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수많은 인파가 경기장으로 몰린 가운데, 방송사 중계팀도 현장에 파견되었다.
국내 축구 내에 영혼의 듀오, 박천명 해설과 이형욱 캐스터가 오늘의 결승 경기 중계를 맡았다.
『2028AFC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고양 유나이티드 대 알두하일의 경기 중계를 맡게 된 캐스터 이형욱입니다. 박천명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는데요. 오늘 이 경기 결과에 따라 아시아 왕좌의 주인이 정해집니다.』
『그렇습니다. 1차전에서 고양이 알두하일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두기는 했는데, 두 팀 모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정말 치열했던 경기였는데요. 과거 원정다득점이 있던 시절이라면, 고양이 상당히 유리한 지점에서 경기를 시작했겠지만, 원정 다득점이 없는 현재에서는 아직 이 승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2차전 경기가 고양의 홈이기 때문에, 고양이 조금은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알두하일도 이 상황을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죠. 과거에 우리가 중동 클럽을 상대로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2011년도에 전북과 알사드의 결승 경기에서 아쉽게 우승을 내준 적이 있고요. 2021년 포항과 알힐랄과의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16초 만에 알릴라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결승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경기보다 변수가 많을 수 있습니다.』
중계 카메라가 경기장 내에서 몸을 풀고 있는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알두하일의 라비오, 뤼카, 살만이 몸을 푸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이 세 선수가 1차전에서 상당히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습니다.』
『2선에서 라비오의 패스나 뤼카의 들어가는 움직임. 살만의 결정력은 고양이 오늘 경기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저희가 선발명단을 봤는데, 오늘 이 세 선수 모두 선발로 나옵니다.』
『자, 이번에는 고양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박형우와 호프만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이네요.』
『사실 호박라인, 박형우와 호프만이 후반기에는 전반기 때 보여줬던 그 파괴력이 잘 안 나왔거든요. 오늘은 다 보여줘야 합니다.』
중계 카메라는 곧 어느 한 선수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김지우 선수죠.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는데요. 어쩌면 프로선수로서 마지막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날이겠네요.』
경기장 곳곳에 김지우와 관련된 카드나 현수막이 보였다.
『많은 팬이 김지우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또 고마워하고 있는데요. 과연 오늘 김지우 선수가 얼마만큼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해보겠습니다. 자, 그럼 이어서 양 팀 선발 명단을 살펴보겠습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선발 명단이 화면에 나왔다.
『먼저 원정팀 알두하일의 선발입니다. 먼저 골키퍼입니다. 무사 알 리가 골키퍼 장갑을 꼈고요. 수비는 백포입니다. 이스마일, 아마드, 칼리파, 에세키엘이 나오고요. 이어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섭니다. 무함과 아르파입니다. 이어 뤼카, 라비오, 마르티네스가 2선에 서고요. 살만이 최전방에 나섭니다.』
『알두하일은 1차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앙 수비에 무삼파 대신 칼리파가 나왔는데요. 무삼파가 미약한 부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자리를 칼리파가 대신 나왔습니다.』
『이 선수가 UAE 국가대표 경기에도 차출되던 선수죠?』
『맞습니다. 최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리와 맞붙었을 때 교체로 출전했던 그 선수입니다.』
『자, 이어서 홈팀 고양의 선발입니다.』
화면이 바뀌고 고양 유나이티드 선발 명단이 나왔다.
『홈팀 고양입니다! 골키퍼는 K리그 최고의 수문장 박지원이 나서고요. 수비는 백스리입니다. 라시모프, 유태준, 백종수가 나섭니다. 이어 미드필더인데요. 좌우 양쪽에 카초와 정성진이 배치되고 가운데 스즈키, 김지우가 나섭니다. 이어서 최전방에는 호프만, 박형우, 황진용이 나섭니다.』
『고양은 1차전과 비교해서 변화를 상당히 줬는데요. 전체적인 포메이션은 스리백 기반으로 동일하지만, 1차전에 선발 출전했던 오세진과 사무엘이 빠지고, 유태준과 황진용이 나왔습니다.』
『유태준 선수는 지난 가와사키 전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오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네요.』
『그렇습니다. 유태준 선수는 상당히 파이터적인 수비를 보여주는데요. 마치 지금 세리에A에서 뛰고 있는 김영준하고 비슷하죠.』
『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 어린 김영준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 경기도 기대가 됩니다.』
『오늘 유태준 선수가 가운데에서 잘 버텨줘야 합니다.』
* * *
VIP좌석에서 나는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 AFC,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알두하일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라고 해서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이나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신경전들이 오고 갈 정도로 치열했다.
“오늘 경기 잘 부탁합니다.”
알두하일의 구단주가 직접 한국까지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대수롭지 않게 악수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미간이 꿈틀거렸다.
구단주가 내 손을 꽤 강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쉽게 놓지 않고 웃는 얼굴로 구단주를 바라봤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죠.”
과거 콘테와 투헬의 악수 사건 이후, 축구계에서는 악수로 벌이는 신경전이 약간의 밈처럼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경기장에 뛴는 선수나 코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구단주가 대놓고 이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침 김 비서도 화장실 간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상황인데…….
“대표님?”
서로 웃는 얼굴로 악수를 풀지 않는 우리를 뒤늦게 본 주변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제야 우리는 악수를 풀었다.
“괜찮으십니까?”
