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237화 (237/272)

237화

서울의 패배 소식에 기대를 모은 고양과 전북의 대결은 예상과 달리 소득 없이 진행됐다.

『경기 끝났습니다. 두 팀 모두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득점 없이 0:0으로 경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아!”

90분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음에도 두 팀 모두 득점 없이 0:0으로 마무리했다.

여러 번의 찬스가 있었지만 모두 허무하게 날렸다.

“역시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는 건가.”

시즌 막바지에 체력적으로 지친 선수들의 집중력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걱정이 됐다.

“결국 마지막에 가야 우승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겠구나.”

조금은 아쉬웠다.

미리 조기 우승을 확정 짓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라운드를 치렀으면 했는데 말이다.

“너무 아쉬워 마세요. 우리는 늘 그랬듯, 결과를 만들어 낼 거니까요.”

“응. 나도 우리 선수들을 믿어.”

김 비서가 아쉬워하는 나를 달래 주었다.

이틀 후, 나는 곽찬구 감독과 만났다.

“선수들은 좀 어떻습니까?”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인데, 그래도 마지막 경기에서 제대로 해보자는 의지로 가득합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되는 부분들이 있네요.”

그는 내가 어떤 부분들은 걱정하는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겠죠. 하지만 마지막 경기는 다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우를 위해서라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음.”

김지우는 K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38라운드 경기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 2경기를 치르면, 그는 이제 필드에서 내려오게 된다.

“김지우 선수는 어떻던가요?”

“똑같습니다.”

“프로답군요.”

“그렇죠.”

곽찬구 감독은 내 눈치를 살핀 다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지우의 은퇴식은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지 궁금합니다.”

단 한 번뿐인 선수의 은퇴식이다.

게다가 김지우는 우리 팀에서 많은 업적을 세운 레전드였다.

이런 레전드의 은퇴식을 허투루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선수에게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만 믿습니다.”

곽찬구 감독도 애제자인 김지우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은 나도 같았다.

“누가 봐도 부러운 은퇴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저, 지태훈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  *  *

김지우.

그는 1992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37세, 만으로 36세가 되는 노장 선수이자 팀의 주장이었다.

어린 시절 대한민국의 미래로 평가받으며, 연령별 국가대표를 경험하고 20대 때는 유럽 무대 경험까지 쌓았다.

매번 찬란할 것만 같았던 그의 선수 생활도 시간이 흘러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에 김지우의 마음도 조금은 뒤숭숭했다.

옷장에 걸린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꺼내 말없이 손으로 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여보.”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야. 아무것도.”

김지우의 아내는 그의 옆에 앉아서 조용히 그의 손에 손을 올렸다.

“나는 여보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워.”

아내의 말에 김지우는 작게 웃었다.

“우리 처음 만날 기억나요?”

“응. 기억나지.”

“그때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죠.”

독일 보훔에서 뛰던 당시, 김지우는 낯선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경기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차를 타고 폭우를 뚫으며 가고 있는데, 어떤 한국 여자가 비를 맞으며 길거리를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녀를 불렀다.

그때의 인연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

슬하게 남매까지 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여보가 내 남편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여보가 내 아내가 되어서 너무 기뻐. 감사해.”

“그러니까 여보.”

“응?”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뛰어요.”

“고마워.”

아내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선수로서 지닌 그의 불꽃이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  *  *

【오피셜】고양 김지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뛰고 은퇴.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마침내 김지우의 은퇴와 관련해서 공식 오피셜을 발표했다.

김지우의 은퇴 소식에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K리그 팬들도 상당히 아쉬워했다.

-아, 김지우가 은퇴하네.

-아쉽다. 지금 폼 보면 더 뛰어도 될 것 같던데.

-살면서 김지우 은퇴도 보는구나. 하, 내 2, 30대를 함께했던 지우야. 정말 고생했다.

-가지 마. 가지 마. 진짜 가지 마.

-1년만 더 뛰자. 형. 제발.

-김지우 가면 누가 그 자리 채우냐.

-박형우도 김지우하고 1살 차이인데, 이러다가 내년에 박형우도 은퇴하면 어떡하냐.

-90년대생이 은퇴하는 걸 보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2000년대생 강철인이 절정 기량 보이는데, 90년대생이 은퇴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근데 기분이 묘하네.

공식적인 은퇴 오피셜에, 팬들은 이제 누가 김지우의 빈자리를 채울 것인가 감론을박을 펼쳤다.

그러다가 K리그 관계자들 사이에서 묘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K리그 루머】

고양이 김지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역대급 영입을 기획하고 있음.

이 같은 루머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천지원 이사는 부장급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루머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김지우 선수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이런 이야기가 아직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도는 것은, 그간 우리 팀에 헌신해준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해당 관련 루머가 확산하기 전에 언론을 통해 발표하세요. 추측은 자제하라고.”

“네.”

【K리그】고양 유나이티드, 김지우 선수 관련 루머는 사실무근.

