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알두하일은 카타르 리그 내 역사가 깊은 팀 중 하나이다.
1938년도에 탄생한 이 팀은 불행하게도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카타르 스타즈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강팀의 반열에 오른 팀이었다.
카타르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우뚝 선 그들의 목표는 이제 하나였다.
ACL 우승.
“우리 같은 명문 팀이 ACL 우승트로피 하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알두하일의 수뇌부는 ACL 우승을 위해 상당한 거금을 투자해서 스쿼드를 강화했다.
하지만 번번이 ACL 토너먼트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맛봤다.
그러다가 이번에 드디어 AC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
서아시아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파죽지세로 올라온 그들은 이제 결승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홈&어웨이로 치러지는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토록 원하던 ACL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대를 결승전에서 만났다.
고양 유나이티드.
중동에도 알려질 정도로 최근 유명세가 바짝 오른 팀이었다.
새로 바뀐 구단주는 UAE 두바이 왕 칼리드와 형제 같은 사이였고, 그에게 지원받은 오일머니로 팀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돈만 있다고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면 오산이다!”
알두하일 관계자 중 누군가가 고양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결코 얕봐서는 안 됩니다. 4년 만에 2부리그에서 1부리그 우승까지 한 팀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우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고요.”
“흥. 그래봤자 우리가 가진 경험치에 비하면 저들이 가진 경험치는 코 묻은 어린아이 수준이야.”
알두하일의 구단주 압둘 알 자이크는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팀을 이끄는 크레스만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다. 모험적인 승부수보다 안정적인 전략으로 상대의 힘을 빼야겠어.”
프랑스 출신의 크레스만 감독은 과거 올랭피크 리옹,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가 은퇴 이후 보르도 감독을 거쳐 낭트와 마르세유 그리고 몽펠리에에서 감독을 맡을 정도로 풍부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주로 프랑스 리그앙에서 활약했던 그는 처음으로 도전한 해외 리그가 바로 이 카타르 리그였다.
크레스만의 카타르 리그 정착은 제법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크레스만의 알두하일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빠른 패스와 좌우 측면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역습으로 실리 축구를 구사했다.
수비도 부분 전술을 활용한 지역 방어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그 결과, 부임 첫해에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으로 더블을 기록했고, ACL은 8강까지 올라갔었다.
두 번째 시즌인 현재도 리그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고, ACL은 결승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그런 크레스만 감독도 결승 상대인 고양 유나이티드를 경계했다.
“수비와 조직력이 좋은 가와사키가 순식간에 무너졌어. 정말 믿을 수 없는 파괴적인 플레이야.”
크레스만 감독은 훈련 내내 수비를 강화하고 전술을 전면 재점검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 * *
상대에 대한 경계는 고양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곽찬구 감독이 전술 브리핑을 하면서 상대를 분석한 내용을 공유했다.
“상대는 4-5-1의 전술을 사용한다. 공격보다 수비에 무게를 두는 실리 축구를 구사해. 그래서 상황에 따라 중앙에 있는 미드필더들이 수비수처럼 내려와서 겹겹이 쌓여서 공격을 막아내기도 해.”
곽찬구 감독의 설명에 김지우가 한 손을 들어 올린 뒤 말했다.
“감독님. 상대가 올드한 축구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 보이지. 그런데 막상 경기 내용을 보면 그렇게 올드하지도 않아.”
곽찬구 감독이 참고 영상을 하나 틀어주었다.
영상 속에 나온 알두하일의 플레이를 본 선수들이 살짝 감탄했다.
“애들 조직력 왜 이렇게 좋아?”
“그냥 알아서 패스하네. 동료들이 다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같아.”
“저렇게 플레이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제법인데?”
선수들의 반응을 지켜본 곽찬구 감독이 말했다.
“이게 크레스만 감독이 만든 결과물이다. 상대 감독은 프랑스 리그앙에서 상당한 실력을 쌓은 감독이야. 낭트 시절에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던 업적은 무시할 수 없지.”
알두하일이 보여준 조직력은 고양 유나이티드도 경계해야 할 정도로 우수했다.
그때 조용히 있던 박형우가 발언했다.
“제가 중동에 있었을 때, 알두하일은 다른 중동 팀들하고는 달랐습니다.”
“오, 형우야. 그래. 네가 경험이 많으니까 한번 얘기해봐라.”
중동 메시로 불렸던 박형우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몇 번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동팀들은 거금을 들여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맞붙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만, 알두하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흐음.”
“알두하일은 국가대표까지 뛴 자국 선수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선수를 보조로 활용하죠. 그래서 외국인 선수가 빠졌다고 해도 조직력이 쉽게 무너지는 팀이 아닙니다.”
박형우가 중동에 뛰었던 때에도 알두하일은 상당히 조직적인 팀이었다.
그 부분을 강조하며 이야기하자 다들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자신감을 드러내는 박형우를 바라보는 곽찬구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박형우는 중동 클럽들을 상대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알두하일로 포함되어 있었다.
박형우가 알두하일을 상대로 기록한 득점은 무려 5골.
그러한 득점 중에서 그가 중동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렀던 ACL 상대가 공교롭게도 알두하일이었다.
알두하일은 박형우에게 실점하며 ACL 토너먼트에서 탈락했었다.
“이번에도 부탁한다. 형우야.”
“네.”
