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위험……!”
벤치에서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두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유토의 회심의 왼발 슈팅이 낮고 빠르게 골문으로 향했다.
팡!
그 순간, 박지원이 몸을 날렸다.
『선방입니다! 막았습니다!』
위기의 순간 골키퍼의 결정적인 선방이 팀을 위기에서 구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와사키의 김신후에 이어 박지원도 뛰어난 선방을 보여 줬다.
“괜찮아! 다시 가! 다시!”
박지원이 동료들에게 목소리 높여 격려했다.
“다행이다.”
곽찬구 감독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던 고양인데요. 가와사키의 역습을 왜 경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증명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쉽게 기회를 날린 유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안타까워했다.
필드 위를 누비는 고양 선수들은 가와사키의 역습이 상당히 매섭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수비 간격 조정해!”
백종수가 라인을 조율했다.
전체적으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는 고양이었지만, 언제든지 상대는 위협적인 역습이 가능했기에 수비 조율이 필요했다.
수비수들의 위치를 조정하면서 고양의 공격은 이전보다 조금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 틈을 노려 가와사키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료타가 길게 패스하는데요! 측면에 고바야시가 있습니다! 고바야시가 다시 내주는데요. 료타가 마르퀴뇨스. 마르퀴뇨스 앞쪽으로 패스합니다! 다닐손 잡는데요! 다닐소오오온! 다행입니다! 공은 골문 위로 벗어납니다!』
『지금 보시면, 고양의 공격이 조금 주춤해지니까 가와사키에서 바로 공격을 들어오는데요. 고양이 조금 타이트하게 경기를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반 20분을 넘어가면서 양팀의 경기는 치고받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노리며 달려들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캉!
“아!”
『아깝습니다! 골대를 맞추는 오세진의 슈팅입니다!』
『아, 이거 너무 아깝네요! 들어갔으면 원더골인데요!』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오세진이 페널티박스 바깥쪽에서 오른발로 감아 찼다.
그렇게 감아찬 슈팅은 상대 골키퍼도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날아가더니 그대로 골대 위쪽을 강타하고 서포터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오세진이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내며 탄식했다.
이걸 본 박천명 캐스터가 빠르게 말했다.
『비록 골대를 맞추기는 했지만, 지금 고양에게는 이런 슈팅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팀 모두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음에도 전반전은 소득 없이 0:0 무승부로 마무리 지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양팀 선수들의 분위기는 상반되었다.
홈팀 가와사키 선수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은 편이었지만, 원정팀 고양 선수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 * *
“쉽지 않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물론 나보다 직접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더 클 것이다.
‘무승부라도 해서 2차전 홈에서 반전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네.’
일본에 오기 전에 곽찬구 감독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다.
가와사키의 수비를 뚫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지켜보니 가와사키의 수비는 상당히 단단했다.
우리 팀이 자랑하는 박형우나 호프만 같은 선수들도 가와사키의 단단한 수비벽에 막혀 고전했으니까.
“이럴 때 박요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박요한이라면 저 촘촘한 수비벽을 쪼갤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 줬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쉬웠다.
“회장님.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음?”
박준후 팀장이 내게 스마트폰을 건냈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큰일났습니다.
“음? 천 이사님. 무슨 일입니까?”
천지원 이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어리둥절하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두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에 칼리드 왕자 측근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알 나흐 왕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
UAE를 이끌던 왕 알 나흐가 사망했다.
“칼리드 왕자는 어떻게 됐죠?”
-임종을 지키고 현재 두바이에서 장례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여기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모든 일정 취소하고, 지금 바로 두바이로 가야겠습니다.”
회귀 이후 누구보다 나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줬던 칼리드 왕자를 위해서라도, 나는 가야만 했다.
눈앞에 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그렇게 나는 1차전 결과를 보지 못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 * *
지태훈이 다급하게 떠난 것도 알지 못한 채, 고양 선수들은 다가올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상대 수비가 견고했어. 여기에 운도 따라주지 않았고.”
곽찬구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너희들이 못한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가 심리적으로 너무 쫓기는 것 같아. 괜찮아. 충분히 우리 잘하고 있고, 시간은 아직 45분이 남아있어. 이 뒤에 2차전도 있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45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돼. 알겠지?”
“예!”
감독의 일장 연설에 선수들도 아까와 달리 굳은 표정을 풀고 결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카메라가 모두 담고 있었다.
곽찬구 감독은 준비해 놓은 전술보드를 이용해 선수들의 위치를 조금씩 재조정했다.
전술적 설명이 끝난 후, 감독이 박수 치며 외쳤다.
“좋아! 그럼 후반전도 최선을 다해보자!”
“네!”
그렇게 선수들은 후반전을 위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전.
가와사키는 여전히 선수비 후역습으로 고양의 뒷공간을 노렸다.
고양도 그런 가와사키의 역습을 경계하면서 계속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는 와중에 고양이 먼저 교체 카드를 빼들었다.
『오세진 선수가 빠지고, 이진수 선수가 투입할 준비를 하는데요.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 가와사키의 역습을 대비하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보겠다는 변화가 아닌가 싶은데요. 카초 선수가 주 포지션이 측면이지만, 중앙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도 가능하거든요? 유벤투스에서 뛰던 시절에도 간간이 뛰는 모습을 보여줬죠.』
『그랬었죠.』
『과거에 유벤투스의 중앙 수비수였던 자파티 선수가 부상이었을 때, 그 빈자리를 한동안 채웠던 것처럼. 그래서 아마 카초 선수가 그때처럼 중앙 수비수로 들어가서 스리백의 한 축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포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도 있을 건데,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박천명 해설위원의 예측대로 고양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오세진이 빠지고 교체 투입한 이진수가 카초가 뛰던 측면 수비수로 이동하고, 대신 카초는 중앙 수비수 자리로 이동했다.
