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고양 유나이티드 선발 라인업]
박지원(GK)
백종수-카초-유태준
스즈키-석종호
이진수-호프만-황진용-한석원
사무엘
『1차전과는 전혀 다른 선발로 나오는 고양인데요. 곽찬구 감독의 의중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수비의 경우에는 라시모프와 정성진 이 두 선수가 모두 빠졌기 때문에, 중앙 수비를 볼 수 있는 카초가 그 자리를 채웠고요.』
『그렇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태준 선수인데요. 이 선수가 올해 처음 프로로 올라선 신인 선수입니다. 2007년생의 어린 선수고요. 과거 U-17과 U-20 대표팀 경험도 있는 선수입니다.』
『상당히 기대가 되는 선수군요.』
『네, 현재 라시모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전술적으로 스리백을 가동하고, 유태준 선수를 기용해서 수비와 공격에 밸런스를 맞추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여기서 또 눈에 띄는 것은, 한석원 선수인데요? 윙백으로 선발 출전합니다.』
『한석원 선수가 최전방과 측면 모두 기용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인데, 어떻게 보면 곽찬구 감독의 모험수로 보이는데요. 한석원 선수가 공격적인 재능은 이미 충분히 검증이 됐지만, 과연 윙백으로서 수비도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상당한 변화가 있는 고양인데요. 박형우 선수와 김지우 선수 같은 베테랑 선수들은 오늘 모두 벤치에서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사실 이 두 선수 모두 올해 거의 쉬지 않고 계속 기용되었거든요? 두 선수 모두 30대 중반이 되는데, 이렇게까지 기용하는 것은 사실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라인업이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는 고양 아레나입니다!』
* * *
유태준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친구이자 팀 동료인 한비오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태준아, 너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내.”
“고마워. 근데 긴장되기는 하네.”
“긴장할 수밖에 없지. 나도 데뷔전 때 얼마나 긴장했는데. 그래도 막상 경기 시작하면 또 다를 거야. 형들 믿고 뛰면 돼.”
“응. 고맙다.”
2007년생, 이제 겨우 만으로 20살에 불과한 유태준은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그것도 K리그1이 아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팀의 운명이 걸린 4강전 무대에서 선발로 기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전날 곽찬구 감독이 불러 진지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반신반의였다.
‘설마 진짜 내가?’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 시작 1시간 전 선발 명단이 발표되고 나서 그제야 체감이 확 오기 시작했다.
‘잘해야 한다. 잘해야 해.’
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김지우가 다가왔다.
“네가 평소하던 대로하면 돼. 설령 필드에서 실수하더라도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니까. 대신 그만큼 열심히 뛰어야지. 알겠어?”
“넵!”
하늘 같은 베테랑 선배의 조언에 유태준은 힘을 냈다.
그렇게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끝까지 힘내주세요.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지태훈 대표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다.
유태준도 가끔 훈련장에서 마주칠 때가 있었다.
천외천처럼 느껴지는 그의 존재감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지태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유태준을 보고 씩 웃더니 곧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수비수답게 190에 가까운 장신의 키를 지닌 유태준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다.
지태훈을 본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태훈은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선발 축하해요. 경기 결과 생각하지 말고, 오늘 본인 데뷔전에 집중해서 뛰세요.”
“아, 넵.”
지태훈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곁을 떠났다.
유태준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뛰자!’
아까와 달리 긴장감이 많이 사라진 유태준이었다.
* * *
올해 43세인 가와사키 감독 하시모토 유지는 고양의 선발 라인업을 복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이건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우리가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어!”
가와사키의 지휘봉을 잡고 어느덧 3년 반 정도 되었다.
원래 팀의 수석코치로 활약했던 그는 시즌 중반 모셨던 감독이 경질되면서 급하게 소방수 감독으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팀을 빠르게 안정화하고 연승을 거두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장기 계약을 맺고 현재까지 감독을 맡고 있었다.
가와사키를 이끌고 지난 시즌 일왕배 우승을 경험하고, 올해는 리그 우승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여기에 AFC챔피언스리그도 4강까지 올라왔다.
그의 목표는 리그와 아챔 더블을 달성하는 것이다.
“상대 수비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모양이다. 내세울 선수가 없어서 어린 애송이나 내세우니까 말이야.”
여기에 주요 경계해야 할 베테랑 선수들이 모두 빠지고, 일부 선수들은 본인의 주력 포지션이 아닌 포지션을 뛰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것이 증명되는 선발이었다.
“반드시 이겨서 결승전은 우리가 올라간다!”
마침 오늘 경기가 있기 바로 전에, 서아시아 결승진출 팀이 정해졌다.
카타르의 알 두하일.
지난 시즌 카타르 리그 우승팀이기도 했다.
대회 초기만 하더라도 서아시아 클럽들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격파하며 올라갔지만, 여름 이적 시장 이후 주축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간신히 결승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그래서 유지 감독은 결승전에만 올라가면 충분히 우승도 노려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비단 감독뿐만이 아니다.
선수들도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 경기만 이기면, 우리가 충분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어!”
“오!”
“1골만 넣으면 분위기는 우리한테 온다!”
가와사키는 1차전과 동일한 멤버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크나큰 변화보다 안정적인 선택으로 한 방을 노려보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양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삑!
와아아아!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양팀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VIP 좌석에서 굳은 얼굴로 지켜봤다.
