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그야말로 경기장이 ‘뒤집혔다’.
고양 벤치에서는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대기 선수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비명 같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VIP석에 있던 지태훈과 주요 관계자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보냈다.
『위기에 빠진 팀을 주장이 구해냅니다! 고양의 캡틴! 김지우가 동점골을 만들어냅니다!』
『와,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오는데요. 정말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이었네요.』
『리플레이 화면을 다시 보시죠. 황진용이 서울 수비수들의 시선을 끌면서 공을 흘리고, 이렇게 흘린 공을 김지우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무승부 이상 결과를 만들면 우승이 가능한 고양이었다.
그렇기에 충분히 기쁜 마음을 표출할 수도 있었지만, 김지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세리모니 대신 골문 안에 들어간 공을 직접 주운 다음 빠르게 센터서클 쪽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경기 안 끝났어! 마지막까지 집중해! 우승해야 할 거 아냐!”
동점골을 축하해주려던 동료들이 주장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아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김지우 선수는 세리모니를 하지 않네요.』
『지금 입 모양을 보니까, 집중하자고 외치는 것 같은데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거든요. 김지우 선수는 지금 세리모니보다 우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동료들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주장다운 모습이네요. 오늘 본인의 K리그 마지막 경기인데,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네요.』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양팀 모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예측 불허의 상황 속에서 경기장에 있는 모든 팬이 각자 응원하는 팀을 향해 손을 쥐고 간절하게 우승을 바라고 있었다.
“다 쏟아부어!”
양팀 선수들이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경기장을 누볐다.
서로 몇 번 중요한 찬스들을 만들어냈지만 득점까지 만들지 못했다.
오우!
아!
양 팀 선수들이 기회를 놓칠 때마다 지켜보던 팬들과 벤치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때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85분쯤 되었을 때였다.
곽찬구 감독이 코치를 불러 무어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전달받은 코치가 서둘러 벤치에 앉아 있던 석종호에게 뭔가를 이야기했다.
『고양이 교체를 준비하는데요. 석종호 선수가 투입할 준비를 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곽찬구 감독은 공격보단 지키는 쪽으로 가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교체 지시를 받은 석종호가 빠르게 유니폼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사이, 코치가 대기심에게 다가갔다.
“선수 교체할 건데요.”
“네, 번호 불러주세요.”
“들어갈 선수는 석종호, 나갈 선수는…….”
“아.”
코치로부터 교체 명단을 전달받은 대기심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러더니 곧 경기장 쪽을 슬쩍 쳐다본 다음 굳은 얼굴로 번호판을 조작했다.
그사이 석종호가 터치 라인 앞에 섰다.
팡!
교체를 기다리는 사이, 박형우가 서울의 아크 정면에서 힘차게 슈팅을 때렸다.
박형우의 슈팅은 아쉽게 골대 위를 벗어나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아.”
박형우가 아쉬운 얼굴을 드러내며 탄식했다.
그 사이, 주심이 대기심의 신호를 받고 터치라인 쪽을 돌아보았다.
삑.
주심의 사인에 교체가 진행됐다.
그리고 곧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대형 전광판에 한 선수의 모습과 함께 장내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교체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캡틴, 김지우 선수에게 힘찬 박수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김지우의 K리그 마지막 경기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김지우의 교체 소식에 필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이 순간만큼 하나가 되어 김지우에게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팬들도 박수와 함께 김지우의 이름을 외쳤다.
VIP석에 있던 이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동시에 서포터스 석에서 대형 현수막이 등장했다.
【캡틴! 오, 마이 캡틴! 고마워요. 고양의 전설 김지우!】
“아.”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 것을 알게 된 김지우는 저도 모르게 작게 탄식했다.
“형. 고생 많았어요.”
“형, 고마워요.”
동료들이 다가와 김지우의 마지막을 축하해주었다.
그걸 본 중계진도 감격했다.
