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로치오 단장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을 마음속에 점 찍어 두고 있었다.
언젠가 떠날 수 있는 곽찬구 감독의 후임으로 누가 과연 팀을 이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쟁은 팀 내부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주제이기도 했다.
지태훈이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고양 유나이티드는 현재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이 황금기의 틀을 만들어준 이가 바로 곽찬구 감독이었다.
대부분은 이 뒤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허나, 로치오 단장은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만큼은 고양 유나이티드를 충분히 이끌 수 있는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고양 유나이티드 출신 선수들을 많이 다루었다.
대표적인 선수를 꼽자면, '박형우'가 있다.
고양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이후 완벽한 변신을 이룬 박형우는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의 중용으로 대표팀에서도 대활약을 펼쳤다.
여기에 전술적 색채도 맞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죠. 여기에 제이든 감독은 현재 무직입니다."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미국 MLS LA갤럭시를 1년 정도 지휘하고 현재 쉬고 있었다.
“쉽네요. 추진해 보세요."
천지원 사장도 긍정적으로 추진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굉장히 흥미로운 제안이네. 허나, 지금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네.
직접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과 연락을 취한 로치오 단장.
제이든 감독은 거절을 표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절할 수 있지.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겠어."
로치오는 바로 미국행 표를 끊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그렇게 현지에서 감독을 만난 로치오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됐다.
"이렇게 멀리 찾아와 줘서 미안하고 고맙네."
“감독님께서 저희 팀을 이끌어 주신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미안하네. 사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네."
알고 보니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심장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LA갤럭시 감독 지휘봉을 1년 만에 내려놓으셨던 거군요.”
“그렇다네, 이 일은 최대한 비밀로 하고 싶었네."
LA갤럭시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 많은 뒷말들이 있었다.
그가 팀을 이끌던 시절, LA갤럭시는 서부 컨퍼런스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인 MLS컵에서 동부의 강력한 우승 라이벌 IDC유나이티드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FA컵인 US오픈컵에서 뉴욕시티를 꺾고 우승했다.
그렇기에 단순히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지휘봉을 내려놓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의사가 간단한 일상생활은 괜찮지만,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군."
의사가 대놓고 '일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버린 터였다.
“난감하군."
로치오 단장 입장에서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 있게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을 영입하겠다고 미국까지 찾아갔지만 이런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다.
"이겨내실 겁니다."
“이겨내야지 고맙네, 아직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거든."
“나중에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바라는 바네."
대화가 끝날 무렵, 제이드 감독이 말했다.
"최근에 한국 대표 감독이 바뀌었다고 들었네."
“네, 곽찬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입니다.”
“그렇군, 좋은 감독을 선임했군."
그도 곽찬구 감독을 좋은 선임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럴까?
"모쪼록 건강 회복하길 바랍니다."
“고맙네, 조심히 잘 돌아가게."
그렇게 로치오는 소득 없이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때가 고양 유나이티드가 리버플레이트와 경기를 치를 때였다.
“하아, 쉽지 않군."
로치오는 팀 숙소 근처에 있는 유명 스시집 에서 초밥과 맥주를 먹으며 한숨을 쉬었다.
감독 후보가 꼭 크리스토퍼 제이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있었다.
허나, 제일 궁합이 맞은 감독이 나가떨어졌다.
로치오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그때였다.
띠리.
“어라."
"응?"
초밥을 먹던 르치오는 예상치 못한 이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서 다 보네?"
"놀랍네, 어쩐 일이야?"
"나야, 저녁 먹으려고 왔지."
콘라드 감독이었다.
그는 다찌에 앉아 있는 로치오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결승전에서 만날 팀의 단장하고 감독이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도 괜찮은 거냐?"
"뭐, 어때? 우리가 평범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우려를 나타내는 로치오와 달리 콘라드 감독은 태평하게 반응했다.
"스시, 비루."
"오. 일본어 좀 하네?”
"이거 밖에 할 줄 몰라.”
간단하게 주문을 마친 콘라드는 슬쩍 로치오를 보고 말을 걸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나?"
“뭐, 일이야 늘 있지."
“뭐야, 무슨 일인지 말 좀 해봐."
"안 돼."
“그러지 말고 얘기해, 우리가 몇 년도 아니고 몇십 년을 안 사인데 말이야."
콘라드와 로치오 모두 선수 시절 유벤투스에서 함께 뛰었다.
두 사람의 친밀도는 깊었다.
“혹시 한국 생활이 맞지 않나?”
"그럴 리가, 오히려 너무 잘 맞아서 좋아."
"그래?"
"한국 음식과 문화 모두 이탈리아하고 비슷해. 조만간에 가족 모두 한국으로 올 거야."
