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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9화 (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9화

“말했듯이 풍백이라고 합니다. 상산현에 있는 적가상방이 제가 몸을 담고 있는 곳이고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해 본 유금성이 다시 풍백을 바라봤다.

“들어 보지 못한 곳이다.”

“그럴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산현에서도 아득바득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니 외지인인 대협께서 들어 봤을 리가 없는 게 당연하지요.”

“겨우 현에서 활동하는 상방의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생각보다 정보력이 정말 뛰어나구나?”

어처구니가 없는 풍백의 대답에 유금성이 눈빛이 조금 더 차가워졌다.

“나랑 농담 따먹기를 하자는 말은 아니겠지?”

“하하! 정보에 밝은 것에 대해 설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저 열심히 발품 팔고 다니면 이런저런 소문에 밝아지는 것이지요.”

“내가 강호에 나온 것은 이제 세 달쯤 되었다. 절강성에 들어온 것도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 그리고 상호에 나온 이후로 내 이름을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정말 끝내주게 정보에 밝은 우리 적가상방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유금성이 식탁에 한 손을 올리더니 슬쩍 눌렀다.

푸스스스!

묘한 소리와 함께 식탁에 유금성의 손바닥이 파고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두부에 손이 파고 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대단한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이구나.’

과거의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흉내를 낼 수 없는 상승의 무공이었다. 어지간한 고수는 지금 유금성이 보여 준 한 수를 따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말이다.

유금성이 식탁에서 손을 떼자 선명히 남아 있는 손자국이 보였다. 그러면서 유금성이 풍백에게 말했다.

“네 몸뚱이가 이 식탁보다 단단하다 생각하면 계속 그렇게 말을 돌려도 괜찮다.”

섬뜩한 말이었다. 사람 몸이 식탁보다 단단할 리는 없다. 그러니 유금성의 손이 풍백의 몸에 닿는다면 엄청나게 흉측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가만히 유금성이 남긴 손자국을 보던 풍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이…… 별로 재미가 없군요. 다른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고 싶지 않군. 내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대가를 먼저 치르도록 만들어야지.”

“그러면 다른 얘기로 넘어가는 조건으로 호의의 선물 하나를 전해 주도록 하지요.”

“선물?”

“이 객잔에 대협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객잔의 분위기가 서늘하게 바뀌었다. 이미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유금성과 풍백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니 풍백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풍백의 말에도 유금성의 얼굴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본 풍백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었군요.”

“아홉 놈이지.”

이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보부상과 중년 부부, 노인과 손녀, 상인과 호위무사가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르르륵!

“이놈!”

“들켰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아홉 명의 고수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유금성은 물론이고 풍백마저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유금성은 풍백에게 차가운 눈빛으로 담담히 말했다.

“무의미한 선물이었으니, 내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냥 죽어라.”

“호의를 가지고 다가왔을 수도 있는데 죽이겠다는 말씀인가요?”

“호의를 가지고 다가왔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다가왔는지 알 수 없으니까. 죽은 자는 나를 해코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는 법이지.”

“하하하…….”

자신들에게 손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당황한 살수(殺手)들이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 그냥 이대로 공격하자는 신호였다.

그때 풍백이 유금성에게 말했다.

“그러면 일단 이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뭐를 말이지?”

“유설화…… 라는 이름부터 말이지요.”

유금성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풍백은 손을 들어 자신의 찻잔을 덮었다. 마치 무언가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살수들이 움직인 것은 바로 이때였다.

유금성의 뒤에서 조용히 접근하고 있던 중년 부부가 간격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팔을 뻗었다. 그러자 그들의 소매에서 파란색 단검이 튀어나와 쥐어졌다. 파란색으로 보이는 단검을 보니 특수처리가 된 독검(毒劍)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반걸음도 걷기 전에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치아앙!

서거걱!

다가오던 중년 부부의 머리가 동시에 잘려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도 몸뚱이는 죽었다는 걸 모르는지 한 걸음 더 걷다가 쓰러졌다.

아직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는 유금성의 손에는 언제 뽑았는지 허리에 매달려 있던 도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살수들의 얼굴이 창백해진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쳐…… 쳐라!”

“으아아!”

“죽어!”

동시에 달려든 살수들이 유금성과 풍백이 앉은 식탁으로 몰려들었다. 떨어진 위치에서 그걸 본 왕삼이 기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 도련님!”

하지만 왕삼이 풍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건 호위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풍백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달려드는 살수 중 한 명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으니까.

보부상 세 명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유금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 세 명이 등에 지고 있던 등짐에 손을 집어넣으니 방금 전 죽은 중년 부부의 손에 쥐어졌던 것과 같은 독검이 들려 나왔다.

상인과 호위무사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유금성을 덮치고 있었고, 노인과 손녀 중 손녀는 바닥을 뒹굴며 독검으로 유금성의 다리를 베어 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노인은 손에 들린 지팡이를 비틀어 검을 뽑더니…… 그대로 풍백의 목을 잘라 갔다.

