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신혼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영신그룹 회장으로 돌아왔다.
"회장님,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나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구단주이지만, 이제는 그룹의 회장이다.
회장으로서 그룹 내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최근 영신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미디어 콘텐츠 쪽이 었다.
기존 사업들은 그대로 진행하되, 회장인 내 지시 아래 콘텐츠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미디어 사업 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다행히 매출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고요. 지속적인 콘텐츠 수급만 된다면 순항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콘텐츠 수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강시윤PD, 아니, 이제는 강시윤이사가 내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오리지널 독점 제작 비용은 해외 거대 OTT 플랫폼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국내 OTT 플랫폼들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수준입니다. 특히 예능에 대한 제작비가 타 경쟁사에 비해 후한 편이어서 그런지 예능 관람 프로그램 제작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걸 다할 수는 없죠. 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먼저 진행 하고 이후 하나씩 확장하는 순서로 가죠."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건설업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TH건설의 해외 의뢰 수주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이번에 칼리드 왕의 주도로 두바이 내 신규 경기장 건설 의뢰도 들어왔고요."
용준형 사장의 보고에 눈을 빛냈다.
“그래요? 금액이 어느 정도 됩니까?"
“2,200억 정도 됩니다."
"오우, 경기장에 무슨 금이라도 바를 생각이신가."
“서울 드래곤즈가 사용하는 서울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2,000억이 조금 넘는 금액이 투입됐으니, 그렇게 많은 액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음, 그럼 아이들 뛰는 운동장이라도 만들 생각이신가."
"......신생 축구팀이 사용할 경기장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월드컵 유치 목적도 있고요."
"크흠. 그렇군요."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건설도 문제가 없군요."
“예, 직원들도 모두 의욕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급여나 복지 모두, 적어도 국내에서는 저희를 넘볼 수 없으니까요."
TH건설은 내가 인수하기 전에 건설기업 순위 50의 바깥에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뒤져 있었는데, 지금은 TOP을 달리고 있었다.
현재 TH건설에서 나오는 매출은 그룹에 상당한 힘을 주고 있었다.
“계속 부탁드리죠."
"네."
그렇게 그룹은 평화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시작했다.
경칩(驚塾)을 지나면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피고 일어나고, 개나리가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뭐, 뭐라고요?"
“……지태완이 죽었습니다.”
형이 죽었다고 한다.
박준후 팀장은 담담한 얼굴과 달리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사인은 화병으로 인해 생긴 뇌출혈 사망이라고 합니다."
"......"
아직 죗값을 다 치르지도 못했는데 죽어버렸다.
"허망하군요."
“같은 기분입니다."
나도, 박준후 팀장도, 그리고 소식을 들은 다른 이들도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때 그토록 잘나갔던 인물의 최후가 이렇다니."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회귀 전에 나도 화병으로 죽고 회귀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살아남았고, 형은 나처럼 죽어버렸다.
"하하."
어색한 웃음만 나왔다.
그런 나를 주변 사람들이 위로했다.
뉴스에서도 지태완의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속보)지태완 전(前) 영신그룹 회장, 뇌출혈로 사망.
-야. 지태완이 죽었네?
-진짜냐?
-이렇게 간다고?
-허무하다. 진짜.
뉴스를 접한 대중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야, 지태훈이 죽인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음.
누군가는 내가 죽였다는 음모론을 꾸미는 이들도 있었다.
“회장님이 죽였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놔두세요. 어차피 떠들 사람은 어떤 식으로도 떠들거니까요. 괜히 불필요한 잡음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망한 지태완의 빈소는 조용했다.
상주도 없고, 그 어떤 문상객도 없는 빈소에는 쓸쓸함만이 남았다.
악인의 최후는 그러했다.
장례는 아주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졌다.
시신은 화장을 통해 적당한 곳에 뿌려졌다.
그렇게 이어져 왔던 악연의 고리도 끝나게 되었다.
***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흘렸을 무렵,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오는 일이 발생했다.
"아아아악!"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
"아아아악!"
"아아아! 내 머리!"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유리가 손으로 내 머리를 꽉 잡고 힘을 주었다.
평소라면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나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을 내! 할 수 있어!"
"아아아악!"
그저 힘을 내라는 외침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렸을까?
응애! 응애! 응애!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쳐 있는 우리를 대신해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아들입니다!"
"아아!"
건장한 사내아이였다.
품에 안은 아이를 보며 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쳐 있는 유리에게도 아이를 보여주었다.
힘겹게 아이를 안아 든 유리도 눈물을 흘렸다.
"고생 많았어, 자기야."
정말 죽도록 고생했을 유리가 대견하고 너무나 감사했다.
"자기도 고생했어요."
본인이 제일 힘들 텐데. 그녀는 내게 고생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출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김진철 이사 부부와 유리의 동생도 산모와 아이를 확인하고 안심했다.
“고생했다."
김진철 이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유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아빠, 울지 마요."
“아빠 안 운다."
“거짓말."
"......"
그는 대충 소매로 눈물을 닦아낸 뒤,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한다.”
"네."
“그리고 고생했다.”
유리의 여동생, 김예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조카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나로 향했다.
“아이의 이름은……”
아이의 이름은 이미 정해졌다.