『고양의 전설, 고양 유나이티드의 역사를 함께 했던 선수 한 명이 이렇게 그라운드 위에서 작별을 고하네요.』
『김지우 선수도 정말 대단했죠. 통산 300경기 이상을 뛰었고, 고양에서만 200경기를 뛰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었고, 한국 축구에 정말 많은 활약을 했던 선수입니다.』
『아직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만, 공식적인 K리그 경기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박형우가 김지우에게 다가갔다.
“형.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남은 시간 우리가 어떻게든 우승할 수 있게 해볼게요.”
“그래. 부탁한다.”
김지우는 자신의 팔에 부착된 완장을 때서 박형우의 팔에 직접 붙여주었다.
“부탁한다. 캡틴 박.”
“네.”
주장을 넘겨받은 박형우가 각오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와 짧게 포옹한 뒤, 그는 천천히 터치라인 바깥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이렇게 길게 시간을 끌면 경고가 주어지지만, 선수의 마지막을 기념하여 경고를 주지 않았다.
“부탁한다. 종호야.”
“넵!”
김지우와 하이파이브한 석종호가 힘차게 대답하고 빠르게 그라운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늘 김지우 선수의 활약은, 그 어떤 경기 때보다 가장 멋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1명 부족한 상태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수비를 보인데다 여기에 동점골까지 넣으면서 벼랑 끝으로 몰린 팀을 구하고 멋지게 퇴장하네요.』
『자, 이제 남은 선수들에게 고양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집중하자!”
필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김지우가 빠졌다.
하지만 고양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각오로 단단해져 있었다.
교체로 들어간 석종호는 남은 시간 동안 모든 체력을 쏟아부으려고 작정한 플레이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에 서울의 공격수들은 당황했다.
“우리가 들러리로 끝날 수는 없어!”
서울 선수들도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득점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점점 서울의 파상공세로 이어졌지만, 고양의 모든 선수들이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막아내고 있었다.
『주심이 추가 시간을…… 6분이나 주네요. 아무래도 김지우 선수가 교체되어 나갈 때 걸렸던 시간도 포함된 것 같네요.』
『자, 이제 정말 집중할 때입니다. 6분이면 양팀 모두 반전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서울이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는데요! 고양의 수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고양은 언젠가 올 기회를 기다리며 몸을 아끼지 않은 플레이를 보였다.
벤치에 있던 김지우도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양손을 쥐고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는 김지우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기회를 노리던 고양에게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다.
“호프만!”
카초가 페리시치의 공을 커팅한 뒤, 호프만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호프만은 곧장 전방으로 길게 공을 올렸다.
팡!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센터서클을 넘어 오른쪽 측면 쪽으로 뚝 떨어졌다.
그곳에는 뛰어가는 박형우가 있었다.
일부러 힘을 아끼고 있던 박형우는 이 순간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박형우가 공을 잡습니다! 달리는데요! 서울은 수비가 2명밖에 없습니다!』
『어~ 찬쓰죠!』
박형우는 폭발적인 드리블로 한동수와 주니오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안 돼!”
“젠장!”
한동수와 주니오가 거의 비명 같은 목소리를 내며 박형우의 뒤를 쫓았다.
『모두 제쳤습니다! 골키퍼 한 명만 남았는데요! 설찬우 선수가 뛰어나옵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설찬우가 황급히 뛰어나와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하지만 박형우는 가벼운 동작으로 골키퍼마저 제친 다음, 골문을 향해 공을 툭 찼다.
팡!
텅 빈 골문 안으로 날아간 공이 그대로 골망을 힘차게 흔들었다.
『이야아아아아! 골! 골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경기장에 광기가 휩쓸었다.
이 순간 경기장에 있던 홈팬들이 모두 미쳐버렸다.
득점한 박형우와 모든 선수들이 벤치로 뛰어갔다.
“X발! X발! 형우야! 으아아아!”
“미쳤어! 미쳤다고!”
“으아아아아아!”
곽찬구 감독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벤치에 있던 김지우를 비롯한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가 박형우를 끌어안고 비명 같은 포효를 질렀다.