왜 노인이 풍백을 노린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풍백은 죽을 거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풍백은 태연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풍백은 어차피 노인의 검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부터 몸을 만들고 있던 풍백이 어떻게 무인의 검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을 들었으니 내가 죽도록 놔두지 않겠지.’

도파(刀把, 칼 손잡이)를 쥐고 있는 유금성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도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쉬칵!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독검을 휘두르려던 상인과 호위무사가 정확히 세로로 갈라지며 두 쪽으로 나뉘어 떨어졌다.

식탁 아래에서 지면을 구르며 유금성의 발을 향해 독검을 휘두르던 소녀, 아니 소녀처럼 분장을 한 꼽추 노인의 독검은 가볍게 발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을 뒹굴던 꼽추 노인의 머리통을 밟아 버렸다.

퍼석!

유금성은 풍백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는 노인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도를 집어 던졌다. 그러자 유금성이 던진 도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빙글빙글 돌며 노인에게 날아갔다.

노인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도를 보고 경악을 하더니 황급히 풍백을 향해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여 도를 막아갔다.

팅!

서걱!

가벼운 소리와 함께 너무나 손쉽게 노인의 손에 들린 검이 잘려 나가고, 도는 그대로 노인의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보부상 세 사람의 눈동자에 희열이 차올랐다.

이제 유금성의 손에는 아무런 병장기도 없었다. 또한 바로 지척에 도착한 그들이었기에 손만 내밀면 유금성의 몸에 독검을 박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어라!”

보부상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다른 두 명은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휭! 휭! 휭! 휭!

그리고 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

성둥! 성둥! 성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이 기울어진다. 기울어지는 세상 속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가던 도가 유금성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친…… 이기어도(以氣馭刀)…….’

보부상 세 명의 의식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순간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왕삼의 눈에는 한순간에 아홉 명의 사람이 머리가 잘리고 몸이 통째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우웨엑!”

그리고 왕삼은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

유금성과 풍백이 앉아 있는 곳은 온통 피와 내장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앉아 있는 풍백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상황이면서 이상하게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러곤 찻잔을 덮었던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찻잔을 덮기를 잘했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풍백의 머릿속에는 방금 유금성이 보여 준 한 수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이기어도는 아니지. 투도법(投刀法)에 있는 회식(回式)이었어.’

투도법은 간단히 말하면 도를 던지는 방법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도는 당연히 단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방금 유금성이 보여 준 것처럼 진짜 도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특히 그냥 투도를 한 것도 아니었다. 도에 담긴 진기와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노인은 물론이고 부보상 세 명의 머리까지 날리고도 힘이 남아서 유금성의 손에 다시 들어갔다.

이 정도면 투도법에 관해서는 경지(境地)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그걸 단도도 아니고 일반적인 도를 가지고 펼쳤다.

‘듣던 대로 무시무시한 실력이군. 나에게는 아주 다행이게도.’

풍백은 슬쩍 웃으며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유금성은 태연히 차를 마시고 있는 풍백을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왕삼이 보이는 반응이 정상이다. 상방 사람이라는 풍백이 시체들 사이에서 이렇게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게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이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막말로 풍백이 미쳐 버렸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마지막에 했던 말에 대해 듣기만 하면 된다.

“그 이름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대체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끝내주게 정보를 잘 모은다고 했던가?”

“비슷하지만 맥락은 같군요.”

지금까지 유금성이 풍백을 대하던 방식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과 태도가 달랐다.

가만히 차를 마시는 풍백을 바라보던 유금성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것이 뭐냐?”

“이제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군요.”

“먼저 말하자면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차하면 그냥 네놈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잘라 가며 얘기를 들어도 되는 거니까.”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담겨 있는 뜻은 섬뜩해서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풍백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어려운 부탁이니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배짱이 좋구나. 어디 말해 봐라.”

풍백의 예리한 눈이 유금성의 무감정한 눈빛과 부딪치며 치열히 빛났다.

마시 기싸움을 하듯 서로를 노려보던 풍백이 말했다.

“내년에 적가상방을 한 번 방문하여 열흘만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열흘 동안 네가 말하는 것을 들어 달라는 것인가?”

“아닌데요. 말 그대로 딱 열흘만 적가상방에 머물러 주시면 됩니다.”

유금성의 눈썹 끝이 하늘로 슬쩍 올라갔다.

“이해할 수 없군. 정말 네가 있는 적가상방? 그곳에서 열흘 동안 머물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간 동안 최고의 음식과 숙소를 약속드릴 테니까요. 그냥 몸만 오시면 됩니다.”

“……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유금성은 당연히 자신의 무공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해 달라거나, 아니면 적가상방에 들어와 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겨우 열흘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그냥 방문만 해 달라니…… 풍백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풍백은 그런 유금성을 보며 웃었다.

