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맨시티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잡습니다. 강철인이 준비하는데요!』
강철인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는앞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벽을 절묘하게 스치고 지나간 공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렁-
와아아아아!!
"허."
박지원은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지켜만 볼 정도로, 강철인의 프리킥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허무하게 골문 안 바닥을 구르는 공을 본 박지원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탄식했다.
한편, 득점에 성공한 강철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그런 강철인 주변으로 맨시티의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가 함께 환호했다.
『맨시티가 추가 득점하면서 다시 점수 차이를 벌립니다!』
『이렇게 되면 고양이 힘드네요, 스코어가 1:3이나 됐는데, 1:2하고 1:3은 분위기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네, 위원님 말씀대로 고양이 한 골 만들면서 뭔가 추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지금 강철인의 프리킥 득점은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득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전반전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실점 상황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렵다.”
어지간하면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않던 황진용의 입에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그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던 고양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상황이 어려웠다.
결국 조금은 맥이 빠진 상태에서 전반전을 마치게 됐다.
"이런 젠장!"
"박형우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로 라커룸에 들어왔다.
“진짜 이럴 거야?"
평소의 조용했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주장 완장을 건너받은 이후, 그는 부쩍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팀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니 화가 났다.
“우리가 이거뿐이 안돼? 어?"
주장의 강한 질책에 선수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 우리 팀을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우리 팀이 맞나 싶을 정도야. 다들 정신 차리자.”
그때, 호프만이 끼어들었다.
“할 수 있어!"
어설픈 한국어.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자!"
호프만은 박형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할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런 그의 행동에 박형우는 조금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의욕이 팍 깎여진 상태였다.
'젠장. 이럴 때 지우형이 있었으면.....'
오늘따라 은퇴한 주장이 그립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곽찬구 감독이 조금 늦게 들어왔다.
“자! 자! 주목!"
그는 손뼉을 치며 주변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전반전은 무척 힘든 경기를 했다. 45분 동안 뛰느라 고생이 많았어."
그는 질책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감독이 질책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곽찬구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형우가 질책을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뒷수습을 도와줘야겠지.'
주장의 따끔한 질책에 감독의 질책까지 더해지면 자칫 분위기만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곽찬그 감독은 질책보단 다음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반전에 우리가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
“무조건 공격, 오르지 공격만이 살길이다."
무조건 공격이란 말에 일부 선수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무언가 눈치챈 일부 베테랑 선수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곽찬구 감독을 쳐다봤다.
"이대로 1골을 더 먹든, 2골을 더 먹든, 결과는 지는 것뿐이야. 설령 우리가 지더라도, 제대로 공격은 하고 져야 하지 않겠나? 물론 우리가 진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고."
곽찬구 감독은 극단적인 공격 축구를 예고했다.
"유태준."
"네, 네?"
갑작스러운 호명에 놀란 유태준이 반응했다.
“너만 수비해.”
"네!?"
“지원이는 골키퍼니까 있어야 하고, 너하고 지원이 둘이서만 수비 봐.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올라가!"
“그게 무슨…..."
유태준을 비롯한 선수들이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괜찮아. 이에 관한 결과는 오로지 내가 책임진다. 너희들은 나를 믿고 올라가서 싸워, 그리고 득점에만 집중해, 실점해도 괜찮아, 오로지 득점! 득점! 득점! 이것만 생각하라고!"
극단적인 공격 축구에 맞춰 교체 카드도 상당히 공격적으로 바꿨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스즈키하고 종호 모두 빠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세진이하고 진수가 들어가."
오세진하고 이진수 모두 공격적인 카드였다.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빼버리면서, 안정보단 공격에 엄청난 비중을 실었다.
'망하면 X되는 거 아냐.'
'큰일이네.'
곽찬구 감독은 원래 극단적으로 무리수를 두는 스타일의 감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고양 유나이티드 감독으로서 펼치는 마지막 경기였다.
이 경기를 아무것도 못 해보고 허무하게 패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줘야만 했다.
“너희들 예전에 우리가 포항에게 0:4로 지고 있다가 5:4로 대역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나?”
선수들은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을 두고 지금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 그 경기를 뛴 선수들이 여기에 있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라, 분명 너희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저력을 지닌 선수들이야. 너희 자신을 믿고, 팀을 믿어."
"......"
“너희도 상당히 부담을 느낀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자. 알겠나?”
"네!"
"좋아, 끝까지 가보자!"
***
라커룸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현장에서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다.
“매입에 성공했다고요? 잘됐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내가 전화를 끝내자 천지원 사장이 말을 걸었다.
