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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6화 (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6화

“협상이 결…… 렬되었다고요?”

적호경과 진덕양의 얘기를 모두 들은 풍백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얘기에 표정이 굳고 말았다.

“그래서 네 얘기를 들어 보고 싶어서 불렀다. 혹시 네가 아는 다른 얘기는 없는지 싶어서 말이다.”

“간단한 거라도 좋으니 혹시 청송무관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 주면 좋겠다.”

두 사람의 물음에도 풍백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풍백은 당연히 일이 잘 풀렸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비록 원래 청송무관이 표국을 시작했던 것보다 무려 이 년이나 빠른 시간이었기는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이 들었던 얘기에 따르면 청송무관은 지금 이때에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하다못해 일부분 협상 타결과 같은 것도 아닌 아예 결렬이 되었다니,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청송무관에게 다른 믿을 구석이 있던 건가?’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겨우 무관, 그것도 신생 무관에 불과한 청송무관이 믿을 곳이라고는 무당파 하나뿐이다.

하지만 무당파는 청송무관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었다. 내부 사정을 알지는 못해도 풍백이 겪었던 과거에서는 청송무관과 무당파 사이에 금전적인 거래는 없었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진덕양의 얘기처럼 극심한 금전적인 문제가 있을 텐데 적가상방과 협상을 그대로 결렬하다니…… 이야기 앞뒤가 맞지가 않았다.

‘혹시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무관을 차린 무인들 중에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차린 무관이 망해 가고 있더라도 악수를 두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는 일이다. 강호의 무인은 자존심과 명성을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닐 것이다. 풍백이 알기로는 청송무관주는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무관을 망하게 할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자존심 때문이라면 과거에도 금호상방의 제안에 표국을 만드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정보가 부족해.’

무언가 추론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떠한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풍백은 지금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저 청송무관이 금전적으로 힘든 상태고, 이 상태로 고생을 하다가 대략 이 년 후에 금호상방의 제안을 받아들여 표국을 설립했다는 정도뿐이다.

“달리 아는 것이 없느냐?”

한참 동안 풍백이 대답이 없자 적호경이 조용히 물었다.

풍백은 대답 대신에 쓰게 웃었다. 딱히 가지고 있는 정보가 없으니 당장 얘기할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안일했다.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어.’

아마 과거의 그의 동료들이 지금 풍백을 보면 웃다가 쓰러질지도 몰랐다. 설마 천하의 풍백이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 낙관적이긴 했다.

청송무관이 금호상방과 표국을 만들기 전에 적가상방이 먼저 협상해서 표국을 만든다는 얘기는 그저 상상에 불과했었다.

진짜 작전을 짜는 마음으로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저 과거의 회한이 되었던 일을 떠올리며 했던 망상에 불과했었다.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진짜 과거로 돌아올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이건 변명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과거로 돌아온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을 했으면 정보를 취득하고 대비를 했어야 했다.

‘아무튼 지금은 정보가 필요해. 그리고 이 협상을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고.’

청송무관과 표국을 만들어 다시 상행을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적가상방의 멸문을 막기 위한 대비책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그냥 포기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풍백이 이렇게 자책하고 있는 사이, 적호경과 진덕양은 풍백이 아무런 대답도 못하는 것을 보고 이내 결단을 내리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군. 그러면 청송무관과 표국을 만드는 얘기는 일단 접어놓도록 하지.”

“아쉽군요. 확실히 청송무관의 재정 상황을 보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포기해야 하다니.”

“이런 경우가 이번뿐이던가? 적가상방을 키워 오면서 이것보다 더한 경우도 많았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같이 겪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쉽게 없어지진 않는군요.”

무엇보다 이것이 지금까지 말썽만 피우고 다니던 풍백이 처음으로 내놓은 될 법한 제안이었다.

행여나 의욕을 가지고 말했던 제안이 어그러졌다고 또다시 풍백이 엇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적호경과 진덕양은 은근히 풍백의 안색을 살피는 중이었다.

하지만 풍백의 얼굴은 처음보다 훨씬 편히 바뀌고 있었다.

‘내 실수라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마음을 정한 풍백이 고개를 들어 적호경과 진덕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숙부님.”

풍백의 불음에 두 사람이 얼른 대답했다.

“그래, 이제 마음을 좀 추슬렀느냐?”

“너무 마음 쓰지 말도록 해라. 이번만 보더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었어. 앞으로 이렇게만 해 나가면…….”

진덕양의 말은 끝나기도 전에 풍백의 말에 끊겼다.

“청송표국과 협상을 다시 해 봐도 되겠습니까?”

“다시 협상을 해 보자고?”

풍백의 말에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대충 두 사람의 시선에는 아직 미련을 끊지 못한 풍백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음을 서로 눈치 챘다.

진덕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내가 며칠에 걸쳐 협의를 해 보았다. 청송무관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더구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제가 한번 협의를 해 보고 싶습니다.”

풍백 역시 청송무관이 돈 때문에 적가상방과 협의를 결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직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그것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기에 이 년 후에 금호상방이랑 표국을 만들게 된 것일 테니까.’

