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자, 이제 이 경기의 모든 운명은, 승부차기에서 결정 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양 팀 모두에게 어려운 순간이 될 텐데요. 승부차기만큼 잔인한 승부가 있을까도 싶지만, 어쨌든 축구에서 결과를 내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기도 합니다.』
“양 팀 주장 앞으로."
주심의 호출로 양 팀 주장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
고양 유나이티드의 주장 박형우.
"......"
맨체스터시티의 주장 강철인.
원래 맨체스터시티의 주장은 조인스 골키퍼였지만,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주장 완장이 자연스럽게 강철인으로 인도되었다.
클럽월드컵이란 중요한 대회에서, 그것도 결승전에서 한국인 주장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심은 두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낸 다음, 준비했던 동전을 하늘 높이 던졌다가 잡았다.
"앞."
"뒤."
박형우는 앞면을, 강철인은 뒷면을 택했다.
주심이 가렸던 손바닥을 치우자, 앞면이 나왔다.
앞면이 나오면서 박형우에게 선공과 골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선공. 그리고 골대는 저쪽."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이 자리 잡은 골문으로 정해졌다.
『선공과 후공 그리고 골문 위치까지 모두 정해졌는데요. 이제 골키퍼와 키커 준비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선공하는 것 같은데요. 그럼 첫 번째 키커는……
유태준이네요.』
『팀 막내지만 오늘도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쳐준 괴물 수비수 유태준이 먼저 찰 준비를 합니다!』
'제발!'
“태준아! 힘내라!"
‘할 수 있어! 태준아!"
첫 번째 키커로 나서는 막내 유태준의 뒷모습을 힘들은 모두 뒤에서
어깨동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왜 유태준이 먼저 차?"
"막내한테 너무 한 거 아냐?”
일부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팀 막내가 첫 번째 키커로 나온 상황을 두고 의아해하거나 황당해했다.
'할 수 있어.'
유태준은 속으로 할 수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 그의 맞은편에 있는 제임스 골키퍼는 글은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저 녀석에 대한 정보는 없었는데…..'
조인스 골키퍼와 제임스 골키퍼 모두 만약의 상황을 두고 PK까지 연습한 상황이었다.
콘라드 감독과 휘하 코칭스태프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승부차기 준비를 했지만, 제임스 골키퍼 입장에서 유태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골키퍼 입장에서 조금은 의외의 상황인 셈이다.
'나름 변수를 준 건가? 그래봤자 상대는 어린 선수야. 침착하게만 하면 막을 수 있어.'
제임스 골키퍼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 사이 터치라인 앞에 서 있던 양 팀 감독들도 복잡한 시선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될 줄이야. 승부차기를 미리 준비해 두긴 했지만 별로 좋지는 않군. 게다가 첫 번째 키커도 예상 밖이고.'
설마 어린 중앙 수비수를 첫 번째 키커로 내세울 줄은 천하의 콘라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의도한 걸까?'
속임수를 주기 위한 전략이라면, 상대는 상상 이상의 전략가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런 콘라드의 생각과 달리 곽찬구 감독은 그야말로 속이 타고 있었다.
'미안하다. 태준아, 그래도 잘 해봐라.'
콘라드의 생각과 달리 전략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정해진 순번일 뿐이었다.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운명의 추가 당겨졌다.
주심의 신호와 함께 키커가 찰 준비를 했다.
유태준은 숨을 살짝 고른 후, 몸을 움직여 공을 힘껏 찼다.
발끝을 벗어난 공이 바르고 정확하게 왼쪽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오른쪽!'
제임스 골키퍼는 날아오는 공을 보고 정확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유태준은 순간 이건 막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출렁-
우와아아아!
우려와 달리 제임스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고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예쓰!"
출렁이는 골망을 본 유태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기쁨을 드러냈다.
"잘했다! 태준아!"
“정말 잘했어!"
돌아오는 유태준을 향해 동료들이 기특한 표정을 드러내며 아낌없이 칭찬을 쏟아냈다.