“성공한 겁니까?”
“네, 경기장 옆에 있던 공공부지 매입에 성공했습니다. 시에서도 조금 전에 승인했다고 하네요."
우리는 새로운 사업을 하나 기획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텔 사업이었다. 전국에 호텔을 짓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경기장 옆에 호텔 하나를 지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기장 주변의 인근 땅들이 모두 시가 소유하고 있는 공공부지였다.
그래서 쉽게 매입할 수 없었던 상태였다.
일전에 우리가 경기장을 매입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꽤 길고 긴 협상 끝에 우리는 가까스로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땅을 매입했다.
“굳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눈앞에서 바로 경기를 볼 수 있는 경기장 뷰가 제공되는 호텔을 볼 수 있겠군요."
"네, 기대가 큽니다.”
경기장 뷰가 제공되는 호텔은 전 세계를 따져봐도 몇 개 없다.
"이번에 고양시에서도 승인한 이유가 우리가 호텔을 짓겠다고 해서 허락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고양특례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숙박업소 부재로 골머리를 안고 있었다.
킨텍스 쪽에 5성급 호텔을 비롯해 몇 개의 호텔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킨텍스에서 박람회 행사에 참여하는 외부지역 기업들이 고양시가 아닌 가까운 서울에 호텔을 잡아두고 왔다 갔다 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때도 있었다.
여기에 고양 유나이티그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외부 유입이 훨씬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를 보기 위해 찾아온 국내 팬들 외에도 가까운 아시아 쪽 팬들도 제법 많았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최근 활약에 따른 영향이 컸지만, 경기장 자체가 잘 지어져서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도 있었다.
축구팬이 아니어도 관광지로 인정받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최고급 호텔을 짓겠다고 말하니, 고양시도 별달리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사실 협상이 길었던 이유는, 너무 고양 유나이티드 쪽에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시의원들의 반대가 심했었다.
그래도 이 부분은 우리의 위대한 사촌, 지태선의 힘을 빌려 해결했다.
현 정부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으며, 차기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잠룡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지태선이 움직이니, 시의원들도 무작정 반대만 할 수는 없었다.
“자, 일 하나는 이렇게 해결했고, 이제 남은 건 눈앞에 있는 결승전이네요."
남은 시간은 45분.
물론 연장전과 승부차기도 있었다.
하지만 남은 정규 시간 45분 동안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은 없었다.
“힘내자, 우리 팀.”
나는 진심으로 우리 팀을 응원했다.
***
삑!
주심이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양 팀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후반전은 맨시티의 선측으로 시작됐다.
이미 득점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있던 맨시티는 급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공을 주고받으면서 경기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콘라드 감독은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엄청난 변화를 줬군. 모두 공격적인 카드만 내세웠어.'
콘라드 감독은 상대가 어떤 수를 들고 나왔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상대 감독은 모험수를 거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상황이 꽤 급했나 보군.'
크게 자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 어떤 감독도 함부로 극단적인 카드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실천에 옮긴 곽찬구 감독을 보고 감탄했다.
'허나, 현실은 매우 고달플 거다.'
콘라드 감독은 상대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맨시티에게 그 어떤 영향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쿵!
"어엇!"
측면에서 드리블을 시도하려던 라파엘이 정성진의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빼앗겼다.
정성진은 바로 옆에 있던 오세진에게 공을 넘겼다.
교체로 들어왔던 오세진은 누구보다 의욕이 넘쳤다.
'뭔가 보여줘야 해!'
쟁쟁한 선수들과 험난한 주전 경쟁을 펼치는 오세진.
이번 결승전에서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경기도 똑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그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쉬레와 쿤데를 탈압박으로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당황한 두 선수를 지나쳐 아크 근처에 있는 호프만에게 패스했다.
쉬레와 쿤데가 빠진 자리에 호프만이 여유롭게 공을 받았다.
순식간에 깨져버린 맨시티의 수비.
그 틈 사이로, 호프만이 공을 밀어 넣었다.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공을, 라인을 타고 들어가던 한석원이 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슈팅을 때렸다.
팡!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펼쳐진 시원한 슈팅이 그대로 맨시티의 골망을 흔들었다.
출렁-
와아아아아!!
그 순간, 지켜보던 고양 유나이티드의 팬들과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와 대기 선수들 모두 환호했다.
득점에 성공한 한석원도 포효하며 뛰어갔다가 뒤늦게 달려온 호프만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좋았어!"
“잘했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고양은 자신들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대로 계속하면 돼!"
“해보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그렇게 스코어는 2:3이 되었고, 승부의 끝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