“좀 이상합니까?”

“……내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아는 것을 보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유설화라는 이름의 가치는 물론이고, 이전 시간대의 유금성이 무엇을 했었는지, 그에게 병장기를 겨눈 자들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의 최후가 어땠는지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겨우 네가 살고 있다는 적가상방에 열흘만 방문해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지? 설마 함정이라도 파고 기다릴 생각인 건가?”

생각지도 못한 유금성의 말에 풍백은 실소를 흘렸다.

“생각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군요.”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니까.”

유금성은 모른다.

풍백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지금 말한 열흘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말한 열흘이라는 시간이 갖는 가치는 대협께서 생각하는 가치와 너무 다릅니다.”

“가치가 다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저에게 유설화라는 이름이 대협께는 억만금의 가치가 있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겁니다.”

유금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너무나 명쾌한 답변이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열흘 동안 방문하는 데 그 정도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렇군. 좋아, 그러면 약속하지. 일 년 후 네가 원하는 날짜에 맞춰 적가상방을 방문하겠다. 그리고 정확히 열흘을 머물도록 하지. 어떻게 계약서라도 써야 되는 건가?”

풍백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약속을 해 주신다고 하니 믿겠습니다.”

“나를 어떻게 믿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예정입니까?”

“그건 아니지.”

“대협께서 약속을 지키실 예정이고, 저는 그런 대협을 믿습니다. 그런데 굳이 계약서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계약서를 쓴다고 저희가 대협을 구속할 수 있을까요?”

유금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풍백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유금성이 머리를 비우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얘기를 해 줘야지?”

“알겠습니다.”

풍백은 조용히 유금성만 들을 수 있도록 짧게 몇 마디를 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들은 유금성은 눈에서 이채를 발하며 물었다.

“확실한 건가?”

“이미 제가 어디에 사는 누군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약 틀리다면 언제든지 방문을 해서 대가를 받아 가셔도 됩니다.”

“그 말…… 기억하겠다.”

마지막까지 협박과 같은 말을 남기는 유금성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금성은 그대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풍백은 그런 유금성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씨익 웃었다.

‘이걸로 적발마도(赤髮魔刀)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아니, 이제 적발마도라는 이름은 없어질지도 모르겠군?’

적발마도 유금성.

과거 호남성에서 유명했던 절정 고수였던 그는 정사지간(正邪之間)으로 분류가 되었다. 사파에게 자비 없는 잔혹한 손속을 보였는데, 그렇다고 정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정사지간으로 분류가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유금성에 대한 세간의 평은 정사지간보다는 협객(俠客)에 더 가까운 평이 많았다. 사람이 과묵하고 손속이 잔인하지만, 스스로 입 밖에 꺼낸 말을 지키고 부조리한 일은 보고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원래는 유설화를 찾으러 다니며 사파와 싸우고 정파와 각을 세웠던 유금성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풍백이 알려 준 정보 때문에 호남 지방을 돌아다닐 일이 없어질 테니까.

아무튼 이로써 절정 고수 하나를 섭외하게 되었으니 시작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 년 후에 방문해서 보호를 해 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전과 같은 습격이 일어난다면 절대로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가만히 있을 리가 절대로 없지.’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언제 다가왔는지 왕삼이 풍백의 뒤에서 허리부여잡고 오열했다.

“으허허헝! 도련님 괜찮습니까요…….”

“왜 달라붙고 난리야. 어서 떨어져! 쉭! 쉭!”

마치 달라 붙는 강아지를 쫓아내듯이 바람 소리를 내며 왕삼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왕삼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다! 죽을 지도 몰랐다고요! 도련님이 돌아가시면 저는 대체 어쩌라고요!”

“야야! 오해받을 만한 말을 그만하지? 어쩌기는 뭘 어째?”

“도련님이 돌아가시면 무슨 낯짝으로 상방에 돌아가냐는 말이었는데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왕삼을 밀어내고 있는 풍백의 모습을 호위무사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그 망나니 도련님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듣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직접 풍백이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니는 걸 직접 본 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풍백을 무시하던 모습을 보였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너무 의외였다.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들이 습격의 표적이 아니라는 것도 먼저 알아냈고, 어마어마한 고수에게 당당히 다가가 무언가 약속을 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이렇게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의연한 모습은…… 정말 이전 자신이 봤던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여기서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힘들겠지만 그냥 떠나야 할 것 같소만.”

동감이었다.

무려 아홉 명이 죽어 나간 객잔이었다. 객잔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점소이는 이미 넋이 절반쯤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저들이 제정신이라고 하더라도 찝찝해서 어떻게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겠는가?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위무사는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달라진 호위무사의 태도에 이채를 발한 풍백이지만, 굳이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새끼가! 떨어지라고 했지!”

“으허엉! 도련님!”

“셋 센다! 하나! 둘! 셋!”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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