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우와아아아!
경기장은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득점합니다! 박형우의 파괴적인 득점이 알두하일의 골망을 흔들어 버립니다!』
『이야~ 굉장히 좋은 슈팅이네요. 역시 박형우네요. 저 상황에서 저런 마무리는 정말 박형우 선수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분명 수비수들이 가로막고, 각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득점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문화광장 특설무대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도 함성을 내질렀다.
『현장에 있는 고양 팬분들도 상당히 좋아하시는데요.』
『기쁘죠. 기쁠 수밖에 없죠.』
중계화면에는 세리머니를 펼치는 박형우의 모습이 잡혔다.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 이어 고양 벤치에서도 환호하는 모습이 잡혔다.
터치 라인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은 박형우의 득점이 터지는 순간, 뒤에 있던 코치와 얼싸안고 포효했다.
『사실 이런 경기에서 선제골 싸움이 중요한데요. 이른 시간에 고양이 먼저 선제골을 넣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경기를 치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렇죠.』
불과 11분 만에 선제골이었다.
자칫 고전할 수 있는 원정 경기에서 나온 귀중한 선제골이었다.
하지만 고양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위험합니다!』
찰나의 틈이었다.
선제골을 넣고 불과 3분 만에 나온 알두하일의 역습에 고양의 수비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뤼카, 라비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각패스에 고양의 수비수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그 틈으로 쇄도하던 살만이 슈팅을 때렸다.
출렁-.
흔들리는 고양의 골망.
베테랑인 박지원 골키퍼도 어떻게 손 쓸 틈도 없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우와아아아!
환호하는 알두하일의 홈팬들 앞으로 뛰어간 살만이 세리머니를 펼쳤다.
『아쉽습니다. 알두하일의 살만에게 실점하는 고양입니다.』
『알두하일의 외국인 선수들의 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요. 지금도 보시면 연계 한 번에 고양의 수비 간격에 틈이 생겼고, 쇄도하는 살만을 아무도 마킹하지 않으면서 실점한 거거든요.』
『비록 실점하기는 했어도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기뻐하는 살만과 알두하일 선수들 그리고 벤치에서 지켜보던 크레스만 감독도 환호했다.
경기는 아직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 *
좌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실점하는 광경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이걸 실점 당하네.”
“알두하일이 잘하긴 하네요.”
분명 우리에게 밀리는 것 같았는데, 그새 동점골을 만들었다.
“만만히 볼 팀은 아니네요.”
과거의 중동 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두하일은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경기 분위기는 팽팽했다.
“조금 곤란한데.”
지켜보는 나로서는 조금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 * *
서로 한 골씩 주고받은 상태에서 경기 균형은 예상보다 팽팽하게 진행됐다.
『뤼카 슈우우웃! 박지원의 선방입니다!』
『호프만 슈우웃! 이번에는 무사 알리의 선방입니다!』
양 팀 모두 번갈아 가며 기회와 위기를 맞이했다. 그런데도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1:1로 마무리되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쉽지 않네.’
전반전을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은 경기가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아 조금은 불만족스러웠다.
‘크레스만 감독. 준비를 상당히 많이 한 게 느껴져.’
곽찬구 감독은 유럽 원정 평가전을 포함해 다양한 유럽 감독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크레스만 감독도 실력이 뛰어난 감독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를 철저하게 분석했어.’
첫 실점 장면까지 이어졌던 초반 11분 정도를 제외하면, 알두하일은 단단한 조직력을 보이며 고양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습 상황에서 고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술 수정이 불가피하겠는데…….”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고양의 코칭스태프들이 알두하일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고양을 상대하기 좋은 맞춤형 대응 전략을 들고나온 이상, 곽찬구 감독도 전술 수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라커룸에 들어간 곽찬구 감독은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전술보드판 앞에서 전술 회의에 들어갔다.
“모두 들어봐. 지금 보면 상대가 우리 미드필더 지역에서 최대한 촘촘하게 간격을 유지해서 대응하고 있어. 이러다 보니까 우리가 지금 중앙에서 힘을 잘 못 써. 그래서 자꾸 측면으로 돌아가거든? 그런데 측면에서 또 중앙으로 볼 배급이 안 돼. 이럴 때 어떻게 해야겠어?”
곽찬구 감독은 전술보드판에 있는 자석들을 직접 손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상대가 공간을 안 주면, 우리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움직여야 해. 어, 그런데 지금 보면, 세진이하고 스즈키가 움직임이 너무 단조로워. 수비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 이렇게 움직이면 안 돼. 성진이하고 카초도 너무 직선적으로만 움직이지 마. 상대가 공간을 벌릴 수 있게 다양하게 움직여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곽찬구 감독의 전술 설명을 들은 선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설명하던 곽찬구 감독이 사무엘을 보며 말했다.
“사무엘은 오늘 수고 많았다. 너는 오늘 해줄 역할 다 해줬어.”
“네.”
사무엘은 오늘 경기를 앞두고 이미 곽찬구 감독과 전반 45분만 뛰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의 주된 목적은 상대 수비수의 힘을 초반부터 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무엘이 전방에 수비수들을 좀 괴롭혀서 힘 좀 빠졌을 거야. 후반에 이걸 좀 더 적극 활용해야 해. 과감하게 움직여도 좋고, 그래, 개인기술 활용해서 계속 흔들어. 그렇게 힘 더 빠질 때 기회 나오면 슈팅 때려. 누가 됐든 슈팅 찬스 오면 그냥 때려. 알았지?”
