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243화 (243/272)

243화

우리 팀이 우승한 그날 저녁, 구단 전체 회식이 있었다.

이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즐겼다.

“고양 유나이티드를 위하여!”

“위하여!”

맛있는 음식과 술을 진탕 마셨다.

우리는 우승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오늘 마음껏 먹고 마십시다! 우리는 오늘 신나게 즐길 자격이 있으니까요!”

“그럼, 대표님이 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오늘 술값! 제가 쏩니다! 마음껏 드세요!”

“우와아아아!”

거의 아침까지 달린 것 같았다.

어차피 다음날은 구단 휴무일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부담 없이 달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집에 있었다.

“어우, 엄청 먹었네. 이게 다 얼마야.”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영수증을 보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드세요.”

“고마워.”

김 비서가 나에게 해장하라면서 콩나물국을 만들어주었다.

고춧가루가 풀린 얼큰한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하며 속을 달랬다.

“몸은 괜찮아? 어제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갔잖아.”

“으음. 요즘 컨디션이 좀 별로네요.”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조금 쉬면 괜찮겠죠.”

김 비서는 회식에 참여하지 않고 피곤하다며 먼저 집에 들어갔었다.

최근 들어 김 비서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병원을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괜찮다면 자꾸 거절했다.

‘조만간에 억지로라도 병원에 함께 데리고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가서 TV를 켰다.

마침 TV에서 스포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였죠?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서울 드래곤즈를 2:1로 꺾고 창단 처음으로 1부 리그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박지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2028 시즌이 개막하고 줄곧 1위를 달려오던 고양 유나이티드.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형 구단으로 성장한 고양 유나이티드가 마침내 K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트로피를 놓고 서울 드래곤즈와 맞대결을 펼쳤는데요. 양 팀 모두 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기는 예측 불허였습니다.

전반전에 고양의 수비수 라시모프가 퇴장을 당하며 수적 열세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실점 없이 0:0으로 마친 고양은, 후반 8분에 페리시치에게 실점을 당했는데요.

5분 후에 주장 김지우의 벼락같은 중거리 동점골로 기사회생했습니다. 그리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던 고양은 추가 시간 1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박형우의 폭풍 같은 드리블로 역전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캬~”

절로 탄성이 나왔다.

스포츠 뉴스 덕분에 어제 일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우리가 우승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고양은 2주 후에 있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남아 있는데요.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고양은 리그를 넘어 아시아를 제패하게 됩니다.

이상 박지민이었습니다.』

“아챔도 우승하면 좋겠네요.”

어느샌가 내 곁으로 다가온 김 비서가 그렇게 말했다.

“우승해야지.”

나는 우리 팀이 충분히 아챔도 제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고양 유나이티드 전체가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특례시 측하고 카퍼레이드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해봐야겠는데.”

“그 일은 이미 해결된 거 아닌가요?”

“응. 해결했지. 다만, 그때는 예정이었고, 이제는 확정을 지어야지.”

우리는 시와 조율해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확정한 다음에 카퍼레이드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이잉.

“여보세요?”

-형제여. 우승을 축하하네.

“아, 감사합니다.”

칼리드 왕이 소식을 듣고 내게 축하 연락을 했다.

-이제 1부 리그도 우승했으니 아시아만 제패하면 되겠구만.

“그렇죠.”

-그리고 자네에게만 알려주는 정보가 있네.

“음?”

칼리드 왕이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두하일 쪽에서 작업을 좀 쳤던 모양이야.

“뭐라고요?”

-아무래도 그쪽에서 겁이 난 모양인가 봐.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봤을 때, 알두하일이 고양에게 밀릴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야.

“…….”

-그래서 알두하일 사장단이 AFC 측과 그날 배정받을 심판들에게 손을 좀 써놓으려고 했어.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결승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설마 예상치 못한 복병이 생겼을 줄이야.

그런데 칼리드 왕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말게.

“네?”

-우리 쪽에서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감히 작업질하지 못하게 막았으니까 말이야.

“……!”

-우리 아우님은 편하게 경기를 준비하면 될 걸세.

“어, 고맙습니다.”

-하하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튼 건승을 빌겠네.

“네.”

칼리드 왕의 도움으로 복병은 나타날 뻔했다가 사라져버렸다.

“다행이네.”

“무슨 일인데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뭔가 생길 뻔했다가 사라졌어.”

“……?”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김 비서를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  *  *

리그 우승한 이후에도 고양 유나이티드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 때문에 바빴다.

K리그 구단 중에서 우리 팀 외에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팀들만 여전히 일정이 남아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 외에 나머지 팀들은 모두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2028 K리그1 대상이 진행됐다.

“K리그1 감독상의 주인공은…… 곽찬구 감독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대상은 고양 유나이티드가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수상을 기록했다.

팀에게 주어지는 플러스 스타디움, 풀 스타디움, 그린 스타디움 등의 상을 휩쓸었다.

개인상에서는 곽찬구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고, 득점왕은 박형우가 페리시치와 공동 수상을 했다.

