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압둡라 빈 칼리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때마침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시작인가.”
경기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결승전도 홈&어웨이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곧 승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담감은 있을 터.
조용히 경기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내 곁으로 천지원 이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다음 시즌부터 결승전은 중립 지역 단판 경기로 진행된다고 하니,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올해로 끝이군요.”
그의 말대로 이번 시즌을 끝으로 AFC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홈&어웨이로 진행하지 않는다.
AFC는 한동안 중계권료와 대회 스폰서들을 이유로 홈&어웨이로 결승전을 치러왔었다.
하지만 동서아시아 거리가 워낙 크다 보니 각국 클럽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서아시아 클럽마저 불만을 터트리는 지경까지 오게 되자, AFC는 다음 시즌부터 결승전 경기는 중립국에서 진행하는 단판 경기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사실 이번에 처음으로 AFC챔피언스리그를 겪으면서 느꼈지만, 원정 경기 부담이 상당했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규모 자체가 남달랐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정도는 괜찮았지만, 그 이상 벗어나면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히 컸다.
특히 이번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이곳 도하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천 이사님. 과거 AFC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부터 동서아시아가 만나기도 했다는데 그땐 도대체 어떻게 경기를 치른 걸까요?”
“허허허.”
그때, 누군가가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늦었군요.”
“아, 용 사장님. 적당한 시간 때에 잘 오셨습니다.”
TH건설의 용준형 사장이 경기장까지 직접 찾아왔다.
“그간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요즘 사업 진행은 어떻습니까?”
“어휴, 엄청 바쁩니다. 안 그래도 보고를 올리려던 참인데, 최근에 이란 쪽에서 건물 하나 지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 그래요?”
TH건설은 대호황이었다.
UAE 신도시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부터 TH건설의 이름이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 전체를 휩쓸었다.
“심지어 이란 정부의 의뢰입니다.”
“뭘 지어달라고 합니까?”
“대통령궁 새로 짓고 싶답니다.”
“엥? 그걸 우리한테 의뢰했답니까?”
“네. 저희도 보고 놀라기는 했는데, 신도시 사업 결과 여파가 서아시아 지역 신뢰도를 상당히 높인 모양이긴 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이야기 나누시죠.”
“네. 네.”
천지원 이사는 용준형 사장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용준형 사장님.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아, 천지원 이사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있죠?”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동에 와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네요. 어떤가요. 중동에 온 소감이.”
“확실히 날씨부터 차이가 있네요. 한국에서는 긴팔에 외투까지 입고 다녔는데 여기서는 반팔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가벼운 긴팔만 입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조금 애먹을 수 있을 겁니다. 음식 같은 것도 괜찮나요?”
“아, 다행히 먹는 부분에서는 문제는 없네요.”
“그건 다행이네요.”
두 사람 모두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서로 친근감을 적극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몸을 풀던 선수들이 다시 라커룸 안으로 들어갔다.
“선수들이 준비하러 안으로 들어갔네요.”
“네. 조금 있으면 시작이겠군요.”
용준형 사장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거 아십니까? 요 며칠 동안 고양 유나이티드 관련 이야기로 카타르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가 떠들썩합니다.”
“아, 그래요? 카타르만 시끌벅적한 줄 알았는데…….”
“UAE 쪽은 회장님과 칼리드 왕의 관계도 있고, 박형우 선수 영향도 있어서 전부터 관심이 있던 편인데,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이런 곳에서도 고양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흘러나오더군요.”
“오, 뭔가 좀 새롭네요.”
용준형 사장의 이야기는 쉽게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가 그만큼 이 중동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반증이니까.
“천 이사님. 조만간에 중동 지역 쪽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 연구 한 번 해보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라커룸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뛰어왔다고 생각한다.”
곽찬구 감독의 말에 선수들과 코치들 모두 속으로 동의를 표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라. 아무리 홈&어웨이라고 해도, 오늘 경기 확실하게 잡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알겠나?”
“네!”
