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30라운드 경기를 나는 집에서 김 비서와 함께 시청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우리 팀 경기보다 다른 팀 경기가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준비했어요. 짠!”
거실에 걸려 있는 대형 벽걸이TV에는 우리 팀 경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미리 준비한 노트북과 PC에는 다른 팀 경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김 비서야.”
“후훗.”
칭찬을 받은 김 비서가 콧대를 높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 이제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남았네.”
“이거요?”
“역시!”
김 비서가 부엌에서 치킨과 생맥주를 쟁반에 받쳐 가져왔다.
“완벽하다!”
축구를 볼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오, 시작했다!”
스플릿 라운드를 앞둔 정규리그 마지막 30라운드 경기는 모든 팀이 동일한 시간에 경기를 시작한다.
“우리 팀은 전력으로 나왔군.”
“전북도 마찬가지네요.”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이다.
서로가 전력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전북도 고민이겠지. 오늘 경기 이겨야 스플릿 라운드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으니까.”
현재 실질적인 선두 경쟁은 고양과 서울, 두 팀이 경쟁하고 있었다.
전북과 울산도 산술적으로 우승 경쟁의 가능성이 아직 존재했지만, 승점 차이가 제법 나서 매 경기 승리가 필요하다.
“짠.”
“짠.”
우리는 생맥주가 담긴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건배한 뒤, 맥주를 마셨다.
맥주 특유의 시원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때, 노트북 쪽에서 갑자기 환호와 함께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 골입니다!』
“뭐야?”
깜짝 놀란 우리는 맥주를 마시다 말고 황급히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트북 화면에는 인천 선수들과 팬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경기 시작 1분 13초 만에 득점이 터져 나옵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인천의 오승준 선수입니다!』
리플레이 화면을 통해 인천 선수들이 경기 시작하자마자 수원의 진영에서 빠르게 볼을 돌리며 전진하다가 오승준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에 수원의 골망이 흔들렸다.
『거의 경기 시작과 동시에 스코어는 1:0이 됩니다!』
『자, 이렇게 되면 수원 입장에서는 시작부터 조금은 어렵게 경기를 풀게 됐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있지만, 오늘 두 팀은 이기는 쪽이 상위 스플릿으로 올라갑니다!』
『출발이 좋은 인천인데요, 전반 1분 13초 만에 오승준의 득점으로 전반전에 앞서나가는 인천입니다!』
“미쳤네.”
리플레이 화면을 보던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역시 이 맛에 K리그 본다니까.”
불과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그때, 이번에는 PC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항, 위기인데요!』
『울산의 권태훈인데요! 권태훈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우와아아아!』
“뭐야! 뭐야!”
모니터에서 울산의 권태훈이 개인 기술로 포항의 수비를 허물고 득점까지 만든 모습이 리플레이되어 보여졌다.
망연자실한 포항 선수들의 얼굴과 환호하는 울산 선수들의 모습이 교차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TV 화면에서 전북과 고양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진들이 반응했다.
『어, 지금 저희 쪽으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인천과 울산이 거의 경기 시작과 동시에 득점했다고 합니다.』
『어~ 이거 경기가 시작부터 흥미진진한데요?』
『인천하고 수원, 포항과 울산의 두 경기의 결과에 따라 오늘 상위 스플릿 팀이 정해질 텐데요. 이렇게 되면 인천이 조금 우세한 상황이 됐네요.』
『아직 시간이 남아서, 조금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죠.』
동 시간대에 여러 경기가 치러지다 보니,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들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K리그 팬들도 다른 팀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더 흐를 무렵이었다.
우리 팀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상황에서 김 비서가 다급하게 외쳤다.
“태훈 씨! 이거 봐요!”
“음?”
『포항의 유진호가 길게 내줍니다! 포항의 역습! 기회인데요! 발 빠른 로드닐이 잡습니다!』
『로드닐, 빠르죠!』
『로드닐이 올려주는데요! 중앙에는 염민우가 있습니다!』
포항 염민우가 낙하하는 공을 보고 발을 뻗었다.
하지만 상대 골키퍼가 먼저 나와서 펀칭했다.
『굴절되는 공! 다시 유진호인데요! 유진호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이야아아아!』
포항의 유진호가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울산의 골문 앞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유진호가 침착하게 슈팅하면서 골망을 흔든 것이다.
“와, 진짜 경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전반 10분이 채 안 된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득점이 마구 터져 나왔다.
수원 블루 0:1 인천
울산 1:1 포항
“우리 팀은 아직 0:0이고, 다른 팀 상황을 좀 볼까?…… 어라?”
“왜 그러세요?”
“와! 김 비서! 서울하고 대구 스코어 봐봐.”
서울 2:0 대구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지난 경기에 포항에게 대패했던 서울의 분노가 대구에게 쏟아졌다.
전반 10분도 안 돼서, 페리시치의 2골로 앞서고 있었다.
“부상에서 돌아오더니 바로 2골 넣어버리네. 이 동유럽 녀석도 괴물이네.”
박형우에 이어 K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데얀 페리시치의 활약은, 현재 서울이 선두 경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음, 태훈 씨.”
“왜?”
“파주는 심각한데요.”
“거긴 왜?”
“이것 좀 보세요.”
파주 0:1 부산
“흐음. 애들도 심각하네.”