* * *
선수단이 결전에 임하는 동안, 나도 도하에 도착했다.
도하에 도착한 나는 뜻밖의 손님을 만났다.
“여기서 만나네요. 이진호 회장님.”
이진호 회장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나와 악수를 나눴다.
태조건설의 회장이자 이태수 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를 카타르에서 만나게 된 일은 의외였다.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마침 저도 카타르에 있던 참이었거든요.”
이진호 회장은 전처럼 딱딱하게 나를 대하지 않았다.
“아들을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늘 감사합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저희 아버지도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했을 겁니다.”
“허허.”
가볍게 웃던 이진호는 곧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왜 카타르에 왔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카타르 왕실에서 은밀하게 우리 태조건설 쪽으로 의뢰를 보내왔습니다.”
“…….”
“카타르 왕실이 UAE 신도시 사업이 성황리에 진행되는 것을 보고, 똑같은 사업을 우리에게 의뢰를 했죠.”
카타르가 어떤 상황인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태조건설은 우리와 함께 공동으로 UAE 신도시 사업을 진행했었다.
칼리드 왕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으니, 나바드 왕자 쪽에 있던 태조건설을 노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음? 문제요?”
갑자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다.
우리와 달리 태조건설은 자유롭게 카타르와 일을 해도 별로 문제없었다.
그래서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이진호 회장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타르가 추진하는 신도시 사업 뒤에는 나바드 왕자가 있습니다.”
“……!”
“나바드 왕자는 카타르의 신도시 사업 진행을 도와주는 대가로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나바드 왕자는 현재 외딴 시골 마을에 감금된 상태였다.
그런 자가 어떻게 일을 벌인다는 말인가.
“칼리드 왕이 나바드 왕자의 세력을 정리했다고 해도, 이미 눈치를 챈 일부 세력이 해외로 도피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아. 대충 윤곽이 잡히네요.”
“도망친 나바드 왕자의 세력 중 일부가 이곳 카타르에 있습니다. 그들은 나바드 왕자와 지금도 몰래 접촉하고 있죠. 나바드 왕자도 그들을 이용해서 자금을 마련하려고 하는 거고요.”
“자금을 마련해서 뭘 어쩌려는 거죠? 설마…….”
“그가 무슨 계획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바드 왕자가 자금을 손에 쥐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겠죠.”
나는 조금 긴장했다.
이거 지금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나는 이진호 회장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보답입니다.”
“보답?”
“아들을 도와준 대가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이 정보라면 지태훈 회장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하긴 이 이야기를 지금 당장 칼리드 왕에게 전달한다면, 나는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
굳건한 신뢰는 기본이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아가네요.”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 * *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결승 1차전이 치러지는 압둘라 빈 칼리파 경기장은 관중들로 가득 찼다.
경기장의 규모는 1만석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홈팬들의 기세는 1만 명 이상이었다.
알두하일!
알두하일!
홈팬들의 힘찬 응원가와 구호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런 홈팬들을 상대하는 원정팬들이 존재했다.
“자~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습니까!”
박태준 고양유나이티드 서포터스 회장도 이번 원정길에 가까스로 참여했다.
이벤트에 당첨돼서 오기는 했지만, 당첨되지 못하더라도 자비를 들여 카타르까지 따라갈 생각을 했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양 유나이티드 용품으로 풀 세팅을 마쳤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와 노란색 확성기가 이곳 카타르에서도 빛을 발했다.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가 누군지, 이곳 카타르에도 알려줍시다!”
“와아아아!”
“자, 그럼 다 같이 응원합시다! 고양!”
고양-!
고양-!
카타르에서 울려 퍼지는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의 구호.
그사이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선수들의 등장에 양 팀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고양 선수들은 몸을 풀기 전에 원정석 쪽으로 가서 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둥! 둥! 둥!
짝짝짝-.
고양 서포터스들이 준비한 북을 치며 박수로 화답했다.
* * *
대한민국 고양특례시.
밤 12시에 수많은 사람이 문화광장에 모였다.
문화광장에 만들어진 특설무대에는 중계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캐스터 이형욱과 해설자 박천명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이 상당한 환호를 보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박천명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위원님. 오늘 저희가 조금은 특별한 무대에서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떠신가요?』
『네, 저희가 지금 고양특례시 장항동에 있는 문화광장 야외 특설 무대에 있는데요. 오늘 여기서 2028AFC챔피언스리그 결승 경기를 중계하게 됐는데요. 지금 정말 많은 팬들이 이곳을 찾아주셨어요.』
방송 화면에는 무대 앞에 모인 팬들의 모습을 잡아주었다.
『조금 있으면 결승전이 시작될 예정인데요. 오늘 1차전 경기에 따라 우승의 9부 능선을 넘을 수 있을지 결정이 될 텐데요!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위원님.』
『고양 유나이티드가 창단 첫 출전부터 정말 압도적인 실력으로 결승까지 올라왔는데요. 지난 4강전 2차전에서 가와사키를 대파한 장면 보고 이 팀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는데요. 오늘 결승 상대인 알두하일을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참 공교롭게도 오늘 결승에서 맞붙는 이 두 팀 모두, ACL 우승트로피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창단 첫 출전이기 때문에 없지만, 알두하일은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ACL을 치렀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홈에서는 정말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1차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면, 충분히 2차전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자, 그럼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