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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259화 (259/272)

259화

시간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선수들에게 휴식이 주어졌을 때다.

“야~ 좋겠다~ 훈련도 안 받고.”

“…그럼 형도 은퇴하시던가요.”

“은퇴? 그게 뭐지? 나는 그런 단어 모르는데~”

“허허.”

얼마 전 은퇴한 김지우와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박지원이 만났다.

두 사람은 가까운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있었다.

둘은 예전에도 비시즌 기간을 활용해 낚시를 함께 즐겼다.

“야, 그래도 이왕 클럽월드컵까지 뛰고 은퇴하지 그랬냐. 아쉽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예요.”

“선수로서 욕심나지 않냐? 그래도 클럽월드컵 한 번 뛰는 일도 쉽지 않은데.”

“솔직히 욕심은 나죠. 그런데 지금도 분에 넘칠 정도로 받았죠.”

김지우도 클럽월드컵을 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박지원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

“형, 사무엘은 안 온대요?”

“이번에 귀화 성공했잖아. 그, 뭐 뒤처리할 게 있다고 못 온대. 다음에 같이 하재.”

“아~ 그래요? 와, 사무엘, 그 친구도 대단하네. 결국 귀화했네.”

귀화를 준비하던 사무엘은 결국 시험까지 모두 통과하고 정식으로 한국 귀화에 성공했다.

그의 귀화가 확정된 시점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던 그날이었다.

그날 사무엘의 기쁨은 두 배였다.

우승과 귀화를 모두 잡았다.

“구단에도 확실히 이익이 되겠네요.”

“그렇지. 외국인 쿼터가 1자리 비는 셈이니까.”

“기사도 떴더만요. 재계약도 했다고.”

“어. 귀화 성공한 기념으로 1+1으로 재계약했더라.”

어려운 귀화 시험을 통과한 사무엘을 위해 구단은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진행했다.

“사무엘 말로는 귀화 여부 떠나서 진행될 계약이었대.”

“아, 그래요?”

“엉. 그래도 사무엘이 K리그에서 뛰는 현역 외국인 선수 중에서 공헌도 크잖아. 레전드기도 하고. 레전드 우대해줄 생각이었던 거지. 뭐, 이제는 한국인이 됐지만.”

“햐, 역시 우리 팀이 다르긴 다르다.”

K리그에는 팀당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고 기량이 떨어진 외국인 선수들을 바로 내보내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고양은 달랐다.

그간 사무엘이 보여준 공헌도를 생각해서 최대한 예우를 갖춰 대했던 것이다.

이는 국내 축구 내에서도 모범이 되는 사례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구단으로부터 제안 좀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아, 저요?”

김지우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받았죠.”

“어? 그럼 어떤 거? 코치? 하긴, 너 코치 지원받는 걸로 계약했었잖아. 그래서 라이선스도 땄고.”

여전히 국내 프로축구 선수 출신을 포함한 축구인들의 제2의 인생은 어렵고 고난이 많다.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극단적일 정도로 적다.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축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지도자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도자 과정도 아무나 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지우의 경우 K리그와 유럽 리그를 경험하고 국가대표까지 출전했다.

그런 그를 원하는 곳은 많았다.

고양이 아니더라도 그가 지도자 과정을 밟을 수 있게 지원해 줄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긴 한데요.”

김지우는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요즘 고민이 돼요. 그냥 남들처럼 지도자 교육받고 코치로 전향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할지.”

“엥?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김지우는 일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김지우 선수.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갑작스럽게 지태훈 대표로부터 호출을 받은 김지우는 이어지는 말을 듣고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정말 코치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은퇴가 확정된 상황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는 의구심이 듭니다. 김지우 선수가 과연 코치에 어울릴지 말이죠.”

“…….”

“구단은 언제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김지우 선수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지태훈은 마치 포식자 같은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눈빛과 마주한 김지우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걷는 것은 김지우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건 김지우 선수가 선택해야 할 뿐이죠. 허나, 본인이 더 잘 알 겁니다.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 기회를 어렵고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을요.”

“…….”

“현명한 선택 기다리겠습니다.”

*  *  *

“정말 회장님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네.”

“허허.”

김지우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박지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좋은 기회이면서도 어려운 상황이네.”

“그렇죠?”

“그래도 그렇게 해주는 구단주는 우리 회장님밖에 없을 거다.”

“맞아요.”

박지원은 손으로 낚싯대 위치를 조정하면서 말했다.

“잘 생각하고 결정해봐. 나도 사실 네가 남들처럼 지도자 과정이나 밟는 모습이 어울릴까 싶었거든.”

“형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 그렇다고 네가 축구 외의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어울리지 않다고 보고.”

“…….”

“너, 정만이 형 알지?”

“허정만 형이요?”

“어.”

허정만은 과거 K리그에서만 200경기를 넘게 뛴 베테랑 미드필더였다.

김지우가 프로에 막 데뷔했을 때 허정만은 이미 베테랑 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있다가 부상으로 인해 30대 초반에 은퇴하게 되었다.

“정만이 형 은퇴하고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아?”

“모르죠. 어렸을 적에 경기장에서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으니까요.”

“하긴.”

“그런데 뭐 하고 있는데요?”

“선수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돼지갈비집 차렸어. 정만 갈비라고 서울 홍대 쪽에 열었는데, 혹시 알아?”

“아~ 예전에 봤던 거 같은데요. 그게 정만이 형이 한 거예요?”

“어. 맞아. TV도 몇 번 나왔지.”

“잘됐네요.”

박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망했어.”

“예?”

