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정식으로 프로포즈가 이루어진 이후, 나는 김 비서와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식은 협의해서 2월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근데 결혼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생애 첫 결혼 준비다.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김 비서와 그녀의 가족도 결혼 준비를 함께 했지만, 엄연히 신랑 쪽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있었다.
“걱정인데.”
하지만 이런 나를 도와주는 이들이 존재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라?”
천지원 이사와 박준후 팀장이 내 결혼 준비를 도왔다.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정말 본인의 일처럼 나를 곁에서 도왔다.
그 덕분에 결혼 준비는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회장 취임식이 진행됐다.
“지금부터 영신그룹 신임회장 취임식을 진행하겠습니다!”
2028년 12월 1일 금요일.
나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영신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룹 내 주요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청와대의 주요 정부 관료들도 이날 모두 참석해서 나의 취임식을 지켜보았다.
“회장님 취임사가 있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무대에 섰다.
“지난 우리는 많은 업적을 쌓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업적에 취해 우리가 놓쳐왔던 것도 많습니다.”
과거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벌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유가 있었다.
회장은 가벼워서도, 무거워서도 안 된다.
그리고 거대한 울타리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가장(家長)들의 가장이 바로 회장이다.
그리고 그런 회장의 자리에 내가 있다.
“변화와 혁신은 아주 작은 곳에부터 시작합니다. 그간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어 왔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우리만의 길을 나아가면서 계속해서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면 됩니다. 그게 우리 영신이 추구해야 할 미래이자 방향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 집중한다.
그런 위치에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로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 위에 올라와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마세요!”
연설은 고조되었다.
어떤 이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놀람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보여주세요! 우리가 누구인지를! 나는 그런 여러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그렇게 나의 취임식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 * *
【KMB】지태훈 회장, 영신그룹 4대 회장으로 공식 취임.
【연합신문】“새로운 영신그룹 만들 것!” 변화 예고한 지태훈 회장.
【한보일보】지태훈 회장, 그는 누구인가?
취임식 이후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무수히 쏟아졌다.
예고된 일이었다.
무심한 눈으로 포털사이트 기사를 훑어보던 나는 눈에 띄는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어라? 한보일보에서도 제 기사를 냈네요?”
그러자 회장실 소파에 누워있던 김진철 이사가 말했다.
“기사 내줘야지. 그것도 안 해주면 양심 없지.”
“장인어른 작품인가요?”
“그놈의 장인어른은. 어휴, 그냥 이사님이라 불러라.”
“아잉, 장인어른.”
“이런 씨.”
어이없는 애교에 김진철 이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곧 한숨을 내쉬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회장실 소파에 이렇게 누워계셔도 됩니까?”
“나갈까?”
“음. 그건 아닌데…….”
“쯧. 조금 이따가 나갈 거다. 오늘 용준형이 온다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용준형이가 나한테 연락을 했으니까 알지.”
늘 중동에 있는 용준형 사장은 매달 한 번씩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를 만나고 다시 출국한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용준형이하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걸리냐?”
“음, 1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 그럼 끝나고 한잔해야겠다.”
워낙 친한 두 사람이다 보니, 이럴 때 가끔 술 한잔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었다.
“너도 올 테냐?”
“제가 껴도 됩니까?”
“뭐, 문제 될 게 있겠냐? 그룹 회장님이신데 말이야.”
그 말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그 제안을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오늘 유리 만나야 해서요.”
김 비서가 임신한 이후 나는 늘 그녀의 곁에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 사다 주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도 도왔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김진철 이사가 한 마디 날렸다.
“아빠 노릇은 잘하겠군.”
“감사합니다.”
“됐다. 조만간에 둘이 집에 찾아와라. 밥이나 같이 먹자.”
“예. 유리한테도 전할게요.”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중동에서 돌아온 용준형 사장이 나를 보고 환한 얼굴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워낙 바쁘다 보니 그는 취임 행사에 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일 때문에 못 오신 건데요. 뭘.”
미안해하는 그를 적당히 웃으며 넘겼다.
“그건 그렇고 비행기 타고 오는 길에 봤습니다.”
“네?”
“이번에 출시한 다큐멘터리요.”
“아아.”
“재밌더군요. 보니까 시청자들 반응도 좋고요.”
“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죠.”
오랜 기간 투자해서 만든 OTT 플랫폼이 나의 회장 취임식에 맞춰 정식 오픈했다.
12월 1일부터 오픈 서비스 시작한 OTT 플랫폼의 이름은 ‘영신플레이’
원래 다른 이름으로 시작하려고 했으나, TH투자회사와 영신그룹이 하나로 합치면서, 이름을 ‘영신플레이’로 짓게 되었다.
타 경쟁사와 비교해서 저렴한 구독료에 무엇보다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제작 및 서비스되는 장점이 있었다.
국내에 스포츠 전문 플랫폼이 적은 편이었다.
우리는 축구 외에 야구, 농구, 골프 등도 끌어들였다.
물론 이 중에서 축구가 핵심이었다.
