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준비됐습니까?”
“예, 과장님! 준비됐습니다!”
신진호를 비롯한 마케팅팀 팀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실수하면 안 됩니다!”
“예!”
직원들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선수들이 있는 라커룸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흘렀다.
“우승까지 오늘 딱 1경기 남았다.”
선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곽찬구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그 한 마디에 선수들 모두 굳은 얼굴로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하지만 오늘 이 1경기에 그간의 우리가 고생해 왔던 것을 보상받을 수 있거나, 아니면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
“…….”
“하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상대도 배수진을 치고 우리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거다.”
현 리그 1위와 2위의 맞대결이다.
이 경기의 승자가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가 비겨도 우승할 수 있어. 확실히 우리가 우세해. 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여기는 우리의 홈, 고양더블은행파크다. 비길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은 우리의 스타일도 아니고, 우리를 지켜보는 홈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선수들을 전체적으로 쭉 훑어보던 곽찬구 감독이 힘을 주어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 팀 선수로서 자존심이 있다면! 아니, 그 이전에 프로축구 선수로서 자존심이 있다면! 무조건 이겨라! 그게 우리 자존심도 지키고, 명예도 지키고, 그리고!”
“…….”
“그토록 원하던 우리의 우승 트로피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알겠나?”
“네!”
감독의 일장 연설이 선수들의 분위기를 올라오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곽찬구 감독이 김지우를 호명했다.
“지우야.”
“네.”
“주장으로서 네가 한마디 해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김지우에게 향했다.
오늘 그는 팀의 주장으로서, 그리고 프로축구 선수로서, K리그1 공식 경기 마지막을 뛰는 날이기도 했다.
김지우는 동료들의 모습을 하나씩 눈에 담은 다음,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을게.”
그는 주먹을 꽉 쥐며 하늘 높이 위로 올리며 외쳤다.
“반드시 이기자!”
“우와아아아아!”
주장의 각오에 동료들이 모두가 동화되었다.
라커룸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 전사가 되었다.
그렇게 킥오프 시간이 다가오자, 양 팀 선수들이 중앙 게이트로 향했다.
중앙 게이트 앞에서 마주친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을 중계 카메라를 든 감독이 그 모습을 담고 있었다.
서울 드래곤즈 선수들은 어깨에 노란색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김지우를 보고 반응했다.
“지우 형.”
“어, 유찬아.”
오늘 선발 출전하는 강유찬이 김지우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곧 포옹했다.
다른 서울 드래곤즈 선수들도 김지우에게 다가와 악수를 하거나 포옹하며 그의 마지막을 인사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데얀 페리시치와 마주쳤다.
지난번 경기에서 그는 김지우의 의도치 않은 거친 태클로 피해를 당했다.
김지우는 그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양 팀 선수들이 살짝 긴장한 상태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페리시치가 돌연 피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김지우도 웃으면서 그와 악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끝낸 뒤, 양 팀 선수들이 호명과 함께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 경기장은 엄청난 환호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곧 김지우는 경기장 전체에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과 사진 그리고 팬들이 남긴 문구를 볼 수 있었다.
[고양의 전설! 위대한 캡틴! 김지우! 그대가 곧 고양 유나이티드다!]
[주장 김지우!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K리그! 국가대표! 고양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김지우! 고맙습니다!]
김지우는 팬들을 향해 감사의 박수를 쳤다.
그러자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같이 김지우 선수의 이름을 외쳐주십시오!
김지우! 김지우! 김지우!
고양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 김지우의 K리그 마지막 경기를 위해 양 팀 서포터스들이 모두 기립한 채 박수 쳤다.
이 순간만큼은 적아 구분 없이 레전드를 향한 존중의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방송사 생중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김지우 선수가 오늘 K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데요. 김지우 선수도 오늘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자, 여기서 잠깐 첨언하자면, 김지우 선수에게는 아직 AFC챔피언스리그 경기도 남아 있습니다. 실제 은퇴는 아챔 결승전이 끝난 이후에 은퇴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이렇게 리그 마지막 경기 행사 때 은퇴 행사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죠?』
『그렇습니다.』
잠시 후,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 석에서 거대한 현수막이 올라왔다.
대형 현수막에는 K리그 우승트로피 사진이 담겨 있었다.
카메라는 그런 현수막의 모습을 천천히 줌아웃하더니 이내 중앙게이트 앞에 있는 우승 트로피의 모습을 함께 잡아주었다.
그 장면을 본 이형욱 캐스터가 말했다.
『K리그 우승트로피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는데요. 오늘 이 경기가 끝나면, 이 우승트로피의 주인이 가려질 예정입니다.』
『매번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K리그인데요. 올해도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그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양 팀 모두 우승 트로피를 원하고 있는데요. 고양은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고요. 서울은 8번째 리그 우승에 도전합니다.』
『어느 팀이 우승하든, 이 모두 K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카메라 화면에는 VIP 좌석의 모습이 나타났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석정원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의 모습도 보이고요, 지태훈 회장, 허유찬 회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두 왔네요.』
고양 유나이티드 관계자들과 서울 드래곤즈 관계자들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까지 모두 모여 오늘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다.
