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한점 따라붙는 고양인데요!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네!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맨시티는 당황스러웠다.
도망가면 빠르게 쫓아오는 고양의 저력에 숨이 턱 막혔다.
“방심하지 말자.”
강철인이 동료들에게 집중력을 요구했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길게 올라가던 공이 맨시티 진영으로 뚝 떨어졌다.
고양이 또 한 번 공격에 나섰다.
측면에서 질주하던 이진수가 가벼운 트래핑으로 떨어지는 공을 잡았다.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진수는 측면에서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이진수가 측면 스비스로 활동하면서 정성진이 좀 더 위로 올라왔다.
이진수는 라인을 맞춰 함께 뛰는 정성진의 위치를 확인했다.
맨시티의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이진수가 정성진을 향해 패스를 찔렀다.
그런 패스를 정성진이 받는 척하면서 옆으로 흘려보냈다.
맨시티의 수비수 카마도가 정성진을 마킹하다가 당황했다.
카마도의 자세가 무너진 틈으로 어느샌가 나타난 황진용이 강하게 슈팅을 때렸다.
강하게 날아간 슈팅이 맨시티의 골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그걸 본 황진용과 동료를 그리고 고양의 팬들까지 모두 아쉬워했다.
아!
『황진용 슈우웃! 하지만 아쉽게 빗나가고 맙니다.』
『고양 분위기 좋은데요, 이제야 고양이 뭔가 제대로 본인들만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고양이 공격적인 카드는 모두 내세웠는데요, 사실 이제 모 아니면 도입니다.』
『그렇죠, 어차피 1골 먹나, 2골 먹나 지는 것은 똑같거든요? 고양은 계속 득점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건 예상 밖이군."
콘라드 감독도 조금은 감탄했다.
반면, 곽찬구 감독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경기 끝날 때까지 모른다!"
아직 고양은 뒤처진 상태였다.
단 1골.
1골만 더 넣을 수만 있다면, 경기 향방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그런 와중에 고양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박형우 슈우웃! 수비수 몸에 맞고 라인 밖으로 벗어납니다! 고양의 코너킥!』
『자, 모처럼 얻은 코너킥인데요. 여기서 기회 한번 살려봐야죠!』
코너킥 키커로 호프만이 나섰다.
호프만이 신호를 보낸 뒤, 깔끔하게 공을 올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맨시티의 골문 앞으로 뚝 떨어졌다.
문전 앞은 양 팀 선수들이 한데 엉켜있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난데없이 한 인물이 펄쩍 뛰어올랐다.
유태준이었다.
최후방에 있어야 할 유태준이 어느샌가 나타나 낙하하는 공을 향해 정확히 이마를 댔다.
이마에 맞은 공의 궤적이 꺾였다.
맨시티의 수문장 조인스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그린 조인스를 지나쳐 그대로 골망을 크게 흔들었다.
출렁-
우와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 들어갔습니다. 골! 유태준이! 유태즌이 동점골을 만듭니다!』
『와아아아! 엄청난 헤딩골이네요!』
기어코 동점골을 만든 고양의 플레이에 지켜보던 팬들이 뒤집혔다.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어떤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와아아아!
『팀 내 가장 막내가, 팀이 가장 어려울 때 한 건 크게 해냅니다!
바로 유태준입니다!』
『새로운 괴물이네요. 정말, 유태준 선수, 정말 물건! 아니 괴물입니다! 아하하하!』
벤치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기쁜 마음을 잔뜩 표출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포효했다.
“이거지! 이거야! 으아아아!"
광란의 도가니였다.
『오늘 정말 역대급 경기네요. 분명 0:2에서 1:2가 됐다가 1:3에서 2:3
그리고 지금은 3:3이 됐습니다!』
『제가 클럽 월드컵 결승전을 여러 차례 중계했었는데요, 지금까지 중계했던 경기 중에서 오늘 경기가 정말 명경기네요.』
『기록을 좀 살펴봐야 하는데요. 2016년도 일본에서 열렸던 레알마드리드와 가시마의 결승전 경기에서 4:2로 레알마드리드가 승리를 했는데요. 그때 양 팀 합쳐 6골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6골이 나왔습니다!』
『아~ 오늘 왠지 득점이 더 나올 것 같아요.』
전반전은 전체적으로 맨시티의 우세 속에서 진행됐다면, 후반전은 모든 걸 걸고 나온 고양과 맨시티의 화력쇼로 바뀌었다.
