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고비가 될 것 같았던 아시아챔피언스리그도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우승의 기회를 만들어낸 고양에게 남은 일정은 K리그뿐이었다.
“아시겠지만 아챔 결승전은 K리그 일정이 종료된 이후 진행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제 K리그 우승에 집중하면 됩니다.”
K리그 우승.
재작년에 승격에 성공했던 우리가 K리그로 복귀한 지 고작 2년 되는 해에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3경기입니다.”
3경기.
그것도 아주 힘든 만만치 않은 일정만 남았다.
울산, 전북, 서울.
울산과 전북의 우승 레이스는 사실상 끝났다.
지난 경기에서 울산과 전북이 무승부를 거두면서 서로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양과 서울의 2파전 대결이었다.
스플릿 동안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던 두 팀의 승점 차이는 겨우 2점.
남은 3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 팀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진행된 주말 리그 경기.
울산과 만난 고양은 주중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치른 체력적 여파를 톡톡히 체감해야 했다.
일부 포지션에 로테이션이 가동됐지만, 체력적인 부분은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고양은 울산에게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서울은 포항과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승점 차이는 1점으로 좁혀졌다.
주말 경기가 끝나고 미하엘 코치가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체계적으로 체력관리를 한다고 해도, 올해 우리가 치른 경기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선수단에 속한 선수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경기 숫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양은 리그, FA컵,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병행했고, 여기에 시즌 중간에 맨시티와 친선 경기까지 치렀다.
클럽 경기 외에도 국가대표에 차출된 선수들은 이보다 더 많은 경기를 뛰었다.
특히 A매치를 넘어 동아시아컵 대회까지 병행해서 치른 선수들의 체력 부담은 더 컸다.
이 모든 상황이 선수들의 체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미하엘 코치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알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유럽 최고의 피지컬 코치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미하엘 코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대회를 병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나도 보고를 받고 로치오 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팀 스쿼드가 부족한가요?”
“음. 지금까지 지켜봤을 때 충분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선수 영입을 얼마나 더 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포지션 당 최소 2명의 선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일부 포지션의 경우 2명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이네요.”
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데려올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적시장이 열릴 때면 최대한 선수를 영입해서 스쿼드 보강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우리 팀은 갈 길이 멀다.
“단장님, 다음 이적시장은 시즌이 끝나야 열립니다. 우선 지금 있는 선수들도 최대한 버텨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수들의 정신력과 그간의 노하우로 버텨내야 하죠. 사실 지금 이렇게 온 것도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다면, 곧장 12월에 클럽월드컵에도 참여해야 한다.
“주전 선수들의 경우 평균 40경기 이상을 뛰었습니다. 가장 많이 뛴 선수들의 경우 70경기 가까이 되고요. 여기에 클럽월드컵까지 치른다면 부담이 꽤 될 겁니다.”
“그럼 겨울 휴식기 때가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저희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해체하지 않은 이상, 다음 시즌을 위해서라도 선수들의 체력 관리는 필수입니다.”
로치오 단장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선수단 체력과 관련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하죠.”
“좋은 선택입니다.”
* * *
시즌 막바지로 다가오면서 묘한 분위기가 구단에 흐르고 있었다.
우승이냐, 아니냐를 두고 직원들도 상당히 민감했다.
그래서 서로 조심하며 업무를 봤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이상한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됐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에서 새로운 프로축구팀을 추진한다고요?”
“네.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거나 한 건 아닌데, 시에서 최근 프로축구팀 하나를 새롭게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도 기업 구단으로요.”
이광진 기자의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뭐, 한 연고지에 축구팀 몇 개 있는 일은 종종 있던 일인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게 왠지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음?”
뜻밖의 말에 귀가 쫑긋했다.
“아시겠지만 고양시가 같은 급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기업 구조가 취약하지 않습니까. 시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대기업들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최근 한 기업에서 프로축구팀을 창단하기 위해 시에 도움을 받는 조건으로 본사를 이전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흠. 그 기업 이름이 뭡니까?”
“소문에 의하면 창조건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음? 창조건설이면…… 창조그룹에 속한 계열사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조금 골치 아플 수 있었다.
창조그룹은 재계 9위 기업.
그 안에 창조건설은 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분류될 정도로 탄탄함을 갖췄다.
그런 기업이 우리와 같은 연고지에서 축구팀을 만든다면 상당한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의 지원까지 받는다면, 필요하면 우리가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누가 또 알고 있습니까?”
“아직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슬슬 주변에 퍼지는 것은 금방이겠죠.”
기분이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지난번 퍼레이드 안건을 추진할 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일도 있었다.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시와 관련된 일을 추진하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워낙 이슈몰이가 되다 보니 시에서 그나마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뿐이다.