“얼마나 잘하려나.”
전날에 갑자기 나를 찾아온 곽찬구 감독은, 유태준이라는 어린 선수를 선발 기용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워낙 중요한 경기이다 보니, 곽찬구 감독도 사전에 나에게 보고를 했다.
내 시선은 유태준에게 향해 있었다.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이리저리 필드를 누비는 어린 선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VIP 좌석에 설치된 TV에서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토, 빠르게 쇄도하는데요! 유태준이 빠르게 다가와 커팅합니다!』
『아! 좋아요! 유태준 선수가 신장도 좋지만 스피드도 있는 선수거든요! 발이 빠른 유토라도 이렇게 미리 움직임을 파악 당한 상태면 뚫기 어렵죠!』
『2007년생의 어린 선수인데요! 프로 데뷔 이후 첫 번째 커팅을 기록합니다!』
유태준은 큰 신장과 스피드 그리고 기술적인 플레이로 유토의 역습을 막아냈다.
『가와사키가 계속 한석원 선수가 뛰고 있는 저 왼쪽 측면 쪽을 계속해서 노리는데요! 유태준 선수가 뒤에서 커버를 잘해주고 있네요!』
가와사키는 1차전과 동일한 선발로 나왔지만, 1차전 때보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그 탓에 전반전 초반부터 우리가 몇 번이나 위기를 겪을 뻔했다.
하지만 유태준이 결정적인 수비를 보여 주며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잘하는데?”
지켜보던 나도 짤막하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내 반응에 옆에 앉아 있던 로치오 단장이 말했다.
“곽찬구 감독이 어린 선수를 발견하고 키우는 능력이 좋더군요. 유태준은 충분히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하의 로치오 단장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말은 다 했다.
초반에 손발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상대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줬던 고양이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점차 호흡이 맞으면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초가 공을 잡습니다. 전방으로 길게 올려주는데요! 사무엘이 헤딩을 받습니다. 떨어진 공을 호프만이 잡습니다. 호프만, 측면으로 짧게 내주는데요! 이진수가 공을 잡고 달립니다! 이진수! 빠르게 측면에서 질주합니다!』
순식간에 상대 코너킥존 근처까지 달려간 이진수가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가와사키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쇄도하고 있던 양팀 선수들이 뒤엉키며 펄쩍 뛰어올랐다.
사무엘이 먼저 헤딩으로 공을 건드렸다.
각도가 틀어진 공이 골문으로 향했지만, 김신후가 쳐냈다.
하지만 쳐낸 공이 공교롭게도 한석원 앞에 떨어졌다.
‘같은 실수 따윈 없어!’
1차전에서 벌어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한석원은 훈련이 끝나고 매번 따로 슈팅 연습을 했을 정도다.
그런 그의 앞에 공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앞에는 비어 있는 골문만이 있었다.
한석원이 오른발로 공을 때렸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골문으로 향했다.
놀란 가와사키의 수비수 유즈키가 황급히 발을 길게 뻗었지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이 그런 그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출렁-
시원하게 흔들리는 골망.
그걸 본 한석원이 두 팔 벌려 팬들 앞으로 뛰어가며 포효했다.
그리고 지켜보던 팬들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지켜보던 나도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 * *
『골! 골입니다! 한석원이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이야~ 아주 좋은 골이 나왔네요! 이렇게 되면 고양이 결승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을 더욱 크게 높일 수 있네요!』
『1차전의 실수를 만회하는 한석원의 골이 나오면서, 고양이 1:0으로 앞서갑니다. 합계 스코어는 2:0입니다!』
『이러면 가와사키는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가와사키가 결승전에 올라가려면 3골이 필요하거든요? 가와사키가 평소에 사용하는 선수비 후역습 같은 플레이로는 이 스코어 뒤집기 어렵습니다.』
유지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충분히 반격할 수 있겠다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한 골 더 실점하고 경기는 더욱 어렵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양의 홈팬들은 신이 났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응원가를 불렀다.
경기는 점점 고양이 몰아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무엘 슈우웃! 아! 수비에 막힙니다!』
『이번에는 호프만인데요! 호프만 슈우웃! 골키퍼 선방!』
고양이 여러 차례 기회를 맞이했지만, 가와사키 또한 추가 실점은 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막아냈다.
『현시점에서 K리그 1위와 J리그 1위 클럽 간의 자존심이 담긴 경기인데요. 현재까지는 K리그1 1위 팀인 고양 유나이티드가 우세합니다!』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두 나라였다. 한국인이 바라보는 일본은 용서는 불가능한 국가였다.
특히 스포츠에서 이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오고 있었다.
자고로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 부셔버려!”
일부 격한 반응을 보이는 홈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가와사키도 무조건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뛰는 한석원의 왼쪽 측면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그 결과, 가와사키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마르퀴뇨스가 측면으로 쇄도하는 유토에게 패스합니다. 유토 드리블하는데요! 유태준이 바로 경합합니다!』
계속해서 유태준에게 막히는 유토는 무리한 플레이보다 동료를 활용했다.
『유토, 흘려줍니다! 다닐손인데요!』
페널티박스 바깥쪽에서 볼을 잡은 다닐손.
골문과 거리가 있었기에, 고양의 수비수들은 다닐손이 더 안쪽으로 들어오거나 동료들을 활용한 플레이를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달리, 다닐손은 그 위치에서 직접 때렸다.
팡!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