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드디어 끝났군.”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클럽월드컵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사이, 나는 이사를 마쳤다.
“여기가 우리가 새롭게 지낼 보금자리야.”
원래 살던 집에서 벗어난 나는 아버지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했다.
“기분이 묘하네요.”
“나도 그래.”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신 걸까?”
내가 회장이 된 후, 박준후 팀장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본인이 살던 집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내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면 그때 이 집을 유산으로 넘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쩐지 이 집만큼은 처분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큰형은 아버지가 남긴 것들을 모두 정리했지만, 이 집만큼은 처분할 권리가 없었다.
“만약에 태훈 씨가 회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박 팀장님 말로는 그런 상황이었을 경우 알아서 하라고 전하셨대.”
“음.”
이 집을 물려주었다는 것은, 나를 진정한 차기 회장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박준후 팀장을 비롯해 아버지를 따랐던 인원들이 나를 정통 후계로 인정했다.
비록 서자라고 해도, 아버지의 의견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지.”
이제 본격적인 회장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보고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아, 무엇이죠?”
이사를 도와준 박준후 팀장이 나에게 보고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조금 전 TH투자회사가 영신전자의 최대 지주회사로 등극했습니다.”
“오.”
“이제 영신그룹은 완벽히 회장님의 것입니다.”
꽤 오래 걸렸던 지분 승계가 마침내 끝났다.
아버지와 형이 가지고 있었던 지분을 TH투자회사와 내가 나눠서 받았다.
그 과정에서 TH투자회사가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등극했던 것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경 쓰였던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었다.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볼 수 있겠군.”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나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역할은 이제 천지원 사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천 사장은 잘하고 있나요?”
김유리의 물음에 나는 당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원래 잘했던 사람이잖아.”
“다행이네요.”
평소 같으면 일본까지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한국에서 TV로 중계를 보며 응원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경기가 내일이던가?”
“네. 내일 저녁이요.”
“오, 상대가 누구지?”
“상대는…….”
* * *
클럽월드컵 경기를 위해 각 대륙에서 유명한 클럽들이 일본에 모였다.
이번 클럽월드컵에 참여한 팀들의 대진표는 다음과 같다.
[J리그 우승팀] 가와사키
VS
[오세아니아 챔피언] 오클랜드FC
이 두 팀이 먼저 플레이오프 승부를 겨룬다. 이 두 팀 중 승리한 팀이 6강전에 나선다.
이후 6강전에서는 각 대륙 최상위 클럽 대항전 우승팀이 기다리고 있다.
P1
[플레이오프 승리팀]
VS
[아프리카 챔피언] FC마젬베
P2
[아시아챔피언] 고양 유나이티드
VS
[북중미챔피언] 아메리카FC
포트배분에 있어 랭킹이 낮은 아시아, 아프리카, 북중미 챔피언 클럽들이 6강전을 치른다.
이후 4강전에서는 대륙 최상위 클럽 대항전 랭킹이 높은, 유럽 챔피언과 남미 챔피언이 기다리고 있다.
[P1 승리팀]
VS
[유럽 챔피언] 맨체스터시티
[P2 승리팀]
VS
[남미 챔피언] 리버플레이트
이 4강전에서 승리한 팀이 마침내 세계 최고의 클럽 왕좌 자리를 두고 격돌하게 된다.
중간에 져서 탈락하더라도, 순위 결정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클럽월드컵.
【슛닷컴】J리그 챔피언 가와사키, 오클랜드FC에 1:0 진땀승.
클럽월드컵의 개막전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참여한 가와사키가 오클랜드에게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고바야시의 결승골로 6강에 합류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에 6강전이 진행됐다.
이 경기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일본의 수도, 도쿄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2028클럽월드컵 6강전, 고양 유나이티드 대 아메리카FC의 경기를 생중계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옆에는 한찬희 해설위원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는 라이브 중계로 진행됐다. 경기장은 도쿄FC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도쿄 스타디움이었다.
그곳에 2명의 중계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적인 날인데요. 오늘 두 팀의 경기를 어떻게 보시나요?』
『고양 유나이티드의 역사적인 첫 클럽월드컵 데뷔전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상대가 아메리카인데요, 이 팀은 멕시코 클럽입니다. 최근 북중미 대회를 우승한 챔피언인데요. 여기는 ‘작은’ 멕시코 국가대표팀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위원님 말씀대로, 여기에는 현재 멕시코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산토스, 히메네스, 구티에레스 등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옛날에 축구를 보신 분들이라면 착각하실 수도 있는데,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와 라울 히메네스, 에리크 구티에레스 선수와는 전혀 다른 선수입니다.』
『하하. 네.』
『아무튼 이 아메리카FC는 작은 멕시코답게, 상당히 빠르고 기술적인 플레이를 많이 선보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이 아메리카FC의 공격을 잘 막아내면서 득점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카메라 화면에는 아메리카FC 선수들이 몸을 푸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 선수들 밑으로 역대 전적을 설명하는 자막 하나가 나왔다.
그러자 이형욱 캐스터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금 화면에도 나오지만, 오늘 상대할 아메리카FC는 K리그 팀과 악연이 좀 있습니다.』
『그렇죠. 2006년과 2016년, 전북과 2번의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는데, 전북이 모두 패했습니다.』
『2016년에는 선제골을 넣고 역전패를 당했었는데요. 오늘 고양이 대신해서 설욕해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몸을 푸는 장면이 나왔다.
