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후반전은 알두하일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알두하일은 지고 있어서 빠른 득점이 필요한데요. 고양의 수비를 뚫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알두하일은 교체카드를 사용하면서 변화를 주었지만, 여전히 고양 유나이티드의 조직적인 플레이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홈경기 이점도 작용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경기장에 야유 소리가 대단한데요. 알두하일 선수들이 공을 잡거나 공격을 해오면 상당한 야유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홈 이점이죠.』
필드 위에 선수들이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경기장은 팬들의 함성과 야유로 가득했다.
이러한 팬들의 행동 덕분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오히려 힘을 얻고 자신감 있게 본인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두하일도 우승하기 위해 멀리 한국까지 왔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후반 8분 정도가 막 지날 무렵.
“나한테 공 줘!”
교체로 출전한 압둘 하산이 동료로부터 공을 받았다.
그런 하산으로부터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든 이가 바로 스즈키였다.
그런데…….
쿵.
“엇!?”
스즈키는 당황한 표정을 드러냈다.
어지간하면 상대와 피지컬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던 그는 밀리지 않는 하산의 단단한 피지컬을 느끼고 당황했다.
하산은 속으로 피식 웃고 가벼운 턴 동작으로 스즈키를 손쉽게 벗겨냈다.
“이런!”
당황한 스즈키가 하산의 옷깃이라도 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늦었다.
『하산이 빠르게 전진하는데요!』
『지금 스즈키가 하산에게 밀렸어요!』
하산에게 호프만이 접근해 압박했다. 하지만 하산은 호프만의 압박마저도 견뎌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벤치 앞에 서서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마저 놀라게 만든 하산의 피지컬이었다.
이러한 하산의 활약에 순간적으로 고양의 수비에 빈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하산이 패스를 밀어 넣었다.
고양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훅 들어가는 공을 뤼카가 잡았다.
『위험한데요!』
『막아야죠!』
페널티박스 안에는 박지원 골키퍼와 유태준, 라시모프, 백종수가 있었지만, 알두하일의 라비오, 살만, 아르파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뤼카는 무리하지 않고 쇄도하는 동료들을 보고 옆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박지원이 공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공이 그런 박지원을 넘어갔다.
골키퍼마저 벗어난 공 앞에는 텅 빈 골문만이 있었다.
모두가 그 광경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막아야 하는데요! 유태준이 걷어냅니다!』
『위험했네요!』
쇄도하는 살만을 한발 앞서 견제하며 치고 들어온 유태준이 발을 길게 뻗어 공을 걷어냈다.
발끝을 벗어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그대로 우측 라인을 벗어나며 스로인이 선언되었다.
“잘했어! 고맙다! 태준아!”
“네!”
박지원이 유태준의 뒤통수를 만지며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살만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탄식했다.
“야, 저기 교체로 들어온 하산이란 놈 만만치 않다. 조심해라.”
주장 김지우가 동료들에게 하산 경계령을 내렸다.
그도 피지컬이 좋은 스즈키와 호프만에 밀리지 않는 하산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지우를 포함한 고양 선수들도 경계하고 있었다.
『스로인으로 진행되는데요! 무함이 던집니다! 공을 받는 뤼카. 다시 무함에게 내주는데요. 반대편으로 길게 연결합니다! 하산이 잡습니다!』
“온다!”
하산이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앞세워 마치 황소처럼 ‘두두두두!’ 뛰기 시작했다.
그런 하산을 카초가 슬라이딩 태클을 하며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산은 가볍게 공을 잡고 뒤로 빼는 동작으로 카초의 태클을 피했다.
다시 드리블하는 하산의 플레이에 알두하일 팬들이 비명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반면 고양의 홈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자, 하산이 직접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왔는데요! 하산 슈우우웃!』
직접 마무리 슈팅까지 시도한 하산!
발끝을 벗어난 공이 궤적을 그리며 고양의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김지우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팡!
“악!”
김지우가 얼굴을 감싸며 쓰러졌다.
삑!
주심이 경기를 잠깐 중단시키고 황급히 쓰러진 김지우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곧 의무팀을 불렀다.
『아! 하산의 슈팅을 얼굴로 막아낸 김지우였는데요. 하산의 슈팅이 상당히 강했는데, 이 슈팅을 얼굴로 받아서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의무팀이 김지우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김지우는 순간적으로 올라온 통증 때문에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경기를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켜보던 홈팬들과 곽찬구 감독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김지우인데요. 다행입니다!』
다시 일어선 김지우의 모습에 홈팬들이 힘차게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삑!
경기는 다시 진행됐다.
『김지우가 쓰러지기 전까지 짧은 시간 알두하일이 고양을 여러 번 몰아쳤는데요.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체로 들어온 하산이 피지컬도 좋고 체력도 우위에 있거든요. 공을 소유하는 능력도 뛰어나서 고양의 수비수들이 강도 높은 압박 또는 지역방어 형태로 공간을 내주지 않게 해야 합니다.』
『크레스만 감독의 용병술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가고 있는 알두하일인데요.』
팔짱을 끼고 굳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는 크레스만 감독이었다.
‘하산 하나로는 부족한가.’
그는 여전히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하산이 맹활약하고 있지만, 고양이 생각보다 잘 막거나 버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고양의 반격이 이루어졌다.
