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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5화 (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5화

진덕양이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것은 풍백의 예상대로 며칠이 지난 후였다.

적가상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진덕양은 적호경을 만났다. 하지만 진덕양의 표정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풍백의 생각과 달리 심각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덕양이 급히 물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진덕양이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으나 적호경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미 보고를 받기 전부터 좋은 소식은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생각대로 일이 풀렸다면 진덕양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을 테니까.

“생각보다 청송무관이 아직 곤란한 상황이 아닌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부 사정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확인하고 계산을 해 보니 심각한 상황인 것은 확실합니다.”

상인들은 숫자에 민감하고 계산이 빠르다. 애초에 계산이 느린 상인이라면 진작 망했든지 지금 망해 가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상산현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적가상방이 얼마나 계산이 빠를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진덕양의 계산에 따르면 청송무관은 철산의 얘기처럼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나가는 지출이 월등히 많았다. 심지어 사정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청송무관의 땅과 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는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에 진덕양은 적가상방과 손을 잡고 표국을 만드는 제안을 청송무관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거절이었다.

“이유는 확인이 되었는가?”

“조사는 하고 있지만…… 아직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청송무관주가 현재 자신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온갖 무공을 익히고 하늘까지 훨훨 날아다니는 강호무인들이지만, 의외로 그들 중에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허다했고, 당장 내일부터 밥 먹을 돈도 없으면서 지금은 체면 때문에 동료들을 모아 외상으로 주점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적호경의 말은 청송무관주 역시 이런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닌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을 확인했으니까요.”

“그러면 혹시 무당파에서 지원이라도…….”

무당파는 엄밀히 따지면 도관이기는 하나 정파의 기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화가 풍부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무당파의 정식 지부도 아닌데 금전적인 지원을 해 줄 리가 없습니다.”

진덕양이 강호무인은 아니었어도 이 정도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청송무관과 같이 기명제자나 속가제자가 무관을 차리면 무당파에 일정 금액을 매해 기부한다. 지금까지 무공을 가르쳐 준 은혜에 대한 보답과 같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청송무관주의 스승인 현호자는 장로이긴 하나, 중요 직책에 오른 인물은 아니었다.

또한 청송무관이 전략적인 어떤 이유로 절강성에 세워진 것도 아닐 것이다. 만약 전략적으로 절강성에 진출한 것이라면 상산현이 아니라 성도(省都)인 항주(杭州)에 세워졌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하니 무당파에서 청송무관에 지원을 했을 리는 만무했다.

“답답하게 되었군. 시간이 없는데…….”

적호경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현재 적가상방은 하루가 지날수록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장 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행을 위해 구입해 둔 물건들이 창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물품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었다.

심각하게 굳어 있는 적호경의 눈치를 살피던 진덕양이 이내 입을 열었다.

“백아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백아에게?”

“청송무관에 대한 얘기를 처음 한 사람이 백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다른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물어보는 것이 어떤지…….”

이전이었다면 진덕양이 이런 얘기를 꺼냈을 가능성은 없었다. 과거의 풍백은 항상은 술이나 마시고 사고를 치거나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골칫덩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풍백은 과거와 달랐다.

며칠 만에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진덕양은 풍백이 그동안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고, 처음 이틀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자신의 거처에서 마치 근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풍백이 워낙 많은 사고를 쳤기에 방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표국 설립에 대한 안건을 발안했던 당사자였던 만큼 풍백의 의견을 듣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혹시 아는가? 또다시 무언가 기발한 방법을 알려 줄지도.

이런 생각은 적호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이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한번 불러서 얘기를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지금까지 너무 사고뭉치라서 미래가 걱정되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자리에 깐깐한 진덕양이 부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 한번 불러서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

* * *

“후욱! 후욱! 후욱!”

풍백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목표했던 시간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달리면서 느껴지는 온갖 감각들이 그에게 계속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정도로 힘들었으나 풍백의 입가에는 오히려 환한 웃음이 지어지고 있었다. 아마 숨이 끊어질 것처럼 거칠지 않았다면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몰랐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호접춘몽(胡蝶春夢) 또는 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 불리는 내용이 나온다.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사람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사람이었다는 내용으로, 나비가 되었던 꿈이 너무 현실 같아서 인간인 자신이 꿈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장자는 이 꿈을 꾸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만, 풍백은 그런 깨달음을 얻기 못했다. 그저 지금이 마치 꿈인 것처럼 다시 죽어 가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뿐이다.

“하아…… 하아…… 하아…….”

풍백은 죽을 것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체력의 한계까지 달리기를 한 풍백은 쉬지도 않고 바로 무거운 돌덩이를 가지고 근력 운동에 들어갔다.