『자, 그럼 2028 TH투자회사 K리그 38라운드 경기에 나설 양 팀 선발 명단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원정팀 서울입니다!』
설찬우(GK)
주니오-한동수-김진호
박서준-할로우-벤탈-양종호-고준
강유찬-페리시치
『서울은 오늘 스리백을 축으로 두는 3-5-2 포메이션으로 베스트일레븐을 구축했는데요. 주전 선수가 모두 나왔습니다.』
『네. 서울이 여름 이적 시장에 영입했던 수원의 한동수, 크로아티아의 벤탈, 호주의 할로우 등이 모두 나왔고요. 여기에 기존 주축 선수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조금 돋보이는 건 강유찬과 페리시치가 오늘 투톱으로 나왔다는 건데요. 실바 감독이 이 두 선수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렇죠. 이 두 선수가 올 시즌 보여준 활약이 대단했죠. 서울이 지금 리그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두 선수가 합작한 공격포인트 덕분인데요. 이제 마지막 경기에서 모든 걸 다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요. 자, 이번에는 홈팀 고양입니다!』
박지원(GK)
이진수-라시모프-백종수-카초
김지우-스즈키
한석원-오세진-정성진
박형우
『고양이 변화를 줬는데요. 호프만이 벤치로 빠지고, 오세진 선수가 호프만 위치에 섰네요. 여기에 정성진 선수가 측면 수비수가 아닌 2선 측면 공격수로 올라갔고요. 정성진의 자리에는 카초가 뜁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건 곽찬구 감독이 공격적인 카드를 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성진 선수는 이번 K리그에서도 그랬고, 동아시안컵을 치를 때도 그랬지만, 측면에 빠른 오버래핑과 크로스가 좋은 선수거든요? 공격적인 성향도 강하고요. 곽찬구 감독은 그런 정성진의 공격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호프만이 아닌 오세진 카드를 내세웠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오세진 선수의 장점이 직선적인 패스가 좋지요?』
『맞습니다. 오세진 선수의 발밑으로 향하는 직선 패스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면서 정성진의 빠른 측면 드리블로 상대의 허점을 노려보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이거, 오늘 경기 상당히 기대되는데요.』
* * *
삐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전반전 경기가 시작됐다.
리그 우승이 걸린 마지막 경기인만큼 양 팀 선수들 모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카초!”
백종수가 카초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카초가 측면에서 속도를 올리며 올라갔다가 자신의 앞을 막은 할로우를 보고 무리하지 않고 뒤로 패스했다.
다시 공을 받은 백종수가 김지우에게 패스했다.
김지우는 공을 받고 반대편 측면으로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한석원 쪽으로 뚝 떨어졌다.
한석원은 가벼운 트래핑으로 공을 받고 측면을 질주했다.
그런 한석원을 고준이 막아섰다.
고준을 앞에 둔 한석원이 크로스를 시도하는 척하다가 탈압박으로 그를 벗겨냈다.
와아아아!
순식간에 서울의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진입하게 되자, 지켜보던 고양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이미 서울의 페널티박스 안에는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돌파는 어렵겠어.’
한석원은 아크 정면 쪽으로 패스했다.
마침 아크 정면에는 오세진이 있었다.
오세진이 공을 받고 반대편 측면 쪽에 있던 정성진을 보고 발밑으로 패스를 시도했다.
팡!
서울의 수비 사이를 뚫고 빠져나간 공이 정성진의 앞에 정확히 도달했다.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간 정성진이 과감하게 슈팅을 때렸다.
팡!
미사일처럼 날아간 슈팅이 그대로 서울의 골망을 향했지만, 설찬우가 정확한 펀칭으로 공을 골대 위로 보냈다.
“아!”
정성진은 아쉬운 표정을 드러내며 탄식했다.
그런 그를 향해 오세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삑!
고양의 코너킥이 선언되었다.
김지우가 공을 잡고 빠르게 코너킥 존으로 향했다.
지정된 자리에 공을 내려놓은 그가 한쪽 팔을 올리고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빠르게 공을 찼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박스 안쪽이 아닌 아크 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박스 안쪽으로 올 거라 생각했던 서울 선수들이 당황한 사이, 떨어지는 공을 잡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박형우였다.
박형우는 당황한 서울 선수들을 앞에 두고 과감하게 슈팅을 때렸다.
팡!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그대로 서울의 골망을 흔들었다.
출렁-.
우와아아아아아!
고양더블은행파크가 홈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크게 흔들렸다.
실점한 설찬우는 공을 보고 주먹을 쥐고 바닥을 내리쳤다.
한동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강유찬은 마른세수했다.
서울 선수들이 탄식하고 있을 때, 득점에 성공한 박형우는 카메라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카메라 앞에서 무릎 슬라이딩하고 경례했다.
뒤따라오던 다른 선수들이 그런 그를 뒤에서 덮쳤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가 득점한 순간 두 팔을 벌리고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미쳤다!”
“우승 가즈아!”
고양 홈팬들도 난리가 났다.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주심이 귀에 꽂힌 무전기에 한쪽 손을 올리고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곧 양 검지로 크게 네모박스를 그리더니 VAR을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야!?”
“뭐야!? VAR 뭔데!?”
갑작스러운 VAR에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수들과 팬들 모두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