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이 내용이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천지원 사장으로부터 직접 대면 보고를 받은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이 굳이 우리 팀에?"
뭐가 아쉬워서?
“저도 놀랍기는 합니다만, 단장 말로는 이 사람이 우리 팀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허어."
내 손에 놓인 서류에는 한 인물의 프로필이 나와 있었다.
“로베르토 콘라드."
이 사람이 우리 팀 후임 감독으로 관심을 드러내다니.
“단장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 로치오 단장뿐.
"죄송합니다. 지금 단장은 다음 일정이 있어서 한국으로 먼저 돌아간 상태입니다."
"아."
“결승전이 끝나면 그때 상세히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허허 웃었다.
“콘라드 감독 언론이 어떻게 되죠?”
“듣기로는…… 연간 330억 정도 받는다고......"
"330억, 허허."
우리가 돈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정도 액수는 충분히 지급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콘라드 감독은 현 축구계에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런 감독이 후임 감독으로 온다면 전 세계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겠지.
“우리 팀에 어울리는 감독일까요?"
“어울리고를 떠나서 세계 최고의 감독입니다. 물론 우리 팀을 몇 단계
이상으로 끌어올려 줄 능력이 있고요."
"하긴."
세계 최고의 감독이 온다는데 마다할 필요 없다.
나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단장한테 전하세요. 영입 진행하라고. 관련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하고."
“알겠습니다."
***
이번 클럽월드컵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은 단연 고양 유나이티드였다.
K리그 클럽이 클럽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각 지역별 대륙 최고의 클럽들을 꺾고 결승전까지 올라왔다.
경기 과정이나 결과 모두 그저 그런 아시아 팀이라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 실력을 선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맨체스터시티와 리턴매치를 펼치게 됐다.
두 팀 모두 지난번 여름에 한번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다.
기대 이상의 치열함과 박빙의 승부로 주목을 받았다.
[뉴스]영국 베팅업체, 클럽월드컵 결승전 결과로 맨시티 우승 예측.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고양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보였다 하더라도, 현존 최강팀인 맨시티를 꺾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다."
경기 전,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에게 첫마디를 던졌다.
감독으로서 던지는 냉정한 첫마디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력이 있는 팀이다. 충분히 우리가 가진 힘을 보여 주면, 예상치 못한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선수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결승전까지 올라온 이상 그들은 이미 할 만큼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여기가 종점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다. 승리와 우승은 매번 우리를 즐겁게 하지. 이번에도 배고픔을 조금이나마 채워보자. 알겠나?”
"네!"
라커룸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8 클럽월드컵 결승전, 고양 유나이티드 대 맨체스터시티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이형우입니다. 옆에는 박천명 해설위원이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늘 경기도 생중계되고 있었다.
클럽월드컵이 진행되는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과 유럽 모두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현지 중계를 진행하는 국가들이 제법 있었다.
지태훈이 이끄는 TH미디어도 중계팀을 파견해 현지 중계를 시도했다.
『오늘 고양이 지난 AFC챔피언스리그 대회에 이어서 이번 클럽월드컵에서 또 한 번 역사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맨시티가 현재 유럽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분명 쉽지 않은 경기가 될 테지만, 이미 두 팀은 약 4개월 전에 맞붙었 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하고 또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두 팀 모두 엄청난 상승세이기는 합니다.』
화면에는 경기장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오늘 경기를 치르는 장소는 요코하마에 있는 요코하마 국제 경기장 인데요. 72,327석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고요. 오늘 상당히 많은 관중 분들이 경기장을 찾아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찾아온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맨시티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도 보이고요.』
멀리 영국에서 일본까지 온 맨체스터시티 현지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외에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축구팬들도 많았다.
사실 두 팀의 경기가 일본 현지에서도 상당히 주목받다 보니, 일본 사람들도 경기장을 많이 찾은 것이다.
『공교롭게 재미난 점은, 두 팀 모두 이번 클럽월드컵이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네, 의원님 말씀대로 맨체스터시티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챔피언스리그 에서 우승했고요, 고양도 똑같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자격으로 클럽월드컵에 올라왔죠.』
『오늘 누가 이기든 모두 역사로 기록될 날입니다.』
『자, 그럼 이 역사적인 결승전에 나올 양 팀 선발 명단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맨체스터시티입니다.』
조인스(GK)
카마도 | 튀랑 | 네벨
라파엘 | 쉬레 | 쿤데 | 호드리고
타말 | 강철인 | 라비
감독 : 로베르토 콘라드
『맨시티는 3-4-3인데요. 역시 강철인을 활용한 공격 전개를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맨시티는 쿤데 선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원래 저 자리에는 쿤데가 아닌 발베르데가 뛰는데, 최근 발베르데가 부진한 모습을 좀 보였거든요. 오늘 경기에 벤치에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지난 클럽월드컵 첫 경기에서도 발베르데의 기량이 정상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콘라드 감독이 바로 교체해서 빼고 그 자리에 쿤데를 넣었거든요.』
『쿤데가 주 포지션은 2선에서 뛰지만, 필요하면 3선도 가능한 자원이죠.』
『그렇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발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지원(GK)
카초 | 라시모프 | 유태준 | 정성진
황진용 | 스즈키 | 석종호 | 호프만
박형우 | 한석원
감독 : 곽찬기
『고양 유나이티드의 전술에 조금 변화가 있네요.』
『김지우 선수가 은퇴한 이후 빈 자리를 석종호 선수가 맡아주고 있는데요. 워낙 맨시티 선수의 공격력이 좋으니까, 평소 즐겨 쓰는 공격적인 스리백보다는 미드필더 지역에 무게감을 두는 쪽으로 전술 활로를 잡은 것 같습니다.』
『박형우 선수와 한석원 선수 모두 침투에 능한 선수들인데, 일단 막고 뒤를 노려보겠다는 뜻이겠죠?』
『그렇죠. 맨시티가 공격할 때는 기본적으로 라인을 굉장히 높게 올리기 때문에, 분명 뒤에 공간이 생기거든요. 고양은 아예 이 공간 사이를 노려서 득점까지 만들어보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자, 이제 대망의 결승전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양 팀 선수들이 중앙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와 함께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선수들을 향해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축구팬이 환호했다.
