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경기장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VAR이야?”
경기장 내에 있는 대형 화면에도 ‘VAR Check’라는 문구가 떴다.
현장에서 중계하던 중계진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어, 지금 주심이 VAR쪽과 교신하고 있는데요. 지금 리플레이 화면을 다시 봐야 할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VAR인데요. 뜨겁게 달아오르던 경기장이 지금 고요해졌습니다.』
양 팀 선수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서울 드래곤즈 쪽은 희망을 안고 지켜봤고, 고양 유나이티드는 곽찬구 감독이 대기심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자, 지금 리플레이 화면이 나오는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중계화면에 리플레이 화면이 흘러나왔다.
리플레이 화면은 김지우가 코너킥을 찬 순간부터 다시 보여주었다.
『여기서 김지우 선수가 올린 공이 페널티박스 바깥, 그러니까 아크 쪽에 있던 박형우 선수에게 정확히 향했는데요.』
김지우 선수가 올린 공을 박형우 선수가 받는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여기서 박형우 선수가 슈팅하는데요. 아!』
박형우가 슈팅하는 장면이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박천명 해설위원이 낮게 탄식했다.
이형욱 캐스터도 보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호프만 선수의 발끝에 닿았네요.』
『자, 그럼 여기서 오프사이드인지 아닌지를 봐야 하는데요. 다시 볼까요?』
리플레이 화면이 이번에는 호프만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면이 다시 나왔다.
『아. 지금 위에서 보니까 호프만 선수가 서울 수비수들보다 살짝 앞으로 나온 것 같아 보이는데요.』
위쪽에서 찍힌 화면에서는 호프만이 상대 수비수보다 살짝 앞으로 나온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화면에 노란색 금이 그어졌다. 그 상태에서 화면이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호프만의 몸이 서울 수비수들보다 명확하게 앞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면 오프사이드가 맞네요.』
『박형우가 때린 슈팅이 호프만의 발에 닿고 굴절돼서 골망을 흔들었는데요. 지금 화면에는 호프만의 오프사이드로 보입니다.』
VAR을 확인하던 주심이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휘슬을 불고 득점 취소 사인을 보냈다.
와아아아아!
우우우--.
서울 드래곤즈의 선수와 팬들은 환호했고, 고양의 홈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정말 서울은 큰 위기를 맞이하다가 극적으로 벗어났고요. 고양은 절호의 기회를 놓칩니다.』
“괜찮아! 아직 시간 많다! 우리가 잘하고 있어!”
주장 김지우가 실망하는 동료 선수들을 향해 박수 치며 격려했다.
서포터스들도 그런 선수들을 향해 격려를 보냈다.
고양! 고양! 고양!
힘을 내라! 고양!
격려를 받은 고양 선수들이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삑.
서울의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되었다.
팡!
골키퍼 설찬우가 찬 공이 센터서클을 넘어 고양 진영까지 올라왔다.
떨어지는 공을 보고 스즈키와 페리시치가 경합했다.
둘 다 펄쩍 뛰어오른 가운데 등지고 서 있던 페리시치가 스즈키의 압박을 버텨내고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다.
공을 받자마자 앞쪽에 있던 벤탈에게 패스했다.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횡패스한 벤탈의 패스를 측면에서 쇄도하던 박서준이 받았다.
박서준이 바로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고양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떨어지는 공을 향해 라시모프가 펄쩍 뛰어올라서 이마로 걷어냈다.
하지만 걷어낸 공이 아크 정면 쪽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공을 강유찬이 잡았다.
그런 강유찬 앞을 김지우가 태클로 막아섰다.
하지만 강유찬은 가볍게 공을 뒤로 한번 빼서 피한 다음 힘껏 슈팅을 때렸다.
팡!
『강유찬의 슈팅! 하지만 박지원의 선방에 막힙니다!』
『아, 잘 차고 잘 막았습니다!』
골키퍼 박지원의 선방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이 손에 맞고 라인 바깥으로 벗어나면서 서울에게 코너킥이 주어졌다.
『서울이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서울의 홈팬들이 ‘골!’을 외쳤다.
그 사이, 강유찬이 코너킥을 차기 위해 준비했다.
