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컵라면이 익기 전에 선제골을 만들어내는 고양입니다!』
전반 22초 만에 황진용의 득점으로 앞서나가는 고양 유나이티드.
알두하일은 예상하지 못한 실점에 당황했지만, 금방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런 그들 앞에 예상치 못한 철벽이 등장했다.
『라비오 패스하는데요! 쇄도하는 살만! 하지만 유태준이 먼저 걷어냅니다!』
『이번에도 알두하일의 공격입니다! 아르파가 길게 올려줍니다! 하지만 유태준이 걷어냅니다!』
『오늘 유태준이 철벽처럼 알두하일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1차전에서 출전하지 못했던 유태준.
2차전에는 선발로 출전한 그는 화끈한 수비로 알두하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저 새끼 뭐야!”
“패스 좀 잘 줘봐!”
“네가 제대로 받아야지!”
살만과 라비오가 서로에게 항의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유태준의 철벽 수비 앞에 알두하일의 공격이 조금은 무뎌지는 가운데, 고양 유나이티드의 반격도 상당히 매서웠다.
『박형우 슈우웃! 무사 알리 골키퍼의 손에 맞고 라인 바깥으로 넘어갑니다!』
『오늘 박형우의 슈팅이 상당이 예리한데요!』
『고양의 코너킥입니다! 호프만이 준비합니다! 호프만 올립니다!』
『어~ 기회죠!』
『라시모프의 헤더---! 아! 무사 알리가 막아냅니다!』
무사 알리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알두하일은 추가 실점할 수 있는 상황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무사 알리가 동료들을 향해 화를 내기도 했다.
전반전.
경기는 고양 유나이티드로 인해 상당히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의 추가 고양 유나이티드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인데요! 이렇게 되면 고양의 ‘닥공’ 모드가 나올 수밖에 없죠!』
『홈에서 무패를 기록하는 고양을 상대로 알두하일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네요.』
전반 8분.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든 홈팬들이 기립하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대형 전광판에는 김지우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캡틴 김지우 선수를 위해 힘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VIP좌석에 앉아 있던 지태훈을 비롯한 고양의 모든 관계자와 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AFC 관계자들까지 모두 일어나 박수 쳤다.
『오늘 경기를 끝으로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치는 김지우 선수인데요. 등번호 8번에 맞춰 전반 8분에 팬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기를 뛰던 김지우도 이례적으로 홈팬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는 김지우의 모습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어지는 중계 화면에서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지켜보는 양 팀 감독의 모습이 잡혔다.
『전혀 상반된 분위기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양 팀 감독들인데요. 고양이 이른 시간에 득점을 터트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추가 득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알두하일도 여전히 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데요. 라비오, 뤼카, 마르티네스, 이 3명의 2선 자원들이 얼마만큼 해주느냐에 따라 동점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 지금 경기 기록표가 나오고 있는데요. 고양이 슈팅을 무려 8개를 만들었고, 유효슈팅이 5개나 됩니다. 반면 알두하일은 슈팅이 전혀 없습니다.』
『유태준 선수가 지금 굉장히 잘해주고 있는데요. 1차전에서 곽찬구 감독이 라시모프, 김지우, 백종수 이 3명을 스리백으로 기용했지만, 계속 뒷공간 찬스를 내줬거든요. 유태준은 발이 빠르고 파이터적인 수비로 커버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이 기용은 신의 한수처럼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가 일방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 팬들의 모습 또한 카메라에 담겼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인데요. 팬들 또한 상당히 기대가 클 겁니다.』
『예전부터 고양 유나이티드의 팬들의 충성도나 응원력은 K리그 구단 내에서도 우수한 편이었는데요. 지태훈 구단주로 바뀐 이후, 팬들의 충성도는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마침 화면에 지태훈 영신그룹 신임 회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요. 상당히 여유로운 자세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카메라에 잡힌 지태훈의 모습은 마치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의 모습과 같았다.
한쪽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전광판에 등장하자 일부 관중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늘 고양의 전술은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선이 있는 축구를 하네요. 황진용과 정성진이 있는 라인 쪽으로 공격을 집중해서 상대를 흔드는데, 이게 지금 제대로 먹히고 있네요.』
『에세키엘 선수가 공격 가담이 좋은 풀백이지만, 뒷공간에 대한 커버가 조금은 부족한데요. 이 공간을 기술이 좋고 발이 빠른 정성진과 황진용이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보니, 에세키엘이 쉽게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두하일을 상대하기 위한 맞춤 전술을 구사한 고양.
그런데 이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알두하일도 2선에서 기술 좋은 선수들을 적극 활용해서 중앙에서 풀어나가는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유태준 선수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계속해서 파고든다면 언젠가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알두하일은 그 부분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기는 점점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응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태준이 고양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박힌 노란 확성기를 쥐고 외쳤다.
“자, 우리 선수들을 위해! 파도타기 한번 갈까요!?”
오오오!
파도타기라는 말에 서포터스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자, 그럼 경기장에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 들을 수 있게 같이 외쳐봅시다! 파도! 파도!”
파도! 파도! 파도!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파도!’에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일반 팬들도 듣고 반응했다.
“어라? 지금 뭐라는 거야?”
“파도라고 외치는 거 같은데요?”
“파도?”
때마침 전광판에도 파도타기 문구가 나타났다. 장내 아나운서 박창훈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자, 다 같이 파도타기!
그 순간 박태준이 외쳤다!
“갑시다!”