긴장된 얼굴로 나오는 양 팀 선수들은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뒤 각자 정해진 위치로 향했다.
삑!
우와아아아!
그리고 곧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
전반전은 고양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툭. 툭.
공은 빠른 속도로 고양 선수들의 발밑을 왔다 갔다 했다.
평소에는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나서는 고양이었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신중하게 뒤에서부터 볼을 돌리면서 기회를 엿봤다.
맨시티도 고양이 무엇을 노리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압박해!"
터치라인에 서 있던 콘라드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강철인을 비롯한 맨시티의 최전방 공격수들이 적극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태준아! 볼 줘!"
석종호가 유태준에게 볼을 달라고 손을 들고 외쳤다.
유태준은 그런 석종호를 향해 바로 패스했다.
그 순간, 뒤에서 라비가 강하게 석종호를 압박하며 밀쳤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석종호의 몸이 무너졌다.
“위험해!"
와아아아아!
라비가 바낸 공을 강철인이 바로 잡고 빠르게 고양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놀란 라시모프와 유태준이 서둘러 수비하기 위해 거리를 좁혔지만, 강철인은 기어코 두 사람 사이로 슈팅까지 만들었다.
팡!
미사일처럼 날아간 공이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팡!
박지원이 있는 힘껏 팔을 뻗에 공을 끝내 뒤로 보냈다.
오우!
골대 뒤에 있던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놀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호야! 너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박지원이 석종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골키퍼이자 팀의 맏형으로서 석종호에게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석종호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사과했다.
그 장면을 조용히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곽찬구 감독이었다.
콘라드 감독처럼 터치라인 앞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던 그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어.'
상대는 약간의 틈이 금방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라시모프가 진로를 약간 방해하고 박지원의 선방이 합쳐졌기에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무서운 놈이구만."
강철인의 개인 플레이는 여름에 봤던 것과 훨씬 차이가 컸다.
더 무서운 존재로 성장한 것 같았다.
“괜찮아, 집중하자!"
박형우가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삑!
맨시티의 코너킥.
강철인이 코너킥 존에 섰다.
그가 골문 앞에 있는 맨시티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신호를 받은 맨시티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팡!
강철인은 공을 찰 때 힘을 주지 않는다.
언뜻 가볍게 차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묘하게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기하학적으로 꺾인 공이 그대로 골라인 바로 앞쪽으로 뚝 떨어졌다.
"......!"
베테랑 골키퍼 박지원도,
고양의 철벽 수비수였던 라시모프와 유태준도,
대인 마킹하던 스즈키와 석종호도,
지금의 상황에 눈만 부릅뜨며 멍하니 있어야 했다.
그렇게 뚝 떨어지는 공을 쉬레가 가볍게 발끝으로만 건드리며 방향만 바꿨다.
출렁-
우와아아아아!!
득점에 성공한 쉬레가 두 팔을 벌려 코너킥 존으로 뛰어갔다.
코너킥 존에서 대기하던 강철인은 달려오는 쉬레를 향해 두 팔를 벌렸다.
"브로!"
쉬레가 강철인의 품에 안겼다.
강철인은 그런 쉬레를 와락 끌어안고 이마에 가볍게 뽀뽀까지 해주었다.
"이런 씹."
평소 욕 하나 제대로 못 하던 박지원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저걸 어떻게 막아?"
"와, 진짜 강철인 괴물 같은 놈."
팽팽했던 분위기가 강철인의 괴물 같은 코너킥 한 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
『아! 전반 6분 만에 쉬레에게 실점하는 고양입니다.』
『 와, 리플레이로 다시 봐도, 이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코너킥이네요.』
『정확하게 골라인 앞 빈공간 앞으로 뚝 떨어지는데, 베테랑인 박지원 골키퍼도 자신의 뒤쪽으로 뚝 떨어지는 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쉬레도 이걸 알고 페널티박스 바깥쪽에 있다가 바로 뛰어 들어갔거든요? 이건 맨시티의 부분 전술이자 강철인이 만든 코너킥이네요.』
『오늘 시작부터 맨시티가 심상치 않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고양에게는 상당히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미리 틀어준 스마트폰 중계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중계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경기를 지켜보는 나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거 큰일 났네."
오늘 경기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