선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끝까지 해보자.”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결승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중앙게이트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TV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양 팀 선발 명단인데요. 먼저 원정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발입니다.』
박지원(GK)
라시모프-김지우-백종수
카초-스즈키-오세진-정성진
호프만-사무엘-박형우
『오늘 고양은 백스리를 기반으로 하는 3-4-3인데요. 선발 구성을 보면 분명 변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선 김지우 선수가 스리백의 한 축으로 들어갔는데요. 이전에도 스리백 수비수로 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카초 선수가 영입된 이후에는 수비수보다는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중앙 수비수로 출전을 합니다.』
『주로 교체로 나오던 사무엘이 선발로 나온 것도 의외인데요. 호프만과 박형우와 함께 쓰리톱으로 나섭니다.』
『사무엘이 예전보다 기동력이나 기술이 좀 떨어져도 여전히 버티는 힘은 있는 선수인데요. 아마 곽찬구 감독은 최전방에서 사무엘이 버티면 그 빈공간으로 박형우와 호프만이 득점까지 만들어주는, 그런 플레이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자, 그럼 이번에는 홈팀 알두하일의 선발입니다.』
무사 알리(GK)
이스마일-아마드-무삼파-에세키엘
무함-아르파
뤼카-라비오-마르티네스
살만
『알두하일는 나올만한 선수가 다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선발에 나온 에세키엘은 과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에서 뛰었던 선수고요. 지난 북중미 월드컵을 마치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습니다. 올해 36세인데 여전히 카타르 리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뤼카와 라비오, 이 두 선수는 프랑스 리그앙에서 뛰었던 선수들인데요. 과거 릴과 낭트에서 뛰었습니다.』
『그렇죠. 흔히 축구팬들이 알고 있는 아드리앙 라비오하고는 동명의 다른 라비오인데, 이 선수가 이번 여름 이적시장 때 카타르 리그로 이적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마르티네스는 스페인 출신인데, 예전에 비야레알에서 뛰었죠.』
『기억납니다. 과거에 강철인 선수가 발렌시아에서 뛰었을 때, 그때 몇 번 마주쳤던 선수였죠.』
『맞습니다. 그때 그 마르티네스가 맞고요. 그런데 오늘 주목할 선수는 사실 이 외국인 선수들이 아니라, 오늘 원톱으로 나온 살만 선수인데요. 이 선수가 자국, 그러니까 카타르 리그에서 현재 득점 1위인데, 경기당 1골씩 넣는 괴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번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려 11골을 넣었죠?』
『그렇습니다. AFC챔피언스리그가 이전보다 많은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예전보다 10골 이상 기록하는 선수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이 기록이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번에도 10골 이상 득점한 선수는 박형우 선수하고 살만 이 두 선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의 박형우가 13골, 그 뒤를 살만이 11골, 필립 호프만이 9골,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데요. 결승 경기에 따라서 대회 득점왕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중계진이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결의 찬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양 팀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오늘 선발로 나온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경기 전 필드 위에서 어깨동무하며 빙 두른 상태에서 각오를 다졌다.
“파이팅 한번 하자. 하나, 둘, 파이팅!”
“파이팅!”
벤치에 앉은 대기 선수들도 필드에 올라간 선수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힘내!”
“가즈아!”
그렇게 양 팀 선수들이 각자 위치를 잡고 대기했다.
그러자 폭풍이 몰아칠 것 같았던 경기장이 일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심이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목에 건 휘슬을 입에 물었다.
긴장된 순간.
주심의 손목시계가 킥오프 시간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순간, 입에 문 휘슬이 힘차게 울렸다.
삐이이이익!
우와아아아!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축과 함께, 마침내 결승전 전반전 경기가 시작됐다.
* * *
고양은 시작부터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알두하일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알두하일의 선수들이 그런 고양 유나이티드를 저지하기 위해 조직적인 대인방어를 유지하며 패스 공간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고양에는 기술적으로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팡!
카초가 측면에서 올려준 공이 중앙 쪽으로 향했다.
중앙에는 사무엘이 있었다.
펄쩍 뛰어오른 사무엘 뒤로 무삼파가 함께 뛰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노련하게 손을 써서 무삼파의 옷깃을 안 보이게 잡았다.
“읏!”
무삼파의 몸이 살짝 무너진 틈을 타 사무엘이 이마로 공을 따냈다.
바닥으로 떨어진 공을 트래핑으로 잡아낸 사무엘은 마침 쇄도하는 박형우를 보고 공을 밀어 넣었다.
툭.
일순간 알두하일의 수비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틈으로 박형우가 뛰어가 공을 잡았다.
놀란 아마드가 박형우를 저지하기 위해 어깨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박형우는 노련했다.
이미 오프사이드 위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라인을 타고 함께 들어오는 호프만의 위치까지 파악했다.
박형우는 망설임 없이 호프만에게 패스했다.
짧게 굴러간 공이 호프만의 발밑으로 정확히 향했고, 방해꾼이 없던 호프만은 가볍게 슈팅을 시도했다.
팡!
거의 미사일처럼 날아간 슈팅이 그대로 알두하일의 골문으로 향했다.
팡!
알두하일의 골키퍼 무사 알리가 순간적으로 팔을 뻗어 막아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득점으로 이어질 뻔했다.
“아!”
골이라고 생각했던 호프만은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원정석에서 지켜보던 고양 팬들과 벤치에 있던 고양 선수단 모두 아쉬움을 드러내며 탄식했다.
특히 곽찬구 감독은 얼굴을 감싸며 상당히 아쉬워했다.
“괜찮아! 좋았어!”
김지우가 선수들에게 엄지척을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시작이 좋았다.
방금 보여준 유효슈팅으로 초반 주도권은 확실하게 고양 유나이티드가 잡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양이 또 한 번 기회를 잡았다.
촤악-.
“엇!”
공을 가진 상태에서 드리블하려던 라비오는 미처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스즈키의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에 저지당했다.
공은 라비오의 뒤로 빠졌다.
그런 공을 낚아챈 스즈키가 빠르게 정성진 쪽으로 패스했다.
공을 받은 정성진이 패기 있게 질주했다.
상대 선수들이 정성진을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정성진이 잡히기 전에 크로스를 올렸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알두하일의 패널티박스 안쪽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공을 사무엘이 잡으려고 했지만, 아마드가 한발 빨랐다.
그런데 아마드의 이마에 맞고 굴절된 공이 앞에 있던 박형우에게 뚝 떨어졌다.
박형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팡!
대각선으로 길게 뻗어나간 공이 알두하일의 수비수들을 지나쳐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놀란 무사 알리 골키퍼가 팔을 길게 뻗으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파괴적인 박형우의 슈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출렁-.
그대로 흔들리는 알두하일의 골망.
박형우가 포효하며 카메라 앞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