“네!”
“좋아. 지금 우리가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좀 더 집중하자. 알겠지?”
“네!”
“좋아. 계속해보자.”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외침이 라커룸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 * *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후반전 시작됐습니다! 양 팀은 여전히 스코어 1:1인 상황인데요. 고양이 먼저 선수 교체를 가져가네요.』
『네. 지금 보니까, 사무엘 선수가 나갔고 한석원 선수가 들어갔네요.』
『한석원 선수는 중앙 공격보다는 측면 공격에서 좀 더 활동하는 선수인데요. 전술에 변화가 있겠네요?』
『네. 박형우가 최전방 가짜 9번으로 뛰고, 한석원 선수가 측면으로 빠졌습니다.』
고양의 전술적 변화는 알두하일도 신경 쓰고 있었다.
‘흠. 예상했던 카드가 나오기는 했군.’
크레스만 감독은 사전에 세웠던 시나리오대로 경기가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
팽팽한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크레스만 감독은 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온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크레스만 감독이 환호했다.
출렁-.
우와아아아!
“좋았어어어!”
수비형 미드필더 아르파가 페널티박스 바깥쪽에서 시도한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고양의 골망을 흔들어버렸다.
아르파의 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한 알두하일은 거의 비명 같은 함성으로 환호했다.
크레스만 감독 역시 격렬하게 기쁨을 드러내며 좋아했다.
반면, 고양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아르파에게 실점하는 고양입니다. 스코어는 1:2가 되었는데요.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고양이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비록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실점하기는 했는데, 충분히 동점골 노려볼 수 있습니다.』
“시간 있어! 시간 있다고! 집중하자!”
김지우가 어두운 얼굴을 하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정신 차리라고 외쳤다.
삑!
다시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알두하일이 고양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꽤 위험한 상황들이 연달아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위험합니다!』
『살만 슈우웃! 백종수가 몸으로 막아냅니다!』
『아직 볼 살아있는데요!』
『이번에는 마르티네스인데요! 스즈키가 태클로 끊어냅니다! 라인 바깥으로 벗어나면서 알두하일의 스로인!』
알두하일 선수들이 대거 고양의 골문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압박하며 연달아 슈팅까지 시도했다.
『고양, 막아야 합니다!』
위기 속에서 고양 선수들이 육탄 방어하며 사력을 다해 막았다.
그러다가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라시모프가 전방으로 걷어냅니다!』
간신히 걷어낸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갔다가 센터서클 앞에서 뚝 떨어졌다.
그 공을 박형우가 잡았다.
『박형우가 공을 잡습니다! 박형우, 탈압박에 성공합니다!』
자신을 마킹하고 있던 무삼파를 탈압박하는 데 성공한 그는 곧 드리블하며 질주했다.
『박형우 빠릅니다! 에세키엘이 따라붙는데요! 에세키엘 태클! 박형우 피합니다!』
빠르게 슬라이딩하며 발을 길게 뻗는 에세키엘의 태클을 간신히 피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다른 선수들이 따라붙었다.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는 박형우를 향해 누가 외쳤다.
“형! 여기로!”
측면에서 뛰어가는 한석원이 자신에게 공을 달라며 외치고 있었다.
박형우는 망설임 없이 정확한 패스로 달려가는 한석원에게 공을 보냈다.
패스를 받은 한석원이 알두하일의 페널티박스 안쪽까지 침투했다.
이미 알두하일의 골문 앞에는 다수의 상대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슈팅까지 가기에는 각도가 여의치 않았다.
그러자 한석원은 무리하지 않고, 마침 다가온 동료를 향해 패스했다.
한석원의 패스를 받은 동료는 바로 호프만이었다.
페널티박스 라인에 걸쳐서 자리 잡고 있던 호프만은 각도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막아!”
무언가 본능적인 위기를 느낀 알두하일 수비수들이 몸을 움직였지만, 호프만의 슈팅은 이미 그런 그들을 지나쳤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친 공은 알두하일의 골문으로 향했다.
놀란 무사 알리가 펄쩍 뛰며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그런 무사 알리마저 지나쳤다.
출렁-.
시원하게 흔들리는 알두하일의 골망.
그 순간 호프만이 포효하며 관중석 쪽으로 뛰어갔다.
노란 물결이 요동치는 원정석 앞쪽으로 슬라이딩한 그는 팬들에게 경례 세리모니를 펼쳤다.
와아아아아-.
호프만! 호프만! 호프만!
동점골이 터진 순간, 팬들은 호프만의 이름을 외쳤다.
동료들도 호프만의 깜짝 중거리 슈팅에 놀랐다.
『고오오올! 호프만이 중거리 슈팅으로 응수하며 동점골을 만들어냅니다!』
『와, 역시 호프만입니다! 분명 슈팅 각도가 잘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이걸 득점까지 만들어 내네요!』
『호프만의 득점으로 경기 스코어는 2:2, 다시 동률이 되었습니다!』
이 한방에 고양은 어두웠던 분위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잘하고 있어!”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도 힘이 난 얼굴로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득점에 성공한 호프만은 팬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뒤, 동료들을 따라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양 팀의 경기는 여전히 예측 불허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