***
"경기 미쳤네."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건 옆에 있던 천지원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따라잡았군요."
"그러니까요. 보고도 믿기지 않네요."
이럴 때 김 비서와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마 지금쯤이면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겠군요."
"그렇겠죠. 경기가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진행될 줄 누가 알겠습니까?"
경기가 끝난 뒤에 알았지만, 전반전에 0:2로 지고 있을 때만 해도 TV를 끈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가망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3이 된 지금은 달랐다.
TV를 껐다가 뒤늦게 소식을 들은 팬들이 다시 TV 앞에 모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서도 난리가 났다.
[0:2에서 3:3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고양 미쳤네. 이걸 동점 가네ㅋㅋ]
[맨시티 비응신들아! 이걸 동점 가냐!]
[토쟁이들 잔뜩 죽는 소리 들린다.]
[콘라드 재 뿌리네 ㅅㅂ]
[갓찬구! 갓찬구! 갓찬구!]
[유태준 진심 괴물이다. 수비 잘하는데 득점까지 ㄷㄷ 쟤도 나중에 나폴리 가려나?]
[오늘 정성진 폼도 장난 아닌데? 추격골 만들고, 오늘 공격 중심이네.]
[아, ㅅㅂ.TV 괜히 껐다.]
[맨시티 지는 거 아니냐? ㅋㅋ]
커뮤니티에는 결승전과 관련된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국내 축구 커뮤니티를 넘어 해외축구 커뮤니티에서도 이 경기에 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중계는 대박이겠네요."
"이거 강시윤PD한테 말해서 하이라이트 편집부터 싹 다 진행하라고 해요."
“이미 하고 있다고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훌륭하네요."
오늘 결승전과 관련된 VOD는 많이 팔릴 것 같았다.
아니, 많이 팔린다.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
맨시티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게 되자 양 팀 모두 극단적으로 라인을 위로 끌어올려서 싸우게 됐다.
『고양 뚫렸습니다! 위험한데요! 타말과 라비가 달리고 있습니다! 앞에는 유태준 혼자인데요!』
엄청난 속도로 고양의 수비 뒷공간으로 공을 몰고 쇄도하는 맨시티의 공격수들.
그런 공격수들을 향해 유태준은 마치 장판파의 장비처럼 홀로 상대했다.
쿵!
"크윽!"
드리블하던 타말이 유태준과의 경합에 밀려 바닥을 굴렀다.
유태준은 깔끔하게 공만 건드려서 라인 밖으로 벗어나게 했다.
『유태준이 막습니다!』
『히야~ 이걸 막네요. 아니, 맨시티의 공격수들을 상대로 유태준이 하나도 밀리지가 않네요?』
괴물 유태준.
분명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몇 번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경기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유태준의 이름을 알게 됐다.
이런 유태준의 활약 속에 고양은 좀 더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기는 상당히 다이나믹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양쪽 다 수비는 포기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자~ 이번에는 고양의 기회인데요!』
상대 공격을 한 번 막으면 바로 기회가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은 호프만이 오른쪽 하프스페이스에서 뛰어들어 가는 박형우를 향해 킬패스를 찔러넣었다.
공을 잡은 박형우는 폭주기관차처럼 드리블하며 상대 진영을 휘젓기 시작했다.
맨시티도 라인을 무지막지하게 끌어올리다 보니 수비 간격이 상당히 넓게 벌려 있던 상태였다.
『박형우 앞에 조인스 골키퍼만 있는데요! 박형우 슈우웃! 아아! 튀랑이 막습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라 생각했던 박형우가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튀랑의 몸을 날리는 수비에 막혔다.
이렇게 서로가 공격적으로 치고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득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정규시간 9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 대기심이 추가 시간을 알리는데요, 네, 5분 주어집니다!』
『5분! 짧은 시간 아닙니다!』
이제 서로에게 필요한 건 승부를 가를 수 있는 1골이었다.
『정규시간 내에 득점하지 못하면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지만, 그 어느 팀도 그렇게까지 경기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는 팀은 없을 겁니다.』
『그렇죠. 최대한 정규 시간 내에 승부를 내야 하는데요, 특히, 맨시티의 경우 결승전이 끝나면 그다음부터 박싱데이 일정이 시작된단 말이죠? 선수단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라도 정규 시간 내에 승부를 보는 게 맞습니다.』
『마침 클라드 감독이 교체를 시도합니다.』
맨시티는 쿤데와 호드리고를 빼고 오데사와 발베르데를 투입했다.
