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270화 (270/272)

270화

팡!

현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날아가는 공과 몸을 날리는 골키퍼로 향했다.

'걸렸나!'

정확히 날아가는 공을 향해 팔을 길게 뻗는 제임스 골키퍼를 보며, 박형우는 두 눈을 부릅떴다.

'걸렸다!'

제임스의 손가락 끝에 살짝 닿은 공.

그런데 제임스는 웃을 수 없었다.

손가락에 걸리기는 했지만, 워낙 강하게 스핀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공은 제임스 골키퍼의 손가락을 넘어 골대를 살짝 스치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렁-

우와아아아!

"좋았어!"

출렁이는 골망을 본 고양 유나이티드의 동료들과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다.'

박형우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동료들이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며 일으켜 세웠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는데요. 자, 이제는 맨시티의 차례가 왔습니다. 다섯 번째 키커는 강철인이 나섭니다.』

『오늘 강철인 선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는데요. 자,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또 한 번 에이스의 활약이 필요할 때가 왔습니다.』

'제발!'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수단과 팬들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강철인이 실축하거나 박지원이 막아주기를 바랐다.

『박지원 선수가 만약 선방에 성공한다면 경기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양 팀 모두 클럽 월드컵 첫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 우승의 향방이 이제 강철인의 발끝에 달려 있었다.

강철인이 성공한다면 다음 키커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여기서 멈춰야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프로로서 수백 경기를 치러왔던 강철인은 지금껏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리그 경기에서 가끔 자이언트 킬링같은 상황을 겪을 때는 있었지만, 이런 대형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겪지 못했다.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야.'

강철인의 머릿속에는 불안보단 오로지 키커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르 콘라드 감독이었다.

'내가 감독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실로 짜릿했다.

수백 번의 경기를 진두지휘하면서 늘 승리만을 만끽하던 그였다.

그래서 그럴까?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진지하게 홀로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지금 잊고 있던 짜릿함을 다시 만끽하고 있었다.

그 짜릿함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신인 시절의 감각마저 떠올릴 정도였다.

'이런 기분을 얼마 만에 느끼는 거야?'

심장이 뛴다.

그의 시선은 골문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골문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보여줘. 더.'

뜨겁게 타오르는 콘라드만큼, 더 활활 타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골기퍼 박지원이었다.

'제발! 단 한 번만 막을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종교가 없는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 신에게 간절히 빌고 있었다.

『강철인 선수가 찰 준비를 합니다. 주심이 신호를 보내는데요!』

삑!

주심의 신호와 함께 강철인이 힘껏 찼다.

프리미어리그나 대표팀에서도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적이 여러 번 있던 강철인.

그 누구도 그의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인다!'

날아오는 공이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보였다. 때론 느릿하게도 보였다.

그렇게 날아오는 공을 박지원이 가볍게 뛰어올라 팔을 뻗었다.

팡!

박지원의 손에 맞은 공이 굴절되어 위로 튀어 올랐다.

그 순간 경기장에 정점이 흘렀다.

힘껏 치솟아 올랐다가 바닥으로 천천히 뚝 떨어지는 공.

떨어지는 공에 맞춰 박지원이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경기장에 함성의 쓰나미가 덮쳤다.

우와아아아아아-.

『막았습니다! 막았어요!』

『으아아아! 막았어요!』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를 끌어안으며 울부짖었다.

"아."

키커로 나섰던 강철인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뒤로 벤치에서 우르르 뛰어나온 고양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나타났다.

주저앉은 그를 스치듯 지나친 그들은 놀라운 선방을 한 박지원을 끌어 안고 기쁨을 표했다.

툭.

멍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강철인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렸다.

고개를 들어 올린 강철인의 시야에 박형우의 모습이 잡혔다.

"수고 많았다."

"......형."

서로를 향해 복잡한 표정을 보인 두 사람이었다.

"축하해요."

“고맙다."

힘겹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강철인의 어깨를 가볍게 다시 두드려준 박형우는 천천히 팀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강철인은 곧 잔디 위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

길고 길었던 클럽월드컵의 왕좌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차지했다.

영광스러운 구단의 첫 번째 우승이자, 아시아 클럽의 최초 우승이기도 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우승은, 기존의 클럽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바꾸었다.

“정말 어렵게 우승을 하셨는데요, 소감 부탁드립니다."