『오늘 아메리카를 상대하는 고양 유나이티드에는 피치 못할 전력 이탈이 있죠. 주장이었던 김지우 선수가 은퇴하면서 팀을 떠났습니다.』
『구단에서 클럽월드컵까지 함께 하면 좋겠다고 부탁했지만, 선수 측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원했다고 하네요.』
화면에 박형우의 모습이 크게 잡혔다.
『마침 박형우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은퇴한 김지우를 대신해서 새롭게 주장 완장을 찬 이가 바로 박형우입니다.』
『박형우 선수도 이제는 명실상부한 고양의 레전드죠. 고양이 2부에 있던 시절에 1부 승격과 우승,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박형우의 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모처럼 K리그 토종 한국인 출신 득점왕이고, 14골을 득점하면서 신기록도 썼습니다.』
『고양은 박형우 선수의 영입이 거의 신의 한 수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오늘 경기에서도 박형우 선수의 한방이 필요합니다.』
각자 승리를 바라는 양 팀 선수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마침내 경기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클럽 월드컵이라고 해서 쫄 것 없다!”
경기 시작 전에 라커룸에서 박형우가 주장답게 한마디 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 그것들에 대한 연장선일 뿐이야. 그리고 은퇴한 지우 형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고양’다운 모습이 뭔지 보여줘야 한다고!”
박형우의 말을 듣고 있던 동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반드시 이기자. 데뷔전이나 다름없는 이 경기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자!”
“오!”
그렇게 뜨거운 각오를 품은 채 시작한 경기는, 예상외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고양이 시작부터 밀어붙이는데요! 이번에는 박형우가 공을 잡습니다!』
『골문하고 거리가 좀 있는데요! 아!』
『박형우 슈우우웃!』
경기 시작 5분 만에, 박스 바깥쪽에서 때린 박형우의 중거리 슈팅이 그대로 아메리카FC의 골망을 흔들어버렸다.
출렁-.
『고오오올! 골입니다! 박형우가 원더골로 클럽월드컵에서도 득점을 이어갑니다!』
『이야! 역시 박형우입니다! 정말 최고네요!』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득점에 성공한 박형우는 카메라 앞에서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표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실점에 아메리카FC 선수들의 거센 공세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런 아메리카FC를 막는 거대한 벽이 등장했다.
『유태준! 막아냅니다!』
『이야, 미리 예측하고 끊어낸 플레이인데요! 이게 어린 선수가 가능한 플레이가 맞나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유태준인데요! 클럽월드컵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곽찬구 감독은 유태준을 신뢰하고 선발로 내세웠다.
유태준과 라시모프로 형성된 수비 듀오의 방어력은 상대 수비를 꼼짝 못 하게 만들 정도로 단단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아메리카FC였다.
『아메리카FC가 고양 유나이티드의 수비를 전혀 뚫지 못하네요!』
이런 상황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또 한 번 득점에 성공했다.
『골! 골입니다! 호프만이 득점합니다!』
드리블을 시도하던 박형우를 거칠게 넘어뜨린 아메리카FC 선수에게 경고와 함께 반칙이 주어졌다.
프리킥 찬스를 얻은 고양은 호프만이 직접 나섰다.
아크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를 호프만은 그림 같은 골로 결과를 만들었다.
“미친!”
야심 찬 마음으로 클럽월드컵에 출전했던 아메리카FC 감독은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고양이 2:0으로 달아납니다!』
『시작이 좋은데요! 역시 고양 유나이티드가 한번 터지면 계속 득점이 나올 정도로 파괴력이 있는 팀인데, 아메리카FC한테도 이 공격력이 통하네요!』
전반전에만 무려 2골을 터트리며 앞서 나가는 고양 유나이티드.
전반전은 고양 유나이티드가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전.
후반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메리카FC가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기는 했다.
『위험한데요!』
철벽같던 수비 듀오를 순간적으로 무너뜨린 아메리카FC의 공격수 히메네스.
하지만 그런 히메네스 앞에는 수호신 박지원이 있었다.
팡!
『막아냅니다! 박지원의 슈퍼세이브!』
『와, 이걸 막네요! 이건 정말 박지원 골키퍼가 팀이 1골 득점한 것 이상으로 잘 막았다고 봐야 합니다!』
엄청난 기회를 날린 히메네스를 비롯한 아메리카FC 선수들이 좌절했다.
그런 사이, 교체로 들어왔던 황진용이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선보이면서 전방으로 올라간 호프만에게 향했다.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이한 호프만은 침착하게 슈팅하며 아메리카FC의 골망을 흔들었다.
『골입니다! 호프만이 멀티골이자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합니다!』
『이야, 이건 어시스트와 마무리 모두 훌륭했습니다!』
스코어가 3:0까지 격차가 벌어지면서 아메리카FC 선수들의 기세가 확연하게 꺾였다.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말없이 웃으면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바로 로치오 단장이었다.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군.’
로치오 단장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팀은 상대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대승을 앞두고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데뷔전이라고 봐도 되겠어.”
로치오 단장은 미련 없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이날, 고양 유나이티드는 아메리카FC를 3:0으로 격파하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