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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화 (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화

“지금 저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나는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다 처먹어. 비싼 음식이니까 남기면 죽는다.”

왕삼은 이제 음식이 아니라 독을 보는 눈으로 서시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의 희망이라도 얻고 싶은 건지 입을 열었다.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죠? 설마 독을 음식으로 내놓을 리가…….”

“항주에서도 전문점이 아니면 먹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서시설이야. 그런데 이런 허름한 객잔에서 나오는 서시설이라고? 난 목숨 가지고 도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너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네.”

사실이었다. 서시설에 대해 정통하지 못한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고 목숨을 잃는 사람이 이곳 절강성에서 매년 나오기도 했다.

“아닙니다! 저도 그런 도박은…….”

“먹어. 네가 시킨 음식이야. 그것도 비싼 음식. 먹고 네 운이 얼마나 좋은지 맡겨 보자. 하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걸 보면 넌 운이 좋은 것 같으니, 아마 서시설을 먹어도 죽지 않을 거야. 자! 입 벌려, 내가 먹여 줄게.”

“으헉!”

왕삼은 풍백이 서시설 하나를 집어서 내밀자 기겁을 하며 상체를 뒤로 뺐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왕삼은 결국 풍백에게 매달렸고, 풍백은 그런 왕삼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물론 풍백 역시 왕삼에게 서시설을 강제로 먹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뭔가 하는 짓이 얄미워서 장난을 쳤을 뿐이다. 서시설이 먹으면 위험한 음식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풍백과 왕삼은 만두와 돼지고기 볶음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돼지고기 볶음은 제법 맛이 괜찮았고, 양도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해서 양이 모자랄 일은 없었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점소이가 가져다준 싸구려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이들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사이 객잔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처음 들어온 사람은 보부상인 듯 등짐을 잔뜩 지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객잔을 둘러보다가 안으로 들어와 빈자리 하나에 앉았다.

풍백은 이들이 객잔으로 들어오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그들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두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여행객처럼 보이는 중년의 부부였다. 그들 역시 안으로 들어와 한편에 있는 식탁에 앉았다.

이번에 들어온 중년 부부를 본 풍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곤 다시 그들이 앉는 자리를 살펴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다시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노인 하나가 손녀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객잔으로 들어왔다.

풍백의 눈이 반짝이며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들이 앉는 것을 보고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차를 식혀 마시는 것에 집중했다.

이후로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들어왔지만, 풍백은 더 이상 객잔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던 호위무사가 풍백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다가와 빈자리에 앉았다.

그걸 본 왕삼이 사람 좋게 웃으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가져다 대고 있는 호위무사를 보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

호위무사는 젓가락으로 찻잔에 담긴 찻물을 찍어 식탁에 글자를 적었다.

- 적. 무인.

호위무사가 적은 글을 보고 왕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어설프게 주변을 둘러본다든지, 아니면 도망가려고 하는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왕삼과 달리 풍백은 묘한 표정으로 호위무사를 바라봤다.

‘제법 눈썰미가 있기는 하네.’

강력한 내공을 가진 내가고수(內家高手)는 신체적으로 특징이 보이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태양혈이 불룩 솟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역사가 유구한 문파에서는 이런 특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는 내공심법도 많았고, 일정 경지를 넘어서면 이렇게 튀어나왔던 태양혈이 다시 가라앉기도 한다.

즉, 누군가를 보며 무공을 배운 사람인지 아니면 무공을 모르는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은 호위무사처럼 무공을 배운 사람도 마찬가지다.

경지가 높은 무인은 상대를 보기만 하더라도 무인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호위무사는 그런 수준의 무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무공을 익힌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찾는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지공(指功)을 전문적으로 익힌 사람은 유달리 손가락이 발달되게 되어 있다. 꼭 지공과 같은 무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검법이나 도법, 심지어 각법까지 모두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신체적인 특징을 찾지 못했다면 상대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대부분의 무인은 각자 신체적인 흐름이 있다. 그래서 걷는 것 하나만 제대로 본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무인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호위무사는 이런 특징으로 상대가 무공이 있는지 확인을 했을 것이고, 들어온 사람들 중 무공을 익힌 사람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렇게 외딴곳에 자신들이 들어온 이후 갑자기 사람이 몰린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무인이 높은 비율로 섞여 있다?

현재 자신들이 누군가와 적대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몇 명이나 알아봤을까? 저들 모두 무인이라는 사실까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그랬다.

객잔에 들어온 보부상부터 마지막에 들어온 상인까지 모두 무인이었다.

호위무사는 강호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가지 꼼수와 같은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풍백이 무인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려 서른두 가지였다.

과거의 풍백이 살아남으려면 배울 수밖에 없는 눈썰미였다. 그리고 실제로 눈썰미가 좋지 않았던 동료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었다.

호위무사는 다시 젓가락으로 식탁에 글자를 적었다.

- 식탁을 던지면.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은밀하게 객잔 입구를 가리켰다. 대충 의미를 보면 식탁을 던지자마자 문 쪽으로 도망치라는 말이었다. 마침 객잔 입구에 앉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역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만약 저들이 모두 무인들이고, 심지어 무공 수위마저 그리 떨어지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다면 이런 자살돌격 같은 계획은 짜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삼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풍백이 나지막하게 혀를 차고는 호위무사가 식탁에 적은 글씨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버렸다. 그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하시오. 우리를 노리고 온 사람들이 아니니까.”