팔과 다리가 벌벌 떨릴 때까지 근력 운동을 마친 풍백은 또다시 이어서 기마 자세를 비롯해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며 몸을 단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단련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이 벌떡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가부좌를 틀고 안은 풍백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안간힘을 다해 거칠게 튀어나오려는 숨을 진정시키며 서서히 그가 기억하던 호흡법을 시전했다.

“후우우…… 후우우…….”

심장이 점점 진정되어 가고 숨도 고르게 변해 갔다. 그러면서 명치에 아릿한 무언가가 쌓이는가 싶더니 이내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사지백해(四肢百骸)로 골고루 흩어졌다.

이것은 딱히 내공심법(內功心法)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익힌다고 해서 미세한 내공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공을 얻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었다. 바로 단련된 신체였다.

외공(外功)이든 내공(內功)이든 구분하기에 앞서, 어떤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만들고 신체를 단련해야 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힐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신체를 단련해야 될까?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사오 년이 걸리기도 한다. 강호의 문파가 나이가 어린 제자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풍백과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 단련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과거의 풍백은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한 이후로 자신도 언제 누군가에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가 투신한 곳이 바로 군부(軍部)였다.

이곳에서 몇 가지 사건을 겪은 다음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풍백은 바로 이 호흡법을 배울 수 있었다.

본래 거친 훈련을 통해 쌓인 기운은 일부만 신체에 쌓이고 사라지게 되지만, 지금 풍백의 호흡법은 그것을 강제로 온몸에 차근차근 쌓아 주는 것이 가능했다.

즉, 이 호흡법만 있다면 신체를 단기간에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몸으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로 몸을 만드는 것은 절대 좋지 않다. 어쩌면 너무 고된 훈련으로 인하여 신체가 망가질 수도 있고, 정상적인 방법이라 말하기에는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대단히 극심했다.

그렇기에 이 호흡법을 사용한 다음에는 지금부터 풍백이 할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한 풍백은 바닥에 앉아 몸을 길게 늘려 갔다. 허리를 접어 손으로 발을 잡기도 하고, 다리를 벌리고 몸을 옆으로 굽히거나 몸을 반대로 꺾기도 했다.

지금 하는 것은 천축(天竺)에서 전해지는 도인법(導引法)을 기반으로 하여 유가(儒家)에서 전해지는 유가기공(瑜伽奇功)을 합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호흡법으로 인해 손상이 가는 신체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

한동안 도인법을 이용해 몸을 풀어 준 풍백은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다시 단련을 시작하려면 일단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몸을 만드는 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상태라면 아마 한 달 정도면 몸을 만드는 건 끝낼 수 있을 거야.’

몸을 만드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농사로 비교하자면 이제 논밭을 만들기 위해 땅을 고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우는 무인은 풍백처럼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초적인 토납법(吐納法)을 동시에 병행하고는 한다. 본격적인 내공을 수련하기 전에 단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풍백은 아직 토납법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것은 풍백이 토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몸을 만드는 방법을 알 듯이 과거에 그가 군부에서 배웠던 내공심법과 무공도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풍백은 기존의 내공심법과 무공을 다시 배울 생각이 없었다.

강호(江湖)에서 흘러 다니는 말에 따르면 어떤 무공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무공이든 극의(極意)를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었다.

정말 어떤 무공이든지 극의를 깨우칠 수만 있다면 고수가 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삼재검법(三才劍法)이나 육합권법(六合拳法)과 같은 삼류 무공만 배워서 극의를 깨우치고 강호에서 손꼽히는 고수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즉, 이것은 전제조건에 적어도 상승무공(上乘武功)을 익힌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과거 풍백이 배운 내공심법과 무공은 삼류 무공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무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승무공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기초부터 먼저야.’

무공을 구할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향후 일어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들어 있으니까.

마음을 정리하며 다시 단련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왕삼이 풍백의 거처로 후다닥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도련님!”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그동안 왕삼은 풍백이 너무 거처에서 나오지 않아 종종 찾아와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말하고는 했었다. 아무래도 갑자기 바뀐 풍백의 모습에 걱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왕삼의 이런 제안이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기에 이해는 했다. 그렇다고 귀찮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왕삼은 풍백의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방주님께서 도련님을 찾습니다!”

왕삼은 다급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풍백이 사고를 치고 적호경에게 불려 가서 혼나는 일이 많았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러나 왕삼의 생각과 달리 무언가 생각난 풍백이 다시 물었다.

“혹시 숙부님께서 돌아오셨어?”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까 돌아오셔서 바로 방주님을 만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그 말에 풍백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청송무관과 협상이 잘 끝나서 부르신 것 같군.’

자리를 털고 일어난 풍백은 벗어 놨던 윗옷을 입기 시작했다. 얼른 찾아가서 칭찬의 말을 듣고 싶었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자신 때문에 적호경이 기뻐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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