출산 전에 유리와 심도 있게 상의한 끝에 정해진 이름이었다.
“선회(膳回), 지선회."
“선회? 특이하네요."
“응, 조금 특이하긴 하지."
“그렇게 지은 뜻이 있어요?"
"그건......"
반복하며 선함을 행하며 살라는 뜻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 회귀 후 받은 선물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아이가 이름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어쩐지 형부답네요."
형부답다는 말에, 나는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가 훗날 어떤 아이로 성장할지 기대가 됐다.
***
봄바람이 불면서 K리그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시즌 전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K리그 역사상, 아니 아시아클럽 역사상 클럽월드컵 최초의 우승팀의 위용은 대단했다.
프로축구연맹과 K리그의 모든 구단 관계자와 팬들이 이번 시즌 우승도 고양 유나이티드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AFC는 새로운 시즌 시작될 ACL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고양 유나이티드를 꼽았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그런 기대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였다.
『지난 시즌 FA컵 우승팀인 서울 드래곤즈를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는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곽찬구 감독이 떠난 이후 소방수로 부임한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팀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대표팀에서 보여주었던 화끈한 공격력을 클럽팀에서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고양은 시작부터 연전연승을 거두며 순항했다.
『오늘 열리는 3월 A매치를 통해서 대한민국 A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곽찬구 감독의 데뷔전이 치러지는데요!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시즌이 새로 시작되고 얼마 안 되서 곽찬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경기도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 위주로 기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고양 유나이티드 출신 선수들이 제법 많습니다.』
클럽월드컵 우승트로피까지 거머쥔 곽찬구 감독의 A매치 데뷔전.
모두의 시선이 모여지는 가운데, 기대 이상의 화끈한 경기력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시절에도 보여줬던 4-3-3 변칙 전술인데요, 상대
팀이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기회인데와 박요한 골입니다!』
『곽찬구 감독 1호 골의 주인공은 박요한 선수가 만들어냅니다!』
옛 제자와 스승이 대표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골까지 기록했다.
세리모니를 펼치는 박요한을 보고 곽찬구 감독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결국 대한민국이 3:0 승리를 거두면서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합니다.』
곽찬구 감독의 데뷔전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렇게 대표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오피셜] 콘라드 감독, 고양 유나이티드와 계약 체결······3년 계약.
약간 잡음이 있었던 콘라드 감독과의 계약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영국BBC와 독일 빌트 등, 주요 외신에서 속보로 다룰 정도로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콘라드 감독은 비록 맨시티를 떠나게 됐지만, 마무리는 화려했다.
프리미어리그 잔여 경기를 무려 5경기나 남겨둔 상태에서 조기 우승을 달성했고, 리그컵과 FA컵에서도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 맨시티는 레알마드리드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도 대부분의 맨시티 관계자들과 팬들은 콘라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빌었다.
그렇게 시즌을 마친 후 약속대로 2주 정도 휴식기 보낸 그가 한국에 입국했다.
그의 한국 입국 소식에 국내 기자들은 물론 아시아 각국과 유럽 기자들까지 모였다.
공항에는 콘라드 감독의 팬과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까지 모이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올 정도였다.
콘라드 감독은 시간이 걸려도 팬서비스를 하는 모습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오피셜 사진을 찍은 뒤, 경기장을 찾은 콘라드 감독에게 고양 유나이티드는 화려한 입단식을 제공했다.
수만 명의 팬이 모여 있는 경기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콘라드 감독.
와아아아아!
콘라드! 콘라드! 콘라드!
그의 입단식은 방송에도 생중계가 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이 방송은 유럽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정도로 비중이 컸다.
물론 이 방송의 중계는 TH미디어에서 직접 진행하였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 중심에는 여러분과 제가 있을 겁니다."
와아아아아!
그 누구보다 화려한 입단식을 통해 고양 유나이티드는 또 한 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
영신그룹과 고양 유나이티드 모두 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나는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다.
"정말입니까?"
"네! 그래서 지금 협회가 발칵 뒤집혔다니까요!?"
신진호 팀장의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이태수 코치가 최명준 부회장의 뺨을 때리고 아르헨티나로 갔다니."
최근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모두 내부 인사가 개편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전에 만났던 최명준이 부회장으로 새롭게 선임되었다.
“이태수 코치에게 U20대표팀 감독을 제안하던 중에 뺨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왜 갔대요?”
"회장님은 뺨을 맞았다는 것보다 아르헨티나로 간 상황이 더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아무튼요.”
"조용히 알아본바, 아르헨티나 U20대표팀 자리가 비었다고 합니다. 전임 감독이 총기 살해 위협으로 도망가면서 공석이 됐다고 합니다."
“내년에 자국에서 U20월드컵이 열리는데, 대회를 1년 남기고 감독 선임에 난항을 겪는 모양입니다."
"뭐, 전에 듣기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네, 자극 상황도 안 좋고, 그로 인해 협회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니까요."
"그래서 거기 감독이 된다고 합니까?"
“…...놀랍게도 확정된 모양입니다."
"......"
나는 문득 일전에 봤던 영상들이 떠올랐다.
이태수 코치와 관련된 미래로 보였던 그 영상에, 분명 그가 아르헨티나로 떠난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마......"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씩 웃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재벌집 막내 구단주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