『출발이 상당히 좋습니다! 막내의 패기로 기분 좋게 첫 번째 승부차기를 성공하는 고양입니다!』
『아~ 유태준 선수! 정말 자신감 넘치는데요! 비록 제임스 골키퍼가 방향을 정확히 읽고 몸을 날리기는 했지만, 유태준 선수의 킥이 상당히 좋았어요!』
그렇게 고양 유나이티드의 첫 번째 차례가 끝나면서, 이번에는 맨시티 차례로 돌아왔다.
"오, 쓰바. 정말 살 떨리네."
지켜보던 지태훈도 손을 꽉 움켜쥐며 덜덜 떨 정도로, 승부차기의 압박감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맨시티의 첫 번째 키커는 타말입니다!』
『멕시코 국가대표 출신인 타말인데요. 맨시티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이번 결승전까지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키커로 나선 짧은 스프츠머리를 한 타말.
그런 타말 앞에는 박지원이 있었다.
『박지원 선수가 생각보다 PK 방어율이 좋은 편인데요, 이번에도 그 방어율이 적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삑!
가볍게 발을 구른 타말이 힘껏 공을 찼다.
정확히 오른쪽으로 낮고 빠르게 깔려 들어갔다.
공을 끝까지 주시하던 박지원이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타말의 슈팅은 박지원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출렁.
『아, 방향은 읽었는데요! 아깝습니다!』
성공한 타말이 오른쪽 손을 주먹으로 말아쥐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기쁨을 드러냈다.
『자, 양 팀 모두 첫 번째 키커들이 성공을 했는데요. 이제 두 번째 키커가 준비를 합니다.』
『자, 고양 유나이티드의 두 번째 키커는…… 카초네요.』
이번 대회에서 계속 주전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던 카초가 두 번째 키커로 나섰다.
카초 또한 이 순간이 긴장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수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상당히 살 떨리네.'
하지만 베테랑인 그가 여기서 두려움을 가질 수는 없었다.
짧은 호흡으로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둔 그가 공 앞에 섰다.
제임스 골키퍼는 그런 카초를 유심히 지켜봤다.
'카초. 예전에 상대했던 놈이지. 주로 왼쪽으로 많이 차던데……'
선수의 습관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왼쪽으로 차던 선수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차는 경우는 많지 않다.
드물게 변수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더 큰 리스크로 찾아 올 수 있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카초가 움직였다.
제임스는 두 눈을 번뜩이며 카초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카츠가 오른발로 차려고 했다.
'역시 왼쪽을 차려고 오른발로 차는 건가!'
제임스는 카츠가 왼쪽으로 차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츠가 오른발이 아닌 왼발로 바꿨다.
찰나의 순간 동작을 바꾼 카초의 행동에 당황한 제임스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사이, 카초가 때린 슈팅은 정확히 오른쪽 구석으로 향했다.
출렁-
제임스 골키퍼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골망이 흔들렸다.
우와아아아!
승부차기에 성공한 카초는 동료들에게 두 팔 벌려 뛰어가서 함께 기쁨을 나눴다.
"하."
제임스 골키퍼는 어이없는 표정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쉬레가 다가왔다.
“괜찮아. 내가 넣을게."
“후, 부탁한다."
“어. 맡겨둬.”
『고양의 두 번째 키커로 나선 카초가 깔끔하게 성공시킵니다! 이어서 맨시티의 두 번째 키커는 쉬레입니다.』
『스웨덴의 국가대표 출신인 쉬레인데요. 오늘 맨시티의 선제골 주인공이기도 하죠.』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오늘 결승전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쉬레가 공 앞에 섰다.
그런 쉬레를, 박지원이 자세를 잡고 노려봤다.
'오늘 저 녀석의 플레이는 좋았어.'
박지원도 오늘 쉬레의 상태를 인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더 막아야 해.'
하나만이라도 막아야 했다.
그래야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내는 쉬레와 굳은 얼굴로 자세를 잡은 박지원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쉬레는 과감하게 슈팅을 때렸다.
팡!
대포알처럼 날아간 슈팅은 그대로 고양의 골망을 크게 흔들었다.
“젠장."
결국 막지 못한 박지원은 인상을 구겼다.
반면, 손쉽게 성공한 쉬레가 제임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봤지?"
“짜식.”