"오, 아예 눌러살 생각이구만?"
콘라드는 흥미를 보였다.
선수 시절 때나 유벤투스 단장 시절 때 모두 그가 아는 로치오는 상당히 강성적인 면모가 있었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어떻게 보면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허나, 매사 진심인 태도를 보였기에 콘라드도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 까다로운 로치오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니, 그럼 뭐가 문제인 거야?"
콘라드는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졌다.
로치오는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속내를 밝혔다.
"후우~․ 후임 감독 문제로 골치 아프다."
“아, 얘기는 들었어. 너희 팀 감독이 이번 대회를 끝으로 그만둔다며? 괜찮은 감독이었던 것 같았는데."
“좋은 감독이지, 그러니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영입된 걸 테고."
“오, 한국 국대로 가나?”
“어, 그건 몰랐나?”
"몰랐지.”
마침 주문한 맥주와 초밥이 나왔다.
콘라드는 맥주를 마셨다.
그걸 본 로치오가 한마디 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감독이 술을 마셔도 되는 건가?"
"맥주 한잔 정도는 입가심 수준이지."
"선수들한테는 먹지 못하게 하잖아."
"그거아 당연히 경기를 뛰는 건 선수들이니까."
"선수들이 뭐라 하지 않나?"
"누가 나한테 뭐라 할 수 있겠나?”
구단주도 감독의 눈치를 볼 정도로, 콘라드 감독의 팀 내 영향력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뭐?"
“시티에 있으면서 리그, FA컵, 리그컵, 챔피언스리그까지 모두 우승했어. 이 정도면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루지 않았겠어?”
"......"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나는 유럽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는 다
이루었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뭐, 그만두기라도 할 건가?"
"어."
"......?"
예상치 못한 말에 로치오는 잠깐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내가 잘 못 들었나? 정말 그만둔다고?"
"어."
“……미쳤나?"
“유벤투스 단장직 버리고 아시아로 간 사람보단 덜 미쳤다고 보는데?"
"허."
로치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맨시티에서의 콘라드는 현재 최정상급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장기집권은 내 취향이 아니야."
가볍게 맥주를 마신 크라프가 그렇게 말했다.
"구단도 알고 있나?"
"이미 대회를 치르기 전에 이야기했어. 물론 이 사실은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지."
로치오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콘라드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난 덕분이라고 하지"
***
[단독] ‘고양의 왕’ 김지우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클럽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사이, 은퇴한 김지우의 단독 인터뷰 기사가 업로드됐다.
"8살에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했었네요. 그때 동네 친구 중에 축구 교실 다니는 친구를 알게 돼서 같이 축구교실을 다니면서 시작되었죠."
김지우는 자신이 최그를 시작한 계기부터 프로 축구 선수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연령별 대표에 뽑히고, 독일에 갈 때만 해도 제 인생은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독일 생활은 어려웠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우연히 만난 지금의 아내 덕분에 그는 독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유요? 가족을 위해서였어요."
유럽에 더 남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남은 선수 생활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저의 선수 생활에 커다란 변화의 포인트였습니다."
고양의 왕.
이 칭호는 사실 활약도를 보면 박형우에게 어울리는 칭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알고 있었다.
보이지 않은 곳과 중요한 곳에서 활약하며 오랜 기간 팀에서 헌신해준 선수가 바로 김지우였다는 것을.
“필드에 나가서 뛰고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많은 활약 끝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은퇴 후의 삶이었다.
“제가 뭘 할 거냐고요?"
은퇴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동안 고마을 많이 했어요. 코치직 제의도 들어오고, 행정집으로 준비할까도 생각했죠. 그런데 말이죠."
김지우는 고민 끝에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정말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에이전트가 될 겁니다."
고양의 왕은 이제 누군가를 도울 에이전트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대망의 클럽월드컵 결승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양 팀 선수들 모두 결승전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고양 유나이티드의 박형우는 곽찬구 감독으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나도 듣고 놀랐다. 하지만 단장이 우리한테 이런 절로 거짓말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이번 대회 주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형우.
그는 여러 상황을 겪어왔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다음 시즌에 콘라드 감독이 내 후임으로 올 거다.”
박형우는 저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아무리 들어도 믿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콘라드 감독은 유럽 최정상급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머나먼 아시아까지 온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이야기는 너만 알고 있어, 다른 선수들에게는 비밀로 해."
"어째서 저한테 알려주시는 겁니까?"
“네가 주장이니까. 그리고 지금 팀에서 너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지원이 형이 있잖아요."
“지원이도 믿을만하지.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지?”
"......"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단장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거다."
박형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