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천산그룹은 영신그룹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재벌가였다.
백우진은 21세기 변화하는 시대에 맞서 내부 혁신 5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천산그룹이 변화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백우진에게 자식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백태현이었다.
백태현은 회귀 전에 나와 같은 망나니였다.
게다가 우리는 절친한 관계였다.
오죽하면 재벌가 사이에서 천산에 가면 영신의 망나니가 있다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회귀 후에는 달라졌다.
나나 백태현 모두 각성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그러더라.”
우리는 장례식장 한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에 경호 인력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단둘이 이야기해도 문제가 없었다.
“친구 관리 잘하라고.”
“뭐?”
“친구 잘 만나서 회장까지 됐으니까, 죽을 때까지 친구 관리 잘하란다.”
백우진 명예회장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줄이야.
조금은 놀라웠다.
“야 태현아, 한 가지만 묻자.”
“음?”
“넌 뭣 때문에 회장된 거냐?”
백태현이 회장까지 오르게 된 이유가 궁금했지만, 여태까지 묻지 않았다.
내 삶이 치열해서 묻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자 백태현이 피식 웃었다.
“너 때문이야.”
“뭐?”
“너나 나나 재벌가에서 알아주는 망나니였잖아. 그런데 어느 날 네가 엄청나게 바뀌더라? 주변에서도 네 얘기만 하더라고.”
“…….”
“나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달라져 보려고 했지. 그게 여기까지 온 거고.”
설마 정말로 나 때문인 거였나?
그런데 녀석의 눈빛을 보아하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네가 잘해서 온 거겠지.”
내 말에 녀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야, 지태훈.”
“왜?”
“너는 정말 좋은 개새끼야. 알아?”
“뭐?”
“아무튼 그렇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녀석은 곧 누군가를 보고 반응했다.
“자기야.”
“괜찮아?”
백태현의 약혼자 손지영이었다.
손지영은 그를 보자마자 바로 끌어안았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응. 고마워.”
손지영의 위로에 백태현은 굳었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태훈아.”
“여.”
손지영이 뒤늦게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오는 길에 기사 봤어. 네가 제일 먼저 왔다고 기사 떴더라.”
“어? 정말?”
“몰랐어?”
“어. 기사 볼 새가 어디 있겠냐.”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기사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뒤늦게 스마트폰을 열고 기사를 확인했다.
“진짜네.”
【속보】영신그룹 지태훈 신임회장, 고(故) 천산그룹 백우진 명예회장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해.
『부고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이는 바로 영신그룹 신임회장인 지태훈 회장이었다. 평소 백태현 천산그룹 회장과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그는…….』
“이게 속보로 나올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기사를 써야 사람들이 볼 거 아냐.”
“하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돌아갈 거야?”
백태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절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금방 왔다가 갈 수 있겠냐. 오늘 일정 다 취소했어. 3일 내내 있을 수는 없지만, 내일 아침까지는 있어 줄게.”
“……고맙다. 친구야.”
아마 아버지라도 이렇게 해줬을 거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날, 너희 아버지가 3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함께 해줬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내가 널 허락할 수밖에 없다. 돌아가신 회장님의 은혜를 갚아야 하니까.
김진철 이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지종윤 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3일 내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상주 대신 문상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상황은 상당히 이슈였지만, 워낙 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겠지.”
“뭐라고?”
“아니야. 아무것도.”
그렇게 나는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까지 장례식장에 남았다. 그리고 이 일은 기사로 이슈화되었다.
* * *
프로축구 선수가 되는 일은 그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어느 정도로 어렵냐?
우선 6살 전후에는 축구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이후 본인이 입학한 각각 초, 중, 고등학교에서 제일 축구를 잘해야 한다.
거기서 선발로 뽑혀 지역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이후 연령별 대회 대표팀으로도 뽑힐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해야 프로축구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다시 이야기하면, 프로축구선수가 되려면 우리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축구를 1% 이내에 들 정도로 잘해야 하고, 그 1%끼리 경쟁해서, 그 안에서 1% 안에 들어야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프로축구선수가 된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직업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은 여기서도 1% 안에 들어야 가능했다.
어렵게 프로축구선수가 되더라도 1경기도 못 뛰어보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나이에 프로축구 무대에 데뷔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고 프로 무대에 데뷔하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당사자가 제일 기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만큼 기쁜 사람은, 프로축구선수로 키워준 부모님이 아닐까?
“아들, 우리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멋지다. 우리 아들.”
유태준의 부모님은 환한 얼굴로 엄지척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유태준은 그런 부모님의 칭찬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어렵다던 프로무대에 데뷔하다니. 이제 시작이지만, 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저 더 열심히 할게요.”