“2~3년 잘 됐다가 무슨 일인지 몰라도 가게가 망했어. 이후에 뭐 하고 사는지 아무도 몰라.”

“허.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김지우는 믿기지 않았다.

그런 그의 반응에 박지원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현실이야. 그래도 정만이 형은 그래도 오래 간 편이야. 정만 형 같은 케이스 몇 명 더 봤는데, 정만이 형보다 빨리 망했어.”

“…….”

“아무튼 너도 축구 외적으로 뭐 하겠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지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러다 이어지는 박지원의 말에 그의 가슴이 울렸다.

“평생 공만 차던 우리가 이거 말고 뭘 할 수 있겠냐? 우리에게는 공놀이가 전부야. 이거 아니면 우리는 살길이 없어.”

“……형.”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은퇴 늦게 할 거야. 다행히 내 포지션은 골키퍼고, 다른 포지션에 비해 은퇴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까. 적어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선수로 살아갈 거야.”

박지원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그렇기에 김지우도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형, 제가 잘살 수 있을까요?”

“불안하면 은퇴하지 말았어야지.”

“쩝. 그러네요.”

박지원이 김지우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 마. 너라면 분명 잘할 거라고 믿는다.”

“고맙습니다.”

박지원은 고개를 돌려 낚싯대를 보더니 이내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꽝인 것 같다. 이만 접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때?”

“그러죠.”

*  *  *

나는 백태현과 만났다.

장례식 이후 처음 만난 나는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좀 괜찮냐?”

“뭐, 아직 적응 중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야.”

생각보다 백태현은 아버지에 대해 애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나저나 결혼식은 어떻게 됐어?”

“응. 지영이하고 얘기해서 뒤로 늦췄어.”

백태현이 상을 치렀기 때문에, 벽수 그룹 쪽에서 예의를 지켜 결혼식을 몇 달 뒤로 늦추자고 제안했다.

“네가 고생이 많다.”

“뭐, 나보다는 네가 고생이지. 어때, 영신그룹 회장 자리에 있어 보니까?”

“대단하더라. 책임감도 크고.”

“궁금하긴 하네. 기업 순위로 1위인 영신그룹인데, 그곳 회장 자리면 어떤 느낌일지 말이야.”

“궁금하면 회장 자리 줄까?”

“됐다. 새꺄.”

우리는 서로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

“너는 결혼 언제 하냐?”

“2월에 한다.”

“얼마 안 남았네? 준비는 잘 돼가냐?”

“어. 그룹 전체가 내 결혼 준비를 도와준다.”

“이야~ 성공했네, 지태훈이.”

“어휴, 부담된다.”

백태현이 씩 웃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날 찾아온 목적이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닐 것 같은데.”

“새끼. 눈치 하난 빠르네.”

“야, 내가 이래도 천산 그룹 회장이다.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회장 하지.”

능청스러운 백태현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었다.

“됐고.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뭐?”

“내가 이번에 OTT플랫폼 사업 시작한 거 알지?”

“그거 모르면 한국 사람이 아니지. 근데 그건 왜?”

“투자 좀 해라.”

“엥? 굳이 우리 투자가 필요해?”

어리둥절하는 백태현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내년에 OTT플랫폼 기반으로 K리그를 크게 키울 거야.”

“여기서 더 키운다고? 지금도 돈 꽤 쏟아붓지 않았냐?”

“아니. 이 정도는 부족해. 그리고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야. 관심을 끌게 필요해.”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백태현이 관심을 보였다.

“국내 축구 산업을 단순한 스포츠 산업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 사업으로 바꿀 계획이야. 그렇게 하려면 대중의 관심이 필요해.”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백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나를 키워준 곳이 한국 축구 산업이니까. 회장이 된 내가 통 크게 선물 하나 쏘려고 한다.”

그제야 백태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너,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구나?”

“그거 칭찬이지?”

“아니, 욕인데.”

“뭐?”

백태현은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다.

“너 진짜 미친놈이다. 무슨 사업을 그렇게 하냐. 앞으로도 그렇게 사업하려는 거냐?”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앞으로 내가 진행할 사업의 신호탄이 되어 줄 거야.”

자신 있어 하는 나를 향해 백태현이 한마디 툭 던졌다.

“미친놈.”

그러더니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아. 네 뜻 잘 알겠어.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되냐?”

*  *  *

고양 유나이티드의 클럽월드컵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한 주변의 기대감은 상당히 컸다.

【스포츠한국】고양 유나이티드, 클럽월드컵에서 이변낼 수 있을까?

【한보일보】고양 유나이티드의 첫 클럽월드컵 진출, 맨시티와 재격돌할까?

【고양스포츠】고양 유나이티드, 클럽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클럽월드컵은 대륙별 클럽 대항전 우승팀과 개최국 리그 우승팀이 모여 우승팀을 가린다.

이 대회에 우승팀이 해당 시즌 세계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상금도 최대한 골고루 지급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우승 500만 달러, 준우승 400만 달러, 3위 250만 달러, 4위 200만 달러, 5위 150만 달러, 6위 100달러, 7위 50만 달러를 받았다.

7개 클럽이 열흘 동안 단판으로 벌이는 대회인 만큼 참여하는 모든 클럽이 순위에 따라 상금을 받았다.

대회를 주관하는 FIFA는 이 대회를 24개 팀 참여로 늘리려고 시도했지만, 각종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 일본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에 참여하게 된다.

곽찬구 감독은 출국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다. 챔피언에 걸맞은 경기력으로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 우리 또한 목표는 우승이다.”

감독의 힘찬 포부와 함께 선수단은 마침내 일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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