그렇게 오픈하면서 제일 먼저 공개된 오리지널 프로그램이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우리는 챔피언이다.’였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겪은 1년 동안의 일이 모두 담겨 있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좋았다.
우리 팀이 1부 리그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모여진 관심이 그대로 다큐멘터리까지 이어졌다.
-와~ 이런 속사정이 있었네?
-이진수 개 웃기네 ㅋㅋ 팀에서 완전 개그 담당이네 ㅋㅋ
-박요한 보고 싶다. 갑자기 이적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게 돼서 너무 반갑네.
-로치오 단장이 이렇게 영입됐구나. 와, 신기하다.
-로치오 ㅋㅋ삼겹살에 소주 먹던 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여기서 나오네 ㅋㅋ
-삼겹살 엄청 좋아하잖아? ㅋㅋ
-호프만 ㅋㅋ 박형우 엄청 좋아하네 ㅋㅋ
-김지우는 진짜 주장으로서 모범적이네. 저런 선수가 은퇴했다니. 너무 아쉽다.
-라시모프, 지난 파주FC 경기에 퇴장당하고 엄청 울었구나. 내가 마음이 다 아프네.
팬들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모두 공개됐다.
한 해 동안 펼쳐진 선수들의 모든 희로애락이 시청하는 팬들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다큐멘터리를 보고 우리 팀에 관심을 갖거나 국내 축구에 입문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시즌2도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다큐멘터리가 끝이 아닙니다.”
“음?”
“진짜 비장의 무기는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그거 무척 기대되네요.”
비장의 무기가 존재한다는 내 말에 용준형 사장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며칠 후, 비장의 무기가 등장했다.
-이번에 영신플레이에 나온 예능 봄? ㅈㄴ 재밌음 ㅋㅋㅋ
-ㄹㅇ 꼭 봐. 진짜 재밌다!
-바이럴 꺼지세요. 또 알바 풀었나보네.
-바이럴 아님. 진짜 웃김 ㅋㅋ
별다른 홍보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금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바로,
【축구선수로 사는 남자들】
줄여서, ‘축사남’으로 불리는 이 예능은 프로그램은 고양 유나이티드와 계약된 축구선수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예능이었다.
각 선수가 지정된 에피소드에 출연하여, 팬들이 몰랐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생활 예능이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았다.
특히 어느 한 에피소드에서 여성팬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곳이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단체로 나와서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에피소드에서 몸 좋은 선수들이 단체로 웃통을 벗고 짧은 반바지만 입고 바닷가 앞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장면에 수많은 여성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예능까지 영신플레이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 * *
“배 많이 나왔죠?”
“음? 조금? 왜?”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김유리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던 나는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기분이 이상하다니?”
“그냥…음, 제 뱃속에 여전히 생명이 자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엄마가 된다니.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나도 노력할게.”
“고마워요.”
“이제 일은 다음 주면 인수인계 끝나는 거지?”
“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내 곁에 비서로서 함께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비서로서 나와 함께 했지만, 이제 그녀는 공식적으로 영신그룹 회장의 아내가 된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힘들지? 혹시라도 무리할 것 같으면 나한테 얘기해줘.”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할 만해요.”
김 비서는 결혼 준비와 함께 회장 아내로서 해야 할 일들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그룹 일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일들을 배웠다.
굳이 힘들게 할 필요 없다고 해도, 그녀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해서 나도 말릴 수가 없었다.
“뭐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내 물음에 그녀가 조금 고민하더니 내 품에 안겼다.
“그냥 지금은 이러고 싶어요.”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말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 * *
“이건 오늘 오후 중으로 끝내고, 내일 있을 에이전트 미팅도 잘 준비해 주세요.”
“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회의실에 남은 천지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 로치오 단장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할 만합니까?”
“아, 단장님. 이거 만만치 않네요.”
“괜찮으면 나가서 커피나 한잔할까요?”
“그러시죠.”
천지원과 로치오는 옥상에서 커피를 쥐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이 된 소감이 어떱니까?”
“힘듭니다.”
“그래요? 하하하. 천 이사, 아니, 사장님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지태훈이 공식적으로 영신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던 날, 천지원은 고양 유나이티드 사장이 되었다.
지태훈은 이제 그룹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부 논의 끝에 그는 천지원을 구단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구단 내부에서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렇게 사장이 된 천지원은 이사 시절과 다른 일과와 책임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거절할 걸 그랬습니다.”
“그 말 진심입니까?”
“후. 농담입니다.”
“하하.”
천지원은 가볍게 웃는 로치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클럽월드컵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챔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선수들에게 휴식이 주어졌죠. 이후 현재까지 훈련 중입니다.”
“그렇군요. 곽찬구 감독님은 어떻습니까?”
“으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아챔이 끝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곽찬구 감독에게 A대표팀 제안이 들어왔다.
고양 유나이티드와 곽찬구 감독은 협의 끝에 클럽웓드컵이 끝난 이후에 정식으로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결정했다.
“선수들은 반응이 어떻습니까?”
“충격받은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축하하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라고 봐야겠죠?”
“…….”
“아무튼 남은 일정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하죠.”
두 남자 사이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