『자, 고양이 공을 잡고 역습을 시도합니다! 호프만이 공을 잡았는데요! 호프만 달립니다!』
센터서클 부근에서 공을 잡은 호프만은 평소처럼 동료들을 위한 공간 패스를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드리블을 시도하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역습 상황에서 알두하일의 진영에는 아마드와 칼리파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칼리파가 거리를 두며 호프만을 막아섰다.
하지만 호프만은 급하지 않고 노련하게 플레이를 이어갔다.
『호프만 패스하는데요! 쇄도하는 황진용을 봤습니다! 황진용! 공을 잡고 뛰어갑니다!』
황진용은 전문적인 드리블러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공격할 때 박형우가 밑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황진용이 위로 올라간 상태였다.
황진용은 호프만의 드리블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허겁지겁 같이 뛰어가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발밑으로 온 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눈앞에 골문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 황진용 앞에는 아마드가 있었다.
아마드가 슬라이딩하며 황진용의 공을 끊어내려고 했다.
그 순간 황진용이 저도 모르게 스텝이 꼬여 자세가 흐트러졌다.
“어?”
“아!”
두 선수의 상황이 절묘하게 엇갈렸다.
아마드는 과감하게 시도했던 슬라이딩 태클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보고 좌절했다.
동시에 눈앞에서 스치듯 사라지는 아마드를 목격한 황진용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마드가 태클을 시도했지만, 황진용이 절묘하게 태클을 피해냅니다! 황진용 앞에 아무도 없습니다!』
『계속 달려야죠!』
지금 황진용 앞에 아무도 없었다.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시X.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달리던 황진용.
그런 그를 막기 위해 튀어나온 무사 알리 골키퍼.
황진용은 튀어나온 골키퍼를 보고 아주 찰나의 순간 망설였다.
그런 망설임이 또 한 번 스텝을 꼬이게 만들었다.
팡!
“아!”
팀의 프리키커로서 황진용은 이 순간 자신이 잘못 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
무사 알리가 공을 잡으려다가 넘어졌다.
그토록 엄청난 선방쇼를 보이던 골키퍼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황진용과 고양 유나이티드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황진용 슈우웃! 어! 무사 알리가 넘어졌습니다! 황진용! 아! 들어갔습니다! 골입니다!』
텅 빈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공.
뒤늦게 쫓아간 칼리파가 공을 걷어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걷어내기는커녕 공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야! 진용아! 멋지다!”
“최고다! 황진용!”
얼떨결에 득점까지 성공한 황진용.
그는 득점하고도 얼떨떨한 얼굴로 동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게 됐다.
그렇게 황진용의 멀티골로 고양 유나이티드는 3:0으로 앞서 나갔다.
그리고 이 골은 훗날 황진용의 ‘용램덩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 * *
격차가 3점 이상 벌어진 알두하일의 추격 의지는 확실하게 꺾였다.
의욕이 꺾인 상대를 고양은 확실하게 가지고 놀았다.
비록 추가득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고양이 경기를 지배하는 와중에 85분쯤 되자, 곽찬구 감독이 김지우를 교체아웃하며 벤치로 불러들였다.
『김지우가 자신의 프로통산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벤치로 들어갑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본인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뛰면서 우승에 다가갔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합니다.』
지태훈을 비롯한 고양의 모든 관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지우에게 박수를 보냈다.
홈팬들도 김지우의 이름을 외치면서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 화면에는 김지우의 프로필 사진이 나오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나왔다.
박형우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도 마지막 무대를 뛴 주장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그런 김지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오세진이었다.
오세진은 고양의 마지막 교체카드로서, 김지우를 대신해서 투입하게 됐다.
“수고했어요. 주장, 아니, 지우 형.”
“고맙다. 앞으로 우리팀 잘 부탁한다.”
“네!”
그렇게 벤치로 들어온 김지우는 홈팬들을 향해 박수를 보낸 다음 진심을 담아 허리 숙여 인사했다.
홈팬들은 그런 김지우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정규시간이 끝나고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홈팬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마디 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만 했었네~
울산의 응원가였지만, K리그 팀들이 필요하면 부르게 되는 그 응원가였다.
이어서 노래가 연타로 나왔다.
저기 허접 알두하일
우리의 밥이구나~
승점 자판기 허접 알두하일
트로피 고맙구나~
서울의 응원가를 살짝 개사에서 부르는 고양 서포터스였다.
홈팬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응원 리딩하던 박태준을 포함한 일부 서포터스들은 상의를 벗고 어깨동무하며 방방 뛰었다.
“언제 끝나!”
“빨리 끝내자!”
그런 상황에서 고양 벤치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장이라도 경기장에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추가시간도 모두 끝난 상황에서 주심이 경기를 끝내지 않고 있자 홈팬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경기 끝!
경기 끝!
벤치에서도 항의하듯 외쳤다.
“주심! 빨리 끝내!”
“시간 다 됐다고!”
모두가 경기 종료를 기다리던 그 순간, 그토록 기다렸던 휘슬이 울려 퍼졌다.
삑! 삐익! 삑!
『주심이 휘슬을 붑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창단 첫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아-!
“해냈다!”
“으아아아아!”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벤치에 있던 모두가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홈팬들도 경기장 안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장 대형 전광판에 커다란 문구 하나가 등장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2028 AFC챔피언스리그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