『사실상 경기를 끝내는 쐐기골이 작렬합니다! 박형우의 득점입니다!』
『정말 박형우 선수는, 대단하네요. 어떻게 매번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결정적인 장면들을 만들죠? 허허허!』
끝! 끝! 끝!
고양 서포터스들이 ‘끝!’을 외쳤다.
그리고 주심은 추가 시간이 모두 소진된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종료 휘슬을 불었다.
삑! 삐익! 삑!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2028시즌 K리그1 우승을 차지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K리그 역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요. 창단 후, 1부리그 최초 우승이면서, K리그 모든 팀을 통틀어서 1, 2부 모두 우승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됩니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팬들이 경기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설치한 계단을 오픈했다.
그러자 홈팬들이 경기장 안으로 우르르 뛰어 들어갔다.
팬들과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 얽혀서 서로 기쁨을 나누었다.
센터서클로 향한 김지우는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다가온 동료들이 다가왔다.
“들어 올려!”
“오!”
동료들이 김지우를 들어 올려 헹가래했다.
하늘 높이 올라간 김지우와 환한 얼굴을 한 동료 선수들의 모습이 카메라 화면에 잡혔다.
“수고했다.”
“흑흑.”
한편, 실바 감독은 눈물을 흘리는 서울 선수들을 위로했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있는 법이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고생했어.”
고양 선수들도 서울 선수들을 위로했다.
그러한 모습에 경기장에 있던 팬들도 서울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 * *
곧 시상식이 진행됐다.
준비된 간이 시상대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시상식이 준비되는 동안, 고양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우승 기념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시상식에서는 선수들만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하는 가족들도 모두 참여했다.
마치 프리미어리그처럼, 고양은 시상식 무대를 진행했다.
김지우와 박지원 등 유부남들은 자식들과 함께 우승 기념 유니폼을 입고 환한 얼굴로 다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상식을 기다렸던 팬들도 그들에게 환한 얼굴로 환호를 보냈다.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도 우승 기념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우승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지태훈 대표의 축하 인사에 곽찬구 감독이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축하합니다. 감독.”
“고맙습니다.”
로치오 단장도 곽찬구 감독과 웃으면서 축하 인사를 나눴다.
『지금부터 우승 시상을 진행하겠습니다! 팬 여러분들 모두 힘찬 박수와 환호로 선수들을 맞이해 주십시오!』
우와아아아!
짝짝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팬들이 반응했다.
창단 첫 1부 리그 우승을 이룬 홈팬들은 모두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수만 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수들은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우승 메달을 받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수들과 코치들까지 모두 우승메달을 받았다.
우승 메달을 목에 건 그들은 단 한 사람을 기다렸다.
그 순간, 장내 아나운서가 외쳤다.
『우리 위대한 주장, 김지우 선수에게 힘찬 박수와 환호 부탁드립니다!』
은퇴를 앞둔 김지우를 위해 마련한 마지막 무대였다.
김지우의 등장에 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천천히 걸어가는 김지우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리그 우승의 꿈을 이룬 그는 감격한 얼굴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지막을 영광의 순간으로 장식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캡틴.”
“감사합니다.”
지태훈 대표를 비롯한 고양의 모든 프런트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이 김지우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주장까지 우승 메달을 받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김지우를 우승트로피 쪽으로 안내했다.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우승 트로피를 보게 된 김지우가 살짝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게 우승 트로피…….”
침을 삼킨 그는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고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향했다.
“주장! 빨리!”
“오! 오! 오! 오!”
김지우의 등장에 선수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김지우도 그런 선수들의 반응에 웃었다.
그리고는 선수들 가운데에 섰다.
“자, 다 같이!”
“오오오오!”
선수들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지켜보던 팬들도 발을 구르며 신호를 보냈다.
김지우는 품에 트로피를 안은 상태에서 몸을 웅크렸다가, 곧 힘차게 우승 트로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
그가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린 순간 준비한 폭죽이 터졌다.
펑! 펑! 펑!
그리고 동시에 전광판에 준비한 문구가 큼지막하게 나타났다.
【2028 K리그1 우승팀 : 고양 유나이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