『콘라드 감독도 승부수를 띄우는데요.』
『이건 추가 시간 내에 모든 걸 끝내겠다는 의도로 보이네요.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선수거든요.』
때맞춰 고양도 교체가 있었다.
『고양도 교체카드 한 장을 추가로 사용합니다. 한석원이 빠지고 백종수가 들어갑니다. 』
『연장전을 대비해서 뒷문을 좀 더 강화하겠다는 의도 보이는 교체네요.』
양 팀 감독이 서로의 전략에 맞춰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
그렇게 추가 시간에 돌입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맨시티에게 코너킥이 주어집니다!』
후반 1분 30초가 막 지나는 상황에서 맨시티가 코너킥을 얻었다.
강철인이 코너킥을 차올렸다.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공은 골문 반대 방향으로 굴절되어 날아갔다.
그 순간, 맨시티 선수들이 모두 손을 들고 항의했다.
"PK! 팔에 맞았어요! 팔!"
맨시티 선수들이 PK를 주장한 것이다.
이에 주심이 경기를 잠시 멈추고 VAR과 교신했다.
그러자 VAR 쪽에서 인플레이 화면을 살펴본 뒤, 말했다.
“팔에 맞은 거 같네. 그런데 자네가 한번 확인해봐야겠어."
VAR쪽에서 온 필드 리뷰를 제안했다. 주심은 바로 온 필드 리뷰에 들어갔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하던 주심은 고심 끝에 판정을 내렸다.
짧게 휘슬을 분 주심이 양쪽 손가락으로 박스 표시를 하더니 곧 고양의 페널티박스 쪽을 가리키며 PK를 선언했다.
“뭐야? 왜 PK야?"
『음, 저희가 리플레이 화면을 살펴보니까, 공이 떨어질 때, 경합 과정에서 호프만의 팔에 맞았네요. 주심은 이걸 고의성 여부를 봤을 때, PK가 맞다 선언한 것 같습니다.』
그간 잘해오다가 중요한 순간에 엄청난 실책을 저지른 호프만.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사이, 맨시티의 PK가 진행됐다.
키커로 강철인이 나섰다.
사실상 승부를 가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막아야 한다!"
골키퍼 박지원도, 지켜보는 동료 선수들과 팬들 모두 간절했다.
그 순간, 강철인이 힘차게 슈팅을 때렸다.
출렁-
우와아아아!
모두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듯 강철인은 아주 깔끔하게 고양의 골망을 흔들었다.
『아. 고양이 실점하고 맙니다. 강철인의 득점으로 맨시티가 4:3으로 앞서나갑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추가시간은 겨우 1분 남은 상황.
『VAR 때문에 오버된 시간이 있어서 추가 시간에 추가 시간이 주어질 것으로 보이기는 하는데요. 그래도 고양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맨시티는 거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때, 박형우가 선수들에게 외쳤다.
"이대로 주저앉을 생각이야?"
주장으로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해보자. 기적은 가능해! 우리 서로를 믿자!"
그렇게 말하고 실의에 빠진 호프만을 격려했다.
“괜찮아, 아직 시간 남았어.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하나 만들자. 그게 지금 너나 우리가 할 일이야."
그렇게 재개된 킥오프.
고양의 선축으로 재개됐다.
팡!
오세진이 측면으로 길게 넘겨준 공을 이진수가 잡았다.
여전히 힘이 남아 있는 이진수는 빠르게 측면을 타고 맨시티 코너킥 존 근처까지 향했다.
네벨이 그를 막아섰지만, 힘이 조금 많이 빠진 상태였다.
이진수는 어렵지 않게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그대로 맨시티의 골문 쪽으로 향했다.
조인스 골키퍼가 올라오는 공을 잡기 위해 자세를 잡으려는 그때, 맨시티의 수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이가 있었다.
바로 호프만이었다.
호프만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누구보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러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보고 타이밍 맞춰 맨시티의 수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출렁-
우와아아아아아아!
호프만의 이마에 정확히 닿은 공이 그대로 맨시티의 골망을 흔들었다.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정확히 라인을 타고 들어갔기 때문에 호프만의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호프만의 득점과 동시에 동료 선수들과 벤치에 있던 모든 이들이 호프만을 향해 뛰어갔다.
호프만은 광기에 물든 고양 팬들 앞으로 뛰어가 두 팔을 벌리고 포효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 기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