곽찬구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복잡한 표정을 드러내더니 힘겹게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 정말, 이런 날이 저에게 올까 싶었는데요. 함께 여기까지 온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고양에게 더 좋은 날들이 오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콘라드 감독의 맨시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정말 멋진 팀이었습니다. 이만한 클럽을 결승이라는 무대에서 상대해 봤고, 그런 팀을 꺾고 우승한 일은 저에게 평생 자부심처럼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경기를 끝으로 A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시는데요. 마지막 경기를 함께 한 선수들과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 사실 제가 고양 유나이티드에 처음 왔을 때 정말 엄청난 각오를 하고 왔었는데요. 평생 충성을 맹세하던 팀을 떠나 새로운 고향에 온 팀에서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쌓은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 그리고 매 순간 함께 했던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 팬분들, 정말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를 지지하고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신 이 은혜, 죽을 때까지 갚으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다시 한번 우승 축하드립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천하의 곽찬구 감독마저 울먹이며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이어서 콘라드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콘라드 감독님.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정말 훌륭한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대가 우리보다 잘했습니다. 간만에 짜릿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 경기 이후 계획이 궁금한데요."

“우리에게는 남은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있고,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있습니다. 이번 결과는 아쉽지만, 우리는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터뷰 도중에 한 기자가 예민한 주제를 하나 꺼냈다.

"고양 유나이티드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는 이야기가 도는데요. 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담담하게 인터뷰하던 콘라드 감독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대답할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할 얘기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콘라드 감독은 인터뷰를 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두 감독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간이 시상 무대가 완성됐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우승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 줄 앞쪽에 지태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태훈은 환한 얼굴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한 명씩 손을 잡고

인사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이 자리에 올라오는 데 지태훈의 공이 그 누구보다 컸다는 것을.

당장 매각을 진행할 위기였던 팀을 이제는 명실상부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그 팀의 주인이 바로 지태훈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환한 얼굴로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곧 환한 얼굴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클럽 월드컵은 성황리에 끝났다.

***

"아우 속 쓰려."

정말 밤새도록 달렸다.

우승 축하 뒤풀이로 아침까지 마신 것같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이날만큼은 신나게 달렸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마시고 힘겹게 일어나서 미리 준비했던 컵라면으로 겨우 해장을 하고 나오는데, 천지원 사장이 나에게 보고를 올렸다.

"회장님, 한국에 돌아가면 즉시 카퍼레이드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준비는 잘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현지에 있는 팀에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좋네요. 그럼 안전하게 잘 진행될 수 있게 하세요."

"네."

고양시와 사전에 이야기해서 카퍼레이드 행사를 진행하기로 협의를 끝낸 상태였다.

한국으로 먼저 돌아간 로치오 단장이 이번 행사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선수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미리 준비한 카퍼레이드 버스를 타고 고양시로 이동했다.

카퍼레이드는 장함IC를 통해 버스가 들어오면 바르 진행된다.

미리 소식을 들은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과 고양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선수들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카퍼레이드를 하는 날이 오다니."

“이런 건 유럽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었나?"

"저 너무 떨려요."

카퍼레이드 버스를 탄 선수들도 기대가 가득했다. 그렇게 장항IC에 도착하자, 구단 직원이 외쳤다.

"자 선수 여러분 2층으로 올라오세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온 선수들. 곧 선수들이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감탄하는 선수들 시아에는 미리 모인 팬들과 시민들로 가득 찬 길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일산을 대표하는 호수공원 앞, 호수로를 따라 상대하게 길게 수놓은 팬들과 시민들이.

카퍼레이드 버스를 탄 선수들이 등장하자 엄청난 함성으로 맞이했다.

우와아아아아!

둥! 두둥! 둥!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이윽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서포터스들이 힘차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고양!!

힘차게 가자!!

너희들 뒤에는 우리가 함께해~!!

서포터스들의 응원가와 함께 여기저기서 준비했던 꽃가루가 뿌려졌다.

호수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단 직원들과 팬들이 꽃가루를 뿌렸던 것이다.

“대박이다."

"진짜 나 이거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야."

“월드컵 우승한다고 해도 이렇게 해줄까?"

선수들이 감격했다.

주장 박형우를 비롯한 선수들이 미리 준비한 우승트로피를 팬들 앞에서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팬들과 시민들이 함성과 박수로 뜨겁게 반응했다.

그렇게 준비된 길을 따라 이동한 그들은 고양더블은행파크까지 오게 되었다.

“선수분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어? 뭐야?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

출입구에서 내린 선수들이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중앙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중앙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우리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함성 부탁드립니다!

우와아아아아!!

선수들은 또 한 번 놀랐다.

구단에서 준비한 선물이 또 있었던 것이다.

경기장을 거의 가득 채운 팬들이 위대한 여정을 다치고 돌아온 선수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일부 감격한 선수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고양! 고양! 고양!

한동안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

나는 모처럼 아버지의 묘를 찾았다.

"아버지, 저 왔어요."

평소와 달리 홀로 묘소를 찾은 나는 아버지에게 술을 한잔 올린 뒤 절을 했다.

"저 해냈어요."

하지만 이 짧은 한마디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들어있었다.

-고생했다.

마치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록 나의 바람이 들어간 환각일지 몰라도, 환한 얼굴의 아버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고마워요, 아버지."

여전히 나에게는 많은 일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통해, 나는 더 많은 성장을 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렇게 나는 각오한 뒤, 아버지의 묘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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