삑.
강유찬이 공을 차려는데, 갑자기 주심이 휘슬을 불고 박스 안에 있던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적당히 하세요.”
“저 녀석이 먼저 저 밀쳤어요.”
“알아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서울의 고준과 고양의 스즈키가 자리 싸움을 하다가 충돌했는데요. 주심이 빠르게 진정시킵니다!』
『리그 우승이 걸린 최종전 경기다 보니까 신경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선수들이 진정하자 주심이 코너킥을 진행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강유찬이 팔을 올린 다음 공을 찼다.
『강유찬이 신호를 보내는데요! 공을 찹니다!』
팡!
양 팀 선수들이 떨어지는 공을 보고 움직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공이 라시모프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라시모프가 공을 걷어내기 위해 발을 뻗는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머리를 들이댔다.
뻑!
“아악!”
호주 출신 할로우가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삐이이익!
지켜보던 주심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휘슬을 불고 손가락으로 찍었다.
『PK인데요! 주심이 PK를 찍었습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서울이 PK를 얻습니다!』
리플레이 화면에서 라시모프의 발이 공에 닿기 전에 할로우의 이마에 공이 먼저 닿았다.
졸지에 라시모프가 할로우의 얼굴을 걷어차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건, 분명하죠? 주심도 VAR 확인까지 안 거치고 PK 바로 가네요.』
『이건 경고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인데요.』
PK를 선언한 주심이 라시모프를 불렀다. 그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카드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자, 어떤 카드가 나올까요. 아! 레드카드입니다!』
“잠깐만요! 레드카드는 너무 심해요!”
김지우가 주심에게 달려가서 바로 항의했다.
하지만 주심은 단호했다.
레드카드를 받은 라시모프는 충격을 받았다.
와아아아!
지켜보던 서울 팬들은 환호했고, 고양 팬들은 절망했다.
『고양의 수비 핵이던 라시모프가 퇴장을 받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나온 퇴장인데요. 이거 어떻게 되나요. 이러면 남은 시간 동안 고양은 상당히 어려운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는데요!』
퇴장을 받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라시모프가 펑펑 울면서 걸어나갔다.
자신의 실책성 플레이로 팀에 큰 위기를 선사하게 된 그는 엄청난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고양 서포터스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격려했다.
라시모프! 라시모프! 라시모프!
“괜찮아. 괜찮아.”
곽찬구 감독도 펑펑 울면서 나가는 라시모프의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했다.
『자, 고양의 라시모프가 퇴장을 당하고 서울이 PK를 준비하는데요. PK는 서울의 에이스죠? 박형우와 득점왕 경쟁하는 에이스 데얀 페리시치가 준비합니다!』
고양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수적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 실점까지 한다면 앞으로 경기는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제발.”
고양 선수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켜보던 홈팬들도 입술을 깨물고 양손을 모아 지켜봤다.
그때, 골키퍼 박지원이 불안해하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괜찮아! 내가 막아줄게! 아자!”
팀 내 맏형이자 지난 수년간 팀에서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던 박지원이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형이 막아줄게! 믿어봐!”
당당한 박지원의 태도에 동료 선수들이 그를 지켜봤다.
벤치에서도, 홈팬들도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든 상황이 방송 화면에도 잡혔다.
『박지원 선수가 상당히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지금 고양에게는 저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페리시치가 PK를 찰 준비를 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 공을 가운데 두고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땀을 흘리는 페리시치가 호흡을 고르다가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가 빠르게 공을 찼다.
팡!
힘차게 골문을 향해 날아가는 공.
그런데 박지원이 씩 웃으며 힘껏 몸을 날렸다.
팡!
순간 중계진 입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야아아아! 막았습니다! 박지원의 슈퍼세이브!』
『우와아아아! 이걸 막네요!』
박지원이 정확히 방향을 읽고 막아냈다.
슈팅한 페리시치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지켜보던 서울 팬들도 탄식했다.
반면, 고양의 모든 선수와 팬은 환호했다.
“봤지! 어! 봤지? 한다고 했잖아!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형! 아아아! 형! 진짜 최고야! 아아아아!”