우와아아아!
그렇게 고양더블은행파크에 장대한 인간 파도가 펼쳐졌다.
그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도 고스란히 잡혔다.
『지금 경기장에 팬들의 파도타기가 펼쳐지고 있는데요!』
『이야, 멋지네요!』
인간 파도가 빠르게 한 바퀴를 돌고 서포터스가 있는 곳까지 왔다.
“한 번 더!”
우와아아아!
그렇게 2번의 파도타기가 펼쳐졌다.
멀리 카타르에서 원정을 온 알두하일 팬들도 멋모르고 있다가 같이 파도타기를 하게 됐다.
그 사이, 고양이 결정적인 기회를 또 한 번 맞이하게 됐다.
『호프만이 패스합니다! 아! 박형우 빠집니다!』
호프만의 감각적인 스루패스가 알두하일의 포백 수비의 뒷공간으로 절묘하게 빠져나갔다.
일순간 알두하일의 포백이 흔들리는 가운데 박형우가 라인을 부수고 들어가며 공을 잡았다.
놀란 알두하일의 수비수 칼리파가 뒤에서 목을 잡아챘다.
마침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가던 박형우가 칼리파의 비신사적 행위에 우당탕탕 넘어졌다.
삐이익!
지켜보던 주심도 빠르게 휘슬을 불었다.
와아아아!
홈팬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 와중에 알두하일 선수들이 주심에게 득달같이 달려와 항의했다.
『주심이 PK를 선언했는데요! 우선 오늘 경기에는 VAR이 있기 때문에! VAR과 교신하고 있습니다!』
VAR과 교신하던 주심은 금방 판정을 번복하지 않고 다시 한번 PK를 선언했다.
『네! PK입니다!』
『고양이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자, 키커로 누가 나설까요!』
『고양의 전담 PK 키커는 박형우인데요.』
공을 손에 쥔 박형우가 김지우 앞으로 향했다.
“주장이 차.”
“어? 내가?”
“응. 선물이야.”
얼떨결에 공을 건네받은 김지우는 곧 굳은 얼굴로 키커로 나섰다.
『어~ 캡틴 김지우가 키커로 나서네요.』
『박형우가 양보를 해준 모양이네요.』
긴장된 분위기가 김지우와 무사 알리 골키퍼 사이에 흘렀다.
삑!
주심이 공을 차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김지우가 호흡을 고른 다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지우 차는데요! 들어갑니다!』
발끝을 벗어난 공이 정확하게 오른쪽 골문 위쪽 구석으로 향했다.
무사 알리도 궤적을 확인하고 몸을 날렸지만, 김지우가 찬 슈팅이 좀 더 빨랐다.
득점에 성공한 김지우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갔다.
『정확하게 득점하는 김지우입니다! 추가 득점하는 고양! 2:0으로 앞서나갑니다!』
『아~ 매우 훌륭하네요!』
“야! 들어 올려!”
“어어?”
카메라 앞에서 기쁨을 표현하던 김지우를 향해 몰려든 동료들이 그를 들어 올렸다.
라시모프의 어깨 위에 목마처럼 올라탄 김지우를 향해 동료들과 팬들이 환호했다.
* * *
경기는 싱겁다고 느낄 정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전반전은 2:0으로 우리 팀이 앞선 상태에서 마무리되었다.
슬쩍 스마트폰을 열어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포털사이트에도 우리 팀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전 종료】 황진용&김지우 연속 득점! 2:0으로 앞서나가는 고양 유나이티드!】
┖우승이 멀지 않았다! 고양! 좀 더 힘내자!
┖와, 진짜 홈 깡패 고양. 알두하일마저 압살하네.
┖아직 후반전 남기는 했는데, 고양 진심 너무 잘한다.
┖더블 가즈아아아아!
팬들 반응까지 본 나는 씩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우승 가자!”
그때, 석정원 회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훌륭하구만.”
“아, 회장님.”
“후반전에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겠어. 자네가 아주 멋진 팀으로 만들어놨어.”
“하하. 감사합니다.”
이미 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경계했다.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으니, 집중해야죠.”
“그래. 그래.”
예전에 미리 샴페인을 한번 터트렸다가 애먹은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 방심하지 않고 지켜보는 편이었다.
“아, 그건 그렇고 다음 시즌 관련해서 할 말이 있네만.”
“아, 넵. 어떤?”
“잠시 따로 이야기하지.”
* * *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이 시작됐다.
전반전 내내 고양 유나이티드가 압도했던 가운데 시작한 후반전.
알두하일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수를 교체했다.
『알두하일이 먼저 변화를 가져갑니다. 마르티네스가 빠지고 압둘 하산이 투입됩니다.』
『마르티네스가 전반전에 뚜렷한 활약을 못 했다 보니 바로 빼버린 것 같네요. 압둘 하산, 이 선수도 2선 자원이기는 한데 주로 교체로 뛰던 선수인데요. 카타르 리그 내에서 준수하게 활약하고 있고, 피지컬이 좋아서 공을 소유하는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지난 ACL 4강 전에서도 살만의 득점에 도움을 기록했던 선수이기도 하죠?』
『맞습니다.』
변화를 주는 알두하일과 달리 고양 유나이티드는 변화 없이 전반전에 뛰었던 선수들이 그대로 후반전에 나섰다.
센터에 선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물고 길게 불었다.
삐익!
그 순간 양 팀 선수들이 움직였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우승 트로피가 걸린 운명의 45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