풍백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러곤 우검학이 또 막기 전에 얼른 얘기를 하려는 건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상인은 외부로 시선을 돌려 봤지만,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아무래도 규모가 제법 큰 현에 진출하거나 다른 성으로 진출을 해야 했는데, 사실 그런 규모의 현에는 이미 다른 상방이 존재할 테니까요.”

“으음…….”

“이런 경우에는 보통 그 지역의 유지나 강호 문파, 아니면 같은 지역의 표국과 함께 진출하고는 합니다. 표국의 입장에서는 장거리 운송이 제법 돈이 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더라도 상방과 함께 진출하면 적어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일거리가 끊길 일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구려.”

“하지만 이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인이 있는 지역에 있는 유일한 표국은 경쟁 상방과 혈연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표국은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표국이 가진 능력도 고려해야 했는데, 평범한 능력을 가진 표국과 함께 진출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죠.”

이쯤 되니 우검학은 슬슬 짜증이 일어났다. 풍백이 왜 자신에게 쓸데없이 상방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적당한 때에 이야기를 끊고 나가 봐야겠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풍백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와준 것인지, 이 상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그게 누구요?”

“상인이 주목한 그 사람은 같은 지역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요. 말을 타고 달리면 늦어도 이틀, 마차를 타면 사흘 정도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음…….”

“상인이 주목한 그 사람은 순박한 무인이었습니다. 무공도 대단했고, 열정도 있었으며, 명예를 알고,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호인(好人)이기도 했지요. 상인은 이 무인을 보고 손뼉을 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글쎄…… 좋은 사업 동반자를 찾았다고 좋아했겠구려.”

“아니오. 상인은 드디어 호구를 찾았다라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우검학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이야기일 뿐이고 자신에 대한 얘기도 아니지만, 상인이 무인을 상대로 호구라고 말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호구라…….”

“상인은 무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마치 자신에게 딱 맞춰서 누군가가 하늘에서 내려 보낸 것처럼 말입니다.”

“뭐가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오?”

“무인은 명문정파(名門正派) 출신으로 무공이 고강했습니다. 또한 그 말은 무인이 만약 표국을 만든다면 명문정파가 뒷배를 서 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 다른 지역에 진출하기 쉽다는 말이 되겠지요.”

명문정파와 표국이라는 말에 우검학이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무당파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적가상방 사람은 자신에게 표국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었다.

‘설마 제의를 거절한 나를 비웃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검학의 얼굴은 조금 떨떠름하게 변했다.

“거기다가 무인은 호인이라고 했듯이 사람간의 관계에 신경을 쓰다가 자신이 망하는 줄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특별할 것은 없지요. 금전 감각이 떨어지는 무인은 절강성 안에서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렇겠구려.”

“무인은 무관을 차렸는데, 무관에 수강하는 사람에게 적은 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무관에 수강했지만,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비싼 수련 도구를 제공하며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았습니다. 또한 무관에 수강한 사람이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사재(私財)를 털어서 돕기까지 했지요.”

우검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 확실해졌다. 지금 풍백이 말하는 무인은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건방진…….’

자신을 매도한다 생각한 우검학의 몸에서는 슬슬 위험한 기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풍백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상인에게는 아주아주 좋은 현상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무인이 금전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풍백은 기이한 눈빛으로 우검학을 보며 물었다.

“그거 아십니까? 극히 소수의 상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상인들은 적당한 조건에 계약을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자신의 이익을 가장 극대화시키기를 바라지요.”

“…….”

“상인이 생각했을 때는 지금 무인과 계약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무인이 더 절박할 때, 더 힘들 때 계약하는 것이 최고였지요. 그러면 적은 금액으로도 충분히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우검학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서 상인은 어떻게 했소?”

“상인은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힘들도록 만들면 어떨까?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무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도와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진 계책을 생각해 냅니다.”

지금 풍백이 무슨 의도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야기가 끝나고 자신의 입에서 절대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인은 자신의 지역에 있는 많은 유생(儒生)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유생들 중에는 회시(會試), 전시(殿試)에서 급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지주대인(知州大人) 역시 상인의 지원을 받았던 사람이었지요.”

“음…….”

“아시겠지만 지역을 다스리는 지부대인(知府大人)이나 지주대인, 지현대인은 임시직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인이 있는 지역을 다스리는 지부대인 역시 마찬가지로 곧 황궁으로 돌아갈 사람이었지요.”

“…….”

“그래서 상인은 지주대인과 간단한 계략을 짭니다. 아주 간단한 계략이었지요. 지주대인은 무인이 있는 지역에 현승(縣丞)을 부르게 됩니다. 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종오품 지주대인이 부르니 정팔품 현승은 당연히 달려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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