고양의 발 빠른 대처에 루머도 금방 수그러들었다.

김지우도 구단의 배려에 고마움을 드러내었다.

해당 루머가 선수에게 있어 조금은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구단의 빠른 대처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나는 손지영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유니폼은 어떻게 됐어?”

“응. 마침 샘플 나왔는데, 한번 볼래?”

손지영이 내게 유니폼 샘플을 보여주었다.

샘플을 심도 있게 살펴본 나는 곧 흐뭇한 표정을 드러냈다.

“좋네. 역시.”

“후후. 하도 네가 얘기해서 내가 직접 총괄해서 만든 유니폼인데, 부족할 리가 있나!”

“고맙다. 지영아.”

“뭘. 그건 그렇고 이렇게 공들일 정도면 꽤 대단한 일인가 봐?”

“어. 중요한 일이지.”

회귀 이후, 나에게 중요한 인물들이 더러 있지만 그 안에 김지우도 있었다.

선수단이 어려울 때부터 함께 해준 그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 보면 내 입장에서는 개국공신이니까.

“그건 그렇고, 너는 연애 잘 되냐? 가끔 SNS 들어가 보면 꽤 잘 지내는 것 같더만.”

“응. 별일 없으면 우리 내년에 결혼해.”

“오, 그래?”

“응. 얼마 전에 우리 아빠도 만났어.”

설마 했지만, 이 두 사람도 결혼하는구나.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었는데.

내가 감옥에 있어도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접점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또한 미래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너하고 김 비서님하고 언제 결혼해? 이제 할 때 아냐?”

“응. 해야지.”

“이야기는 나눠 봤어?”

“얼추 됐지. 시즌 끝나고 프로포즈 하려고.”

“어머! 어머!”

프로포즈라는 말에 손지영이 더 좋아했다.

“우리 태현 씨는 프로포즈 어떻게 하려나?”

“잘하겠지.”

“응. 잘할 거라고는 생각해.”

“아무튼 유니폼 잘 부탁하고. 또 보자.”

“응. 수고해.”

손지영과 헤어지고 나온 나는 기다리고 있던 김 비서하고 만났다.

“유리야.”

“끝나셨어요?”

“응. 시간도 이렇게 됐는데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좋아요.”

우리는 꽤 괜찮은 식당 하나를 섭외해 그곳으로 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김 비서를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흑발에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부드럽게 휘어진 콧날과 도톰한 빨간 입술.

적당히 한 듯 안 한 듯 깔끔한 화장까지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왜 그러세요?”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가 의아해하며 말을 걸었다.

“그냥. 예뻐서.”

“아, 뭐에요. 갑자기.”

그녀가 나쁘지 않은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런 웃음도 나에게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유리야.”

“네?”

“우리 결혼하면 자식은 3명 정도 낳을까?”

“…….”

김 비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힘들면 1명도 괜찮고.”

“저는 다 좋아요.”

“그래?”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가.”

“네. 일이 마무리된 후에. 그때 가서 이야기해요.”

그 말에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녀가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 알기 때문에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들려온 말에 사레가 들렸다.

“그래도 몇 명을 떠나서 혼전임신도 괜찮을 것 같아요.”

“쿨럭. 쿨럭. 쿨럭.”

*  *  *

UAE의 두바이 국왕으로 등극한 칼리드 왕은 그간 자신을 적대했던 세력들을 모두 정리했다.

특히 제일 문제가 되었던 나바드 왕자의 세력을 집중적으로 척결했다.

주요 인사들은 좌천되거나 소리소문 없이 피살되기도 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나바드의 일부 인사들은 해외로 도망치기도 했다.

결국 나바드는 세력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도 언제든지 숙청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부 의견을 반영해 살려두는 쪽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결국 나바드 왕자는 인적이 드문 척박한 시골 저택에서 평생 감시받으며 조용히 지내야만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황을 정리한 칼리드 왕은 그간 준비했던 다양한 정책들을 실행시키는 한편, 주변국과의 외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공식적으로 수도 아부다비를 다스리는 카라얀 왕이 UAE를 대표하지만, 토호국으로 이루어진 UAE에서 두바이라고 주변국과 외교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칼리드 왕의 첫 번째 외교활동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이었다.

이 소식은 대한민국에도 빠르게 알려졌다.

“칼리드 왕이 한국행을 먼저 택한 이유는 하나지. 뭐겠어? 바로 지태훈 차기 회장 때문이지.”

“이번에 꽤 큰 거래들이 오고 갈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그렇겠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태훈 회장 덕분에 칼리드 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하더만.”

칼리드 왕의 방문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방문에 대통령이 직접 마중 나와 환영해주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전에 저희 만난 적이 있지요?”

“기억하고 있으시군요. 예, 맞습니다.”

이현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당시 왕자였던 칼리드가 주최하는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칼리드 왕이 말했다.

“내가 제일 아끼는 아우인 지태훈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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