우리의 오랜 라이벌 팀으로 상대해 왔던 파주FC는 올 시즌 위기를 겪고 있었다.
현재 리그 11위인 파주는 최하위 성남과 승점 4점 차이였고, 잔류 마지노선인 9위 수원 유나이티드와는 승점 10점이 넘게 차이가 났다.
오늘 리그 10위 부산과 일전을 벌이는 파주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는데, 부산에게 지고 있었다.
승점 6점짜리 경기나 다름없는데, 오늘 여기서 지게 되면 파주는 자칫 남은 경기를 힘들게 치를 수 있었다.
“이재신 단장 떠나고 완전히 망해가고 있네.”
“조금 안쓰럽기도 해요.”
“다 자기 복이지.”
구속됐던 이재신 단장은 모든 혐의가 인정되어 현재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여론이 좋지 않던 파주는 이반코비치 감독을 내보내고 이광용 감독을 선임해 반전을 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이광용 감독이 세대교체를 시도하며 변화를 주고 있지만, 전술의 부재와 일부 선수들과의 충돌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최근에 배팅 사이트에서 파주의 강등 확률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며?”
“네. 저도 그 기사 봤어요.”
리그 꼴찌 성남 못지않게 강등 확률이 높은 파주는 굴욕적인 상황을 계속 마주해야 했다.
그때였다.
『전북의 아크인데요! 박형우입니다! 박형우 슈우우웃! 아!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아!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요! 잘 차고 잘 막았습니다!』
“아!”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던 박형우의 회심의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는 모습을 보고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린 나는 맥주를 마셨다.
“오늘 맥주맛 죽이네.”
여전히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데, 노트북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골입니다! 수원 블루의 진상호 선수가 동점골을 기록합니다!』
“오오.”
수원 블루 쪽에서 빠르게 동점골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되면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양쪽 다 1:1이네.”
“태훈 씨. 오늘 경기 재밌어요.”
“나도.”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 팀 경기보다 이제 다른 두 팀의 경기가 자꾸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안 되겠다. 바꾸자.”
리모컨으로 울산과 포항의 경기를 틀고, 전북과 고양의 경기를 PC로 바꿨다.
“대표가 이렇게 해도 되나요? 본인이 운영하는 팀 경기를 서브로 빼다니.”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하자고.”
꼭 우리 팀 경기만 볼 필요가 있겠는가.
이건 어떻게 보면 다른 팀의 전력 분석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아무튼 그렇다!
『전반전 종료됩니다! 양 팀 모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이제 후반전을 기약합니다!』
『K리그 최고의 더비다운 모습을 보여 줬는데요. 울산은 권태훈을 중심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지만, 포항의 역습에 지속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고요. 반면, 포항은 찬스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놓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두 팀이 어떤 모습으로 후반전에 임할지 기다려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반전이 끝났다.
울산과 포항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1:1 무승부로 전반전을 마쳤다.
다른 팀들도 추가 골을 만들지 못하고 마무리했다.
고양과 전북도 득점없이 0: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잠깐 화장실 좀.”
“네.”
화장실에 다녀오고 맥주를 마시면 생긴 알딸딸한 기분을 잠깐 추스르고 돌아오자, 어느덧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수원 빅버드.
후반전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일부 인천 팬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제발 골 좀 넣어줘라.”
경기 시작과 동시에 득점을 기록했던 인천은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지금 분위기는 달랐다.
전체적인 경기 주도권은 인천이 가지고 있었다.
일방적인 흐름까지는 아니어도, 인천은 후반전에도 많은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인천 팬들은 다른 팀 결과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스마트폰으로 중계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오늘 인천과 수원이 비기고, 포항이 울산을 잡거나 비기면, 상위 스플릿은 수원과 포항이 올라가게 된다.
인천 입장에서, 오늘 수원에게 승리하고 포항이 지거나 비기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원 쪽에서 짧고 굵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뭐지?”
일부 인천팬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때, 포항 경기를 시청하던 인천 팬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유진호가 또 득점합니다! 이번에는 포항이 앞서 나갑니다!』
포항이 울산을 상대로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천이 급해지게 됐다.
인천은 이대로 비기면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필드에 뛰고 있던 선수들도 알게 됐다.
“포항이 역전했대!”
“뭐? 이런 씨!”
다급해진 인천 선수들과 달리 수원은 조금 여유로웠다.
“우리 플레이에 집중해!”
하지만 인천은 수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 방이 있는 팀이었다.
출렁-
코너킥 상황에서 인천의 외국인 수비수 마틴이 헤딩으로 수원의 골망을 흔들었다.
우와아아아!
인천의 이 한 방에 경기는 뒤집혔다.
* * *
“뭐야? 이러다가 수원이 하위로 떨어지겠는데?”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시간으로 순위가 바뀌었다.
6위 포항과 7위 인천이 각각 한 계단씩 올라가고, 수원이 7위로 훅 떨어졌다.
“이건 이대로 반전이겠네.”
누구보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던 수원이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진다면, 그것 나름대로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서울이 무섭네.”
나는 슬쩍 서울과 대구 경기의 스코어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울 6:0 대구
서울은 그야말로 대구를 폭격하고 있었다.
대구는 억울할 정도로 서울에게 분풀이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위기의 팀이 존재했다.
파주 1:4 부산
“여기도 끝장났네.”
실시간으로 몰락하는 라이벌의 모습에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