풍백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정보와 다시 한번 협의를 해 볼 수 있도록 적호경이 허락을 해 주는 것이었다.

무려 표국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에 적가상방의 미래가 걸려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협의를 과연 자신에게 맡겨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 시기의 자신은 정말 망나니 같은 놈이었으니까.

잠시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만히 풍백을 바라보던 적호경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협의인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후우…….”

적호경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번 협의를 해 보라고 하고 싶었으나 쉽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풍백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기만 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부디 적호경이 승낙하기를 바랄 뿐이다.

적호경의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본 진덕양이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한번 기회를 줘 보도록 하시지요.”

그 말에 적호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덕양을 바라봤다.

“쉽게 정할 일이 아니네. 이번 협의로 인하여 적가상방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협의에 지금까지 실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백아를 보내 협의를 진행해 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저는 그렇기에 이번에 백아가 직접 협의를 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해.”

무겁게 말하는 적호경의 말에 진덕양이 고개를 저었다.

“백아가 한번 협의를 진행해 보기에는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실상 지금 다른 방법이 없다면 청송무관과 표국을 만드는 일은 거의 물 건너간 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백아가 협의를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손해 볼 일이 있겠습니까?”

“음…….”

“그리고 만약 정말 백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아마 적가상방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백아를 보는 시선이 한 번에 바뀌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상방회의에서 풍백이 청송무관과 표국을 설립하는 제안을 하면서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가지고 풍백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뀔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풍백이 해왔던 온갖 사건과 망나니짓을 생각하면 아직 보여 준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적가상방은 적호경이 이끌어 가고 있지만, 앞으로 언젠가 풍백이 이어받으려면 적가상방의 실무자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않다면 풍백의 밑에서 일하기 싫다며 뛰쳐나갈 사람들이 태반일 테니까.

망설이고 있던 적호경은 진덕양이 이렇게 나오자 마음이 흔들렸다.

‘하긴 어차피 어그러질 협의였으니 한 번 더 협의를 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지. 크게 문제가 되지만 않는다면 기회를 줘 보는 것도 괜찮겠어.’

생각이 굳힌 적호경이 풍백에게 말했다.

“좋다. 네가 직접 협의를 해 보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꼭 협의를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다. 협의를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

“협의를 실패하더라도 절대로 청송무관과 적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 말대로라면 앞으로 청송무관은 어떤 방식으로든 크게 될 가능성이 많은 곳이야. 그런 곳과 척을 진다면 향후 적가상방에 가해질 부담이 어느 정도가 될지 알겠지?”

적호경의 말이 맞았다.

무려 무당파가 뒷배로 서 있는 곳이 청송무관이었다. 이런 곳과 적대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청송무관이 있는 구주현은 물론이고, 그 근방에 있는 다른 곳까지 거래를 하기 껄끄러워질 가능성이 많았다.

풍백은 적호경의 말을 이해했기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적호경의 처소에서 나온 풍백은 같이 나온 진덕양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진덕양의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맴돌다가 사라졌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런 눈으로 바라본 것을 들킬까 봐 숨기는 것 같았다.

“듣자 하니 내가 상방에 없는 동안에 술을 먹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입니다.”

“당분간? 그러면 또 술을 마실 생각이라는 말이냐?”

진덕양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고개를 든 풍백은 그런 진덕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셔야지요. 예전에 숙부님께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상방 일을 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어야 하는 순간이 꼭 있다고요.”

“그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자리일 때…….”

“저도 그럴 때를 말하는 겁니다. 앞으로 상방 일을 해나가며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마셔야지요. 하지만 이전처럼 절제 없이 마시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진심이 담긴 풍백의 말에 진덕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고 했다.

이전의 풍백은 상방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진덕양이 훈계를 하려고 하면 지금까지 적호경이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적당히 살 거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상방 일을 할 거라고 말하고 있으니,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했던 풍백의 모습에 입꼬리가 승천하는 걸 막기가 힘들었다.

“허험! 하긴 그렇지. 협의를 하면서 피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도 있지. 그래도 네가 말했듯이 꼭 절제를 하도록 하거라. 그렇게만 한다면 앞으로 내가 최대한 네 힘이 되어 주도록 하마.”

“명심하겠습니다.”

“또 듣자 하니 요즘 거처에서 나오지 않는다면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아닙니다. 그저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좀 하는 중입니다.”

굳이 무공을 익히려고 몸을 만든다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무공을 익히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무공을 익힐 것이 아니라 상방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라고 할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잘 생각했다. 상방 일을 하다 보면 몸이 상할 일이 많을 것이야. 지금부터 건강을 관리해 주는 것도 좋지.”

“앞으로 꾸준히 관리할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네가 갑자기 이렇게 바뀌니 참 좋으면서 무섭구나. 또다시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맹세를 할 수도 있고요.”

다시 한번 삶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전으로 돌아갈 일도 없었다.

이제 일 년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대비책을 탄탄히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송무관과 표국을 만들어야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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