『네, 스리백이네요. 스리백입니다. 그러면 3-5-2 기반에 공격적인 스리백 운영이 가능하겠네요. 여기에 카초 선수가 중앙 수비수로 오면서, 가와사키의 공격 또한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거고요.』
『곽찬구 감독의 전략이 돋보이는군요?』
『그렇죠. 이건 감독의 전략이죠.』
『고양의 스쿼드가 워낙 좋은데, 카초처럼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들이 제법 있죠?』
『그렇죠. 대표적으로 김지우 선수 있죠? 중앙 미드필더, 수비, 다 가능하고, 여기에 박형우 선수도 원래 미드필더인데 공격수로도 활용 가능하고요.』
중계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양이 가와사키를 압박했다.
『유토의 공을 가로채는 카초입니다! 카초가 공을 멀리 보내는데요! 측면에 있던 호프만이 잡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측면으로 떨어진 공을 호프만이 잡고, 자신의 뒤로 질주하는 이진수를 향해 공을 흘렸다.
『자, 이진수! 측면에서 빠르게 올라갑니다! 이진수 올리는데요!』
『어~ 올리죠!』
그 순간,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쇄도하던 박형우가 펄쩍 뛰어오르면서 떨어지는 공을 향해 이마를 댔다.
펄쩍 뛰는 박형우의 양옆으로 가와사키의 수비수인 유즈키와 무토가 있었지만, 한발 늦었다.
『헤디이이이잉!』
정확하게 이마에 닿은 공이 방향을 틀어 골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예측하던 김신후가 뛰쳐나와 팔을 길게 뻗어 쳐냈다.
팡!
『아! 선방인데요! 하지만 아직 공 살아있습니다!』
굴절돼서 앞으로 떨어진 공은 공교롭게도 뒤이어 달려오던 한석원 앞에 떨어졌다.
아무도 없는 빈 골대.
한석원이 바로 슈팅을 시도했다.
『한석원 기횐데요! 슈우우우웃!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너무 흥분했던 것일까?
한석원이 찬 회심의 슈팅이 그만 아무도 없는 빈 골문이 아닌, 그 뒤쪽에 있는 서포터스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아! 아깝습니다! 한석원 선수! 땅을 치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아! 이게 뭔가요!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다니요! 한석원 선수답지 않는 플레이인데요!』
자신의 플레이에 화가 난 한석원이 애꿎은 잔디를 향해 몇 번이나 주먹으로 내리쳤다.
저 멀리 골문을 지키며 지켜보던 박지원도 얼굴을 감싸쥐었고, 벤치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무릎 꿇고 탄식했다.
『계속해서 고양에게 기회가 오고 있지만, 잘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운이 안 따라주네요. 고양이 지금 계속 기회를 잡고는 있는데, 아, 오늘 좀 많이 답답하네요.』
『원정까지 따라온 팬들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이후 고양은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했지만,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가와사키도 고양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지만, 역습 자체가 쉽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고양은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자, 지금 벤치에서 황진용 선수가 준비하고 있는데요. 드디어 황진용 카드를 꺼내드는 고양입니다!』
『아, 황진용 선수가 드디어 나오네요. 황진용 선수가 가진 디테일한 패스와 날카로운 킥. 단 한 골이라도 만드려면, 고양에게 지금 황진용 카드는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 전북에서 우라와를 격파하면서 일본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황진용인데요. 이번에는 고양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황진용이 나올 준비를 하자 서포터스도 환호했다.
『누굴 뺄까요? 아, 한석원 선수가 빠지네요.』
『오늘 여러 번 기회를 얻었지만, 아쉽게 기회를 놓쳤던 한석원 선수가 빠집니다.』
한석원과 교체 투입된 황진용은 곽찬구 감독을 통해 받은 지령을 동료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고양은 황진용에게 집중적으로 공을 몰아주기 시작했다.
공을 받은 황진용은 적극적으로 전진 패스를 찔러주며 공격을 주도했다.
마침 가와사키 선수들도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 있던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황진용의 패스는 빛이 났다.
『황진용이 뒷공간으로 찔러주는데요! 박형우가 잡습니다! 박형우 슈우우웃! 아! 수비에 막힙니다!』
『확실히 황진용 선수가 투입된 이후에 고양이 좀 더 세밀하게 공격을 하네요.』
그렇게 후반 정규 시간도 끝나고 추가 시간에 돌입했다.
기회가 얼마 없는 상황에서, 황진용이 이진수에게 공을 패스했다.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침투하려던 이진수를 향해 료타가 무리하게 태클을 시도했다.
촤악.
“악!”
공이 아닌 이진수의 신발 쪽으로 향한 태클이었다.
태클에 걸려 넘어진 이진수가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주심이 휘슬을 불고 반칙을 선언했다.
그리고 위험한 태클이라며, 료타에게 옐로카드까지 건넸다.
그렇게 페널티박스 바로 앞쪽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어낸 고양이었다.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고양이 결정적인 기회를 얻는데요. 키커는…… 황진용 선수가 나섭니다!』
가와사키 선수들로 이루어진 벽을 앞에 둔 황진용이 프리킥을 차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