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0화
“끄에에에…….”
사내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목을 긁었다. 그의 목을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줄이 휘감고 있었다.
언뜻 봤을 때는 얇은 줄이라 손가락 하나로도 끊어질 것 같지만, 사실 이 얇은 줄은 바로 질기기로 천하에 소문이 자자한 천잠사(天蠶絲)로 만든 교살승(絞殺绳)이다. 무인이 아닌 이상 일반 성인 남성은 도검을 써도 자를 수 없는 기물(奇物)이다.
사내가 이렇게 목을 긁어 주면 나야 일을 하기 편하다. 눈치 빠른 놈은 교살승을 잡아당기는 걸 멈추게 하려고 공격하기도 하니까.
얇은 교살승이 사내의 목을 거의 절반이나 절단하며 들어가고 난 이후에야 사내는 축 늘어졌다.
휘릭!
사내의 목에 감긴 교살승을 벗겨 내서 챙기고 사내가 지키고 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비릿한 피 냄새였다.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의자에는 피범벅이 된 사내 하나가 결박되어 있었다.
의자에 결박되어 있던 사내, 비토(飛兎)가 나를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왜 왔어?”
“왜 왔겠수?”
“그걸 모르겠으니까 묻는 거야. 구하려고 온 거야, 아니면 헛소리 할까 봐 입 막으려고 온 거야?”
“글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직 한 마디도 흘린 것이 없으니까.”
“그건 좀 의외군. 문 앞에 경비가 한 명밖에 없어서 뭐라도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기는 했지. 개소리를 해 줬을 뿐이지. 아마 조금 있으면 신이 나서 달려올걸. 다시 놀자고 싱글벙글할 거다.”
의연한 비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평소에 보이던 비토의 성향을 떠올리면 잔뜩 긴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만큼 놀았으면 그만 놀 때도 된 것 같수. 그만 나가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조금 힘드네. 여기 애들은 별로 놀 줄을 모르더라. 판을 벌리기도 전에 판돈부터 빼앗고 시작하더라고.”
“……뭐?”
황급히 비토의 다리를 확인했다.
“으음…….”
조금은 우악스러운 내 손길에 비토가 낮은 신음성을 토했지만, 지금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토의 발목 관절 힘줄이 잘려 있는 것이 보였다.
비토는 경공(輕功)이 대단했었다. 오죽하면 신화 속 동물인 비토라고 그를 불렀겠는가?
그런데 그랬던 비토가 이제는…… 스스로 한 걸음도 걷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힘줄을 자른 것도 아니고 거의 도려 내듯이 잘려 있었으니까. 이 정도라면 그 어떤 의원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걷도록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비토의 손목도 확인했다. 역시 생각대로 손목의 힘줄 역시 잘려 있었다.
“빌어먹을…….”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지. 언제나 운이 좋을 수는 없잖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지금 보이고 있는 비토의 모습은 의연한 것이 아니다. 허탈하고 포기한 것이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일단 비토를 결박하고 있던 밧줄을 잘라 냈다. 그러자 비토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지듯이 의자에서 넘어지려고 했다.
내가 그를 얼른 받아 내자 비토가 말했다.
“의자에 좀 앉혀 주라.”
“뭐하려고? 시간 없으니까 할 얘기가 있으면 나가서 하도록 하쇼.”
“나갈 생각이 없으니까 앉혀 달라는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이 꼴로 나가서 뭐하겠냐? 나는 그냥 여기까지인 것 같다.”
“지랄한다. 일이 끝나면 고향에 가야 된다며? 이번 기회에 돌아가도록 해.”
평소에 비토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모든 일이 끝나면 고향에 간다고, 부인이 얼마나 예쁜 줄 아냐고, 그리고 떠나오기 전에 아들이 세 살이었으니 지금은 여덟 살이 됐을 거라고.
하지만 비토는 완강히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물론 억지로 둘러메고 나갈 수 있지만, 이렇게 완강히 거부하는 사내를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대체 왜 그래! 진짜 여기서 죽을 거야? 네 부인하고 아들이…….”
“마누라하고 아들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슬슬 가야지. 너무 늦게 가면 혼날 거야.”
“……뭐라고?”
비토는 놀란 내 얼굴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순진한 새끼……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믿었어?”
“……진짜야?”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부대에 있는 사람들, 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야겠군.”
“…….”
“세상에서 버림받거나, 갈 곳이 없거나, 쫓기거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이 오는 곳이 바로 우리 부대라는 말씀이야. 넌 어떻게 이 부대에 배속된 지 이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걸 몰랐냐?”
진짜 몰랐다.
사람들이 가족 얘기를 하거나 고향 얘기를 하고,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을 뿐.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그저 모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 줘. 세상이 내 모든 것을 빼앗고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시켰지만, 적어도 죽을 곳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거잖아.”
“비토…….”
“네가 좀 끝내 줘. 내가 팔이 이래서 혼자 할 수 없어서 그래.”
“…….”
“빨리 아들 좀 보러 가게 해 주라.”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뽑아서 비토의 심장에 가져다가 댔다.
“……남길 말?”
“더러운 세상…… 참 재미없게 살다 간다.”
최대한 고통 없이 갈 수 있도록 단번에 단검을 박았다.
* * *
“도련님!”
“헉! 뭐, 뭐야!”
“왕삼인데요.”
“……뭐?”