실제로 내가 부임하기 전만 해도, 시는 고양 유나이티드를 거의 없는 것처럼 취급했었다.
“만약 지금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시는 우리에게 큰 실수를 하는 겁니다.”
서늘한 내 말에 이광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가 곧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급하게 말했다.
“아직 뜬소문에 불과하니, 일단은 지켜보시죠. 저도 추가로 나온 정보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리죠.”
이광진이 나가고 김 비서가 내 곁으로 왔다.
“태훈 씨, 어떻게 할까요?”
“박 팀장님 불러줘.”
“네.”
박준후 팀장이 호출을 받고 왔다.
“찾으셨습니까?”
“박 팀장님. 지금 고양시하고 창조건설 관련해서 조사 좀 해주세요.”
“조사요?”
나는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속하게 조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 * *
바쁜 와중에 유럽 쪽에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이제는 연례 행사처럼 느껴지네.”
내가 구단을 이끌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거른 적 없던 유럽 원정 투어.
이미 유럽 축구 클럽들 사이에서 꽤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모양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맘때쯤에 다수의 유럽 클럽들로부터 친선 경기를 치르자는 연락이 왔다.
“대표님. 이번에 좀 쟁쟁한 팀들로부터 연락이 왔는데요?”
천지원 이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꽤 쟁쟁한 팀들로부터 제안이 왔었다.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망, AC밀란, 인터밀란…… 워, 우리가 무슨 빅클럽이라도 된 것 같네요. 정말.”
사실 제안을 받고 모두가 놀랐다.
나조차 놀랐다.
이 팀들이 왜 우리와 친선경기를 치르기를 원하는 걸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아시아 시장 공략 차원에서 우리만큼 좋은 상대는 없죠. 게다가 우리는 아시아 챔피언이 될 확률도 높고요.”
“지난여름에 맨체스터시티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영향도 있는 것 같네요. 뭐, 작년하고 재작년 모두 우리하고 친선경기를 치른 유럽클럽들이 아시아 쪽에서 제법 높은 관심을 받고 매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고요.”
우리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회장님. 겨울 친선 경기, 정말 치르실 생각입니까?”
로치오 단장의 물음에 나는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선수들의 체력관리 시스템이 어느 정도 확보되기 전까지는 원정 경기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음.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친선전을 진행하되, 경매식으로 해서 딱 1팀하고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순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그가 씩 웃으며 설명했다.
“지금 우리에게 제안을 보낸 팀들은 제법 자금이 있는 팀들입니다. 우리가 초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급할 것도 없고요.”
“그렇죠.”
“유럽 원정 경기는 선수들에게 분명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이런 빅클럽들을 상대로 한다면 더욱 경험이 쌓이죠. 하지만 우리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린 다음에 진행해도 됩니다.”
“아!”
그제야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제가 유럽으로 가서 일을 진행하고 오겠습니다.”
역시 이게 단장의 힘인가.
로치오 단장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흔쾌히 그를 유럽으로 보냈다.
“다녀오시죠.”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로치오 단장이 다시 유럽으로 떠났다.
* * *
이어지는 주말.
나는 집에서 김 비서와 함께 전북으로의 원정 경기 중계를 지켜봤다.
『오늘 고양에게 있어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경기가 되겠는데요. 전북도 3위 수성을 위해서 오늘 경기를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왠지 작년보다 이번 시즌이 더 치열한 것 같아.”
맥주를 홀짝이며 중얼거리는 내 말을 옆에서 들은 김 비서가 반응했다.
“아무래도 상금 영향이 크지 않을까요?”
“그런가.”
올해부터 우승팀은 500억, 준우승팀은 200억을 가져간다.
3위는 50억, 4위는 40억, 5위는 30억, 6위는 20억 마지막으로 7~12위까지는 10억씩 받는다.
지금 상황에서 사실상 상위 4개팀은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 팀들은 아니었다.
K리그 클럽들에게 있어 10억은 적은 돈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갈 수 있다면, 더 가져가야만 했다.
그게 시즌 막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고양과 전북의 경기를 치르기 바로 2시간 전에 서울과 인천의 경기가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인천이 서울은 1:0으로 꺾었다.
인천과 수원도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계속 뒤집히고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한 K리그 시즌을 봤을 때, 이 정도 순위면 그저 차기 시즌을 위해 준비하는 경기 정도로 취급했겠지만, 올해는 달랐다.
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서로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이기면 우승 확정인가?”
“그렇죠.”
현재 승점 1점 차이인 상황에서, 고양이 전북을 꺾으면 승점 4점으로 벌려진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 라운드에서 서울이 우리를 꺾는다고 해도 승점 1점이 부족해진다.
“반드시 이겼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팀의 승리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