천지원 이사가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나는 가볍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저쪽 구단주가 상당히 유머러스한 분이네.”
“네?”
“가서 자리에 앉죠.”
자리에 앉은 나는 경기장을 시야에 담았다.
“엄청나네.”
솔직히 놀랍다.
국가대표 경기를 볼 때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들어찬 경기장이다.
관중들이 만드는 위압감에 경기장이 울리고 있었다.
나의 고향
나의 사랑
우리의 고양 유나이티드
승리를 위해
뛰어라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차게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마치 유럽 빅리그에서나 볼 법한 응원가에 등에서 소름이 쫙 올라올 정도였다.
그러는 와중에 식전 행사가 진행됐다.
AFC와 고양이 협업해서 진행하는 식전행사였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전문 댄스팀이 경기장에 등장해 퍼포먼스를 보였다.
댄스팀의 댄스가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날카로운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크와아아아앙!
“어? 저기 봐!”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서 거대한 황금 용이 날개를 활짝 펴고 웅장하게 등장했다.
AR로 만들어진 황금용이 경기장 하늘 위를 한 바퀴 크게 돈 다음, 필드에 착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크게 포효한 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높이 오른 용의 몸이 변했다.
이어 우승 트로피와 함께 커다란 문구가 나타났다.
【2028 AFC챔피언스리그 Final Round】
이어 자연스럽게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운트가 0이 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장내 아나운서가 힘차게 외쳤다.
『선수들 입장!』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와 함께 준비했던 종이 꽃가루가 사방에 퍼졌다.
양팀 선수들 모두 굳은 얼굴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란히 좌우로 도열한 뒤 사진을 찍고 각자 정해진 위치로 움직였다.
주심과 부심 그리고 대기심과 VAR까지 모두 경기 전에 문제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심이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향했다.
이 순간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주심이 입에 문 휘슬을 길게 불었다.
삐이이이익!
우와아아아아!
주심의 휘슬과 함께 양 팀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본격적인 AFC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경기가 시작됐다.
* * *
보통 축구 경기는 전반 시작 5분과 후반 시작 5분 사이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시간에는 상대의 전술을 파악해야 하고, 몸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실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이 5분에 건다.’
경기장을 바라보는 곽찬구 감독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경기 시작됐습니다! 화면 기준으로 왼쪽이 홈팀 고양 유나이티드, 오른쪽이 원정팀 알두하일입니다!』
『시작부터 상당히 빠르게 치고 가는데요!』
고양의 선축으로 시작된 전반전.
경기 시작과 동시에 공을 받은 호프만이 왼쪽 측면 쪽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질주하던 정성진이 공을 정확하게 받고 그대로 알두하일의 측면을 휘젓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 속공에 놀란 알두하일 선수들이 다급하게 정성진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상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작게 균열이 일었다.
정성진은 그 균열 사이로 패스를 넣었다.
그 패스를 황진용이 잡았다.
수비수들이 순간적으로 우왕좌왕하면서 황진용 앞에 슈팅 각도가 생겼다.
팡!
바로 슈팅을 때리는 황진용!
발끝을 벗어난 공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놀란 무사 알리 골키퍼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황진용 슈우우우웃! 들어갔어요! 골이에요!』
『이야아! 엄청난 골이네요!』
『전반 1분도 안 걸려서 고양이 선제 득점에 성공합니다!』
황진용이 때린 회심의 슈팅은 그대로 알두하일의 골망을 강하게 흔들어버렸다.
순간적으로 경기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미처 득점 장면을 보지 못한 일부 팬들은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펑! 펑! 펑!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골대 뒤에 마련된 폭죽도 조금 늦게 터졌다.
그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 홈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아아아!
지켜보던 중계진도 환호했다.
『이게 바로 고양이죠!』
『이번 시즌 홈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는 고양인데요! 알두하일을 상대로 경기 시작하자마자 득점합니다!』
스코어보드에는 전반 22초 만에 황진용 득점으로 기록되었다.
시작부터 앞서나가게 된 고양!
득점에 성공한 황진용은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며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그런 황진용을 동료들이 둘러싸 함께 환호했다.
그때, 경기장 대형 스크린에 황진용의 프로필 사진이 나오면서 동시에 장내 아나운서 박창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이른 시간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의 첫 번째 득점이 나왔습니다! 고양의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은 황! 진용!
둥! 둥! 둥!
황진용!
둥! 둥! 둥!
황진용!
-오늘 승리의 주인공은 누구!
고양-!
환호하는 고양과 달리 알두하일 벤치는 충격으로 굳어졌다.
크레스만 감독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뒤에 앉아 있는 대기 선수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했다!’
크레스만 감독은 확실하게 느꼈다.
지금 이 상황은 전략적으로 당했다는 것을.
‘젠장. 설마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도박성 짙은 전략으로 나올 줄이야.’
고양의 전략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리스크가 컸다.
그런 부분을 감수하면서 시행한 전략이 고스란히 먹혔다.
‘하아. 피곤해지겠군.’
크레스만 감독은 남은 경기 시간이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VIP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시작과 동시에 터진 득점을 보고 벌떡 일어나서 환호했다.
옆에 있던 김 비서와 천지원 이사 역시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러다가 슬쩍 알두하일 구단주 쪽을 쳐다봤다.
그는 무척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비릿하게 웃어 보이고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그런 나를 본 구단주가 울컥하려다가 주변에 시선을 의식하고 간신히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