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7화
상산현에서 구주현으로 향하는 관도를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당연히 적가상방에서 출발한 풍백이 타고 있었다.
구주현까지 가는 길은 마차를 타고 이틀에서 사흘이 걸리는 거리였다. 일반적으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몸은 편하지만 무료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풍백은 그런 무료함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딱히 몸을 움직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밖을 보고 있는 풍백의 머릿속은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청송무관과 협의가 원활히 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미래를 그리는 중이었다.
관도를 달리는 마차 위로 중천까지 떠올랐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점차 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모르는 길을 달리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는 구주현까지 가는 길을 제법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가면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객잔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을이 짙게 깔렸다가 점차 어두워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는 마부의 계획대로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가 객잔에 멈추자 풍백보다 먼저 한 사람이 내렸다.
“으아아! 드디어 멈췄다!”
괴성을 지르며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왕삼이었다. 풍백의 시중을 들기 위해 쫓아온 것이었는데, 마차에서 보낸 무료한 시간에 녹초가 된 듯한 모양이었다.
이어서 마차에서 내린 풍백은 그런 왕삼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겨우 하루 마차를 타고 왔을 뿐이다. 아직 이틀은 더 가야 되거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칠 것 같다고요. 아아아…… 괜히 따라온다고 했어!”
“나는 굳이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었다.”
실제로 풍백은 왕삼에게 적가상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었다. 굳이 따라온다고 했던 것은 왕삼이었다.
“이렇게 지겨울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말입니다…….”
“편하게 왔다고 좋아해야지. 걸어서 구주현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마차를 타고 있는 시간이 행복할 거다.”
“헤헤…… 그랬으면 아마 쫓아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실없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왕삼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왕삼이 쫓아온 이유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나 숙부님이 내가 술 먹는지 감시하라고 보낸 것이겠지.’
감시자로 영 부실해 보이는 왕삼을 보낸 것이 실수인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할 수밖에.
“먼저 들어가서 식사를 하시지요.”
마부석에서 내린 무사 하나가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풍백을 호위하기 위해서 적가상방에서 붙여 준 호위무사였다.
현재 산적은 적가상방의 상행을 노리고 일을 벌이는 중이었다. 물론 상행이 아닌 마차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적가상방에서 일하는 호위무사 중 하나로 적가상방에 있는 무사들 중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기는 하나, 그래 봐야 이류무사 수준에 불과했다. 만약 정말로 산적이 나타난다면 호위무사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같이 들어가지 않을 겁니까?”
“마부가 마차를 정리한 이후에 같이 들어갈 겁니다.”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
상방에서 풍백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술을 먹고 망나니짓을 일삼았던 것은 분명 사실이고, 그 외에도 풍백이 지금껏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풍백 앞에 있는 호위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 따라온 것이 불만이라는 것처럼 얼굴에 불만이 잔뜩 깔려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은 하면서 불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다.
원래 호위무사를 한다면 호위를 하는 대상이 객잔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위험한 것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호위무사는 풍백이 먼저 객잔에 들어가기를 권하고 있었다. 어쩌면 귀찮기도 하고 풍백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해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풍백은 평범하게 세상 물정 모르는 상방의 도련님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거면 그냥 상방으로 돌아가라고 할까?’
어차피 산적이 나와도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었고, 소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풍백 스스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왕삼이 서둘러 말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방이랑 자리를 잡겠습니다!”
객잔으로 후다닥 들어가는 왕삼의 뒷모습을 본 풍백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상대는 이류무사라고 하더라도 무인은 무인이다. 괜한 분란을 만들어 봤자 풍백 자신에게만 손해였다.
“알겠소.”
존대에서 반존대로 말투를 바꾼 풍백이 객잔으로 먼저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그냥 호위무사에 대해서 신경 끄고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객잔의 내부는 한산했다. 작은 객잔이었는데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겨우 한 식탁만 보부상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비어 있는 식탁들이었다.
풍백이 안쪽에 있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이 먼저 들어왔던 왕삼은 주문을 마치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방은 잡았고, 식사도 주문하고 왔습니다.”
“알아서 시켰다고?”
“흐흐흐…… 드디어 처음으로 상산현을 떠나서 먹는 제대로 된 첫 식사인데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다 알아서 시켰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전의 풍백은 음식에 대해 꽤 까다로웠다. 아주 피곤할 정도는 아니고, 어지간한 가문의 도련님이라면 기본적으로 갖는 수준의 까다로움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미래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대에서 온갖 음식을 다 먹어 봤었다. 여기서 말하는 온갖 음식은 당연히……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음식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수행할 임무를 위해서 참고 목구멍 너머로 넘겨야 했었다.
문득 떠오른 과거 기억에 기분이 씁쓸해지려고 할 때, 호위무사와 마부가 객잔으로 들어오더니 슬쩍 풍백이 앉은 자리를 확인하고는 대충 멀찍이 떨어진 다른 자리에 앉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호위무사는 호위를 하려는 대상 인근에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호위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자신이 어떤 평을 받고 있고, 사람들에게 경원시당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호위무사가 호위를 하려고 따라와서 저렇게 내놓고 무시하는 듯이 행동하는 걸 보고 있자니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스스로 생각하던 것보다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풍백이 호위무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 왕삼이 눈치챘는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처음 상산현을 떠나 본 느낌이 어떠십니까? 저는 아주 그냥 끝내주게 기분이 좋은데요. 처음 상산현에서 나왔을 느낌이 캬아!”
“끝내주기는 뭐가 끝내줘? 지겨워서 미칠 것 같았다며?”