위기의 순간 골키퍼의 눈부신 슈퍼세이브에 동료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가 박지원을 둘러싸고 환호했다.
거의 결승골을 넣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선방은 한 골 넣은 것과 다름없는 선방이었다.
그 사이 카메라가 어딘가를 보여주었다.
『라시모프 선수가 중앙게이트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박지원이 막는 장면을 보고 무릎 꿇고 소리를 지릅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던 라시모프가 가슴 앞에 양손을 쥐고 지켜보다가 슈퍼세이브하는 장면을 보고 무릎 꿇고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면서 환호했다.
『경기는 알 수 없습니다! 상당히 치열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경기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에 이런 경기가 있나 싶을 정도인데요. 오늘 경기 쉽게 예측하기 어렵네요!』
이후 박지원은 몇 번의 선방쇼를 보이면서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그때마다 박지원을 향한 홈팬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자, 고양이 변화를 줍니다. 교체카드를 준비하는데요. 누가 나올까요.』
『보니까 유태준 선수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요?』
『유태준 선수군요!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2차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유태준 선수인데요! 그때도 팀이 어려울 때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번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릅니다!』
“태준아. 지난번 경기 때 보여줬던 거. 그거 고대로만 보여주면 된다.”
“넵!”
“그리고 너 들어가면 스리백으로 바꿀 거야. 알았지? 형들한테 가서 스리백으로 바꾼다고 전해.”
“네.”
지시를 받은 유태준이 마침내 교체로 K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오세진 선수가 나오고, 유태준 선수가 들어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고양에 전술 변화가 올 것 같은데요. 아마, 파이브백 기반인 스리백으로 바꾸고, 김지우 선수를 오세진 선수가 있었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릴 것 같습니다.』
박천명 해설위원의 예측대로 고양은 유태준, 백종수, 카초가 스리백으로 나섰다. 정성진과 이진수가 윙백이 되었고, 김지우가 오세진이 있었던 2선 미드필더로 올라갔다.
『스즈키 선수가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는 선수다 보니, 곽찬구 감독이 믿고 김지우를 위로 올렸네요.』
『그럼 스즈키 선수가 얼마만큼 활약해 줄지가 관건이겠네요.』
『그렇습니다.』
고양의 발 빠른 대처는 금방 경기력을 통해 증명되었다.
지난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유태준이 신인답지 않은 침착한 플레이로 페리시치를 비롯한 서울 공격수들의 플레이를 저지했다.
이러다 보니 서울은 수적 우세를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고양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그렇게 수비가 안정화되면서 고양에게 다시 한번 공격 기회가 왔다.
『고양이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모처럼 기회를 잡았는데요!』
『살려야죠!』
카초가 자로 잰 것 같은 정확한 횡크로스로 박형우에게 패스했다.
오늘 전반 초반 외에는 크게 활약이 없었던 박형우는 노련하게 체력을 비축해 두었다가 지금 이 순간 폭발적으로 사용했다.
『박형우가 공을 잡고 질주합니다! 서울 수비수들이 막는데요! 벗겨냅니다!』
『찬쓴데요!』
자신을 막아서는 양종호, 고준, 김진호까지 모두 탈압박하는 데 성공한 박형우는 순식간에 기회를 만들었다.
놀란 한동수가 최후의 보루처럼 막아섰다.
하지만 박형우는 노련했다.
무리하지 않고, 그는 함께 하는 동료를 이용했다.
『박형우 패쓰하는데요! 아무도 없습니다!』
『한석원입니다! 앞에 골키퍼만 있습니다!』
박형우의 결정적인 패스에 기회를 맞이한 한석원.
그의 앞에는 골키퍼 설찬우만 남아 있었다.
꿀꺽.
순간 주변 사물이 느릿하게 흘러가느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살려야 해!’
한석원은 입술을 꽉 깨물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두 팔을 새처럼 좌우로 넓게 펼치고, 왼쪽 발을 디딤돌 삼고 오른발로 힘차게 슈팅을 때렸다.
팡!
정확하게 발끝에 닿은 공이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설찬우가 날아오는 공을 보고 몸을 날렸다.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그 장면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