“MVP의 주인공은…… 김지우 선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주장 김지우가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여기에 특별상이 하나 주어졌다.

“공로상을 발표하겠습니다! 공로상의 주인공은……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나도 상을 받게 됐다.

예상치 못한 상이었다.

사회자는 수상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리그 발전에 많은 공을 세운 지태훈 대표님의 공을 인정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특별 공로상을 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상을 치르기 며칠 전에 갑자기 나보고 참여해 달라는 석정원 회장의 요청에 의문이 들었는데, 이 의문이 이제야 해결이 되었다.

얼떨결에 상을 받게 된 나는 간단하게 소감을 밝혔다.

“안녕하세요. 지태훈입니다. 어, 살면서 이런 상을 받아본 적은 처음인데요. 이렇게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나에게 집중했다.

이런 관심은 익숙하고 싶어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에서 제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받겠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멘트를 마무리하고 시상식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딱히 준비한 멘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팀 선수들과 눈이 마주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음. 사실 준비한 멘트가 없어서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요. 어떻게 조금만 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갑작스러운 내 발언에 일부 선수들이 웃었다.

사회자는 조금 당황했다가 이내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음. 제가 약 4년 전에 구단 대표가 되면서 느낀 건데요. 그때만 해도 축구에 대해 잘 모르던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K리그라는 곳이 정말 암울하면서도 대단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시상식장이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K리그는 한국 축구의 근본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매번 월드컵만 되면 국가대표팀에 대한 거는 기대는 상당하지만, 대표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어느 팀 소속이고,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K리그 팬이 아니면 전혀 모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할 말은 해야 했고, 이왕이면 권력자가 그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하는 발언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국가대표에만 있지 않습니다. 국가대표를 보기 전에, K리그와 그 밑에 있는 유소년 리그를 봐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우리를 더욱 발전하게 만듭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에 축구 리그가 유럽 5대 리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도 리그 발전을 위해 아끼지 않고 계속 투자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전염되듯 박수 소리가 전체로 퍼져나가더니 곧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무대에서 내려온 나는 우리 팀 선수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멋져요. 대표님.”

“대표님, 감사합니다. 속이 시원한 발언이었습니다.”

감독과 선수들 모두 내 발언에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들을 보고 조금은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난 다음 내가 했던 발언은 포털 메인 뉴스로 뜨게 됐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K리그 ㅈ노잼 리그 왜 봄?

-지태훈 회장 덕분에 K리그 엄청 발전했지. 응원한다.

-고양 유나이티드 축구 재밌음. 직관한 적 있는데 어지간한 유럽 축구 이상으로 재미있었음.

-FC코리아 새끼들 저격한 거네 ㅋㅋ

-지태훈이 아무리 투자해도 K리그가 유럽 5대 리그까지 가겠냐? ㅈㄴ 오바하네.

-솔직히 고양, 전북, 울산 정도 빼면 수준 ㅈㄴ 떨어지는 건 사실 아님?

-위에 욕하는 새끼들 K리그 안 본 놈들이 확실하다.

“에휴.”

뉴스를 확인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K리그에 대한 논란은 늘 끊임없이 있었다.

아마 내가 늙어 죽어도 그런 논란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  *  *

“…….”

김 비서의 얼굴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한동안 속이 안 좋았다.

단순한 소화불량 정도라고 생각했었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생리가 다가왔는데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심각함을 느낀 김 비서는 약국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사 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사용한 결과, 테스트기에는 선명하게 두 줄이 떠 있었다.

혹시 몰라 몇 개 더 사 온 테스트기도 모두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후우. 침착하자. 침착해. 김유리. 침착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천하에 김 비서라도 놀람을 넘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임신의 기쁨?

이런 건 지금 느낄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정말 임신인가?’하는 생각만 잔뜩 있었다.

그녀는 조금 고민하다가 지태훈에게 연락했다.

“태훈 씨.”

-응? 김 비서 무슨 일이야?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오늘 하루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래? 많이 아파? 지금 바로 갈까? 아니다. 같이 병원 가자.

“아, 아니요. 병원은 혼자 다녀올게요. 나중에 연락할게요.”

김 비서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가까운 산부인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음. 그, 임신…… 확인하러 왔는데요.”

“앗.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다행히 병원은 그녀가 당황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하나씩 안내했다.

그렇게 검사까지 받게 된 그녀는 원장으로부터 결과를 듣게 됐다.

“임신하셨네요.”

임신 초기 단계라는 말을 듣게 된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기쁨보다는 놀람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겠지 싶었지만, 막상 그날을 겪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택시를 타고 지태훈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지태훈의 집 거실 소파에 멍한 얼굴로 앉았다.

한참 멍하니 있던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지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리야. 몸은 어때? 괜찮아?

다정한 지태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 비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았다.

“흑. 흐흑. 흑.”

-어? 유리야, 울어? 무슨 일이야?

“흑. 태훈 씨. 나 어떻게…….”

-지금 어디야?

“나 태훈 씨 집.”

-지금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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