“그래.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부상 없이 오랜 기간 뛰어야 한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프로 무대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다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유태준의 부모님도 그가 부상 없이 프로무대에 완전히 자리 잡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동네방네 자랑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했어요! 우하하하!”
“우리 아들이라면 유럽도 갈 수 있을 거야!”
“엄마, 아빠도 참.”
유태준은 정말 어렵게 프로무대를 밟은 케이스였다.
초등학교 때 제법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있었던 줄 알았던 유태준은 당시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고 축구인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느린 성장기에 주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악물고 버티며 때를 노리던 유태준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폭풍 성장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169에 불과했던 그는 놀랍게도 1년 만에 180까지 성장했다.
기적이었다.
이후에도 키가 계속 크면서 190까지 성장했다.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당시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에게 포지션 변화를 제의받았다.
고심 끝에 포지션 변화를 택한 그는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았다.
스스로 우려와 달리 수비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그는 U-17 대표팀에도 뽑혔고, 이후 U-20 대표팀에도 승선하게 되었다.
그렇게 좋은 활약으로 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양 유나이티드의 눈에 띄었고, 스카웃돼서 입단까지 하게 되었다.
유태준은 건장한 체격에 힘이 있고, 발기술도 갖추었다.
무엇보다 파이터 성향이 짙어 공격수들과의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유태준도 프로입단 이후 한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근 1년을 벤치는커녕 교체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2군 경기는 몇 번 뛰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당시 고양 유나이티드에는 라시모프와 백종수 그리고 상황에 따라 김지우 같은 선수들이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초까지 영입되면서 유태준의 자리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4강 2차전에서 라시모프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그가 갑작스럽게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올 시즌에는 가끔 벤치에 앉은 정도가 전부였던 그에게 생애 첫 데뷔무대였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일전에서.
어렵게 잡은 데뷔 무대에서 유태준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 팀이 대승할 수 있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유태준의 안정적인 수비 덕분에 대승을 거두었다.
그런 유태준이 또 한 번 중요한 순간에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
“태준아. 내일 있을 경기에서 너를 선발로 내보낼 거다. 어때, 할 수 있지?”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한번 잘 해보자.”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유태준의 선발이 확정되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 출신이자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는 장현우와 박요한도 이번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두 선수는 이례적으로 개인SNS에 응원의 글을 올렸다.
【HY-Jangno.8】여전히 사랑하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를 바랍니다.
장현우는 여전히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호프만과 트레이드 형태로 이적한 장현우는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8골 8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5위, 도움 랭킹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공수 전반에 걸쳐 도르트문트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올 시즌 장현우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발탁되어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장현우가 있고 없음에 따라 대표팀이 중원에서 활약하는 빈도수가 정해질 정도였다.
강철인 다음으로 중요했다.
【Yohan0917】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자랑스러운 팀과 동료들아, 스코틀랜드에서 응원할게. 고양 팬 여러분도 응원 많이 해주세요.
박요한은 스코틀랜드를 폭격하고 있었다.
셀틱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는 그는 거의 매 경기 공격포인트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적한 지 아직 반시즌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미 프리미어리그, 세리에A 같은 빅리그에 속한 팀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에이스이자 맨체스터시티의 전설 강철인도 이례적으로 구단에 박요한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최고의 활약을 활약하는 선수들이 직접 코멘트를 남기면서 유럽에서도 고양 유나이티드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Johnbreak : 고양 유나이티드? 들어본 적 있는 팀이야. 얼마전에 맨시티하고 붙었던 그 팀 맞지?
-karle : 도르트문트의 장과 셀틱에 뛰는 박의 전 소속팀이야. 예전에 AT가 이 팀에게 혼쭐이 난적이 있지.
-Lautaro : 예전에 그들이 스페인투어를 할 때 우연히 경기를 본 적이 있어. 그때보다 더 잘해진 것 같네.
-Rosario : 저런 팀을 꺾던 발렌시아는 도대체 뭐냐.
┖Chako : 강철인 내다 버린 빙신 팀.
┖Lecko : 2222222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인들도 고양 유나이티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다가올 결승 2차전에는 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 * *
대망의 결승전이 밝았다.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고양 아레나(고양더블은행파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와, 너를 여기서 다 보네?”
“야, 그래도 같은 K리그 팀이 아니냐. 꼭 우승해라.”
“고맙다! 같이 응원하자!”
오늘은 다른 때보다 특별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홈팬들 외에도 각양각색의 K리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오늘 K리그를 대표하여 결승까지 올라온 고양 유나이티드를 응원하기 위해 온 것이다.
고양 아레나는 이미 만석 매진이었다.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는 온라인 사전 오픈 2시간 만에 전석 매진 공지를 알렸다.
취소표가 일부 나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금방 팔렸다.
그렇게 고양 아레나에는 홈팬들과 K리그 서포터스 연합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응원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