“어? 아…… 저, 저는 상산현에서 처음 나오자마자 느낀 걸 말하는 거거든요! 아무튼 기분 엄청 좋았다고요! 도련님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전혀.”
“에이! 거짓말하지 마시고 솔직히 말씀해 보시지요? 좋았죠? 좋았잖아요!”
어떻게든 호위무사에게서 시선을 돌리려는 왕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맥이 풀렸다. 적어도 자신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왕삼은 확실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풍백이 왕삼과 시답지 않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만두하고 돼지고기 볶음까지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데…… 이건 뭐냐?”
풍백이 가르키는 것은 조개를 각종 야채와 함께 볶은 요리였다.
“오오! 저도 처음 보는 요리입니다! 이게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서시설(西施舌)이다.”
“아! 맞다! 그거였습니…… 어라? 이게 어떤 요린지 도련님은 알고 있었습니까?”
서시설은 상산현이 위치하고 있는 절강성(浙江省)의 성도(省都)인 항주(杭州)의 유명 요리였다.
왕삼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이렇게 상산현 밖으로 나온 것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상산현에서 먹어 볼 수 없는 현지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당연하…….”
“여기가 항주냐? 서시설은 항주에서 유명한 요리라는 건 알고 있는 거야? 만약 알고 시킨 거라면 애초에 항주는 절강성 북쪽에 있고, 우리가 있는 곳은 남쪽인데 왜 이걸 여기서 먹어야 하는 거지?”
“……그런 건가요?”
대답하는 꼴을 보니 서시설이 뭔지도 모르고 대충 시킨 것이 분명했다.
왕삼은 희희낙락하며 젓가락을 들고 가장 먼저 서시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왕삼의 젓가락이 닿기 전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움찔하며 젓가락을 멈춘 왕삼이 불쌍한 얼굴로 바라봤다.
“설마 먹을 것 가지고 구박하시려고 하는 건 아니시죠?”
“그러면 그냥 먹고 죽던가.”
진지한 풍백의 말에 왕삼이 더욱 불쌍한 얼굴을 해 보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투박하게 생긴 왕삼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걸 배워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단호한 풍백의 표정을 본 왕삼이 젓가락을 거칠게 내려놨다.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먹을 것 가지고 이렇게 나오시면 벌 받습니다요, 벌!”
“이걸 먹으면 네가 벌 받게 될 텐데.”
“제가 뭘 잘못했다고 벌을 받습니까?”
“이런 음식을 시킨 벌을 받아야지.”
“조개 요리가 뭐가 어쨌다고 그러시는…… 헉! 혹시 조개 못 드시는 겁니까?”
“없어서 못 먹지.”
“그러면 왜 그러는 건데요?”
“넌 서시(西施)가 누군지 아냐?”
느닷없는 물음에 왕삼이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 대답했다.
“어디선가 미녀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지만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제 관심은 오로지 바로 이…….”
“과거 춘추시대(春秋時代) 월국(越國)의 미녀 이름이다. 당시 월국의 관료인 범려(范蠡)가 서시의 미모를 알아보고 오국(吳國)의 왕인 부차(夫差)에게 보내고…….”
“아니, 그런 얘기를 왜 저에게 하시는지…….”
왕삼은 느닷없는 옛날 얘기에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걸 본 풍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충 짧게 말하면 서시는 한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미색이 뛰어난 미인이었고, 이 서시설이라는 음식은 그런 서시의 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오오오! 그, 그럼 엄청 맛있겠는데요! 당장 먹어 봐야…….”
“잠깐. 꼭 반드시 먹도록 해 줄 테니까 내 얘기를 다 듣고 먹어. 나는 손도 대지 않고 넘겨줄 테니.”
“정말입니까?”
“그래.”
“혹시…… 얘기를 반 시진 이상 하신다던가…….”
“촌각(寸刻)만 얘기하면 된다.”
“그러면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젓가락을 내려놓은 왕삼이 풍백의 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여전히 서시설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시설은 사실 이 음식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조개의 이름이기도 하다.”
풍백은 젓가락으로 조개 하나를 집었다. 그러자 조개에 고여 있는 육수가 먹음직스럽게 흘러내렸고, 그걸 보는 왕삼의 눈도 크게 흔들렸다.
“이 조개는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 마치 혀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왜 하필 서시일까? 서시는 미녀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를 망하게 만든 여자이기도 한데.”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정말 혀처럼 느껴지는지 한 번 먹어 보고 이어서 얘기를 하시면…….”
왕삼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풍백이 말을 이었다.
“이 조개는 중원을 남쪽 너머에서 잡아서 가져오는 것이다. 겨울에도 더워서 옷을 벗고 사는 그런 곳에서 사는 조개지.”
“그렇군요.”
“그곳에서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위치의 얕은 모래에서 잡히는 조개인데, 이 지역이 참 웃기게도 지금처럼 여름에는 바닷물이 따뜻해진다고 하더라.”
“그것 참 신기하네요.”
“그런데 이 시기에는 그 지역에서 서시설은 물론이고, 조개류는 하나도 잡지 않는다고 하더군.”
“네? 왜 그런답니까?”
여전히 서시설만 바라보고 있는 왕삼을 보며 히죽 웃은 풍백이 말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잡힌 조개는 독을 품고 있거든.”
“……네?”
“만약 이 시기의 서시설을 잡아먹으면 운이 좋아야 며칠 동안 배탈이 나는 거고, 재수가 없으면…….”
“재수가…… 없으면요?”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아야지.”
“헉! 죽는다고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왕삼을 보며 풍백이 서시설을 그의 앞으로 쭉 밀어 놨다.
“나는 이제 할 얘기를 다 했다. 자! 이제 너 다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