『자, 이제 세 번째 키커가 나섭니다. 고양은 황진용이 나서네요.』
『황진용 선수가 큰 경기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오늘 경기에서도 공격 쪽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해줬습니다.』
공 앞에 선 황진용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왼쪽? 오른쪽?'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황진용은 제임스 골키퍼의 반응 속도가 생각보다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지 않지만, 일단 차보자. 할 수 있다. 황진용!'
마음속으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외친 황진용이 공을 찰 준비를 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황진용이 공을 찼다.
팡!
오른쪽으로 빠르게 날아간 공.
반응이 좋았던 제임스 골키퍼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까앙!
"아!"
너무 틀어버린 것일까?
빠르게 날아간 공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당황하던 제임스 골키퍼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지켜보던 맨시티의 다른 선수들도 크게 기뻐했다.
실축한 황진용은 절망에 휩싸였다.
베테랑으로서 무언가 보여줘야 할 자신이 팀을 발목잡게 만든 것이다.
“괜찮아, 진용야! 아직, 아직 기회 있어!"
“맞아 기회 있어!"
동료 선수들이 좌절하는 황진용을 위로했다.
골문 앞에 선 박지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선방해야 해!'
이제는 정말 자신의 활약이 중요해졌다.
하나를 막아야 팀에게 기회가 있었다.
『아! 황신용이 실축하면서 고양에게는 위기가 닥칩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기는 한데요, 박지원 골키퍼의 활약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 맨시티의 세 번째 키커는…… 발베르데네요.』
오늘 후반 막판 교체로 투입된 발베르데.
그가 세 번째 키커로 나섰다.
'어떻게든 주전 자리를 되찾아야 해.'
발베르데는 최근 흔들리는 자신의 입지에 대해 걱정과 불만으로 가득 했다.
콘라드 감독을 신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이 승부차기의 키커로 지목된 건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했다.
향후 자신이 다시 선발로 도약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킥을 준비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발베르데가 움직였다.
발베르데는 중간에 한번 페이크를 줄 생각으로, 일부러 한번 멈추었다.
그런데…...
'어라?'
'응?'
박지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건 발베르데였다.
팡!
뒤늦게 슈팅을 때렸지만, 박지원은 이미 방향을 온전히 읽고 있었다.
발베르데는 당황한 나머지 슈팅 파워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으챠!"
박지원은 너무나 쉽게 발베르데의 공을 잡았다.
우와아아아!
이번에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포효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선수들과 팬들 모두 환호했다.
세이브에 성공한 박지원은 황진용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황진용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막아냅니다. 박지원이 막아냅니다.』
『이야. 발베르데의 페이크가 오히려 본인 스스로를 페이크해버렸는데요! 어쨌든 고양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긴 고양은 다시 한번 기회를 이어나갔다.
『고양의 네 번째 키커입니다! 호프만이 나서는데요.』
『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이었죠. 이번에도 호프만이 자신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엄청난 죄책감에서 벗어난 호프만은 그 누구보다 정신이 말끔한 상태 였다.
오히려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똘똘 차 있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호프만이 슈팅을 때렸다.
출렁-
『네! 호프만! 깔끔하게 성공합니다! 좋습니다.』
호프만은 너무나 쉽게 성공하고 가벼운 얼굴로 동료를 끝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맨시티의 네 번째 키커가 나섰다.
『맨시티의 네 번째 키커는…… 튀랑이 준비합니다!』
『오늘 고양에는 유태준이 있었다면, 맨시티에는 튀랑이 있는데요. 프랑스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답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튀랑이 공을 찼다.
박지원은 방향은 읽었지만, 튀랑의 슈팅이 생각보다 강해 제대로 막지 못했다.
출렁-
흔들리는 골망을 본 박지원이 탄식했다.
어깨동무하며 지켜보던 다른 고양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대망의 다섯 번째 키커를 나설 차례인데요, 여기서 승부가 끝날 수 있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다섯 번째 키커는 박형우였다.
『고양의 에이스, 살아있는 전설 박형우가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는데요! 자, 박형우 선수의 한 방을 믿습니다.』
동료들과 팬들 모두 박형우에 대한 믿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박형우도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박형우가 움직였다.
제임스 골키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했다.
팡!
박형우의 발끝이 벗어난 공이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보인다!'
제임스도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정확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날아오는 공을 향해 팔을 길게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