“구주현에 도착했습니다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마차 창문으로 구주현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얼마나 곤히 주무셨는지, 구주현에 벌써 들어왔는데도 일어나지 않으셔서 깨웠습니다. 이제 곧 객잔에 도착한다고 했거든요.”
“……그래.”
풍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꿈이었구나.’
없었던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는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풍백 혼자만이 알고 있는 과거였다.
이전부터 간혹 지금처럼 과거에 있었던 일은 꿈으로 꾸고는 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대부분이 그리 즐겁지 않은 꿈이었다.
이번에 꾼 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꿈이었다.
물론 동료가 직접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지만, 그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고 있었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방금 전에 꿨던 꿈 때문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구주현의 모습에서 이상하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직 꿈을 꾸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다.
풍백이 잠에서 깬 이후로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자 왕삼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가 아침마다 그런 격한 운동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상방에 돌아가서 다시 운동하면 될 텐데,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하기 전까지 운동하니까 이렇게 마차에서 기절한 것처럼 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몸 상한다고요.”
구주현까지 오는 동안,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난 풍백은 적가상방에서 하던 단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적가상방에 있을 때처럼 하루 종일 단련을 계속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아침에는 단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새벽마다 단련을 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상황을 하나하나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왕삼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할 일은 해야 했다.
이러고 있는 사이, 풍백이 탄 마차는 구주현에 있는 화려하고 규모가 큰 객잔 중 하나에 멈췄다.
풍백이 마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먼저 마부석에 앉아 있던 호위무사가 먼저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 객잔에서 소란이 벌어졌던 이후로 호위무사는 이전과 달리 자신의 할 일은 철저히 지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풍백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전과 달리 공손했다. 아무래도 객잔에서 보여 줬던 풍백의 모습이 꽤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풍백이 객잔으로 들어가니 호위무사는 벌써 점소이와 얘기를 하고 객잔 후원에 있는 별채를 빌려 놓은 상태였다.
풍백은 호위무사가 빌린 별채로 바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별채를 빌렸기에 굳이 객잔에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점소이에게 얘기를 하면 식사를 별채로 가져올 테니까 말이다.
풍백과 함께 식사를 마친 왕삼이 나갈 채비를 하며 물었다.
“그러면 청송무관에 가서 방문 약속을 잡고 오겠습니다. 약속을 어떻게 잡을까요?”
“시간은 적당히 잡도록 하고 내일 바로 볼 수 있으면 좋겠지.”
“내일 바로요? 어…… 그냥 이렇게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그럼? 그냥 들어가지 춤이라도 추면서 들어갈까?”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대충 얘기는 알고 있다고요.”
적가상방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청송무관과 협의가 완전히 결렬됐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왕삼은 자세한 상황은 몰라도 대충 돌아가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풍백의 수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적가상방에서 출발하기 전에 풍백이 진덕양과 하는 얘기를 옆에서 주워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청송무관이 왜 협의를 거절했는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그런데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냐고요. 저는 도련님이 여기서 뭐라도 알아보고 청송무관에 들어가실 줄 알았는데…….”
왕삼이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풍백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협의를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그런 눈이었다.
풍백은 그런 왕삼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네가 그런 생각도 할 줄 알았냐?”
“저도 눈도 있고, 귀도 있고, 머리통도 있거든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죠!”
“괜한 걱정하지 말고 약속이나 잘 잡아 와. 그리고 너 돌아와도 나 없을 수 있다.”
“네? 어디 가시려고요? 내일 약속을 잡으라고 하셨으니까 절대로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술을 마실까 봐 왕삼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너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네가 방금 전에 뭘 알아보지 않냐고 했잖아. 아무리 내가 술을 좋아해도 내일 협의가 있는데 퍼마시고 올 것 같아?”
“네, 그럴 것 같은데요.”
“이놈이…….”
“전에도 그랬잖아요. 그…… 누구더라? 아무튼 혼인 상대를 만나기로 했었는데, 전날 밤새 술 드시고 와서 행패를 부렸었잖아요.”
풍백은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 소소한 패악질은 그저 풍백에게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수준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럼요! 그때 왔었던 아가씨가 사색이 돼서 맨발로 도망치는데 참 가관이었죠.”
“이제 이런 과거는 그만 잊기로 하자. 요즘 내가 언제 술 마시는 것 봤어?”
“못 봤죠. 근데 원래 사람이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디면 술이 땡기고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 먹어, 안 마셔, 새끼야! 빨리 약속이나 잡으러 가 봐! 네 말대로 이것저것 좀 알아보러 나갈 거니까.”
“정말 술 드시면 안 되는 겁니다? 약속하신 거예요?”
“빨리 가!”
왕삼은 마지막까지 주위를 준 후에야 별채를 나서 청송무관으로 향했다.
‘이전보다 더 난리구만. 누가 보면 가족인 줄 알겠다.’
과거에 모두가 풍백을 경원시하더라도 왕삼은 항상 풍백을 시중 들며 그의 안위를 걱정해 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살갑게 나오지는 않았었다. 아무래도 과거와 달리 풍백이 손찌검을 하거나 패악질을 부리지 않으니 더 친밀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모든 적가상방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하더라도, 적어도 두 명은 내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았다. 왕삼과 진덕양 총관 말이다.
“나가 볼 생각인데 같이 갈 거요?”
“호위를 해야 되니까 같이 가야지요.”
공손하게 대답하는 호위무사의 태도에 풍백은 슬쩍 미소를 짓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호위무사는 별다른 말없이 그런 풍백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