호위무사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지고,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풍백의 목소리를 들었나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풍백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호위무사와 왕삼 정도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니 누구도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도, 도련님!”

호위무사는 당황해서 풍백을 불렀지만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차를 들어 입을 축였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추적하거나, 근거리에서 하는 말을 훔쳐 듣거나, 은밀히 암살하는 등의 일을 하려면 각자의 방법이 있다.

일단 객잔에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는 저들이 누군가를 추적하거나 어떤 말을 훔쳐 들으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걸 말한다. 암살 역시 아닐 것이다. 암살을 하려면 저렇게 많은 인원을 끌고 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면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다수의 인원으로 소수의 인원을 죽이려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를 확실히 죽이려고 한다면, 대상이 도망칠 수 없도록 퇴로를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구나 출구, 또는 창문을 막아야 했다.

객잔의 입구는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상인과 호위무사가, 창문은 노인과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다음에는 일제히 덮치기 좋은 자리가 중요했다. 대상이 벽을 등지고 싸운다면 다수의 인원이라는 장점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대상이 오는 경로를 알고 있다면 미리 장소를 선점해서 상대가 자연스럽게 포위 가운데 들어오도록 자리를 비워 두는 것도 필요했다.

지금 객잔의 상태를 보면 정확하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저들이 습격하기 좋은 자리였고 말이다.

저들은 이미 작업을 끝내 놨다.

이 상황에서 저들이 벌이려는 일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빠져나가려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저들이 노리는 대상이 객잔에 들어와 준비된 자리에 앉으면, 그 이후 풍백과 일행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면 된다. 저들이 목표가 원하는 자리에 앉는 것만 끝나면 풍백 일행이 이 자리에 있든지, 아니면 그대로 나가든지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말 그대로 이건 풍백 일행이 목표가 아니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저들이 풍백 일행을 관찰하는 걸 보면 굳이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풍백은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저들 하나하나가 모두 일류 고수에 육박할 것 같은데…… 대체 누구를 죽이려고 하기에 저런 고수들을 아홉 명이나 동원한 걸까?’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객잔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객잔에 있던 일류 고수들의 눈빛은 서늘하게 변해 갔다.

풍백 역시 대수롭지 않은 눈으로 객잔에 들어온 사람을 바라봤다가 저도 모르게 눈이 점점 커져 갔다.

여러 가지로 눈에 띄는 사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사내였다.

나이는 대략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외모는 남자답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는 아니었고, 입고 있는 옷도 평범한 경장이었다. 허리에 한 자루 도가 매달려 있었으나 그것 역시 무인들이 일반적으로 들고 다니는 도와 비슷해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눈에 띄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내의 머리카락이었다.

여인처럼 긴 그의 머리카락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풍백은 그런 사내를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저 사내가 누군지 풍백은 알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직접 마주쳤던 적은 없었지만, 과거 이 사내의 이야기는 강호에서 유명했다. 감숙성(甘肅省)과 새외를 오가던 풍백마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풍백이 알고 있는 기억에 따르면 저 사내는 분명 호남성(湖南省) 일대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절강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저 사내가 이름을 알리는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사내가 절강성에서 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일이 없었다.

‘호남성에 자리를 잡기 전에 절강성 일대를 지나갔던 일이 있었던 건가?’

저 사내가 준비된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객잔을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저 사내를 만난 것은 풍백에게는 기회였다.

객잔에 들어온 사내는 유일하게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점소이에게 간단한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는 동안 먼저 들어왔던 보부상, 중년 부부, 노인과 소녀, 상인과 호위무사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군.’

풍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련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호위무사의 시선을 무시하고 풍백은 태연한 걸음으로 사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이쪽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은밀히 풍백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풍백이 왜 자신들의 목표에 접근하는지 경계의 시선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풍백은 사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가더니 묻지도 않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사내의 무심한 듯한 시선이 풍백에게 박혔다. 그 시선에 풍백은 환하게 웃으며 포권을 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지?”

“사해(四海)는 동도(同徒)라고 하던데, 인사나 할까 싶어서 왔습니다만.”

“거절하도록 하지.”

무표정한 표정에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무심한 듯한 시선.

어지간한 사람은 별로 다가서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세 가지 요건이다. 특히 이런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내의 허리에 병기가 매달려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풍백은 이런 것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더욱 미소를 짙게 지었다.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저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일 뿐이데 말입니다.”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라고 하더군.”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온 사람은 선하지 않다.

대충 의역을 하면 가만히 있는데 도와주려고 오는 사람은 없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사람일 것이라는 말이다.

즉, 사내는 풍백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어떤 의도로 접근했는지 몰라도 관심이 없으니 꺼지라는.

풍백은 웃으며 말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형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온 것도 맞으니까요.”

“그러면 그냥 돌아가면 되겠군.”

“하지만 얘기를 들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형장에게 절대로 손해는 아닐 것이니까 말입니다.”

“관심이 없다고 얘기를 했는데, 꽤 귀찮게 굴고 있…….”

“형장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좀 이상하군요. 그냥 이름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유금성 대협(大俠)?”

사내, 유금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풍백을 바라보는 눈빛은 서늘하게 변해 갔다.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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